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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르니아의 새벽
“나만을 위해 만든 세계라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가디스 던전과 똑같은 세상이 존재하는 것부터 뭔가 이상하기는 했다.
날 이곳으로 보낸 유다희가 초월적인 존재라 해도 믿을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 하나만을 위해서 세상을 창조했다니.
이건 단순히 사람을 이세계로 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 않은가.
“알아, 믿기 힘든 거. 그래도 사실이야.”
“그러니까 네 말은…… 네가 무슨 창조주다 이거야?”
“여기에도 좀 더 세세한 이야기가 있지만 일단은 그래. 우리 엄마 아빠가 좀 대단한 분들이거든.”
황당한 이야기였으나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를 게임 세계로 보낸 것 외에도 그녀는 초월적인 권능을 몇 차례나 보여줬으니까.
그녀가 신이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
“그러면 아까 했던 질문 다시 하겠는데…… 왜 이제야 날 찾으러 온 거야? 네 능력이라면 바로 올 수도 있었잖아?”
유다희가 진짜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라면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내가 게임 세계로 끌려올 당시, 그녀는 나를 소유하고자 했다.
그런 그녀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타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곳이 자기가 만든 세계여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그 당시의 유다희는 도저히 나와의 만남을 미룰 분위기가 아니었다.
물론 유다희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보고 추측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나도 다키가 정말 보고 싶었어……. 말했잖아, 네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난 그 정도로 다키 네가 좋아……. 없으면 안 돼…….”
그리 말하며 유다희는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그녀는 내 가슴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고개를 들자 유다희의 붉은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멋대로 데려온 건 미안해. 쓸쓸해서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았어……. 하지만다키너도갑자기사라지려했잖아내가널얼마나좋아하는데그럴수가있어……!!”
“유, 유다희……?”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그녀의 목소리가 기괴하게 뒤틀려갔다.
주위가 순간 붉게 물들었고 연체동물의 것 같은 촉수들이 허공에서 뻗어 나왔다.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광경에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럼에도 유다희는 멈추지 않았다.
날 놔주지 않겠다는 듯이 꽈악 끌어안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랑해 다키야, 내 마음은 단순한 팬심 같은 게 아니야. 너만을위한세상을만들정도로미친듯이사랑한단말이야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
“아, 알겠으니까 진정 좀 해! 그리고 내 질문엔 전혀 대답 안 하고 있잖아!”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나는 유다희의 어깨를 붙잡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러자 그녀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어깨를 잡은 내 손을 바라보았다.
“다, 다키가 날 만졌어…….”
“응……?”
“다키가……! 다키가 날 만져줬어! 세상에! 다키가 날 만져줬다구!!”
스스로의 양 뺨을 감싼 채 유다희가 방방 뛰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기쁜 나머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고작 어깨 잡은 게 뭐가 그리 좋다고 그러는 걸까.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점프하는 그 모습은 천진난만한 어린애처럼 보였다.
하긴 뭐, 내가 좋다고 온갖 황당한 일들을 저지른 신인데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더……! 더 만져줘……! 얼굴이라던가! 그리고 나도 만지게 해줘! 얼굴이라던가!”
“그, 그래…….”
유다희가 원하는 대로 나는 그녀의 양쪽 뺨을 붙잡고 조물조물 만져줬다.
마치 찰떡을 주무르는 것 같았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덕분에 유다희의 광기가 가라앉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한동안 유다희에게 맞춰준 뒤.
나는 이내 그녀에게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말했듯이 나도 다키한테 바로 찾아오고 싶었어. 하지만 문제가 조금 생겨버렸거든…….”
“문제라니…… 너 전지전능한 거 아니었어?”
“흠흠…… 꼭 그렇지는 않아. 그냥 좀 대단한 금수저일 뿐이지 나도 실수하기 마련이라구.”
내 물음에 유다희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뭔가 자기 입으로 말하기 힘든 일을 저지른 것 같은 기색이었다.
“그래서 그 실수라는 건 뭔데?”
“원래 이 세계는 몇 개월은 더 만들어야 했어. 안정화를 위해서…….”
“그런데?”
“그런데 네가 갑자기 방송 접는다고 했잖아……! 그 얘기 듣고 놀라서 널 급하게 데려와 버렸다고……!”
