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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91화 (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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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감옥

“정말로요! 여신님 아니었으면 다 무너져가는 폐가에서 자야했을 텐데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나나도 활발하게 감사를 표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목 아프다고 골골 거리던 녀석이 지금은 여느 때처럼 생기발랄했다.

헤카테가 따로 목에 좋은 약을 챙겨줘서 그럴 것이다.

나나 외에도 다들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아서 던전에 들어올 때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

“이 정도는 별 거 아니란다. 중대한 임무를 맡았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겠니.”

일행들의 감사에 헤카테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이야기했다.

처음 만났을 땐 냉철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으나 보면 볼수록 순수하게 착한 여신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문을 나서려할 때였다.

“아 가기 전에 잠깐 기다려보렴.”

헤카테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헤카테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본성까지 그냥 가려면 수고가 많을 거란다. 내가 만들어둔 비밀 통로가 있으니 거길 이용하렴.”

그렇게 말하며 헤카테가 건네준 것은 조그마한 거울이었다.

눈 모양을 하고 있는 특이한 거울이었는데 표면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헤카테의 눈.

저승과 마법의 여신, 헤카테가 만든 직접 만든 유물. 사용 시 근처에 있는 환영들을 간파한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아이템 설명이 떠올랐다.

이 아이템도 DLC의 영향으로 생긴 아이템인 듯했다.

산양 뿔 외에도 몇 번이나 새로운 아이템을 확인한 터라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환영 간파 효과라니, 원작에도 있었다면 엄청 편했겠는데.’

가디스 던전에는 다양한 환영 기믹들이 존재한다.

와호처럼 환영 패턴을 사용하는 몬스터나 환영으로 가려진 길 등이 대표적이다.

그 중 환영벽은 세이브 포인트나 귀중한 아이템을 숨겨 놓을 때 사용하곤 해서 모르면 굉장히 고생한다.

아마 개발자들도 초보자 배려 차원에서 이 아이템을 도입하려한 것이리라.

“비밀 통로는 북쪽으로 쭉 가다 보면 나온단다. 지하 감옥과 연결된 곳이니 거길 지나면 금세 본성에 도착할 거야.”

지하 감옥이라.

하필이면 거기냐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이템 파밍을 위해서 한 번 정도 들러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원래는 천둥새가 나오는 곳이라 나중에 들르려 했지만 천둥새는 이미 밖으로 튀어나왔으니 지금 가도 딱히 문제는 없을 거다.

그리 생각하며 나는 거울을 잘 챙겨뒀다.

그런 나를 본 후, 헤카테는 문득 니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가, 이름이 니아라고 했니?”

“네? 아 네. 니아 다윈글레이드예요, 여신님.”

헤카테의 부름에 니아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런 니아를 보며 헤카테는 측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이 앞길은 네게 무척 고되고 슬픈 길이란다. 절망이 널 집어삼키기 위해 손을 뻗어오겠지.”

“고되고 슬픈 길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난데없는 말에 다른 일행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히 제이드는 언짢은 기분을 느꼈는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허나 니아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듯했다.

“……저희 아빠에 대해서 알고 계신 거죠?”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니아가 질문을 건넸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제이드는 비명을 터뜨리듯 놀랐다.

“뭐?!”

“니아 언니 아버지라고요……?”

“분명 장원에서 실종되셨다는…….”

어느 정도 사정을 알고 있는 나나와 유미 역시 눈을 크게 뜨며 동요하는 기미를 보였다.

동료들이 놀라는 와중 헤카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니아를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영주성 앞에서 한 기사를 봤단다. 네가 가진 목걸이를 보고 그 자가 네 가족이란 걸 깨달았지.”

“……!”

차마 말을 꺼내기도 미안한 듯 헤카테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처음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었던 제이드도 목걸이 이야기를 듣고 숨을 집어삼켰다.

니아가 걸고 있는 목걸이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기사 가문인 다윈글레이드를 상징하는 문장이다.

니아의 아버지도 같은 목걸이를 차고 있을 테니 헤카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한동안 이야기를 듣던 중 니아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헤카테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떠셨어요……?”

니아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바라야 할까.

장원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기쁨의 재회와는 거리가 멀다.

죽어서 시체가 되었거나 던전의 영향으로 괴물이 되었거나 둘 중 하나다.

감동적인 부녀 상봉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니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다. 어쩌면 후자 보다는 전자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허나 현실은 잔혹했고 장원에겐 일말의 자비조차 없었다.

