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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96화 (19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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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아의 사정

“그건 또 뭐야 대장? 조각상?”

아이템을 회수하던 내 옆으로 온 안티오페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거리낌 없이 나와 볼을 맞대며 묻는 그녀에게 나는 조각상, 정확히는 토템을 보여주며 말했다.

“천둥새가 가지고 있던 토템이야. 놈을 숭배했던 사람들이 만든 거지.”

“그런 괴물을 숭배했다고……?”

“우리한텐 단순한 괴물이지만 누군가한텐 신처럼 보였겠지.”

와호가 그랬듯이 천둥새 역시 누군가에겐 신앙의 대상이었다.

가디스 던전 세계관에는 이렇게 신처럼 모셔지는 괴물들이 많다.

신들은 괴물이 되고, 괴물은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세계관이라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건 무슨 효과가 있는데? 대장이 챙기려 했으면 뭔가 특별한 물건일 거 아니야?”

안티오페도 어느 정도 눈치가 붙은 모양이다.

나는 안티오페의 도끼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도끼 좀 줘볼래?”

“응? 그래 여기.”

안티오페는 별 의심 없이 도끼를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도끼 자루에 토템을 갖다 붙였다.

특수한 구조로 이루어진 토템은 기계 부품처럼 도끼 자루 끝자락에 장착되었다.

다음 순간 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티오페의 도끼에서 전류가 뿜어져 나왔다.

“우, 우와……! 이거 뭐야?! 도끼에서 번개가 나오잖아!”

강화된 도끼를 보며 안티오페는 탄성을 터뜨렸다.

나름 귀여운 반응에 나는 웃으면서 설명해줬다.

“토템의 효과야. 이걸 끼우고 있으면 무기에 번개 속성 붙고 위력도 더 강해져. 특수한 스킬도 쓸 수 있고.”

천둥새의 토템

벼락의 신조, 천둥새를 섬기던 부족의 보물. 오직 족장에게 선택받은 전사만이 소유할 수 있었으며 명예로운 대전사의 상징이었다.

과거 천둥새는 남쪽 원주민들의 수호신이었다. 허나 부족이 멸하며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사라지자 흉포한 본성을 되찾고 말았다.

무기에 장착할 시 전격 속성이 추가되고 저지력이 50 상승한다. 또한 차지 시 벼락이 떨어져 기본 피해 +100퍼센트의 만큼 전격 피해를 준다. 단, 양손 무기에만 장착할 수 있다.

일부 유물들은 무기에 직접 장착하는 형식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천둥새의 토템이 그런 류의 아이템인데 보면 알겠지만 무척이나 훌륭한 효과다.

전격 속성 추가와 저지력 상승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다.

안 그래도 양손 도끼를 들어서 저지력이 높은 안티오페는 이제부터 치는 족족 경직을 먹일 수 있을 거다.

여기에 차지 공격 시 추가 피해를 입히는 효과도 있으니 이 유물의 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다.

명실상부하게 가디스 던전에서 최상위급의 유물인 것이다.

“이렇게 좋은 걸 나 줘도 돼?! 팔기만 해도 엄청 비쌀 텐데……!”

토템의 효과를 들은 안티오페는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토록 진귀한 유물을 받아서 기쁜 듯  지만 동시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다소 아쉬운 이야기를 전했다.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거야. 여기서 양손 무기 쓰는 건 너밖에 없으니까. 던전 끝나면 도로 뱉어내.”

“뭐야~! 좋다 말았네!”

내 말에 무척이나 아까워하는 안티오페.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 토템을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지. 보면 알겠지만 저 토템은 양손 무기 전사에게 거의 종결템급의 성능이니까.

더군다나 양손 무기이기만 하면 어떤 장비에도 장착할 수 있어서 범용성 또한 뛰어나다.

강력한 장비를 구하기 힘든 게임 세계의 특성상 저 토템한테도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지 않을까.

“아무튼 그거만 있으면 멀뚱히 구경만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원딜 보다야 못하겠지만 새들 보이면 번개로 열심히 공격해봐.”

내가 안티오페에게 토템을 넘겨준 건 그녀가 양손 도끼를 사용해서만이 아니다.

안티오페는 공중에서 공격해오는 몬스터들에게 대응할 수단이 없다.

점프해서 때릴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아군을 지키느라 바쁜 니아나 비수를 날릴 수 있는 나와 달리 완전 비행형 적이 나오면 그녀는 상대적으로 잉여가 되는 것이다.

그때 놀지 말고 뭐라도 해보라고 토템을 넘겨준 거다.

토템이 생성하는 벼락은 원거리전에 특화되어 있지는 않으나 그래도 점프해서 때리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스승님, 깃털 서른 개 다 모았어요……!”

