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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205화 (205/217)

205====================

아버지

“크림! 제이드!! 너희 괜찮아?!”

두 사람이 당하는 걸 본 안티오페가 걱정스럽게 소리쳤다.

이에 크림힐트는 쓰러진 제이드를 챙기면서 그녀에게 소리쳤다.

“우린 괜찮아! 치료할 때까지 시간 좀 벌어줘!”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크림힐트는 주위에 얼음 안개를 뿌렸다.

알버트가 자신들을 쉽사리 노리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안개 속으로 들어간 나나가 두 사람을 치료했다.

“흐히잇……! 다리가 완전 분질러졌잖아요! 왜 이렇게 무리한 거예요?!”

“감상할 시간에 치료나 해줘……!”

나나의 말을 들어보아 크림힐트는 상당히 큰 부상을 입은 모양이다.

아마 제이드를 보호하려다가 자신이 더 큰 피해를 입은 거겠지.

“니아 누나! 앞에서 막고 있어! 그러는 동안 나랑 안티오페가 옆에서 공격할게!”

“알았어!”

크림힐트와 제이드가 공격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일제히 알버트에게 달려들었다.

“어이 아저씨! 어디 이것도 한 번 막아봐!!”

파지지지직!!

번개를 두른 채 도끼를 휘두른 안티오페.

나보다 한 발짝 먼저 다가선 그녀는 알버트 앞에서 보란 듯이 스킬을 차지했다.

그녀의 몸 주위에서 붉은색 기운과 번개가 일렁거렸다.

그 모습은 척 보기에도 혼신의 일격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알버트가 이를 구경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방어하기보단 공격을 가해 안티오페를 저지하려 했다.

“크오오오오옷!!”

퍼허어어억!

무지막지한 기세로 날아든 둔기가 안티오페의 몸을 후려쳤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뭉개질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었다.

“크하앗……! 더럽게 아프잖아 아저씨!”

“……!!”

그러나 안티오페는 나가떨어지기는커녕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악문 채 알버트의 강타를 버텨낸 것이었다.

“그러면 이제 내 차롄가?!”

공격을 받아낸 즉시 반격을 가하는 안티오페.

번갯불에 휘감긴 도끼가 X자를 그리며 알버트를 덮쳤다.

근력 캐릭터의 메인 딜링 스킬 중 하나인 흉악한 휩쓸기였다.

흉악한 휩쓸기

액티브

요구 스탯: 근력 23

비용: 80 기력

사용 조건: 없음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3초간 기를 모은 뒤 X자를 그리듯 두 차례 사선 공격을 가한다. +260퍼센트의 피해를 가하며 스킬 발동 도중 저지력이 30 상승하고 슈퍼 아머가 적용된다.

무려 스킬을 차지할 때부터 깡 슈퍼아머를 부여하는 강력한 스킬, 흉악한 휩쓸기.

근접 스킬 주제에 3초나 기를 모아서 맞추기 힘들지만 데미지 계수가 높고 슈퍼 아머 효과가 있어서 주로 반격할 때 많이 사용하곤 한다.

지금처럼 뭣 모르고 공격을 가한 적을 카운터치기엔 제격인 스킬인 것이다.

촤아악! 촤아아아악!!

푸화아아악!!

“크오오오오오옷!!”

도끼날이 갑옷을 찢어발기며 알버트의 전신을 전류로 뒤덮었다.

천둥새 토템과 스킬의 효과로 인해 현재 안티오페의 저지력은 100에 근접할 것이다.

그런 공격을 두 번 연속 맞았으니 아무리 성벽의 기사라 해도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한 발 물러나 기회를 엿보던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지근거리까지 다가가 알버트에게 비수를 날린 것이었다.

“쯔아아아앗!!”

파바바바박!

안티오페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차지할 시간은 충분했다.

나는 3개의 비수를 동시에 던져 알버트의 흉부를 노렸다.

안티오페에게 맞은 부위에 추가 피해를 가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알버트는 쉽사리 당해주지 않았다.

내가 비수를 날린 순간 곧장 방패를 올려 모조리 막아낸 것이었다.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두 번 연속으로 공격을 허용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덕분에 마신화 게이지 3개가 허공으로 증발했다.

그래도 뭐 상관없다.

애당초 막을 걸 예상하고 던진 거니까.

“걸렸다!”

“좋았어! 날려버려 대장!!”

“……!!”