“……직접 가서 확인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물론 네가 받아들일 진실이 상냥하진 않단다. 아비를 만나길 원한다면 필히 각오를 해야 할 거야.”

에둘러 말하긴 했으나 헤카테의 말은 잔인한 사실을 전해주었다.

아버지를 봤는데 각오를 해야 한다면 분명 그가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니까.

사망 선고나 다를 바 없는 말에 니아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일행들 중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니아의 아버지와도 잘 알던 제이드는 피가 새어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며 울분을 참았다.

짧은 정적이 지나간 후, 니아가 이내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여신님.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말한 후 니아는 고민할 거 없이 등을 돌렸다.

집 밖으로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지만 멈출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우리도 이제 그만 가자.”

“네, 다키님.”

“그러자고……. 배 꺼지기 전에 얼른 가야겠어.”

말없이 지켜보던 동료들을 이끌며 나 역시 집 밖으로 나섰다.

드높은 성벽 너머로는 서서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 * *

새벽녘의 이점을 활용하여 나와 일행들은 순조롭게 비밀 통로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잡몹들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정예들은 졸고 있을 시간.

그래서인지 폐허가 된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한산하고 조용했다.

만약 시간대를 활용하지 않고 무작정 들이댔다면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전투를 치렀어야 했을 거다.

빠르게 자원이 소모되는 것은 물론 죽을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겠지.

“여기가 여신님이 말한 데야? 보기엔 아무 것도 없는데.”

목적지에 도달한 직후 안티오페가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벽을 따라 쭈욱 걸어서 그런지 주위에는 버려진 건물 몇 채와 본성을 지키는 성벽만 있을 뿐이었다.

“그대로 드러나 있으면 그게 비밀 통로냐? 기다려봐, 지금 찾을 테니까.”

안티오페 말에 대꾸하며 헤카테의 눈을 꺼내들었다.

거울 표면을 내민 뒤 성벽을 따라 걷자 특정 구간에서 은색 빛이 흘러나왔다.

스르륵.

“……!”

“와……!”

직후 성벽의 일부가 작은 터널로 바뀌었다.

우리 전원이 다 들어가도 될 만큼 커다란 입구였다.

“이런 곳에 길이 숨겨져 있었다니…….”

“여신님이 주신 유물 아니었으면 전혀 몰랐겠어요.”

어두운 터널을 보며 일행들은 탄성을 흘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 터널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음산한 기운으로 인해 다들 긴장감을 되찾았다.

불빛 하나 없이 어두운 터널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서웠다.

뿐만 아니라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언가가 몸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키야, 지하 감옥도 어떤 느낌인지 알아?”

유독 말이 없던 니아가 진지한 어투로 물었다.

곧 있으면 괴물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보게 될 텐데 생각이 많은 것도 당연하겠지.

그래도 패닉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걸 보면 그녀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 지 알 수 있었다.

“맞아 대장! 아는 게 있으면 미리 알려달라구!”

니아에 이어서 안티오페도 정보를 요구했다.

이쯤 되니 일행들은 나를 완전 공략위키 취급하는 것 같다.

다키라는 이름 자체가 위키 사이트에서 따왔으니 어찌 보면 닉값을 하게 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설명은 가면서 할게. 지체할수록 우리한테 불리해지니까.”

“그렇긴 한데, 가다가 기습이라도 당하면 어떡해?”

“걱정 마, 적어도 터널 안은 안전하거든.”

내부 구조를 확인한 나는 일행들에게 손짓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에서 환영벽을 보는 건 처음이지만 구조 자체는 원래부터 있던 것이다.

따로 루트를 만든 게 아니라 기존 루트에 환영벽만 추가한 것이리라.

그 증거로 입구에서 조금만 나아가니 반짝거리는 보석이 떨어져 있었다.

중간 단계 강화에 사용되는 신혈 결정 조각이었다.

“어? 그건……?”

“신혈석 파편……? 아니, 그것보다 훨씬 큰데……?”

결정 조각을 본 안티오페와 카시아가 눈을 크게 떴다.

말은 없지만 크림힐트도 관심이 있는지 시선을 집중했다.

어느 RPG나 고 레벨이 될수록 강화가 중요해지는 법이다.

사실상 플레티넘 등급인 세 사람 또한 강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겠지.

그래서 늘 보던 신혈 파편 보다 큰 조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리라.

