6.
강천구 장도리파 본거지 앞에 세 사람이 탄 차가 도착했다.
먼저 차에서 내린 이선호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직하게 자신의 감상을 뱉었다.
“여기도 분위기가 많이 변했네.”
“장도리파가 이쪽 동네를 장악한 이후로 낮에도 돌아다니기 위험한 동네가 돼 버렸으니까. 게다가 강천구 자체가 서울 외곽 지역이라 치안이 불안한 탓도 있고. 경찰들도 이 주변은 웬만하면 잘 접근하지 않더라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윤수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세상은 20년 전보다 훨씬 발전했지만, 치안은 오히려 20년 전보다 훨씬 위험해졌군요.”
“씁쓸하지만 그게 현실이죠. 게이트의 발생도, 재앙종들의 출현도 인간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마찬가지니까요.”
“그래서 그 괴물들을 재앙종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윤수호의 질문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저희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설령 세상이 종말을 향해 치닫는 중이고, 재앙종이 그 시작이라 해도 저희는 살아 있으니까요. 살아 있는 이상,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 봐야죠.”
이선호의 대답에 조춘영이 장도리파의 건물을 올려다보며 이죽거렸다.
“뭐, 그 와중에 힘을 모을 생각은 않고 오히려 이런 위기를 기회 삼아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개새끼들도 있지만요.”
“뭐야, 이 새끼들은?”
세 사람이 자신들의 건물을 쳐다보면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건물의 입구 앞에서 감시하고 있던 깡패들이 다가왔다.
“볼일 있는 거 아니면 눈깔 사부작하게 깔고 가던 길 가지? 뒈지기…….”
그중 가장 험상궂은 녀석이 인상을 구기며 세 사람을 협박하자…….
빠각! 서걱!
윤수호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가더니 험상궂은 녀석의 턱을 잡아당겨 뽑아 버리고는, 그대로 손가락을 휘둘러 녀석의 팔 하나를 날려 버렸다.
“크아아악!”
“뭐, 뭐야?”
“소, 손가락으로 팔을 잘랐어!”
팔 하나를 잃은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자, 함께 있던 동료들은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고 놀란 눈으로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손가락으로 사람의 어깨를 잘라 팔을 날려 버리다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느, 능력자다!”
“어서 형님한테 보고…….”
서걱! 서걱! 서걱!
서둘러 건물 안으로 도망치려던 녀석들을 향해 윤수호는 무심히 손가락을 그었다. 그러자 장난처럼 인간의 팔다리가 잘려 사방에 흩어졌다.
“이게 무슨…….”
그 광경을 보고 놀란 사람들은 장도리파 깡패들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혹시라도 위험해지면 나설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던 조춘영 역시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윤수호를 쳐다보았다.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처음에 그랬거든. 뭐, 내가 받은 충격은 이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동기의 표정을 확인한 이선호는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저는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두 분은…….”
윤수호가 뒤를 돌아보며 말하자 이선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 걱정은 마시고 마음껏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됩니다. 춘영아, 모쪼록 수호 씨 방해만 하지 마라.”
“내가 무슨 애냐?”
“그럼 좀 이따 뵙겠습니다.”
가볍게 목례한 윤수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조춘영이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두 사람을 배웅한 이선호는 현장을 살펴보다 폰을 꺼내 들었다.
“자, 그럼 일단 119부터 불러야겠지. 하여간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니까. 손가락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나, 참…….”
그러면서 이선호는 괜히 앞을 향해 손가락을 쭉쭉 그어 보았다.
* * *
한편, 밖에서 터져 나온 비명을 듣고 장도리파의 식구들 또한 서둘러 연장을 챙겨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당연히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던 윤수호와 마주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으리라.
“저 새끼들은 뭐야?”
“일단 잡아!”
연장을 들고 우르르 몰려 내려오는 깡패들을 상대로 윤수호는 아무렇지 않게 주먹을 말아 쥐더니 덤벼드는 깡패들을 일방적으로 패기 시작했다.
퍽! 콰직! 쩌엉! 으드득! 콱!
기교도, 재주도 필요 없었다. 각목을 휘두르건, 쇠 파이프를 내려찍건, 회칼로 찌르건 피하지도 않고 주먹을 내지른다.
그걸로 연장이 부서진다.
동시에 윤수호의 주먹이 꽂힌 떡대들의 몸뚱이에서도 흉악한 소성과 함께 뼈가 부러지고 살과 근육이 터져 나갔다.
“커어억…….”
“으으으, 살려 줘…….”
순식간에 널브러진 떡대들의 입에서는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 모두 설령 완치된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신체장애를 떠안아야 할 터였다.
‘이, 씨발 새끼! 들어오기만 해 봐.’
쾅!
그렇게 윤수호가 사무실 문을 박살 내고 들어가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도리파의 두목 배덕철이 윤수호를 향해 갈긴 것은 다름 아닌 권총이었다.
탕탕탕탕탕탕!
놀랍게도 배덕철은 윤수호를 향해 여섯 발의 총알을 쉬지 않고 사격했다. 더 이상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나가지 않는 것은 탄창에 총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미친…….”
털썩.
배덕철은 너무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이 쏜 총알을 윤수호가 전부 한 손으로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상당한데?’
그 광경에는 뒤에서 지켜보던 조춘영도 꽤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각성자라면 재능이나 단련에 따라 권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특무대원이라면 기본적인 수준이고, 팀장급 정도 되면 당연히 대원들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과 방어력을 자랑했다. 조춘영 자신 역시 마음만 먹으면 미니건 정도는 어렵지 않게 오러막으로 방어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윤수호처럼 날아오는 총알을 전부 낚아챈다? 그것도 한 손으로?