그가 방패를 내리기 전, 나는 알버트의 품으로 날렵하게 파고들어 파열을 사용했다.

방패 든 적을 조지기에 더할 나위가 없는 그 스킬을 말이다.

파열

액티브

요구 스탯: 없음

비용: 마신화 게이지 3

사용 조건: 지배자의 자격 습득

습득 방법: 발람과 세에레 처치 후 헤카테와 대화하는 것으로 자동 습득

효과: 화염의 마신, 발람의 힘을 왼팔에 두른다. 마신화한 왼팔을 휘둘러 적을 붙잡고 폭발과 함께 내동댕이친다. 스킬이 끝날 때까지 슈퍼 아머와 모든 속성 저항 +50퍼센트를 얻으며 붙잡힌 적은 +300퍼센트의 화염 피해를 받는다. 방어 중인 적에게 사용하면 방어를 무너뜨리고 +50퍼센트의 추가 피해를 준다.

내가 왼손을 휘두르자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팔이 나타났다.

그것은 곧 알버트를 붙잡아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콰과아아앙!!

그와 동시에 일어난 진홍색 폭발.

마신의 팔에서부터 터져 나온 화염은 알버트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

방어한 적을 공격해서 파열의 추가 효과가 발동한 것이었다.

“크허어어억!!”

연이은 피해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알버트.

제 아무리 인내력이 높더라도 잡기 공격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드디어 쓰러진 알버트를 보며 나는 니아와 엘레나에게 소리쳤다.

“니아 누나! 엘레나! 지금이야! 안티오페랑 원딜들은 준비해!”

내 말에 니아는 이를 악물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금세 알아듣는 듯했다.

“가자 엘레나! 하아아아앗!!”

[키하아아아앗!!]

거센 함성을 내뱉으며 돌진하는 니아와 엘레나.

순식간에 알버트에게 육박한 그녀들은 알버트를 붙잡은 채 그대로 날아올랐다.

[크하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엘레나에게 붙잡힌 알버트는 상공으로 끌려갔다.

원래라면 엘레나가 붙잡기도 전에 저항했겠지만 내가 한 번 눕힌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얌전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방패와 둔기를 휘둘러가며 엘레나를 마구 후려쳤다.

매달린 상태라 정확한 공격은 힘들었지만 한 번 맞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엘레나의 몸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키하아아앗!!]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레나는 알버트를 결코 놓지 않았다.

그가 가하는 고통 정도는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렇게 수십 미터 높이까지 올라갈 무렵 니아가 소리쳤다.

“지금이야 엘레나! 놔!!”

니아의 지시와 함께 엘레나가 알버트를 떨어뜨렸다.

그 즉시 알버트는 날개를 이용해 착지하려 했으나 제이드와 카시아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미안해요 아저씨……! 하지만 니아를 더 슬프게 하고 싶진 않다고요!!”

파바박!

파지지지직!!

“크하아아아악!!”

연이어 날아온 번개 화살이 알버트의 날개를 꿰뚫었다.

비정상적으로 돋아난 날개들은 새카맣게 타들어갔고 그의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럼에도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려 한 알버트였지만 안티오페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떨어져버려어엇!!”

콰과아아앙!!

온힘을 다해 차지한 번개가 알버트의 몸을 강타했다.

그로써 알버트는 빠르게 추락했고 나는 최후를 장식하기 위해 명도참을 날렸다.

“이걸로 끝이다……!!”

촤아아아악!

하늘을 향해 날아간 명도참이 알버트의 추락 경로와 완전히 맞닿았다.

다음 순간, 보라색의 검기는 그의 몸을 베어 넘겼고 내 머리 위로 검은색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푸화악!

콰아아아앙!!

낙하로 인한 충격에 명도참까지 맞은 알버트.

제 아무리 보스급 생명력을 가졌다 해도 이 정도 피해를 받고 멀쩡할 수 있을 리 없다.

그 증거로 내 옆에 쓰러진 알버트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슴 깊게 새겨진 자상은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몇 번인가 움찔거리던 몸도 곧 힘없이 늘어졌다.

“해치운 건가……?”

그런 알버트를 바라보며 안티오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나 역시 피 묻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알버트 앞에 무릎 꿇었다.

“하아…… 하아…….”

추락한 알버트는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허나 더 이상 싸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그의 상태를 확인할 무렵 니아와 엘레나도 다시 지상에 착륙하여 아버지 곁으로 다가왔다.