“신혈 결정 조각이야. 파편 보다 좀 큰 건데 던전 같은 데서 잘 나오고 그래.”

관심을 보이는 일행들에게 조각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뭐야~ 파편이 아니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잖아. 괜히 붙이려 했다간 무기만 깨먹을 거라고.”

“네? 어째서요? 크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 유미 양. 너무 큰 신혈석은 정재가 어렵거든. 현재의 기술로는 다룰 수가 없어.”

의아해하는 유미에게 카시아가 친절히 설명해줬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언젠가 한 번 말했듯이 브릴린트 이외의 대장장이들은 3강까지 강화하는 게 한계다.

더 강화하려 하면 거의 무조건 실패하기 마련이다.

3강조차 붙이기 힘든데 그보다 더 높은 단계는 오죽하겠는가.

안티오페가 혀를 내두르는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면 이건 내가 챙긴다. 다들 이의 없지?”

“응? 왜? 뭐에 쓰려고?”

“다 쓸 데가 있거든.”

안티오페에게 적당히 둘러대며 조각들을 차원낭 안에 집어넣었다.

입구에서 발견한 조각은 총 3개. 이거면 +1강을 더 찍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나오는 재료들까지 합치면 장원 공략을 끝낸 후엔 명줄 절단이 +5강이 되어 있으리라.

“뭐야 대장……. 왜 그걸로 강화할 것처럼 말하는 건데……?”

“……설마 그 여신, 3강 이후로도 강화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너무 티내면서 말했나.

조각을 챙기는 걸 본 안티오페는 내게 의혹을 품었고, 옆에서 듣고 있던 크림힐트도 날카롭게 질문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크림? 그 여신이라니?”

“설마 여신 중에 3강 이후 단계를 성공할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있다는 거야……?”

브릴린트가 언급되자마자 안티오페와 카시아는 아연실색한 눈빛으로 나와 크림힐트를 번갈아 봤다.

아버지 일 때문에 심경이 복잡한 니아, 제이드까지 신경을 쏟을 정도니 3강을 뚫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궁금한 건 던전 깨고 물어봐. 열심히 하면 알려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이상 잡담을 이어가는 건 좋지 않기에 나는 답변을 다음으로 미뤘다.

어쨌든 조각이 3개 떨어져 있는 구간은 지하 감옥 전체를 통틀어서 한 곳밖에 없다.

결정 조각으로 인해 이 앞의 환경과 몹 배치를 파악했다.

동시에 긴 터널이 안전지대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일행들에게 이야기했다.

“지하 감옥은 미로처럼 복잡해. 적들의 수는 적지만 그만큼 위험한 적들이 많아. 함정도 잔뜩 있고.”

“위험한 적이라면 어떤 거?”

진지한 이야기가 나오자 동료들도 강화 보단 당장의 일을 걱정하게 됐다.

안티오페의 물음에 나는 이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참 싫은 기억이다.

지하 감옥을 떠올리니 꼴사납게 죽은 기억 밖에 나지 않았다.

인내하는 자의 신전처럼 1회차 시절에 많은 고통을 준 지역이다.

“여기 적들은 기본적으로 은폐 능력을 가지고 있어. 육안으론 잘 안 보여서 기습해오면 곤란해져.”

“에이, 그 정도면 별 거 아니네. 그런 놈들이야 어느 던전에나 있잖아?”

내 설명에 안티오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뒷머리에 깍지를 끼며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반쯤 수긍했다.

“그래, 그런데 문제는 그놈들이 전부 저주를 건다는 거야.”

“저주……? 새 인간들처럼?”

“어, 그놈들만큼 위험하지는 않은데 골치 아픈 건 똑같아.”

저주는 비단 결정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대 생명력을 서서히 감소시키는 저주, 받는 피해를 증가시키는 저주 등 다양한 형태의 저주가 존재한다.

지하 감옥에서 나오는 놈들은 후자다.

한 대 맞을 때마다 받는 피해가 10퍼센트씩 증가하는데, 이게 10 스택이 되면 다음 받는 피해는 무조건 즉사 피해가 된다.

바로 즉사시키는 결정화 보다야 덜 위험하다지만 어떤 의미론 더욱 성가신 능력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오는 몹들이 워낙 데미지가 세다 보니 5 스택 정도만 쌓여도 나랑 원딜들은 충분히 원킬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아테나의 출생에 관한 건 제 창작입니다. 원전 그대로 쓰려니까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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