‘나라도 열 번 시도해서 세 번 정도 성공하면 많이 하는 건데, 형님은 무슨 캐치볼 하는 것 같구먼.’
“돌려주지.”
“자, 잠깐……!”
윤수호는 검지를 튕겨서 자신이 잡은 총알들을 한 발 한 발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퓽퓽퓽퓽퓽퓽!
“커억!”
물론 권총으로 쏜 것보다 빠르게 날아가는 탄두를 배덕철이 잡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결과 배덕철의 양쪽 어깨와 팔꿈치, 무릎에 탄두만 한 구멍이 뚫렸다.
관절과 인대가 박살 난 배덕철은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축 늘어져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다.
“허어억!”
윤수호는 고통과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는 배덕철에게 다가가 나직하게 물었다.
“강천대교 밑에 텐트촌 알지?”
“예? 가, 갑자기 거지촌은 왜…….”
턱, 으드득!
배덕철이 대답 대신 질문을 선택하자 윤수호는 거리낌 없이 그의 턱을 잡아 벌리더니, 가장 안쪽의 어금니 하나를 강제로 뽑았다.
“끄아아아아!”
배덕철은 두려웠다.
자신도 뒷세계에서 살면서 궂은일이란 궂은일은 안 해 본 게 없는 사람이다. 고통은 익숙했고, 공포도 수없이 겪어 봤다.
그렇게 뒷세계를 살아남으면서 체득한 건 뛰어난 싸움 실력도, 사업 수완도 아닌 눈치였다. 내가 잡아먹을 수 있는 사람, 기어야 할 사람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눈 말이다.
그 눈으로 본 윤수호는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괴물…….
윤수호의 눈을 마주한 순간, 배덕철은 처음으로 무심하다는 용어가 어떤 뜻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생사는 길가의 개미를 밟아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질문은 내가 한다. 너는 묻는 말에만 대답해. 강천대교 밑에 텐트촌 알지?”
“아, 압니다! 제가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장부는?”
“그, 그게…….”
으드득!
“끄아아악! 비밀 금고에 있습니다! 비밀 금고! 제 책상 뒤쪽 벽에 걸린 액자 뒤에 보시면 있습니다!”
배덕철의 말을 듣고 조춘영이 가서 액자를 벗겨 내자, 벽 안쪽에 숨겨진 비밀 금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밀번호랑 지문인식을 같이 해야 열리는 금고네.”
금고를 확인한 조춘영의 말에 윤수호가 배덕철에게 물었다.
“비밀번호랑 손가락.”
“네?”
“손가락 전부 잘라서 맞춰 볼까?”
“오, 오른손 엄지입니다!”
서걱!
“끄으으!”
그렇게 비밀번호와 지문인식을 마친 금고가 열리자, 윤수호는 배덕철의 비밀 장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장부를 들춰보던 조춘영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이야! 그 가진 거 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상대로 자릿세니, 보호세니, 등골까지 쪽쪽 빨아먹었구먼. 심지어 음식점에서 버린 음식 쓰레기를 수거해 와서 텐트촌에 팔아먹었네? 아, 여기 있다. 형님, 찾으시던 자료 여기 있습니다.”
윤수호는 조춘영이 건네준 악질 채무자의 자료를 받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에는 절대로 있으면 안 될 부모님의 이름과 연체금이 떡하니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네놈들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오신 내 부모님을 이렇게 괴롭혀 왔다는 거로군. 네놈이 입고 있는 옷도, 차고 있는 시계도, 신고 있는 구두도, 모두 그 돈으로 누리고 있는 거고.”
“그, 그, 그게…….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제가 사정을 설명……!”
쩌엉!
윤수호는 그대로 배덕철의 머리를 잡아 바닥에 박아 버렸다. 녀석은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은 채 그대로 실신해 버렸다.
“혹시…… 죽었습니까?”
“죽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백회혈을 건드려 놓았으니,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그 정신이 온전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무슨 일이 있어도 살인은 하지 않겠다고 이 팀장님과 약속했으니까요.”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윤수호에 대한 사정은 오면서 간략하게 전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에 불이 차오르고 머리가 아득해지는 분노를 느꼈다.
만약 자신의 부모님이 비슷한 일을 당한다면?
약속이고 뭐고 여기 있는 놈들을 전부 찢어발겼을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실제로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윤수호에게서는 땅 아래에 흐르는 마그마처럼 도도하면서 뜨거운 분노가 느껴졌다.
그랬던 것이 순식간에 파문 한 점 없는 맑은 호수처럼 변했으니…….
감정을 이토록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본 조춘영이었다.
“그런데 혹시 이놈들의 배후가 누군지 단서가 남아 있던가요?”
“물론이죠. 일단 차로 가시죠. 이동하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윤수호와 조춘영이 건물 밖으로 나오자, 때마침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 및 경찰들과 마주쳤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대태러팀 G팀 팀장, 조춘영 대위입니다.”
“수고하십니다!”
조춘영이 경찰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소개하며 인사를 건네자, 경찰들이 각 잡힌 거수경례를 취하며 긴장했다.
아무래도 대태러팀은 검사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각성자 전문 독립 수사기관인 만큼, 경찰들도 대하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쉽게 상황을 정리한 세 사람은 배덕철의 장부에 등장한 배후 길드의 중간 간부를 찾아 차를 타고 이동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