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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의 마녀
[카아아아악!!]
쐐애액!!
다음 순간 맹금의 기사가 연이어 공격을 시도했다.
이번에 가한 건 중단 찌르기.
방어 패링을 하느라 빈틈이 생긴 중단을 날카롭게 노려왔다.
사냥감을 붙잡는 맹금류를 방불케 하는 공격이었으나 놈은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다.
중단을 내준 건 전부 내 계획이었던 것이다.
“너 이 새끼 잘 걸렸다!”
채애앵!!
[……?!]
놈이 공격하는 순간에 맞춰서 중단 자세를 취했다.
그 후 스킬을 발동하여 명줄 절단으로 놈의 검을 휘감았다.
정교한 움직임이 손에 쥔 팔카타를 놓치게 만들었고 팔카타는 반동에 의해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방금 전에 사용한 스킬은 기교 스킬의 저력 중 하나이자 PVP 사기 스킬 중 하나인 무장 해제.
말 그대로 적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스킬이다.
무장 해제
액티브
요구 스탯: 기교 25
비용: 80 기력
사용 조건: 근접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중단 자세를 취한다. 적이 공격하려는 순간에 다시 한 번 스킬을 발동하면 적의 공격을 상쇄하고 무장을 해제시킨다. 오직 무기를 든 적에게만 사용할 수 있으며 높은 정확성이 요구된다. 저지력이 60 이상인 적에게는 효과가 발동하지 않는다.
원래는 판정이 까다로워 어지간해선 성공하기 힘든 스킬이다.
하지만 놈이 무작정 중단을 노려준 덕분에 깔끔하게 성공할 수 있었다.
[키하아!!]
펄럭! 펄럭!!
무기를 놓친 맹금의 기사는 재빨리 날개를 펼쳤다.
기동성을 살려서 무기를 회수할 심산이리라.
아쉽게도 그렇게는 안 될 거다.
나는 놈이 날아오르자마자 마지막으로 배운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다리에 힘이 실렸다.
한껏 추진력을 얻은 직후, 그대로 날아오른 기사를 추격했다.
“쯔아아아앗!!”
온힘을 다해 점프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기사를 따라잡았다.
비단 빠르게 뛰어오른 정도가 아니었다.
내 몸은 순간적으로 사라진 뒤 기사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마치 스타일리쉬 액션 게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점멸 이동.
이를 본 기사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
촤아악!
목전까지 육박한 나를 쳐내기 위해 날개를 휘두르는 기사.
방패처럼 두꺼운 날개가 날 덮치려는 그 때, 나는 놈의 품으로 파고들어 왼팔을 휘둘렀다.
어느덧 왼팔은 마신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푸후욱!
[케헤에에엑!!]
백색의 갑옷을 뚫고 왼팔이 놈의 흉부에 처박혔다.
괴로워하며 몸부림친 기사였지만 무의미한 발버둥에 그쳤다.
놈이 뭘 해보기도 전에 왼손에 잡힌 것을 거칠게 잡아 뜯었기 때문이다.
푸화아아악!!
검은색 피가 터져 나오며 심장이 손 안에서 두근거렸다.
어쩐지 감촉이 인상적이더라니 놈의 심장을 붙잡은 모양이다.
“흐읍!”
퍼허억!
기사의 심장을 쥐어 터뜨린 후 발길질을 날렸다.
서서히 추락하던 기사는 내 발길질에 의하여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쿠우웅!!
놈은 끝내 굉음과 함께 지면에 처박혔고 나 또한 한 박자 늦게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결정타에 직격 당했으니 살아있을 가능성은 낮지만 나는 놈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 놨다.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목덜미에 칼을 박아 넣은 것이었다.
푸후욱!!
썩 좋지 않은 감촉과 함께 명줄 절단이 놈의 목을 관통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기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결정타를 맞은 순간 완전히 숨이 멎은 듯했다.
“우, 우와아아아……! 대장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날개도 없이 하늘을 날았잖아!”
확인 사살까지 끝마치고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낼 때였다.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안티오테가 격양된 목소리로 질문을 퍼부었다.
그녀는 아이돌 그룹이라도 본 여학생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껏 들뜬 표정은 은연중에 나를 향해 호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티오페의 질문에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별 거 아니야. 그냥 기력 써서 받아서 쫓아간 거지.”
“기력 좀 쓴다고 그런 짓이 가능해?”
“안 될 건 없어. 제대로 사용하려면 기술이 좀 필요하지만.”
방금 전에 사용한 스킬은 기교 스킬의 꽃이자 공중 기교 빌드의 핵심인 대공 추격이란 스킬이다.