“뭔…….”
유다희의 말에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어렵게 질문했다.
“그냥 나한테 직접 찾아올 수도 있었던 거 아니야……? 너 신이라며.”
“권능을 가졌어도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갑자기 방송 접으면 당황한다고……!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는 유다희.
세계 창조도 할 수 있는 주제에 내가 방송 접는다는 얘기 듣고 당황하다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진짜 문제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자잘한 문제가 생겼는데…… 그 중 하나가 세계 관리 권한을 뺏긴 거야…….”
“뭐? 누가? 어떻게?”
“너랑 같이 소환된 사람들 중 하나야. 부작용으로 나나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여럿 더 소환됐거든.”
유다희의 사정은 이랬다.
그녀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던 와중 내 은퇴 선언을 듣고 다급히 나를 게임 세계로 불러들였다.
그러던 중 부작용이 일어나 내 방송 시청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소환에 휘말리고 말았다.
소환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간대와 장소에 떨어졌는데, 그 중 한 명은 유다희만 들어올 수 있는 일종의 제어실에 들어오고 말았다.
얼떨결에 무단 침입하게 된 소환자는 그곳에서 그녀의 세계 관리 권한을 탈취했고, 결과적으로 유다희는 세계를 관리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얼탱이가 없구만…….’
아무래도 유다희는 능지가 스스로의 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케이스인 듯했다.
창조신씩이나 되가지고 자기가 만든 세상을 빼앗긴다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본인에게 직접 들었는데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너는 곧장 게임 세계에서 추방당했고, 이 세상은 그 침입자가 멋대로 주무르게 된 거라고?”
“아, 아직은 아니야……! 그 녀석은 권한을 빼앗기만 했지, 직접 다룰 수는 없다고. 평범한 인간이 그런 짓을 어떻게 하겠어……!”
듣던 중 다행인 말에 나는 내심 안도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유다희의 권한을 강제로 빼앗았다면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인성에 문제가 없는지 의심은 하고 봐야겠지.
“잠깐…… 아직 아니란 건 언젠가는 가능해진다는 소리 아니야?”
이야기를 되새기던 중 문득 불길한 부분이 집혔다.
아니나 다를까 유다희는 내 추측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네가 위험한 거야 다키.”
“이게 왜 내 위험이랑 연관되는 건데?”
“나 말고 세상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딱 한 명 더 정해놨거든……. 그게 바로 너야.”
유다희의 말을 듣다 보니 발키리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녀도 천좌라는 놈들이 날 노릴 거라고 했다.
정황상 그들은 관리 권한을 빼앗은 찬탈자의 동료 혹은 부하일 가능성이 높다.
날 노리는 목적은 다름 아닌 게임 세계의 관리 권한을 통제하기 위해서.
내 신변이 그 놈들 손에 넘어가는 순간 나도, 이 세상도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네…….”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을 때였다.
까치발을 세우며 손을 뻗은 그녀는 내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 대응할 기회는 있어.”
“기회라고?”
“그래, 놈들은 너보다 빨리 게임 세계에 왔지만 그것뿐이야. 다키 너처럼 고인물도 아니고, 설령 고인물이었다 해도 그에 관한 지식은 전부 잊었어.”
유다희가 말하길, 나를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들은 스포일러 방지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나나처럼 가디스 던전에 관한 정보들을 전부 잊어버리게 되는 거다.
비록 유다희가 의도한 기능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천좌들은 무지한 상태로 게임 세계에 떨어지게 됐다.
일단은 플레이어이기에 평범한 사람들 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지만 보스들의 공략법이나 유용한 아이템의 위치 같은 건 전혀 모르는 것이다.
거기까지 설명한 유다희는 힘이 실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네가 그 놈들 보다 빨리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면 돼. 엔딩을 보는 순간 넌 최강자가 될 거고, 그놈들도 널 당해내지 못할 거야.”
“자연스레 관리 권한도 되찾을 수 있을 테고…….”
엔딩 이후의 캐릭터는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강함을 가진다.
특히 여명의 지배자 루트를 탄 캐릭터의 경우 더더욱 말이다.
2회차에 진입하지 않는 이상 게임 세계에서 내 상대가 될 자는 없으리라.
