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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89화 (18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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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의 마녀

과연 성욕의 아이콘이자 그리스 신화 희대의 강간마 아니랄까봐 가르치는 것도 참 가관이다.

기원전쟁에서 참 잘 죽었구나 생각하며 헤카테에게 말했다.

“여신님…… 제우스님한테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사실이 아니라고요.”

“응? 그러면 장성한 남녀가 섹스하는 게 당연하지 않단 말이냐? 제우스는 분명 여자의 구멍을 이렇게 벌려서 자지라는 걸 이렇게 넣는다고…….”

“아니, 그 행위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닌데 첫 만남부터 그러진 않는단 거죠!”

급기야 헤카테는 왼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그 안에 검지를 넣는 시늉을 했다.

저것도 분명 제우스가 가르친 거겠지.

다시금 그 변태 새끼에게 치를 떨게 됐다.

순수한 눈빛으로 그리 말하는 헤카테에게 나는 몇 분에 걸쳐서 정상적인 성지식을 주입시켰다.

섹스는 사랑하는 남녀끼리 하는 거라느니, 함부로 하면 아이가 생겨서 곤란해지니까 신중해야한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하다 보니까 현자 타임이 오지게 왔다.

여신님이 단둘이 대화하자고 해서 남았더니 어느새 성교육을 하게 됐다.

새삼 나나를 미리 올려 보낸 게 참 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이 있었다면 이 대화는 더욱더 광기로 물들었을 것이다.

“잘 들으세요, 섹스든 자지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시면 안 돼요. 엄청 부끄러운 거라고요, 알겠죠?”

“그러면 보지는? 내거니까 문제없지 않니?”

“본인 거니까 더 부끄러워해야죠!”

진 빠지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헤카테의 사고방식에는 별 다른 개선이 없었다.

부끄러워하는 기미는커녕 오히려 치맛자락을 올리며 본인의 보지를 훤히 보여줬다.

그야 그렇겠지.

나는 고작 몇 분 동안 설명한 것에 반해 제우스 그 변태 새끼는 며칠, 아니 몇 년에 걸쳐서 세뇌시켜놨을 테니까.

그렇게 세뇌시켜서 대체 무슨 짓을 하려 했던 걸까.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씨발.

“흠, 섹스라는 건 역시 흥미롭구나. 이렇게 즐거운 걸 이제야 할 수 있게 되다니. 인생 절반 손해 봤어.”

내 이야기가 재밌는지 헤카테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문득 궁금증이 도졌다.

“원래는 못했다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모습은 너희들과 많이 달랐단다. 세 개의 몸이 하나로 합쳐진 것 같은 모습이었지. 몸체도 청동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세 개의 몸이 붙어 있는 청동여신이라.

제우스가 왜 그녀를 겁탈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제우스 그 새끼, 헤카테 보고 불가능이라 말하면서 나중을 기약했을 거다.

언젠가 그녀가 정상적인 모습이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리라.

그 다음엔 다른 여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거리낌 없이 마수를 뻗었겠지.

이 그릇된 성지식들은 전부 그것을 위한 밑 작업이었고.

역시 제우스는 죽는 게 답이었다. DLC 영향 받았다고 부활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아, 아무튼 성교육은 여기까지 하고요. 저는 왜 남기신 거예요?”

몇 번이나 거듭 설명했음에도 통하질 않자 나는 본제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밤이 새도록 이야기해봤자 변하는 게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상식을 고치려면 차차 시간을 들여야겠지.

“아아, 미안하구나. 섹스 이야기가 생각보다 재밌어서 깜빡 잊고 말았단다.”

“재, 재밌으셨다니 다행이네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아 그래.”

뒤늦게 원래 주제로 돌아온 헤카테는 생각을 정리한 뒤 이야기를 진행했다.

“너한테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단다. 제안할 것도 있고.”

“확인이라뇨?”

“제대로 된 계승자를 보는 게 무려 10년만이란다. 게다가 솔레이온의 권능까지 직접적으로 계승한 계승자라니,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하지 않겠니.”

내 질문에 헤카테는 감명 깊은 어조로 대답했다.

마치 나와의 만남 자체를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뭐, 이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신들에게 있어서 황혼이 다가오는 현 상황은 결코 좋게 볼 수 없다.

조금만 권능을 사용해도 바로 무리가 오며 자칫하다간 다른 신들처럼 재앙신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언제 이성 잃은 괴물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를 끝낼 수 있는 구원자가 나타났으니 기쁠 만도 하리라.

물론 헤카테가 즐거워하는 이유는 비단 그것뿐만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솔레이온의 힘은 마신들이 지키는 중이라 들었다. 평범한 인간은 물론 여느 영웅들도 범접하기 힘든 존재인데 너는 그들을 어찌 쓰러뜨린 거니?”