대공 추격
패시브
요구 스탯: 기교 27
비용: 없음
사용 조건: 근접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에어본시킨 적에게도 결정타를 가할 수 있게 된다. 적이 에어본 됐을 때 결정타를 사용하면 순간 이동으로 빠르게 추격하여 +500퍼센트의 피해를 준다.
본래라면 공격 패링에 성공해야만 쓸 수 있는 결정타를 에어본 시킨 적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스킬.
효과만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강력한 스킬이다.
결정타의 데미지가 높은 것도 있지만 에어본이 상대적으로 쉽게 발동시킬 수 있기도 하고, 기교 빌드엔 에어본 관련 스킬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에겐 에어본 시킨 적을 공격할 때 무조건 치명타가 발생하는 장신구, 맹금의 반지도 있다.
이 둘을 조합하면 5천 이상의 데미지도 가뿐히 뽑아낼 수 있다.
장원의 몬스터들이 저공비행할 때는 에어본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하니 그야말로 장원 몬스터들을 위한 결전기인 것이다.
물론 안티오페에겐 이렇게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메타적인 발언이 너무 많아서 말해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안티오페는 스킬 자체엔 그렇게까지 관심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나를 칭찬하기 바빴다.
스킬보다는 내가 보여준 무용에 관심이 더 많은 듯했다.
“진짜 멋있었어, 대장! 그렇게 싸우는 사람은 몇 명 못 봤다구!”
“오버하긴……. 몹 하나 잡은 거 가지고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몹 하나라니! 다섯 명이 덤벼도 못 잡은 놈을 대장 혼자 잡았잖아! 완전 우리 마스터 보는 줄 알았다니까!”
겸손을 가장하며 반박하니 안티오페는 더욱 열성적으로 이야기했다.
겉으론 아닌 척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괜히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고 안티오페의 관심을 듬뿍 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뭐 맹금의 기사를 순식간에 잡은 건 게임 세계 기준으론 굉장한 일이 맞겠지만.
안티오페의 관심도 비단 립 서비스는 아닌 거 같고 말이다.
‘그나저나 노르니르의 마스터라.’
안티오페 말을 듣고 그쪽 마스터에 대해서 조금 흥미를 가졌다.
지배신이 운영하는 클랜의 최강자.
그 무력은 어지간한 모험가들과는 격이 다를 것이다.
PVP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런 사람과 맞붙어보면 내가 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되는지 판가름할 수 있으리라.
생각만 해도 기대됐으나 곧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렸다.
지금은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기사의 기습으로 동료들이 상당히 다쳤다.
나는 파티장으로서 그들의 상태를 살필 필요가 있다.
검을 집어넣으며 안티오페에게 말했다.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데 지금은 일단 수습부터 하자. 동료들 챙겨야지.”
“아, 맞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안티오페는 뒤늦게 동료들의 상태를 떠올렸다.
그녀는 허겁지겁 크림힐트와 카시아에게 달려갔는데 그녀들은 이미 나나에게 치료 받고 있는 중이었다.
“어때 사제님?! 두 사람은 괜찮아?!”
허둥지둥 묻는 안티오페에게 나나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어조로 말했다.
“참 빨리도 물어보네요……. 잠깐 기절하긴 했지만 심하게 다치진 않았어요.”
“다행이다아…….”
나나의 말에 안티오페는 안도한 듯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그리곤 울상을 지으면서 두 사람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크림…… 카시아 언니…… 바로 두 사람부터 챙겼어야 했는데…….”
안티오페의 말을 듣고 휴식을 취하던 카시아가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괜찮아, 티오. 저렇게 멋지게 이겼는데 한 눈 파는 것도 당연하지.”
“그, 그런가……? 그렇겠지……?”
“응, 언니라도 그랬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 티오는 우릴 위해서 열심히 싸워줬잖아.”
안티오페의 사과에 카시아는 아쉬워하기는커녕 공감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곤 내 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는데, 안티오페에게 보여준 것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마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발견한 암사자와도 같았다.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내달렸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고 어색하게나마 웃어줬다.
그러자 카시아는 금세 또 표정을 바꾸더니 이번엔 뺨을 발그레 물들였다.
산양뿔의 효과라도 발동된 건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카시아가 저러니까 왠지 모르게 부담됐다.
다른 곳에서 만났던 여자들과 다르게 본격적으로 노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
한편, 호감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두 사람과 다르게 크림힐트는 아무 말 없이 내 쪽을 힐끗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치료가 끝나자 나나에게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료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흥, 고마워하지 마요. 노예도 고쳐 써야 제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크림힐트가 그랬던 것처럼 나나도 냉담한 말을 건네며 그녀의 인사를 되받아쳤다.
