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선호는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대한민국 특수임무대대 대(對)재앙종 섬멸팀 소속 101팀을 이끄는 이선호 대위라고 합니다.”
“윤수호라고 합니다.”
“수호 씨셨군요. 실례지만 어디 소속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소속이라면…….”
“섬멸팀이 아니라면 대테러팀 소속인가 싶어서요.”
“아닙니다. 애초에 군인도 아니고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섬멸팀에 이 정도 실력자가 있다면 아무리 그래도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이 정도 규격 외의 실력자라면 설령 대태러팀 소속이라 해도 소문이 들려왔겠지만, 역시나 군인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금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보셨죠?”
“예, 물론입니다.”
“제 가족을 찾고 싶습니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가족요? ……알겠습니다. 일단 차에 타시죠.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듣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이선호는 대원 중 몇 명을 이곳에 남겨 두고, 그 외의 인원은 윤수호와 함께 수송차에 탑승하였다.
그렇게 차가 출발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윤수호와 이선호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실종된 지 20년이 지났다고요?”
“예, 제가 기억하는 이곳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으니까요.”
“아니, 그게……!”
이선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둘째치고 문제는 윤수호의 외견이었다.
잘생기고 동안이고 그런 걸 전부 떠나서, 윤수호의 외관 나이는 아무리 높게 쳐 줘도 스무 살 초중반을 넘어서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스물다섯 살에 실종돼서 실종된 지 20년이 넘었다면, 지금 최소 나이가 마흔다섯 살이라는 얘긴데……. 이게 어딜 봐서 마흔다섯의 얼굴이냐고. 아무리 동안이라도 정도가 지나치잖아.’
“그럼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저도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져야 했고, 이상한 약들을 먹다 보니 몸도 다시 젊어지더군요.”
“아…….”
윤수호는 무림에서 있었던 일을 대충 얼버무렸다. 어차피 사실대로 얘기해 봤자 믿을 수 있는 얘기들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그곳을 탈출할 기회가 생겼고, 간신히 탈출에 성공해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해변에 누워 있었습니다. 와중에 괴물의 기척이 느껴져서 가 보았다가 그렇게 된 거고요.”
‘길드 중에는 세상이 모르는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불법 훈련이나 약물을 이용한 생체 실험 등으로 병사들을 육성하는 곳도 많다고 들었는데, 그런 곳에서 탈출한 피해자인가?’
이선호는 윤수호의 사정을 듣고 자기 편할 대로 해석하며 오해했다.
“그렇군요.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아무튼 걱정 마십쇼. 수호 씨가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저희가 힘닿는 데까지 돕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런데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든지요. 제가 답해 드릴 수 있는 질문이라면 성심껏 답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의 그 괴물들은 도대체 뭔가요? 혹시 그런 것들이 그것들 말고 더 있는 건 아니겠죠?”
윤수호가 걱정하자 이선호는 안타까운 얼굴로 답했다.
‘그렇군. 20년 전에 감금되어 세상과 단절된 채 연구를 당했다면 세상 물정을 모를 수도 있지.’
“그 괴물들은 재앙종이라고 합니다. 재앙종과 각성자의 출현은 2003년, 그러니까 수호 씨가 실종되고 거의 1년 후에 시작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조도, 징후도 없었죠. 정말로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으니까요.”
“네? 그 말씀은 그런 괴물들이 20년 가까이 이 세상에 나타났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재앙종에는 등급이 있는데, 최하 1급부터 시작하는데, 역사상 가장 높은 등급의 재앙종은 9급 평가를 받기도 했죠. 참고로 수호 씨가 방금 섬멸하신 재앙종들은 작은 녀석들이 3급, 거대한 녀석이 6급 판정을 받은 놈들입니다.”
윤수호는 걱정이 앞섰다.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자신이 없는 사이에 그런 괴물들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면 가족의 안위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런 괴물들이 자주 나타나는 건 아니겠죠?”
“불행 중 다행으로 등급이 높은 재앙종일수록 출현 빈도는 낮아집니다. 대신 등급이 낮은 3급 이하의 재앙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지만, 다행히 4급 이하의 재앙종은 저희 같은 단일팀 단위로도 해결이 가능한 수준이죠.”
“그렇군요…….”
이선호는 윤수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섣불리 그를 위로하거나 격려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가 만일 그의 가족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면 그것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을 테니까.
* * *
‘이게…… 서울?’
윤수호가 오랜만에 두 눈에 담은 서울의 모습은 거대한 ‘벽’이었다.
“많이 놀라셨죠? 저 벽은 시티 가드라고 해서, 재앙종으로부터 수도를 지키기 위해 건설된 벽입니다. 6급 재앙종이라면 무리 없이 막을 수 있고, 7급 재앙종의 공격도 한 달은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죠.”
‘서울을 지키는 벽이라…….’
저 벽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끔찍한 현실은 따로 있었다.
“저들은…….”
“피난민들입니다. 슬픈 현실이죠. 재앙종들의 출현이 갈수록 심해지는 만큼 각성자들의 피해도 더욱 커지니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지키지 못하는 곳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고향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는 겁니다. 모두 살기 위해서죠.”
“…….”
윤수호는 그들의 사정이 절실히 와닿았다.
“서울은 분명 대한민국에서 비교적 안전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서울의 인구수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황이죠. 여기서 피난민들까지 받아들인다면 서울은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안쪽에서부터 붕괴할 겁니다. 그게 안타깝지만 피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죠.”