“그러니까 우선 스토리를 따라가. DLC도 구현해서 변경점이 많지만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잠깐, 유다희 너…….”
이야기를 하던 도중 유다희의 몸이 점점 빛이 되어 사라져갔다.
그걸 본 내가 눈을 크게 뜨자 유다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네가 아테나를 쓰러뜨린 덕분에 잠깐이나마 간섭할 수 있었는데…… 역시 권한 없는 상태론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봐…….”
“이대로 다시 추방되는 거야?”
“응…… 그래도 괜찮아. 네가 특정 구간에 다다를 때마다 간섭할 기회가 생기니까. 그때 다시 만날 수 있어.”
내 손을 꼬옥 잡은 채로 말하는 유다희.
비록 그녀 때문에 억지로 게임 세계에 왔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지만, 막상 헤어지려니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의미로 그녀는 나의 구원자기도 하니까 말이다.
“바보 같은 신이라서 미안해…… 널 지켜주지 못한 것도…….”
“아니야 유다희…… 너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유다희의 사과를 듣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그녀는 생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의미에서 내 진짜 이름 알려줄게.”
“아…… 그러고 보니 유다희는 닉네임이지.”
“처음 만들 때는 마음에 들었는데 이제는 너무 흔해서 별로더라구. 그러니까 이제부턴 하스티라고 불러줘.”
하스티라.
귀여우면서도 묘한 이름이다.
“그래, 하스티. 다음에 꼭 다시 보자. 날 멋대로 끌고 온 책임은 져줘야겠어.”
내가 살짝 장난 섞어서 말하자 하스티 역시 웃으면서 사라졌다.
꿈속의 장면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어느덧 잠에서 깨어나 있었고 창문 밖에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추종자들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아닌 산새들의 귀여운 울음소리가 말이다.
“으므으으응…….”
옆에서 나나의 목소리까지 들리자 나는 이곳이 헤카테의 거처라는 것을 떠올렸다.
“하스티…….”
꿈속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하스티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손을 잡았던 감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비단 꿈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나나가 깨지 않도록 슬금슬금 침대에서 내려왔다.
“으그으으윽!”
그 후 한 차례 기지개를 켜자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은 진짜 깊게 잠들었나 보다.
너무 푹 자서 그런지 온몸이 찌뿌둥했다.
몇 번인가 스트레칭을 한 나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복도는 무척 조용했다.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아서 다들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창문을 통해서 새어 들어온 새벽녘의 냄새가 은근히 기분 좋았다.
‘나 혼자만 일어난 건가?’
굳게 닫힌 방문들을 보며 슬쩍 1층으로 내려갔다.
아테나와 헤카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은 어젯밤에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헤카테가 만든 것 같은 요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척 보기에도 오랜만에 만난 모녀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나설 때였다.
문득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어? 유미야?”
거처 앞에는 일찍 일어난 유미가 두 손을 모은 채 무언가를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 부름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의아한 기분을 느낀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일찍 일어났네? 뭐하는 거야?”
“히, 히얏?!”
내 손길이 닿자마자 유미는 화들짝 놀라면서 날 돌아보았다.
그제야 내 존재를 깨달은 유미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까, 깜짝이야…… 스승님이셨군요…….”
“아 미안…… 내가 방해했어?”
“아, 아뇨…… 방해까지는 아니에요…… 잠깐 이곳 분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거든요.”
내 물음에 유미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본인 입으론 방해가 아니라곤 하지만 내가 별로 좋지 못한 타이밍에 끼어든 듯했다.
주술사인 그녀는 이들의 죽음을 방관하지 못했으리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었을 테지.
“나 때문에 흐름 끊긴 것 같은데 계속해. 난 다른 데 가 있을 테니까.”
“아, 아니에요 스승님……! 방금 막 끝내려던 참이었어요! 어디 안 가셔도 돼요!”
내 말에 고개를 마구 가로젓는 유미.
그녀는 반사적으로 내 손을 붙잡으면서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 모습이 진짜 오질라게 귀여웠다.
어제 봤던 유미의 모습과 오버랩 돼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기에 유미의 새로운 복장까지 더해지니 음란한 생각까지 들었다.
저 옷 외에는 갈아입을 만한 옷이 달리 없어서 아침부터 문란한 차림새를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