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 팀장, 잠시 나 좀 보지.”
“아, 예.”
검사가 끝난 후, 정준호는 이선호를 따로 호출하였다.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까?”
“나오긴 나왔는데……. 나, 참! 여기서 일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건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그게 무슨…….”
“자네가 데려온 저 친구 말이야. 도대체 누군가?”
정준호는 검사지를 그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저 윤수호라는 친구 말이야.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야. 혈액이나 DNA는 인간과 일치하지만, 그 이외의 수치가 모두 비정상적이더군. 특히 신체 구조나 뉴런의 발달 상태는 내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더란 말이지.”
이 검사지는 인간을 초월한 각성자용으로, 일반인이라면 신체 건강한 운동선수라 하더라도 그래프의 한 칸을 채우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아무리 뛰어난 능력자라도 그래프의 반 이상을 채우면 대단하다 볼 수 있는데…….
‘언노운이라…….’
검사지에 표시된 윤수호의 신체 능력과 뉴런의 관련된 그래프 항목은 모두 그래프가 끝까지 가득 찬 것도 모자라 ‘Unknown’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즉, 우리 검사 기기로는 저 친구의 잠재능력을 전부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지. 더욱 기가 막힌 게 뭔 줄 알아?”
정준호는 각성을 판별하는 항목을 가리켰다.
“저 친구, F급이야. 무특성, 비각성자란 말이지. 일반인이라고, 일반인! 아니, 세상에! 이 정도 수치를 뽑아 놓고도 일반인이라는 게 말이 되냐고! 자네, 솔직하게 말하게. 저 친구, 도대체 정체가 뭔가?”
“…….”
검사지를 쳐다보는 이선호의 시선에서는 놀람과 경악보다 안타까움이 앞섰다. 오해라고는 해도 이선호는 그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사님, 이건 저와 박사님만의 비밀로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분간 위에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만이라도요.”
“나는 저 친구의 정체를 물었네만?”
“그것도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그냥 저와 저 친구를 위해 눈감아 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크흠!”
정준호는 더 이상 이선호에게 재촉하지 못했다. 그가 입을 다물기로 작정하면 무슨 수를 써도 절대로 열지 못한다는 걸 그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어. 하지만 그때가 되면 가장 먼저 나에게 알려 줘야 한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정준호와 면담을 마친 이선호는 윤수호가 쉬고 있던 휴게실로 찾아갔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호 씨.”
“아뇨, 그냥 누워 있었을 뿐인걸요. 그나저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질병도 없고, 몸도 튼튼하시고,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것 말고 딱히 문제는 없네요. 다만…….”
이선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에 윤수호는 이어질 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아쉬워하시는 것을 보니 각성자는 아니었군요.”
“죄송합니다. 본래라면 수호 씨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지만, 저로서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기가 힘드네요.”
“그럼 비각성자는 특무대에 입대할 방법이 없는 겁니까?”
번쩍!
윤수호의 질문에 그 순간, 이선호의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 빛났다.
“혹시 특무대에 관심이 생기신 겁니까?”
“관심이라기보다는 지금 제가 빈손이라서 가족에게 돌아가면 군입이 하나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지금 같은 시국에 가족에게 짐을 더 늘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제 능력을 써서 국가와 가족을 지키는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나름 보람찬 일이지 않을까 싶군요.”
“조금이나마 보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수호 씨의 힘이라면 정말로 큰 도움…… 아니, 대한민국에 있어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톱 텐의 자리까지도 오를지 모르죠!”
“톱 텐요? 그건 뭡니까?”
“톱 텐은 전 세계적으로 최강이라 인정받는 열 명의 능력자를 말합니다. 물론 그들끼리 싸워서 서열을 결정한 건 아니지만, 누구나 실력을 인정하는 강자들이죠.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국가 브랜드가, 국력의 상징이 됩니다. 그 영향력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고요.”
‘무림의 십존(十尊) 같은 느낌인가? 강자가 있으면 줄을 세우길 원하는 건 무림이나 이곳이나 별반 다를 바 없군.’
