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신이 돌아왔다
1.
쿵!
무림맹의 본거지로 돌아온 사내는 무림맹의 장로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머리 하나를 그들의 발치에 던져 주었다.
“이것으로 의뢰는 완수했다. 약조를 지켜라.”
피에 절어 검붉게 변한 의복,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의 흉터, 허리의 칼 한 자루…….
사내의 모습은 악귀 나찰과 같았고, 그런 사내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공포와 경악이 가득했다.
“어, 어떻게 저자가 이곳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정말로 천마의 목을 가져왔단 말인가?”
사내에게 부탁한 의뢰는 십만대산에 가서 천마의 목을 가져오라는 것. 즉, 죽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죽으라고 보낸 사내는 돌아오고, 대신 정말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천마의 목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과연 검신(劍神)으로 추앙받을 검수로다! 어찌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일을 인간의 힘으로 해냈단 말인고!”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윤회천생대법인지 뭔지, 약조한 비급이나 내놔.”
“그, 그것이…….”
맹주가 쩔쩔매며 어찌할 바를 모르자, 검신의 눈이 사납게 그를 노려보았다.
“가져오겠다는 대답 이외에 그 어떤 말도 입에 담지 마라. 나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했고, 너희는 내 소원을 들어줄 방법이 있다고 했다. 이제 약조를 지켜라. 그것 말고 여기서 네놈들이 살아 돌아갈 방법은 없으니.”
“오, 오만하구나! 정녕 네놈이 경을 치르고 싶은 게야!”
“안 되겠소, 맹주! 저 동이의 오랑캐 놈을 베어 기강을 바로 세우지 않고서야 무림 후배들에게 무슨 본을 보인단 말이오!”
“결정을 내려 주시오, 맹주! 놈은 부상도 심하고 크게 지쳤소이다! 여기서 물러서면 천하가 맹을 비웃을 것입니다!”
장로들의 급박한 다그침에 사내는 나직하게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결국 부질없는 꿈인 게지. 네놈들에게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부질없는 꿈에 잠시 기대었구나.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다. 나도, 네놈들도…….”
잠시 후.
뚝, 뚝.
밖으로 나온 검신의 칼끝에서 피가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열린 문 뒤로 보이는 것은 차게 식어 가는 싸늘한 주검들뿐.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지간한 문파 한두 개 정도는 혼자서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의 절대 고수였지만, 아무리 강한들 그들 또한 인간이었다.
신(神)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내의 표정에서 승리의 기쁨 같은 건 티끌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슬픔과 그리움만이 가득할 뿐.
“아버지, 어머니, 수아야…….”
그리움은 뺨을 타고 흘러, 두 뺨에 묻은 피와 섞여 피눈물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왜 자신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선과 무림을 떠돌았고, 닥치는 대로 방법을 찾다가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도, 그리움을 억누를 방법도…….
그때였다.
콰우우우우!
돌연 짙은 먹구름이 낀 하늘에서 검은 회오리바람이 무림맹 근처에 떨어져 내렸다.
“저건……!”
그 순간, 검신의 머릿속에 잊고 있던 기억이 번쩍이듯 떠올랐다.
그것은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순간이었다.
여느 날처럼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직장 동료들과 퇴근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회오리바람이 내려와 자신들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직장 동료들은 죽어 있었고 자신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동료들의 끔찍한 최후를 목격하고 기절한 탓에 그 사실을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쒜엑!
그 사실을 떠올리자마자 검신은 이미 신법을 펼쳐 검은 회오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그 속도는 공간을 접어 달린다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림자조차 그를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따라붙는 듯했다.
그렇게 검은 회오리 속으로 뛰어든 검신.
잠시 후.
검은 회오리가 사라졌고, 이후 무림에서 검신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