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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감옥
여기가 던전이 아니었다면 바로 여관으로 직행했을지도 모르겠다.
분위기가 좋거나 술이 들어갔다면 더더욱 그렇고.
그 점을 참 아쉽게 생각하면서 나는 피어오르는 욕구를 가라앉혔다.
유미의 엉덩이는 차마 눈을 떼기 힘든 요물이지만 지금은 길안내에 집중해야지.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복도를 나아갈 때였다.
“다들 잠깐만 멈춰 봐.”
“응? 왜?”
“앞에 뭐 있어?”
선두에서 걷던 니아와 안티오페가 내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가 멈춰선 곳은 네 갈래 길로 나눠진 사거리였다.
바닥의 흔적을 살핀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이야기했다.
“나나야, 쉬익 거리는 소리 안 들려? 사슬 소리라던지.”
“핫……! 확실히 들리네요……! 사슬이 질질 끌리는 것 같은…….”
나나가 귀를 기울이며 설명하자 일행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들 본능적으로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리라.
모두가 날카롭게 눈을 뜨며 무기를 쥐었고, 니아가 질문을 건넸다.
“아까 봤던 괴물하고 같은 녀석이야?”
“아니, 그보다 더한 놈들이야. 정신 공격하는 놈들.”
내 경고와 함께 모퉁이 너머로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 개의 그림자는 역시나 인간과 뱀이 합쳐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재빨리 모습을 숨겼고, 이내 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쉬이익, 쉬이익!]
혀를 날름거리며 나타난 건 뱀의 하반신과 인간의 상반신을 가진 괴물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라미아와 그나마 근접한 모습이었으나 역시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간처럼 생기긴 했어도 몸 전체가 비늘에 뒤덮여 있었고, 입은 뱀처럼 길게 찢어져서 불쾌한 골짜기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 여성형이란 걸 과시하듯 유방이 있기는 했으나 추하게 늘어진데다 피어싱까지 덕지덕지 박혔다.
그것을 보고 성욕을 느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으으으……. 쌉 불가능…….”
여지없이 기대를 배신하는 디자인에 나나가 치를 떨었다.
다른 이들도 그 괴악한 생김새에 절로 혐오감이 드는 듯했다.
저 놈들의 이름은 라미아 옥졸.
이름 그대로 감옥 안의 죄수들을 감시하는 옥졸들이다.
감옥 안에 널브러져 있던 고문의 흔적들은 전부 저 놈들 작품이다.
생긴 것만 끔찍한 게 아니라 심성까지 가혹성으로 점철된 무자비한 괴물인 것이다.
[쉬시이이익…….]
[쉬이익.]
세 마리의 옥졸들은 모퉁이에 멈춰 서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혀를 날름거리는 것을 보아 우리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라미아들은 플레이어가 근처에 있기만 해도 감지할 수 있다.
정확한 위치까지는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근처에 있다는 걸 깨닫고 찾아나서는 것이다.
우리 앞에 나타난 옥졸들 역시 천천히 수색을 계시했다.
이대로 숨어 있다간 머지않아 발각될 거다.
기습을 가하려면 지금.
나는 일행들이 볼 수 있게 손가락으로 싸인을 만들고, 놈들이 빈틈이 보인 순간 신호를 보냈다.
타앗!
타다닥!
내 신호에 맞춰서 나와 안티오페가 옥졸들을 향해 튀어나갔다.
[쉬이익……!]
발소리를 들은 옥졸들이 황급히 뒤를 돌아봤으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의 무기가 놈들의 목전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흐랴아아압!”
촤자아아악!!
기세 좋게 도끼를 휘두른 안티오페.
그녀의 거대한 양손 도끼가 옥졸 한 마리의 목을 크게 베었다.
[쉬키이이익!!]
충분히 치명타라고 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옥졸은 괴로워하기만 할 뿐 죽지는 않았다.
이놈들은 강하다.
생명력도, 방어력도 평타 한 방만으로 죽어줄 놈들이 아닌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공격당한 옥졸은 손에 든 사슬을 안티오페에 휘둘렀다.
그러자 사슬이 마치 뱀처럼 움직이며 안티오페를 추적했다.
촤라라라락!!
“우왁?!”
살아있는 생물 같은 움직임에 안티오페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공격을 피했는데도 여전히 사정권 안이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안티오페가 사슬에 당하기 직전, 나는 놈을 향해 혹한의 비수를 날렸다.
“안티오페, 숙여!”
쐐애애애액!!
3개의 비수가 부채꼴을 그리며 날아갔다.
스킬 설명에는 없지만 혹한의 비수는 세에레가 그랬던 것처럼 차지해서 날릴 수가 있다.
데미지는 딱히 변함없지만 3개를 동시에 날리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딜이 나온다.
내가 날린 비수는 한 발당 무려 1060의 피해를 가한다.