역시 제일 처음 나오는 질문은 그건가.

헤카테 정도 되는 여신이라면 마신들에 관해서도 아주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말이다.

내가 조우한 발람과 세에레는 전성기 때보다 훨씬 약해진 버전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72 마신의 일원이다.

헤카테 입장에선 팬티 한 장 걸친 남자가 어떻게 그들을 쓰러뜨렸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냥 전력을 다해 싸웠습니다. 그놈들이 도발해서 더 열심히 싸울 수 있었고요.”

헤카테의 질문에 나는 딱히 얼버무리지 않고 대답했다.

비석을 부숴서 놈들의 힘을 가로챘다거나, 기사님이 떨구고 간 리본을 활용했다거나 하는 세부적인 내용이 있으나 거기까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헤카테는 내가 마신들을 쓰러뜨렸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하고 있었다.

관상이라도 본 건지 알게 모르게 나를 구원자의 재목이라고 인정한 것이었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헤카테는 웃음기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구나, 마신을 쓰러뜨렸을 정도니 네 의지도 그만큼 강했겠지. 네가 그 문양에 어울리는 아이라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구나.”

대체 뭘 보고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넘어갔다.

여기서 걸고 넘어져봤자 좋은 건 없으니 말이다.

나나의 변태성도 꿰뚫어본 여신님이니까 나에 관해서도 쉽게 알아봤겠지.

거기까지 말한 헤카테는 어딘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을 감싸 쥐면서 말했다.

“난 그 힘을 더욱 키워줄 수 있단다, 아가야. 네 힘을 내게 맡겨보지 않겠니?”

갑작스러운 스킨 쉽에 잠시 당황했으나 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기다리던 말이다. 발람과 세에레를 쓰러뜨린 후로 참 오래도 지났다.

그동안 내가 다룰 수 있었던 마신의 힘은 고작 왼손을 마신화 하는 것뿐이었다.

허나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내가 그토록 찾던 마신화 관련 NPC는 다름 아닌 헤카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녀의 제안을 승낙하면 그동안 잠겨 있었던 마신들의 진정한 능력을 해금할 수 있게 될 거다.

“여신님에게 맡기면 어떻게 되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나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헤카테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손등을 어루만졌다.

“마신들의 힘을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단다. 혹시 전에 쓰러뜨린 마신들의 이코르, 아직 가지고 있니?”

“아, 네. 지금 꺼낼까요?”

“그래주렴. 넥타르도 함께 꺼내주면 좋겠구나.”

벨트를 가리키며 말하는 헤카테.

그녀는 벨트 주머니 안에 넥타르가 있다는 걸 보지도 않고 눈치 챘다.

헤카테의 요구에 나는 곧장 응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희귀한 이코르를 내놓으라는 요구에 주저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가 헤카테라면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다.

물론 게임 세계에서 너무나 많은 변수를 겪었기에 경계심은 늦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메인 스토리와 다른 점이 보이면 다시 빼앗을 생각이었다.

“여기요.”

“호오, 과연 마신의 이코르는 다르구나. 불과 얼음의 기운이 담긴 이코르라. 그렇다면 공포왕과 귀공자의 것이겠군.”

그렇게 발람과 세에레의 이코르를 건네주자 헤카테는 그것을 살포시 쥐며 내 손등 위로 가져갔다.

거기에 더해 넥타르 병을 열어 손등에 쪼르르 따랐다.

화르륵!

직후, 금색으로 빛나던 이코르가 연보라색으로 바뀌었다.

연보라색의 이코르는 불붙은 기름처럼 보라색 불꽃을 뿜어냈다.

이를 기점으로 불과 얼음의 이코르 또한 서서히 내 손안으로 스며들어갔다.

마치 종이 위에 물감이 스며드는 것 같은 광경.

그 과정이 끝나자 나는 전신에 무언가가 퍼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몸 곳곳에 가득 차올랐다.

그와 동시에 나는 썩 달갑지 않은 기시감을 느꼈다.

이 느낌, 수정쐐기를 몸에 박아 넣었을 때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와 같은 끔찍한 고통은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버쩍 드는 감각에 몸을 떨길 잠시, 내 눈앞에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몸 안에 잠들어 있던 힘이 눈을 뜬다.]

[그대는 새로운 힘을 손에 넣었다. 마신화 스킬을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공포왕 발람의 마신화 스킬을 습득했다.]

[기원의 귀공자 세에레의 마신화 스킬을 습득했다.]

[완전 마신화를 습득했다.]

연달아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흘렸다.

비로소 여명의 지배자 루트를 탄 덕을 보게 됐다.