“나도 다 모았어.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서 생각보다 빨리 모았네.”

내가 안티오페에게 설명하던 도중 일행들은 깃털 회수를 끝냈다.

깃털을 한 아름 모아온 그들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고들 했어. 이제 서로 옷에 끼워줘.”

천둥새의 깃털은 평범한 깃털과는 달라서 옷에 끼워 넣기 더 편했다.

내가 끼우는 요령을 알려주자 일행들은 빠르게 따라했다.

“다키 너는 안 해도 괜찮아?”

“일단 다키님 것도 모아오긴 했는데요.”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자 니아와 나나가 물었다.

그녀들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난 안 껴도 돼. 오히려 안 끼는 편이 좋아.”

“왜요?”

“난 놈들이 잡으려 하면 반격하기가 더 쉽거든. 그러니까 나나가 모아놓은 건 여분으로 남겨 둬.”

새들이 날 붙잡으려 하면 필연적으로 저공비행을 하게 된다.

나는 그 틈에 대공 추격을 써서 결정타를 먹일 수 있으니 천둥새의 깃털은 방해만 된다.

또한 남들 다 끼고 있는데 나만 안 끼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노려지기도 더 쉽겠지.

난 뭣 모르고 달려드는 새들을 하나하나 잡아 족치면 된다.

몇 분간 시간을 들여 정비를 끝낸 뒤 우리는 지상으로 향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나선 계단은 무척이나 높았다.

벽을 따라 쭉 늘어져 있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시체들을 보게 됐다.

“천둥새한테 고마워지는걸.”

“그러게 말이에요. 여기서 이놈들이랑 싸웠으면 피 말렸겠어요!”

계단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피해가며 일행들이 안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나선 계단은 다섯 명이 나란히 서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넓었지만 전투를 벌이긴 적합하지 않았다.

게다가 라미아들은 벽을 타고 이동할 수도 있으니 공간의 제약이 있는 우리보다 훨씬 유리하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적들이 사방에서 몰려들면 끔찍하기 그지없었으리라.

일행들의 말에 공감하면서 시체를 넘어갈 때였다.

“응?”

문득 내 눈에 이상한 시체가 들어왔다.

벽에 기댄 채 죽어있는 라미아였는데 상처가 다른 놈들하고 좀 달랐다.

아니, 자세히 보니까 조금 다른 수준이 아니라 심각할 정도로 이상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발견한 라미아는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으니까.

“어? 다키님 이거…….”

나를 따라 올라오던 나나도 시체를 보고 경악했다.

미간을 정확하게 뚫은 자그마한 구멍. 그것은 틀림없이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절대 천둥새가 낼 수 있을 만한 흔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야, 이놈은 왜 머리에 구멍 뚫려 있어?”

“바늘 같은 걸로 찌른 건가……?”

“천둥새가 그런 식으로 죽일 수 있을까……?”

뒤따라오던 일행들도 그 시체를 보며 의문을 품었다.

허나 그들은 저 상처가 총상이란 것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가디스 던전 세계관에는 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키님 이거 존나게 이상한 거 맞죠……?”

일행들 몰래 나나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작 게임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나에게 대답한 나는 다시금 총상을 확인하며 추론했다.

저게 정말 총상일까?

그렇다면 총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거지?

DLC의 영향으로? 아니면 우리 외의 또 다른 전이자가 직접 가지고 왔나?

후자의 경우는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전자도 확단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생긴 게 총상과 비슷할 뿐 마법에 의한 상처일 수도 있다.

당장 마탄만 해도 자그마한 마력 탄환을 날리는 스킬이잖은가.

비슷한 마법이 DLC를 통해 등장하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다.

‘아니,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실 진짜 중요한 건 총이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아니다.

천둥새의 외의 다른 누군가가 라미아를 죽였다는 것이다.

“다들 들어봐, 아무래도 던전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뭐……?”

“다른 사람이라면…… 모험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유미의 질문에 부정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 하지만 뭐 하는 놈이던 간에 경계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

“확실히 이상하긴 해……. 이 상처, 위에서 아래를 향하고 있거든.”

내 말에 제이드가 맞장구쳤다.

그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이 제이드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제이드, 그렇다는 건…….”

“그래, 누군지는 몰라도 저 위쪽 입구를 통해 감옥으로 들어왔어. 문제는 계단 구조인데…….”

총을 쐈을 거라 예상되는 장소로 고개를 돌린 제이드.

그곳에는 발 디딜 곳 하나 없었다.

구조상 지상에서 총을 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이 녀석을 죽인 놈은 최소 몇 미터 이상 떨어진 채 투사체를 날렸어. 그런데 보시다시피 여기서 몇 걸음만 가도 서 있을 곳이 없잖아.”

