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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의 마녀
* * *
붉게 물들었던 하늘은 어느덧 쪽빛을 띄며 점점 어두워져갔다.
길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들려온 시끄러운 새 울음소리로 점점 잦아들었다.
밤이 되면서 주행성 잡몹들이 모두 수면 상태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로써 대부분의 몬스터들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게 됐지만 꼭 편해진 것만은 아니었다.
밤은 잡몹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한 정예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흐끼이이이! 흐끼기기기긱!!]
거리를 지나던 도중 온몸에 눈알이 달린 거대한 새가 기괴한 걸음걸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놈의 이름은 공포새.
이름 그대로 신생대에 실존했던 고생물, 공포새를 모티브로 한 몬스터로 거대한 이족 보행 조류다.
키만 거의 5미터는 될 법했고 부리는 무슨 칼이라도 붙여 놓은 것처럼 날카로웠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무섭게 생겼는데, 이놈은 실존했던 공포새 보다도 훨씬 괴악한 외모를 가졌다.
날개와 목, 머리 등을 가리지 않고 수십 개의 눈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몸 곳곳을 자세히 보면 사람의 팔 같은 게 기형적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놈이 결코 자연적인 생물이 아닌 저주의 집합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여기 몹들은 진짜 하나 같이 좆같네요…….”
모퉁이 너머로 그 모습을 본 나나는 질색하면서 이야기했다.
새 인간, 인면조에 이어서 우리들의 SAN치는 점점 바닥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가디스 던전에 멘탈 게이지가 있었다면 우리들은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으리라.
“진짜 상대하기도 싫게 생겼어…….”
“걱정하지 마, 저놈은 가급적 상대 안 할 거니까.”
몸서리치는 니아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러자 안티오페가 분개하며 말했다.
“왜 대장……! 대장은 그 갑옷 입은 자식도 단칼에 죽였잖아……! 저런 놈쯤이야 간단하지 않아……?!”
안티오페는 내 결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호전적인 아마조네스에게 전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성한 의식이다.
전투에서 도망치는 것은 스스로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임과 동시에 신성한 의식을 등지는 불경한 행위이기도 하다.
안티오페 역시 이러한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내게 반발한 것이리라.
승산이 없다면 모를까,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도 그러니까 더욱 불만스럽겠지.
절로 커지는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줄이는 안티오페. 나는 그녀를 보며 차분히 설명했다.
“들어봐, 저놈하고 싸우는 건 우리한테 아무런 득도 안 돼. 손해가 훨씬 크다고.”
공포새는 장원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까다로운 몬스터다.
몸 곳곳에 눈이 붙어서 그런지 기습이 불가능하며 기형적인 신체로 인해 사각마저 없다.
또 이동 속도는 지나치게 빠르지, 저주까지 걸지, 거기에 강인도도 미친 듯이 높다.
여덟 명이서 덤벼도 쉽게 잡기는 힘들 거다.
그토록 어려운 몬스터인데 주는 거라곤 고작 이코르 하나뿐이다.
조금 전에 잡았던 맹금의 기사가 이코르는 물론 방패랑 검까지 줬던 걸 생각하면 인색하기 그지없다.
애당초 길을 막고 있는 것도, 다른 유용한 아이템을 주는 것도 아니니 잡을 필요는 더더욱 없어진다.
“그런 거라면 상대할 이유가 없겠네. 돈도 안 되는데 죽을 위험만 크다니. 으으.”
“다들 많이 지치기도 했고…… 나도 가급적 전투는 피하고 싶어.”
내 설명을 들은 제이드와 니아가 차례차례 의견을 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눈빛을 보내자 안티오페 역시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쳇…… 알겠어. 나도 도끼 날 좀 갈아야 하니까.”
그녀는 자신의 양손 도끼를 내려다보며 내 의견에 수긍했다.
기사와의 전투에서 안티오페의 도끼는 내구도가 많이 깎여 나갔다.
놈의 단단한 날개를 타격하고, 도끼를 이용해 방어하기도 했으니 내구도가 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당장 부서질 정도는 아니지만 잡몹도 아니고 정예와 싸움을 하려면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리라.
그렇게 의견을 모은 우리는 공포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놈은 우리가 지나가는 내내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다른 골목으로 몰래 숨어드니까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었다.
기습이 안 될 뿐이지 인식 반경 자체는 좁은 놈이다. 귀도 어둡고 말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음 루트로 이동하려 할 때였다.
