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백익의 조언자
[키아아아악!]
[끼이이이익!!]
세찬 날갯짓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테나의 맹금이 냈던 소리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슬슬 온다, 하피들이야!”
쐐애액!!
내가 경고하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부터 무언가가 날아왔다.
대형 짐승을 사냥할 때 쓸 법한 투창이었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감지한 나는 재빨리 방어 패링으로 막아냈다.
카아아아앙!
푸훅!!
튕겨져 나간 창이 바닥에 깊게 꽂혔다.
다음 순간, 창에서부터 검은색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주변의 꽃들이 모조리 시들어버렸다.
하피 사냥꾼의 능력이다.
놈들이 던진 창은 쇠약의 저주를 부여한다.
한 번 맞을 때마다 최대 생명력이 10퍼센트씩 깎이는 저주로 결정화처럼 10 스택이 되면 즉사한다.
물론 그동안 생명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그전에 맞아 죽을 확률이 더 높다.
[키하아아악!!]
내가 창을 튕겨내자 세 마리의 하피들이 일제히 쇄도했다.
창과 방패로 무장한 그것들은 날개 달린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허나 라미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얼굴은 새와 인간이 뒤섞여서 징그럽기만 했고 몸매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빼빼 마른 채 깃털로 뒤덮인 몸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어지간한 이상성욕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날아오는 하피들에게 비수를 날리려 할 때였다.
“어딜!”
[키아아아앗!!]
엘레나 위에 탑승한 니아가 하피들에게 돌진했다.
허공을 가로지른 엘레나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하피 한 마리를 붙잡았다.
직후, 날카로운 부리가 하피의 날개를 순식간에 뜯어버렸고, 이어서 시시각각 사지를 찢었다.
[키헤에에엑!!]
“잘 하고 있어 엘레나! 그대로 갈가리 찢어버려!”
엘레나가 한 놈을 조지는 동안 니아는 그녀가 공격받지 않게 다른 놈들을 막아냈다.
그와 동시에 도발까지 사용하여 자신과 엘레나에게 이목이 집중하게 만들었다.
“하아아아압!!”
[끼하아아악!!]
[끼야아아악!]
도발의 함성을 듣고 니아 쪽으로 날아든 나머지 하피들.
그 모습은 마치 불길에 뛰어드는 날벌레와도 같았다.
니아에게 접근하는 족족 엘레나의 발톱이 놈들을 썰어버린 것이었다.
“괴, 굉장해!”
“엘레나 혼자서 몇을 상대하는 거야……?”
그 광경을 본 일행들은 넋을 잃은 채 감탄했다.
나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심정이었다.
과연 히포그리프.
최상급 테이밍 몬스터답게 성능 하나는 확실하다.
엘레나라면 혼자서 하피 서너 마리 정도는 거뜬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니아가 탑승한 상태라면 가뜩이나 강한 전투력이 더더욱 오르겠지.
게다가 두 사람은 몇 년 동안 함께 싸운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다.
하피들은 그런 두 사람의 협공에 당해낼 수 없을 거다.
“다들 지금이야! 누나가 어그로 끌고 있을 때 쏴 맞춰!”
“네 다키님!”
“알겠어!”
내 지시에 원딜들이 본격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니아는 찬광으로 하피들을 기절시켰고 유미와 크림힐트는 주문을 사용하여 놈들을 방해했다.
“이거 완전 표적 투성이구만!”
“다가오는 적들은 내가 맞출게 제이드! 너는 계속 니아 주변에 있는 적들을 노려줘!”
하피들이 냉기나 어둠에 의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제이드와 카시아의 화살이 놈들의 미간을 꿰뚫었다.
몇 번인가 호흡을 맞춰봐서 그런지 두 사람의 연계도 썩 나쁘지 않았다.
훌륭한 밸런스가 엘레나의 합류로 넘사벽이 되었다.
처음에 나타난 세 마리를 처치한 후에도 족히 십여 마리가 넘게 덤벼들었지만 일행들이 각자 맡은 바를 잘 수행하니 상대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물론 계속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니아가 최대한 어그로를 끌어줬으나 사방에서 몰려든 하피가 꼭 니아만 때리지는 않았다.
결국 어그로가 튄 몇몇 하피들이 후방에 있는 주문 사용자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대여섯 마리가 놈들이 무리를 지어서 원딜들부터 조리려 든 것이다.
“안 돼……! 다들 물러서!”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수가 몰려오자 카시아는 일단 후퇴를 권고했다.
그 사이에 나나와 크림힐트가 벽을 만들고 응전하려 했으나 하피들은 그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랐다.
[키하아아악!!]
“끼에에에엑?!”
고속으로 돌진하는 하피 무리를 보며 경악을 터뜨리는 나나.
그녀는 반사적으로 거부를 날렸지만 하피는 그것마저 피해버렸다.