윤수호는 솔직히 당장 톱 텐 같은 능력자들 간의 서열 싸움은 어찌 되든지 상관없었다.
자신이 바라는 건 가족과 나라를 지키며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으니까.
“잠시만요, 수호 씨. 전화가 와서……. 어, 그래, 박 소위. 뭐? 그게 정말이야?”
“……!”
스피커폰은 아니지만, 윤수호의 귀는 박여진이 전한 말을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수호 씨, 가족을…….”
“그곳이 어딥니까!”
“가시죠!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윤수호와 이선호는 서둘러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주차되어 있던 이선호의 차를 타고, 박여진이 보내 준 내비게이션 주소를 따라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에도 윤수호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막말로 지금 당장 심장이 터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 어머니, 수아야.’
무림에 떨어져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면서 가족의 이름을 얼마나 외쳐 불렀던가.
윤수호에게 있어 악몽이라면 지옥 같은 무림에서 살아남는 것도, 십만대산에서 백만 무인들을 베고 천마의 목을 치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흐려져 가는 가족의 얼굴이야말로 그에게 있어 다시 없을 악몽이었던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수호 씨.”
이선호가 무거운 표정과 목소리로 얘기하며 윤수호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이 눈앞에 둔 그곳은 집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다리 밑에 형성된 텐트촌이었다.
크고 작은 텐트들이 어찌나 다닥다닥 밀집해 있는지, 다른 사람의 텐트를 밟지 않고서는 사람이 제대로 지나다니기도 힘들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팀장님이 죄송할 게 뭐 있어요. 그나마 서울에 들어와서 무사히 살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죠.”
가족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이었다.
자신이야 돈을 벌기 위해서 일찍 서울로 상경했지만, 강원도에 남은 가족은 자칫 잘못했으면 서울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 아닌가.
물론 지금은 그때 서울로 올라왔던 자신의 선택이 뼈에 사무치는 후회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족을 찾으러 가 보겠습니다. 여기까지 데려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쇼. 여기 제 명함입니다. 그럼…….”
이선호는 끝까지 윤수호를 돕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오롯이 윤수호와 가족의 시간이다. 자신 같은 외부인이 끼어들 자리는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명함을 챙긴 윤수호는 텐트촌으로 내려가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실례하겠습니다.”
몇 번이나 사과하고, 몇 번이나 텐트를 찾아봤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윤수호의 마음은 바위에서 태산이 짓누르는 것처럼 무거워졌다.
텐트촌 사람들의 생활은 사는 게 아니었다. 그저 숨만 쉬고 있는 거지.
거지들 특유의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여기저기 처리되지 못한 배설물 주변으로 파리가 꼬였다.
갓 태어난 아이들은 깡말라 있었고, 심지어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뜯어먹고 있는 것은 들쥐였다.
무림에서도 가장 못 사는 거지촌에서나 볼 수 있는 참혹한 광경을 설마 2022년의 서울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가장 지독한 것은, 여기 사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눈에 생기가 감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들 모두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다리 밑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 어둡고 습하고 불결한, 제발 저곳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도 엄연히 사람은 살아가고 있었다. 아마 이 텐트촌에서도 치이고 치여서 자리를 뺏긴 약자들이 모인 곳이겠지.
그곳에서 윤수호는…….
“실례하겠…….”
“누, 누구세요? 저희는 먹을 게 없습니다. 돈도 없어요. 늙은이 둘뿐입니다. 제발 때리지만 마세요…….”
“안 때려요. 제가 어머니를 왜 때려요…….”
와락.
윤수호는 어느새 늙고 병든, 그러나 예전의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어머니를 꼬옥 끌어안았다.
“어머니? 저는 딸밖에 없습니다. 아들은…….”
그 순간, 윤수호의 어머니 오혜연이 주름진 눈을 부릅뜨며 윤수호를 안아 더듬었다.
“호, 혹시 수호니? 내 아들 수호야?”
“네, 어머니. 수호예요. 저 수호예요, 어머니.”
“내 아들이 돌아왔구나! 내 아들이 돌아왔어!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당신도 일어나서 봐요. 우리 아들 수호가 돌아왔다니까!”