다 맞으면 무려 3180의 데미지가 나오는 것이다.
파바바바박!
[쉬카아아악!!]
안티오페를 노리던 옥졸에게 비수가 연달아 꽂혔다.
비수가 퍼지기 전에 맞아서 3발이 전부 명중한 거다.
당연하게도 옥졸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비수의 데미지도 데미지였지만 이놈들은 파충류라서 빙결 속성이 약점이다.
추가 피해가 붙어서 어림잡아도 5천 가까운 데미지가 박혔을 거다.
“고마워 대장!”
내 지원에 감사하며 안티오페는 서둘러 원딜들 앞을 가로막았다.
때마침 두 마리의 옥졸들이 사슬을 휘두르며 돌진하고 있었다.
카앙! 캉! 카가앙!
“크흐윽……! 이 자식들……!”
매섭게 니아의 방패를 후려치는 옥졸.
두 마리가 동시에 덤비니 니아도 버티기 힘들어보였다.
허나 니아의 가드 게이지가 제대로 달기도 전에 일행들의 화력이 옥졸들에게 퍼부어졌다.
“위대한 빛의 창세신이시여 태양처럼 눈부신 빛으로 저 새끼들 눈을 멀게 해주세요!!”
파아아아앗!!
[쉬키익!]
[쉬이이이익!!]
나나의 찬광이 옥졸들의 눈앞에서 터졌다.
니아를 공격하느라 정신이 없던 놈들은 바로 앞에서 터지는 섬광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이제야 좀 조준하기 쉽네!”
“물의 아이들아, 내 부름에 답해다오!”
직후 제이드와 카시아가 연달아 화살을 날렸다.
카시아의 정령술로 궁수 듀오의 화살촉에는 냉기가 서렸다.
기절한 상태에서 차가운 화살들이 온몸에 박히자 옥졸들은 적잖게 괴로워하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빠른 이동 속도를 살려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위치로 후퇴하려는 거겠지만 소용없다.
등을 보인 시점에서 놈들은 이미 진 거나 다름없다.
“죽어.”
쐐애액!!
짧은 사형 선고와 함께 얼음의 쐐기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연달아 날아간 두 개의 쐐기는 놈들을 가죽을 찢고 각각 머리와 흉부를 관통했다.
[쉬카아아악!!]
연이은 공격을 감당하지 못한 옥졸들.
놈들은 끝내 고통어린 비명 소리를 내지르면서 절명하고 말았다.
대형을 제대로 갖추니까 놈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
크림힐트는 물론 카시아와 제이드의 딜도 만만찮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뭐야, 이놈들! 별 것도 아니네!”
픽픽 쓰러지는 옥졸들을 보며 안티오페가 기고만장하게 외쳤다.
확실히 진형을 갖춘 채 싸우면 우리 쪽이 훨씬 유리하다.
니아의 가드 게이지면 한두 놈 정도의 공격은 충분히 버틸 수 있고, 나나와 유미 등 CC기를 걸 수 있는 멤버도 많다.
탱딜힐이 완벽한데다 상성도 좋으니 쉽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이제 고작 옥졸들을 세 마리 잡았을 뿐이다.
지하 감옥의 몬스터는 놈들이 다가 아니다.
“긴장 풀지 마! 아직 안 끝났어!”
안티오페에게 소리치면서 나는 복도 너머를 바라보았다.
싸우는 소리가 들렸으니 근처에 있는 놈들이 몰려들 거다.
비단 옥졸들뿐만 아니라 더 성가신 적까지 말이다.
[쉬이익! 쉬이익!!]
다음 순간,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제외한 모든 길에서 몹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 수는 약 십여 마리.
수십 마리씩 덤비는 바깥 잡몹들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수지만 그만큼 하나하나가 강력하다는 뜻이다.
특히나 정면에서 나온 놈은 다른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비주얼을 선보이면서 우리를 위협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웬 커다란 라미아가 우리 쪽을 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다른 옥졸들과 전반적으로 비슷한 디자인이었으나 한층 더 괴기스러운 외모.
머리에는 수 십 마리의 뱀들이 머리카락처럼 돋아나 있었으며 팔 또한 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징그러운 걸 넘어서 공포스러운 모습이다.
거대 라미아를 본 일행들은 기겁을 금치 못했다.
“젠장, 저건 또 뭐야?!”
“다른 놈들 보다 훨씬 강해 보이는데……!”
니아가 정확하게 봤다.
놈은 이 지하 감옥에서도 정예 위치에 있는 간수장이다.
[쉬익……! 쉬이익……!!]
[쉬카아아악!!]
푸확! 푸화악!!
간수장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자 다른 라미아들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놈들은 괴로운 듯 몸을 떨더니 곧 눈, 코, 입에서 대여섯 마리의 뱀들을 뿜어냈다.