벽 밖에는 피난민들을 위한 쉘터가 여럿 존재했고 지금도 건설 중이었지만, 피난민들에게 그것조차도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그래서일까? 시티 가드의 출입구 주변에는 어떻게든 서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러다 윤수호를 태운 수송 차량이 출입구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의 감정 섞인 시선이 차량에 집중되었다.
윤수호는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저 시선 중에 가족이 섞여 있지 않기를.
그렇게 입성한 서울의 모습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서울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세상에……. 여기가 정말 서울이 맞습니까?”
“하하하! 그렇죠. 20년 전의 서울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도시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이내 수송차는 서울 외곽을 지나 도심지에 자리한 특수임무대대 본부에 도착하였다.
“특무대 본부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수호 씨.”
‘여기가 정말 부대라고?’
윤수호가 순수하게 감탄을 금치 못하자,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이선호가 부대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특무대는 재앙종의 발생과 함께 설립된 탓에 역사가 짧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그 어떤 기관보다 막강한 권력과 정보력을 자랑하죠. 그만큼 대원들에게 투자하는 자금과 노력도 엄청나고요. 아, 박 소위.”
“부르셨습니까, 이 팀장님.”
이선호는 때마침 지나가던 정보부 소속의 지인, 박여진 소위를 불러 서류 하나를 건넸다.
“지금 즉시 여기 적혀 있는 사람들 수배를 최우선으로 부탁할게. 나중에 밥 살게.”
“밥 말고 술 사 주시면 고민해 보겠습니다.”
“알았으니까 서둘러 줘.”
“단결.”
박여진이 경례하고 떠나자, 이선호는 윤수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금 그 녀석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정보부 소속 후배입니다. 겉보기에 가벼운 녀석 같지만 실력은 확실하니, 믿고 기다리시면 금방 결과가 나올 겁니다.”
“이거, 하나부터 열까지 신세만 지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한민국 특무대 대원으로서 국민을 돕는 건 선의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전혀 죄송할 필요 없으니 부담 갖지 말아 주십쇼.”
이선호의 대답에 윤수호는 속으로 씨익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의무라고 하기엔 호의 속에 숨은 흑심이 빤히 보이는데 말이지. 아니, 이 정도면 숨길 생각도 없는 거 아니야?’
오히려 모른 척하느라 표정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의 흑심이 자신과 가족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그에게 은혜를 입은 것 또한 사실이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이 사람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겠군.’
“그런데 수호 씨, 그냥 기다리는 것도 심심한데, 혹시 저하고 테스트 하나만 해 보시겠습니까?”
“테스트요?”
딱히 이곳에서 할 것도 없었고, 이선호가 말한 테스트란 것도 궁금했기에 윤수호는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가 허락하자 이선호가 윤수호와 함께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각성 연구소였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이 팀장.”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 박사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나야 뭐, 밥과 술만 있으면 지옥에서도 무릉도원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이잖냐. 그나저나 함께 온 친구는?”
정 박사가 윤수호에게 시선을 돌리자, 윤수호가 가볍게 목례하며 인사를 건넸다.
“윤수호라고 합니다.”
“정준호요. 편하게 정 박사라고 부르면 됩니다.”
“다름이 아니라 수호 씨의 각성 검사를 한번 받아 보려고요.”
“각성 검사? 아무리 봐도 열다섯 전후로는 보이지 않는데…….”
정준호가 윤수호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대부분의 각성자는 열다섯 살 전후로 각성을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뭐, 좋다. 검사 승인서는?”
“그런 게 있었으면 제가 박사님을 찾아왔겠습니까? 대신 더 좋은 걸 들고 왔죠.”
그러면서 이선호는 이곳에 오기 전 챙겨 왔던 고급 위스키 한 병을 박사에게 선물했다.
“하여간 이 자식은 나를 너무 잘 아는 게 탈이라니까.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38번째로 ‘마지막 경고’를 새겨들은 이선호에게 윤수호가 물었다.
“그런데 각성 검사라는 건…….”
“아, 별거 아니에요. 그저 수호 씨가 각성자인지 아닌지, 각성자가 맞다면 어떤 능력을 각성했는지 알아보는 것뿐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초인계 B급으로 각성한 덕분에 남들보다 신체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죠. 각성자는 특무대에 들어오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고요.”
“팀장님은 제가 특무대에 들어오길 바라시는 것 같군요.”
“이런! 들켰군요.”
‘이런은 무슨. 애초부터 숨길 생각도 없었으면서.’
윤수호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서산에서 6급 재앙종을 손가락만으로 썰어 버리시는 그 신위를 보고 반했습니다. 아니, 특무대원이라면 누구라도 그 엄청난 능력을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결정은 수호 씨가 내리는 거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 수호 씨와 함께 싸울 수 있다면 그보다 큰 영광은 없을 겁니다.”
“저를 너무 높이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만큼 훌륭한 인간이 아닙니다.”
“저랑 내기하실래요? 저는 수호 씨가 틀렸다는 데 걸겠습니다. 거는 건 수호 씨가 정해도 상관없고요.”
그때였다.
“거기서 사내놈 둘이 뭘 그렇게 구시렁거려? 준비 끝났으니 어여 오라고.”
“네, 박사님, 갑니다! 그럼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수호 씨.”
“이따 뵙죠.”
그렇게 윤수호는 검사실로 들어갔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