실로 경이로운 순발력이다.
저게 바로 하피들을 상대하기 힘든 이유기도 하다.
놈들은 어그로가 끌린 상태가 아니라면 매우 민첩한 움직임으로 대부분의 원거리 공격을 회피한다.
나나가 예측샷을 잘 해도 하피들의 순발력을 따라가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샤아아아아아!!]
하피가 나나를 붙잡으려는 순간 나는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내 왼팔에서부터 검은색 뱀의 형상이 빠르게 뻗어나갔다.
로프처럼 튀어나간 그것은 순식간에 하피의 목덜미를 물었고, 내 쪽으로 빠르게 끌고 왔다.
[케헥?!]
목을 물린 하피는 마구 날갯짓하며 발버둥 쳤으나 칠흑의 뱀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난 놈이 내 앞까지 당도한 순간 가차 없이 검을 내리찍었다.
“나나는! 너 같은! 새끼가! 잡아도! 될 애가 아니라고!”
촤악! 촤아악! 푸화악!
칼끝이 수차례 하피의 몸을 관통한다.
그러는 동안 놈도 내 몸을 이곳저곳 할퀴었지만 충분히 맞을 만했다.
나나가 센스 좋게 신념의 방패를 걸어준 것이었다.
[키히이이익……!]
결국 하피는 내 발밑에서 난도질당해 죽었고 나는 비수를 던지며 물었다.
“나나야 괜찮아?!”
“네 다키님! 저는 멀쩡해요!”
“가급적 형이랑 카시아 누나 쪽에 붙어 있어! 이것도 하나 들고 있고!”
또 다른 하피를 하나 떨어뜨리며 나나에게 벼락 폭탄을 던져줬다.
그것을 받아든 나나는 눈을 빛내며 환호했다.
“와, 와! 이거 꼭 한 번 던져보고 싶었는데!”
“지금 당장 던지지 말고 위험할 때 던져!”
“네 다키님! 명심하죠!”
내 말에 대답하며 나나는 다시 궁수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계속 되는 습격에 우리는 어느덧 원을 그리듯 대형을 짰다.
니아와 안티오페, 그리고 엘레나가 세 방향에서 다가오는 적들을 막아낸 것이었다.
“이거나 먹어라아앗!!”
콰과아아앙!!
[키헤에에엑!!]
비명을 지르며 날아드는 하피들을 안티오페의 벼락이 덮쳤다.
아무리 빠른 놈들이라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까진 피하지 못했다.
결국 놈들은 벼락에 직격 당했고 마치 구운 닭 같은 냄새를 풍기며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역시 안티오페에에게 토템을 맡기는 건 정답이었다.
다른 원딜들처럼 빈번히 공격을 퍼붓지는 못했으나 그녀가 한 번 차지 공격을 먹일 때마다 거대한 벼락이 떨어져 다가오는 하피를 모조리 떨어뜨렸다.
저지력도 엄청나서 하피들은 저항할 틈조차 없었다.
“이 녀석들 진짜 끝이 없네!”
“그러게 말이야! 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한동안 공방전을 이어가던 중 안티오페와 니아가 숨을 몰아쉬면서 불평했다.
확실히 하피들의 수는 지나치게 많다.
더군다나 한 놈, 한 놈이 약한 것도 아니다.
같은 정예인 맹금의 기사보다야 방어적인 측면에선 약하긴 하다.
하지만 짜증나는 패턴이 많아서 상대하기는 하피 쪽이 더 까다롭다.
파지지지직!!
[키헤에에엑!!]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 하피 한 마리가 전류에 휩싸이며 튕겨나갔다.
안티오페를 붙잡으려다가 감전되어버린 것이다.
천둥새의 깃털이 효과를 발휘한 거다.
“우왓! 대장 말대로야! 깃털 두르고 있으니까 이놈들 손도 못 대잖아!”
쩌적! 푸화악!
깃털의 효과를 본 안티오페가 환호성을 터뜨리며 하피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번개를 두른 도끼는 무자비하게 하피의 면전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쪼개진 머리통에선 검은색 피와 함께 뇌의 파편들이 튀어나와 보는 이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깃털이라도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피들의 납치 패턴 때문에 여러 사람 피를 봤을 거다.
우리가 이토록 능수능란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도 깃털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잘 하고 있어 안티오페! 놈들이 너 잡으려 하면 오히려 들이대!”
푸화아아악!!
[키히이이익!!]
안티오페에게 조언하는 것과 동시에 날 납치하려던 놈에게 대공 추격을 사용했다.
심장이 뽑힌 하피는 비명과 함께 추락했고 나는 확인 사살을 위해 놈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푸후우우욱!
[케헤엑!!]
목을 관통 당한 놈은 단말마를 터뜨리며 비로소 절명했다.