“날아서라도 공격한 건가……?”

“바깥의 새가 여기까지 와서 공격했다거나…….”

유미가 의견에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총이란 무기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라미아의 시체로 다가가 머리를 쑤셔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선 금색으로 빛나는 탄두가 나왔다.

이쯤 되니 한 가지 가설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다.

‘누군가가 지하 감옥으로 내려와 라미아들을 쏴 죽였어. 그 다음엔 천둥새를 의도적으로 풀어줬고…….’

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벌인 걸까.

이 짓거리를 한 이유는 또 뭐고.

지금 내 머리로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자세한 건 나중에 조사해보기로 하고 일단 총알만 챙겨뒀다.

내가 실제로 총알을 본 적이 없어서 이상한 부분은 못 찾겠다.

아니, 따지고 보면 판타지 세계에서 이런 현대식 총알이 발견된다는 것부터가 충분히 이상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계속 움직이자. 만나면 골치 아프겠지만 당장 신경 써야할 건 아테나니까.”

“맞아,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우릴 방해하지 않으면 상관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염두에 두자고.”

총기에 대해서도 설명해둘까 했지만 지금은 보류하기로 했다.

총이란 것 자체를 모르는 이들 입장에선 난해한 설명 밖에 되지 않을 거다.

이해하는 것은 둘째 치고 설명하는데 괜히 시간만 잡아먹겠지.

그 의문의 인물이 내가 설명하는 형태의 총기를 가지고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

한동안 계단을 오른 우리는 이윽고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계단 위로 나오자마자 보인 건 무너져 내린 폐허였다.

과거엔 경비대의 본부가 있었을 테지만 천둥새가 튀어나오면서 모조리 부숴버린 것 같다.

“다행히 늦지 않게 빠져나왔네.”

“새벽 일찍부터 출발하길 잘 했어.”

지하 감옥을 지나왔는데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하늘이 연하늘색으로 물들고 지평선에서부터 새하얀 빛이 아른거렸으나 동이 트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했다.

다행히 영주성 안쪽까지 들어갈 시간은 충분하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도를 펼쳤다.

“여기서부터는 아테르니아의 본성이야. 우리가 있는 곳은 바로 여기쯤이고…….”

일행들의 시선을 지도로 모은 뒤 나는 지도의 한 부분을 툭툭 쳤다.

그 위에는 도시 경비대 본부라고 적혀 있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영주성, 정확히는 아테나의 신전이 있었다.

보통은 신전과 영주성이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을 것이다.

하지만 아테르니아는 신이 통치했던 도시인만큼 영주성이 곧 신전이고, 신전이 곧 영주성이었다.

통치자의 거처임과 동시에 아테나 신앙의 중심인 것이다.

“영주성…… 그러니까 아테나의 신전은 3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어.”

신전으로 가는 길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신전의 구조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첫 번째는 대서고, 말 그대로 엄청난 서고야. 두 번째는 공중 정원, 인공적으로 꾸며진 숲이라 보면 돼. 그리고 세 번째는…….”

“……아테나의 거처겠네.”

이야기를 듣던 니아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대서고는 특별히 위험한 적이 없어. 성가신 놈이 하나 있긴 한데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거든.”

대서고는 기본적으로 휴식처와 비슷한 느낌이다.

여신상도 거기에 놓여 있으며 미니 보스 하나를 제외하면 특별히 몬스터가 나타나지도 않는다.

헤카테의 거처와 더불어서 거의 유이한 안전지대인 것이다.

“문제는 그 위에 있는 공중 정원이야. 여기서부터는 아테나의 친위대가 나와.”

“친위대……? 그 기사 같은 놈들인 거야?”

진저리치며 묻는 안티오페에게 나는 무겁게 대답했다.

“그래, 기사들도 있고 다른 의미로 더 성가신 적들도 있어. 장원에서도 생지옥이라 할 수 있는 곳이야.”

공중정원은 그야말로 장원의 불합리함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는 장소다.

죄다 비행 가능한 몬스터들만 나오는데다가 맵 자체도 적들에게 특화되어 있다.

대부분의 몹들이 근접 공격할 때를 제외하면 내려오려 하지를 않으니 상대하는 사람 입장에선 환장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싸울 때만큼은 정말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나조차도 몰려드는 기사와 비행형 몬스터들을 상대로는 상당히 고전할 테니까.

그렇게 계층에 관한 설명을 이어갈 때 니아가 문득 질문을 건넸다.

“우리 아빠는 어디에 있을까……?”

“누나네 아버지라면…… 아마 여기쯤이겠지.”

니아의 물음에 나는 공중 정원에서도 가장 안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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