“아빠…….”

[꾸국…… 꾸우욱…….]

힘없이 아버지를 부르는 니아와 서글프게 우는 엘레나.

그녀들의 눈빛엔 너무나 큰 슬픔이 담겨 있었다.

나는 니아가 아버지를 보내줄 수 있도록 한 발자국 물러났다.

알버트 씨 곁으로 모여든 동료들 또한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었다.

어느새 주위의 분위기는 장례식을 방불케 했다.

“아빠…… 보고 싶었어…….”

조심스럽게 다가간 니아는 아버지 앞에 무릎 꿇은 채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 후 얼굴을 덮고 있던 투구를 벗겼는데 투구에 가려져 있던 얼굴은 너무나 처참했다.

“맙소사…… 아저씨…….”

알버트의 얼굴을 본 제이드는 망연자실한 채 활을 떨어뜨렸다.

깃털이 돋아난 머리와 맹금류의 것처럼 변한 눈동자.

얼굴의 일부는 새 인간들의 피부처럼 썩어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그나마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알버트란 걸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이편이 더욱 잔혹했다.

“진짜…… 꼴이 이게 뭐야 아빠…… 내가 밖에서도 잘 정돈하라 했잖아…….”

그 모습을 본 니아는 서글프게 웃으면서 머리에 돋아난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줬다.

물론 무의미한 일이었다.

정상적인 머리카락보다 깃털의 수가 더 많았다.

이미 깃털이 체모를 대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마치 알버트가 더 이상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간접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나…… 아빠 찾으려고 계속 노력했어……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어…….”

“하아…… 하아아…….”

“시체라도, 유품이라도 찾았으면 했는데, 이렇게 아빠를 보니까 너무 기뻐…… 그리고 너무 슬퍼…….”

거기까지 말한 니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윽, 흐으윽……! 아빠…… 아빠아아아……!! 흐아아아앙!!”

결국 니아는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부주의한 행동이었으나 누구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다.

다들 장례식에 참가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엄숙한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나만이 알버트가 돌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한동안 니아가 울부짖는 걸 보고 있던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누나, 이제 그만 보내드려야지.”

빈사 상태가 된 알버트는 이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것이다.

아니, 살아있어서 괴로운 건 추종자로 변한 직후부터 그랬겠지.

지금 알버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에게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뿐이다.

니아도 그걸 잘 아는 듯했지만 차마 죽어가는 아버지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꽉 잡은 알버트의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이었다.

“……누나가 못 하겠으면 내가 할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기에 나는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

칼자루를 움켜쥐며 말할 때쯤 제이드가 내 옆에 섰다.

“아니, 내가 할게.”

“형…….”

제이드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의 의지를 본 나는 말없이 명줄 절단을 넘겨주었다.

스탯이 부족할 테지만 꺼져가는 목숨을 끊어주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거다.

알버트와 니아에게 다가간 그는 애도를 표하듯 니아에게 말했다.

“니아…… 눈 감아…….”

“흐으윽……! 흐윽! 흐그으으윽……!”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가며 니아는 눈을 꽉 감았다.

그럼에도 눈물을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내렸다.

그런 니아를 본 제이드가 이윽고 검을 내려치려 할 때였다.

“제이, 드…….”

“……!!”

불현 듯 알버트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처럼 비명처럼 내지른 게 아니라, 제이드를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아저씨……?”

검을 휘두르려던 제이드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알버트를 내려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알버트는 이내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했다.

“많이, 컸구나…… 엘레나 보다 작던 꼬맹이가…… 아주 잘 커줬어…….”

“아저씨……!”

너무나 이성적인 알버트의 말에 제이드는 명줄 절단을 떨어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니아처럼 눈물을 흘린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알버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아저씨세요? 정신이 드신 거예요?!”

“아빠……! 나도 알아보겠어?! 나야, 아빠 딸 엘레나야……!”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던 니아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는 반대 쪽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알버트는 평온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떻게 못 알아보겠니…… 우리 귀여운 공주님……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아빠…… 아빠아……!”

간신히 울음을 그치려던 니아는 다시금 알버트의 품에 안겨서 흐느꼈다.

그런 니아를 꼬옥 안아주며 알버트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당신과의 싸움이 기억납니다, 검사님…… 당신이 엘레나를 여기까지 데려와 주셨겠지요…….”

“……네, 기사님.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따님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날 지목하는 알버트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알버트는 니아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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