아니꼬운 말을 들었음에도 크림힐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볼 일 끝났다는 듯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뿐이었다.
그러한 태도가 나나의 속을 더 긁은 듯했다.
무덤덤하게 등을 돌리는 그녀를 보며 나나는 온갖 성적인 욕설을 퍼부으면서 크림힐트를 도발했다.
두 사람이 사이좋아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던전 공략을 위해서라도 좀 친해지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길 잠시, 이번에는 제이드 쪽을 확인했다.
나나가 제일 먼저 치료해줘서 그런지 그는 거의 완쾌한 상태였다.
기력 회복 차원에서 포션을 마시는 그에게 다가가 적당히 상태를 물었다.
“좀 어때 형? 괜찮아?”
“죽을 맛이지……, 저 새 새끼 칼이 등에 제대로 꽂혔어. 나나 아니었으면 확실하게 죽었을 거야.”
과장하듯 말하는 제이드였으나 결코 엄살은 아니었다.
맹금의 기사의 공격력은 400.
그에 비해 제이드의 생명력은 600 가량이다.
당시 제이드의 상처로 미루어 보아 유미를 감싸다 치명타가 터졌을 확률이 높다.
브릴린트의 방어구가 아니었다면 딱뎀이 떠서 그대로 저 세상 행이었을 것이다.
방어구가 있었다 해도 바로 다음 공격에 죽을 수도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위험천만했던 상황이었던 건 변함없다.
“흑, 흐읏……! 죄송해요 제이드 씨……! 저 때문에 이렇게 다치시고……!”
불평하는 제이드를 보며 유미가 눈물을 훌쩍였다.
자기 때문에 죽을 뻔했으니 보통 미안한 게 아니리라.
유미의 눈물을 본 제이드는 순간 당황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슴을 펴보였다.
“하, 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냥 다키한테 장난친 거니까 걱정하지 마! 사실 별로 아프지도 않았어!”
“아프지도 않기는 무슨……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겠다, 죽겠다 앓는 소리 냈으면서.”
“야 이럴 때는 좀 그렇다고 해주라…….”
허세 부리는 제이드를 니아가 쏘아붙였다.
그 말을 들은 제이드가 곤란한 어투로 말했으나 니아는 아랑곳 않고 그를 힐책했다.
“너 진짜 나나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어. 탱커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무리한 거야?”
확실히 제이드가 한 행동은 무모한 걸 넘어서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유미 보다 좀 높을 뿐이지, 제이드의 방어력도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런 사람이 몸빵을 하다가 빈사까지 갔으니 니아 입장에선 무척 속 상하리라.
“가녀린 여자애가 맞는 것보다야 내가 맞는 게 낫지. 탱커가 아니라도 내가 더 선배잖아?”
꾸중이 이어질 무렵, 제이드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 말이 꽤나 감명 깊었는지 니아는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했다.
“너도 참…….”
과연 장기 연애 커플 아니랄까봐 제이드도 니아와 비슷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첫 만남 때부터 알 수 있듯이 니아는 약자들을 챙기는 의인이다.
니아의 그러한 성향이 제이드에게서도 고스란히 엿보였다.
니아로선 거울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 들 테니 질책하기 어렵겠지.
흐뭇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일행들에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니아 누나 말이 맞는 것 같아. 한 곳에서 있는 건 위험해. 서둘러 이동하자.”
“그래요, 이러고 있다가 또 다른 놈이 오면 좆 되는 거잖아요.”
“아까 그놈하고는 가급적 싸우기 싫은걸……. 내 공격이 하나도 안 먹혔다고.”
내 말에 일행들은 일제히 동의했다.
크림힐트와 카시아의 치료도 다 끝난 터라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었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조속히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맹금의 기사는 본성에서 주로 활동하는 몬스터다.
놈들이 이곳에서 돌아다니는 건 원작 게임과는 너무나 상이한 일이다.
이미 던전 밖에서도 여러 차례 발견된 기사들이기에 이제 와서 이상할 거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달아 꺼림칙한 일들이 발생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연달아 몬스터를 만나는 것도 위험하고 말이다.
특히 맹금의 기사 같은 몬스터들을 여러 마리 마주치면 상당한 난전을 겪게 되리라.
‘정말로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놈이 있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념을 이어가다 보니 기사들의 이상 행동도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 역시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방금 전의 전투로 장원 환경이 게임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파악했다.
더 이상 안일하게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조금 더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일행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