마신화 스킬이야 말로 여명 루트의 알파이자 오메가.

여명 루트를 탄 캐릭터가 그렇지 않은 캐릭터보다 훨씬 더 강한 이유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기존의 메시지가 사라지고 그토록 고대한 마신화 스킬들이 상태창 형태로 나타났다.

파열

액티브

요구 스탯: 없음

비용: 마신화 게이지 3

사용 조건: 지배자의 자격 습득

습득 방법: 발람과 세에레 처치 후 헤카테와 대화하는 것으로 자동 습득

효과: 화염의 마신, 발람의 힘을 왼팔에 두른다. 마신화한 왼팔을 휘둘러 적을 붙잡고 폭발과 함께 내동댕이친다. 스킬이 끝날 때까지 슈퍼 아머와 모든 속성 저항 +50퍼센트를 얻으며 붙잡힌 적은 +300퍼센트의 화염 피해를 받는다. 방어 중인 적에게 사용하면 방어를 무너뜨리고 50퍼센트의 추가 피해를 준다.

혹한의 비수

액티브

요구 스탯: 없음

비용: 마신화 게이지 1

사용 조건: 지배자의 자격 습득

습득 방법: 발람과 세에레 처치 후 헤카테와 대화하는 것으로 자동 습득

효과: 빙결의 마신, 세에레의 힘을 왼팔에 두른다. 마신화한 왼팔을 휘둘러 전방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비수를 던진다. 비수는 최대 50미터까지 날아가며 적에게 +100퍼센트의 관통, 빙결 피해를 주고 30퍼센트의 확률로 동결을 부여한다.

완전 마신화

액티브

요구 스탯: 없음

비용: 마신화 게이지 15

사용 조건: 새벽의 불씨 해금

습득 방법: 발람과 세에레 처치 후 헤카테와 대화하는 것으로 자동 습득

효과: 몸 안에 내재된 마신들의 힘을 일깨워 일시적으로 마신의 형상을 갖춘다.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으며 결정타로 적을 처치할 때마다 재사용 시간이 감소한다. 마신화 상태에선 모든 능력치가 2배가 되며 마신화 게이지를 소모하지 않고도 마신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마신화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스킬들이 해방되고 기존의 마신화 스킬들이 강화된다. 한 번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과연 진 엔딩 루트 전용 스킬 아니랄까봐 하나 같이 고성능이었다.

적의 방어를 무력화시키는 파열과 탁월한 견제 능력을 갖춘 혹한의 비수. 각성 스킬이라고 볼 수 있는 완전 마신화까지.

전부 여태껏 배운 스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장 파열만 있어도 나는 그토록 성가신 맹금의 기사를 단숨에 찢어발길 수 있다.

놈이 가드를 올리는 순간 가드 브레이크와 추가 피해 효과를 가진 파열을 사용하여 오히려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마신화 스킬들은 기력이나 마력이 아닌 마신화 게이지라는 고유 자원을 소모한다.

능력치를 함께 확인해보니 게임에서 그랬듯 마신화 게이지가 새로 생겼다.

마신화 게이지의 최대치는 15로 결정타로 적을 처치할 때마다 하나씩 회복된다.

나처럼 패링을 위주로 싸울 경우 별도의 회복 아이템 없이 이론상 무한정 마신화 스킬을 쓸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헤카테와 만나면 마신화 게이지를 회복시켜주는 아이템도 해금된다.

상대적으로 스킬 사용이 제약되었던 기존과 다르게 마음껏 강력한 스킬들을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다.

괜히 마신화 빌드가 다른 빌드 보다 몇 배나 더 강하다는 게 아니다.

마신화 스킬의 해금 조건을 인내하는 자의 신전 클리어로 정한 것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랄 맞은 던전을 조건으로 내건 만큼 보상 또한 확실한 것이다.

“느껴지니? 그게 바로 여명의 계승자의 진정한 힘이란다. 너는 이제 모든 마신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능을 손에 넣은 거야.”

한참 뽕맛에 취해있을 때였다.

헤카테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해줬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것이 마치 손주에게 생일 선물 주는 할머니 같았다.

아니, 그래도 외모는 다른 여신님들만큼 훌륭한 분인데 할머니라는 비유는 너무한가.

어찌되었든 나는 왼손을 꽈악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아요. 몸 안에서 신기한 힘도 느껴지고요.”

“마신들의 힘이 여명의 힘과 합쳐진 거란다. 지금은 익숙하지 않아도 곧 적응되겠지.”

확실히 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마치 서로 다른 온도의 피가 몸 안에서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 묘한 감각이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뭐, 헤카테 말처럼 금방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헤카테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또 줄게 있단다. 잠시만 기다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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