“히이익……!”
“와 씨, 개극혐……!”
그 광경을 본 일행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내가 봐도 차마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쟤네들 뭐예요 다키님?! 장르를 잘못 찾아온 거 같은데?!”
니아에게 신념의 방패를 재차 걸어주면서 나나가 물었다.
그녀 말대로 새로 튀어나온 몹들은 마치 크툴루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흉측한 디자인이었다.
개발자가 말하길, 저놈들은 실제로 뭐 크툴루 기반 게임을 오마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 인한 영향인지 저놈들한테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은 마력이 깎인다.
크툴루 게임에서 끔찍한 걸 보면 정신력이 깎이듯 정신이 이상해져서 마력이 소모되는 것이다.
“저기 있는 간수장 때문에 다른 놈들도 변이한 거야! 주문 사용자들은 최대한 뒤로 물러나고 근딜들도 가급적 가까이 가지 마!”
놈들의 성가신 점은 비단 마력 감소만이 아니다.
머리에서 뱀이 튀어나온 후부턴 본체의 인내력이 대폭 상승한다.
뿐만 아니라 머리의 뱀들은 본체와 따로 움직이기 때문에 본체가 경직에 걸리더라도 얼마든지 반격을 가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저 뱀 하나하나가 때릴 때마다 원망 수치, 즉 받는 피해 증가 스택을 1씩 쌓기도 한다.
공속이 오질라게 빠른 놈들이라 조금만 방심해도 골로 갈 것이다.
“그러면 어떡해?! 빨리 안 죽이면 우리가 죽게 생겼어! 크흐읏!?”
콰지익!!
스스슷……!
라미아들에게 대응하던 도중 안티오페가 고통어린 신음을 흘렸다.
뱀에게 물린 것이다. 물린 부위엔 불길한 소리와 함께 붉은색 낙인이 새겨졌다.
저것이 10번 새겨지면 다음 피해가 무조건 즉사 피해로 바뀌는 거다.
“일단 계속 빼! 잡몹들은 한 번에 처리할 거니까! 나나는 바로 해주 주문 써줘!”
“크윽! 알겠어!”
“네 다키님……!”
내 지시에 일행들은 치열하게 싸우며 후퇴했다.
차차 뒤로 물러난 우리는 어느덧 외길까지 놈들을 끌고 올 수 있었다.
퇴로를 차단하기엔 제격인 위치인 것이다.
“나나야, 지금이야! 장벽!”
“위대한 빛의 창세신이시여! 당신의 위광으로 저희를 보호해주세요!”
파아아아앗!!
내 외침과 동시에 나나가 장벽을 깔았다.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라미아들이 도망칠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반대편 통로를 막은 것이다.
[샤아아아악!]
[쉬이이이익!!]
뒤늦게 우리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라미아들이 벽 쪽으로 이동했다.
벽을 타서 공격을 피할 생각이리라.
하지만 유미가 그렇게 두지는 않았다. 그녀는 내가 준 여신의 자장가를 흔들며 주술을 시전했다.
“한 많은 원혼들아, 편히 눈 감지 못하고 수면 위로 떠오른 영혼들아…… 이리 와서 데려가라, 물밑까지 끌고 가 동포로 삼아라……!”
[으어어어억!]
[아아아아악!!]
벽을 타고 올라가려는 라미아들을 물귀신들이 붙잡았다.
놈들의 이속이 크게 감소된 틈에 나는 여지없이 명도참을 날렸다.
“쯔아아아앗!!”
촤좌자아악!
무자비하게 날아간 보라색 검기.
그것이 놈들을 베어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창졸간이었다.
우리에게 달려들던 라미아 무리는 일제히 두 동강 나버렸다.
잡몹 사이에 섞여 있던 옥졸들 역시 큰 피해를 입고 시커먼 피를 뿜어냈다.
그렇게 남은 놈들은 크림힐트의 주문이 마무리 지었다.
“아이루스 엘트 이스톨라 바넨 에스페카…….”
카가가가각!!
크림힐트가 사용한 주문은 겨울의 가시.
지면에서부터 수많은 얼음 가시를 뽑아내 적들을 꿰뚫는 스킬이다.
겨울의 가시
액티브
요구 스탯: 지성 17
비용: 마력 50
사용 조건: 마법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3초간 캐스팅한 뒤 전방 10미터, 폭 5미터의 범위에 얼음 가시를 생성한다. 얼음 가시는 지면에서부터 뻗어 나오며 시전자의 지성 x10만큼의 피해를 주고 동상을 부여한다.
빙결 속성 범위기라 죽어 가는 놈들 막타치기엔 제격이었다.
살아남은 옥졸들은 동상에 걸릴 틈도 없이 모조리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남은 건 간수장 뿐.
놈은 애초부터 후방에 있었기에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다.
부하들이 전멸한 것을 보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