방금 전의 하피가 마지막이었다.
치열한 전투는 우리들의 승리로 끝났다.
어느덧 우리 주위엔 수십 마리의 하피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널려 있었다.
하피들이 집어던진 투창들과 함께 말이다.
“하아, 하아아…… 징한 놈들…… 진짜 떼거지로 몰려왔구만.”
쓰러진 하피들을 보면서 제이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이들도 숨을 고르며 하피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이긴 건 좋지만 우리 측의 피해도 결코 적지만은 않았다.
날렵한 움직임과 다채로운 패턴 때문에 일행들은 여러 차례 피해를 입었다.
니아랑 안티오페는 말할 것도 없고 원딜들도 다들 크고 작은 상처 하나씩은 입게 된 것이다.
급한 상처는 나나가 바로 치료해줬지만 그녀도 마나를 아낄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심각하지 않은 상처는 포션을 통해 치료했다.
덕분에 바리가 보내준 포션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게 됐다.
“포션 얼마나 남았어?”
“생명력 포션이랑 마력 포션은 5개……. 기력은 그나마 좀 많이 남았어. 8개 있네.”
내 물음에 니아가 일행들의 포션을 모으며 대답했다.
나 역시 새벽의 비약을 마시면서 남은 포션을 확인했다.
인원수가 많아서 포션의 소모량도 빨랐다.
더군다나 마력 포션의 경우 크림힐트가 추가로 조제했는데도 부족했다.
원활한 보스전을 위해선 추가로 보급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나는 방향을 확인한 뒤 일행들에게 말했다.
“다들 저기 하얀색 건물 보이지?”
“아, 응.”
“위쪽으로 이어져 있네요?”
내가 최상층으로 향하는 구조물을 가리키자 일행들은 그곳으로 시선을 모았다.
“저기 도착할 때까지 포션은 가급적 아껴서 사용하자. 저 안에 약품 저장고가 있으니까 도착하면 뭐라도 챙길 수 있을 거야.”
연구실에서 챙긴 약초나 씨앗을 보면 알겠지만 이곳의 물건들은 신력으로 인해 장기간 보존해도 썩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포션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서천 클랜에서 만든 것만큼 훌륭한 포션들이 고이 모셔져 있겠지.
“그래…… 어서 가자. 멀뚱히 있다간 또 놈들이 몰려올 거야.”
내 말에 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엘레나를 이끌며 누구보다 빨리 하얀색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상층으로 향하는 건물을 본 순간 니아도 깨달았을 것이다.
저곳에 자신의 아버지가 있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하피들에게서 전리품을 챙긴 우리는 하얀색 건물로 향했다.
지하 감옥에 있을 때는 시간에 쫓겨서 전리품을 챙기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 들어온 시점부턴 딱히 촉박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덕분에 우리는 하피의 이코르는 27개나 챙겼다.
개당 3000아웬이나 하는 물건이니 다 합치면 무려 81000아웬이다.
인면조들을 잡았을 때도 실로 어마어마한 수익이었는데 하피들은 그보다 더 했다.
물론 장원에서 찾을 수 있는 진짜 보물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가격이지만 말이다.
그 후 우리는 몇 차례 더 전투를 거친 끝에 건물에 도착했다.
평범한 건물이라기 보단 탑이라고 봐야 하는 구조물이었다.
주위에는 유독 식물들의 침식이 덜했으며 새하얀 바닥 위에는 이곳저곳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거대한 둔기로 내려친 것 같은 흔적이었다.
“이건…….”
크레이터를 본 니아는 본능적으로 직감한 듯했다.
그것이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 있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시체 주위에는 부서진 갑옷이나 버려진 무기들도 있었다.
맹금의 기사들이 살해된 흔적이었다.
그것을 본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
‘어쩐지 한 마리도 안 나온다더니.’
본래 여기까지 오려면 맹금의 기사도 수차례 마주쳤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몬스터들은 전부 하피들 뿐이었다.
여기 있는 흔적들을 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의미심장한 광경을 보며 나아가길 잠시.
우리는 끝내 이 흔적의 주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
탑 입구에 도착한 순간 니아가 얼어붙은 것처럼 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동공을 확대하며 눈앞에 나타난 은색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체구만한 대형 방패를 든 거구의 기사.
온몸을 풀 플레이트로 무장했고 갑옷 중심에는 니아의 목걸이와 같은 표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얼핏 보기엔 그저 중무장한 기사처럼 보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의 몸 곳곳에는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등, 팔, 다리를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날개들이 마치 그를 잡아먹을 것처럼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태로 묵묵히 무릎 꿇고 있는 기사의 정체는 확연했다.
그가 바로 니아의 아버지이자 이 공중정원의 미니 보스.
높은 벽의 기사 알버트 다윈글레이드인 것이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