오혜연은 그 가느다란 팔로, 떨리는 두 손으로 아들의 손을 꼭 잡고는 텐트 안쪽으로 이끌었다.
“아버지, 저예요. 수호예요.”
좁디좁은 텐트 안에는 윤수호의 아버지 윤지석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는데, 아내와 아들의 애타는 부름에도 좀처럼 눈을 뜨지 못했다.
윤수호는 곧바로 아버지의 맥을 짚어 보았다.
미약하게 뛰는 맥은 그마저도 여기저기서 콱 틀어 막혀,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몸이 망가진 상태였다.
“너 실종되고, 그렇지 않아도 몸 성한 데 없던 양반이 무리해서 일하다가 결국 골병이 들었단다. 나도 너 찾느라 이 사람한테 신경 써 주지 못한 게 어찌나 미안하고 후회스럽던지……. 지금도 제대로 약 한 번 지어 주지 못하고 병원 한 번 데려가 주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해서…….”
오혜연은 한 손으로 남편의 손을 어루만지며 남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일찍 돌아왔어야 했는데…….”
“아니다. 네가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어딜 갔다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분명 네 아버지도 나랑 같은 마음일 거다. 그러니까 너무 자신을 나무라지 말거라.”
“어머니…….”
오혜연은 그 깡마른 두 손으로 자식을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 작고 왜소한 품이 윤수호에게는 어찌나 넓고 따뜻하던지.
그동안 메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딱딱하게 굳은 줄 알았던 감정의 둑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어머니의 어깨 자락을 눈물로 적셨다.
그렇게 모자가 얼마나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을까?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르자, 오혜연은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디, 우리 아들 얼굴 좀 보자. 고생은 안 했어? 밥은 잘 챙겨 먹었고? 아픈 데는? 아픈 데는 없어?”
“어머니…….”
윤수호는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초점이 거의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얀 비늘이 덮인 것처럼 검은자위도 불투명한 것이, 거의 시력을 상실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잠시만요, 어머니.”
그는 곧장 어머니의 맥을 짚어 기를 조금씩 흘려보냈다. 그녀의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살펴본 어머니의 건강은 최악이었다. 눈도 눈이지만 당장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당장 기공 치료를 하려고 해도 그마저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체력과 기력이 필요한데, 두 분 모두 그것마저 부족하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우리 아들 밥해 줘야 하는데, 집에 쌀도 없고, 라면도 없어서…….”
돌아온 자식에게 대접할 게 없어서 미안해하는 어머니를 보고, 윤수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아니에요, 어머니. 저 진짜 배불러요. 밥 잔뜩 먹고 왔거든요.”
‘차라리 원망을 하세요. 차라리 구박을 하세요. 왜 저 같은 놈을 당신보다 먼저 걱정하세요.’
“아니, 그래도 우리 아들이 돌아왔는데 엄마가 뭘 좀 해 줘야…….”
“아니에요, 정말로. 그보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제가 먹을 것 좀…….”
그때였다.
“어이, 동작 그만! 그 할매 수금 담당은 우리거든? 이 새끼는 어디서 굴러먹다 기어들어 온 말뼈다귀냐? 어이, 할매. 돈 없다매? 그게 우리한테 줄 돈은 없고 딴 새끼한테 줄 돈은 있다 이거야? 어?”
“아, 아니, 그게……!”
사납게 소리치며 횡포를 부리는 놈들이 나타나자 오혜연의 몸이 눈에 띄게 떨리며 겁을 집어먹은 게 윤수호의 눈에 보였다.
“어머니, 잠시만 안에 들어가 계세요. 저 친구들은 제가 대신 만나 볼게요.”
“수, 수호야. 안 된다! 엄마가 할게! 저 사람을 위험한 사람들이야! 너는 얼른 피해!”
“괜찮으니까 잠시만 쉬고 계세요. 금방 끝날 거예요.”
윤수호는 오혜연의 수혈을 조심스럽게 짚어 그녀를 재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가 누구를 건드렸는지, 지금부터 똑똑히 가르쳐 줄게.”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