펄럭! 펄럭!
“……?”
저물어 가는 해를 등지며 무언가가 지상에 착지했다.
잠시 멈춰서 확인해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맹금의 기사였다.
하나도 아니고 세 마리나 됐다.
검과 창, 한손 도끼 등 다양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공포새와 대치했다.
그 광경을 보며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공포새와 마주한 기사들은 누가 봐도 싸우러 온 기색이었다.
다른 곳에서라면 몬스터들끼리 싸우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장원 안에서는 다르다.
장원 내부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은 아테나의 권속이다.
그 말은 전부 같은 편이라는 뜻이며 영역 다툼이나 먹이 경쟁 같은 걸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키아아아악!]
[카아아아악!!]
[흐끼기기기긱!!]
내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기사들이 일제히 공포새에게 달려들었다.
놈들은 대형 방패 같은 날개로 몸을 감싸며 빠르게 돌진했다.
그 후에는 가차 없이 무기를 휘둘렀고, 난데없이 공격당한 공포새는 서둘러 반격을 가했다.
같은 장원 몬스터들끼리 피 튀기는 살육전을 발이기 시작한 것이다.
“쟤네들 왜 저래……? 같은 편 아니었어?”
“내분이라도 일어났나……?”
놈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일행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물음은 자연스레 내게로 향했으나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저놈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싸우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끼하아아아악!!]
푸슈우우욱!
황당한 심정으로 전투를 지켜보길 잠시.
창을 든 기사가 공포새의 목을 꿰뚫었다.
놈은 피를 분수처럼 뿜으면서 끝내 쓰러졌고 기사들은 확인 사살을 하듯 공포새를 잘게 썰어댔다.
3대 1의 싸움이어서 결판이 빨리 났지만 기사 측도 온전한 승리를 거두진 못했다.
3명의 기사 모두 몸 곳곳이 결정화 됐으며 한 마리는 팔과 날개가 찢겨져 나갔다.
공포새 특유의 저주 능력과 높은 공격력이 큰 부상을 안겨준 것이었다.
처참하게 당한 기사를 보며 심란한 기분을 느낄 때였다.
“끔찍하구만…… 옛날엔 사람이었어도 지금은 이성 없는 괴물들이란 건가.”
“글쎄요……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혀를 내두르며 말하는 제이드에게 유미가 의아한 어조로 얘기했다.
그러자 제이드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닌 것 같다니? 저놈들은 원래 인간이 아니었다는 거야?”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것 같아요. 저 기사들한테선 영혼이 안 보이거든요……. 마치 속이 빈 인형처럼…….”
인형?
유미의 말을 듣고 머릿속에서 뭔가 스쳐지나갔다.
아까 만났던 기사도 그렇고, 지금 튀어나온 놈들도 그렇고 뭔가 등장이 좀 작위적이다.
누군가가 조종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새로 만들어놓은 것처럼 말이다.
꺼림칙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우리들이 숨죽이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문득 기사 중 하나가 우리 쪽을 바라봤다.
아직 우리가 있다는 걸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의심하는 기색이었던 것이다.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움직일까……?”
“그래요……! 여기서 쟤네들이랑 싸웠다간 진짜 좆될 수도 있잖아요……!”
그 모습을 본 카시아와 나나가 조급히 말했다.
내가 있어도 기사 세 마리는 확실히 빡세다.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 * *
기사들과 조우한 이후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마침내 안전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전지대는 본성 아래쪽에 위치한 삼거리였다.
본성 주위는 아테르니아 전역을 감싼 것보단 조금 작은 성문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아래엔 다소 멀쩡한 건물이 놓여 있었고 우리가 찾던 목적지도 그 중 하나였다.
“여기가 안전지대야?”
목적지에 도착한 니아가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다른 일행들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무기를 움켜쥐었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도 몇 번인가 전투가 있었다.
전부 인면조나 새 인간처럼 약한 몬스터들이었지만 놈들을 상대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내 기력 고갈과 크림힐트의 마력 부족으로 마지막 전투는 상당히 고됐었다.
명도참으로 적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지도, 유용한 마법을 발동시키지도 못해서 전투 난이도가 급상승했던 것이다.
기력 포션이 남아 있긴 했으나 본성에서도 사용해야 했기에 최대한 아끼고 봤다.
그래서 일행은 잡몹들을 일일이 백병전으로 해치울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지원군까지 날아와서 더욱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다.
그 증거로 일행들은 하나 같이 기진맥진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목 존나 아파요…… 빨리 쉬고 싶어요…… 켁, 켁!”
건물을 본 나나는 목을 어루만지면서 힘겹게 말했다.
그녀는 전투하는 내내 영창을 반복해서 목이 무척 아플 것이다.
한 번의 전투만 해도 회복이니 저주 해제니, 찬광이니 온갖 종류의 주문을 사용한 탓에 꽤나 피곤하리라.
같은 맥락으로 유미도, 크림힐트도 처음 장원에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초췌해져 있었다.
슬슬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해보였다.
“물마시면서 조금만 참아. 이제 곧 침대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거야.”
“네 다키니이임…….”
동료들의 안색을 훑은 뒤 나는 빠르게 집 쪽으로 향했다.
삼거리 앞에 있는 집은 상당히 특이한 외관이었다.
다른 건물들은 전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 집만 유독 자연적, 혹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마치 거대한 나무뿌리가 집의 형상을 취한 것 같았던 것이다.
새삼 신기한 느낌을 받으며 문을 두들겼다.
똑똑똑.
“계세요?”
“응……?”
“어…….”
가벼운 노크 후에 질문을 건네자 일행들이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폐허로 가득한 장원에서 예의를 차리는 게 이상해보일 만도 하다.
“뭐 하는 거야 대장? 노크를 왜 해?”
“그래 다키. 아무도 없을 텐데 빨리 들어가기나…….”
안티오페가 의문을 표하고 제이드가 독촉할 무렵이었다.
딸랑.
“어, 어라……?”
맑은 방울 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걸 본 일행들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고, 이어서 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렴.”
고풍스러운 어투가 느껴지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것이었는데 말투는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서나 느껴볼 법한 것이었다.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 때문인지 일행들은 더욱 경계했다.
“뭐, 뭐야? 집 주인이 있었어?”
“몬스터 아니야……?”
“위, 위험한 기척은 안 느껴지는데요…….”
너도 나도 경계할 때 내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 구조는 무척 신기했다.
여기저기 놓인 화단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온갖 종류의 재료를 담은 플라스크가 찬장에 늘어져 있었다.
얼핏 보면 식물원 같기도, 마녀의 집 같기도 했다.
그곳 한 가운데에는 특이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검은색을 기조로 한 드레스는 굉장히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가슴이 상당히 파인데다가 어깨까지 드러낸 오픈 숄더 디자인이었다.
그것만 해도 머리만한 가슴이 상당 부분 드러나 무척 야했지만 더 야한 점은 옷의 재질이 크림힐트의 망토처럼 시스루라는 것이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개변태 같은 옷이었으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다.
슬링샷이라도 걸친 크림힐트와 달리 이쪽 여성분은 그마저도 걸치지 않았다.
노브라에 노팬티.
그나마 옷이 검은색이라 훤히 보이진 않았지만 종종 유두와 보지털이 눈에 들어왔다.
원작에선 저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지는 않았는데 역시나 게임 세계. 일말의 필터링도 없다.
그 점에 내심 감탄했다.
“우, 우와아…….”
“크림 보다 훨씬 야하잖아……?”
“후욱, 후우욱……!”
다른 일행들도 여성의 충격적이기 그지없는 패션에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다.
나나는 두말할 것 없이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나도 여성의 차림에 한 차례 넋을 잃었으나 나나의 거친 숨소리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예의를 차리면서 여성에게 이야기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지나가던 여행잔데 괜찮다면 하룻밤만 묵어갈 수 없겠습니까?”
“흐음.”
지금까지 계속 책만 바라보고 있던 여성이었으나 내가 말을 건네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여성의 외관이 좀 더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밝은 회색의 머리를 트윈테일로 묶었고 눈은 붉은색과 은색으로 이루어진 오드아이였다.
특이한 점은 머리를 묶을 때 사용한 게 여자 얼굴 모양을 한 가면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얼굴만 세 개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시 봐도 특이한 행색을 한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다키에게 말했다.
“지나가는 여행자라니.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아가야.”
“네?”
“이런 곳에 지나가는 여행자 같은 게 있겠니? 의미 없는 거짓말은 하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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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효옷! 트윈테일 너무 좋다구!
는 헛소리고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