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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85화 (18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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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의 마녀

“다키야 그건…….”

내가 구리 문을 발견할 무렵, 니아도 내 곁으로 와 그것을 확인했다.

놀란 얼굴로 말하는 니아에게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야. 여기로 내려가면 찾는 게 있겠지.”

“꼼꼼히도 숨겨놨네……. 너 아니었으면 못 찾았을 것 같아.”

“그만큼 중요한 걸 숨겨놨으니까.”

니아와 대화하면서 구리 문을 열었다.

문고리가 쇠사슬로 묶여 있었지만 칼로 한 번 내려치니까 쉽게 끊겼다.

고작 녹슨 쇠사슬 따위론 명줄 절단의 데미지를 버텨낼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나나가 중간, 누나가 제일 뒤에서 와. 계단에 문제 있으면 미리 말해줄게.”

“알겠어, 앞장 서.”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선 나무 계단을 타야했다.

원작 게임에선 그냥 삐거덕거리는 소리만 나고 말았지만 게임 세계에선 어찌될 줄 모른다.

현실성을 고려하면 나무가 썩어서 무너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끼긱, 끼이익…….

콰직……!

아니나 다를까 몇몇 계단이 밟는 것만으로도 쉽게 부서졌다.

나나가 밝힌 빛으로 아래쪽을 확인해봤는데 바닥에 침수되어 있었다.

아마 강가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지하실에 찬 것이리라.

나무가 썩은 것도 습기 때문이겠지.

어쨌든 난 위험한 계단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일행들을 이끌었다.

“몹만 안 나오지 던전이 따로 없네.”

짧은 불평과 함께 지하실에 들어섰다.

밖도 참 을씨년스러웠지만 여기는 더 심했다.

가구 위엔 수북이 쌓인 솜처럼 뭉쳐져 있었으며 낡은 농기구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 찬 물도 무릎까지 올라와서 상당히 불쾌했다.

별로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은 아니었기에 서둘러 물건을 찾았다.

“기억대로라면 이 근처일 텐데……. 아.”

반쯤 부서진 가구들을 뒤지길 잠시, 나는 웬 주머니 하나를 발견했다.

올빼미 자수가 들어간 가죽 주머니였는데, 그걸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내가 찾던 아이템이란 것을 말이다.

“그건 또 뭐예요 다키님? 돈주머니?”

“그게 네가 찾던 거야?”

두 사람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돈주머니로 쓰였겠지만 지금 이 안에는 금화 몇 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이 들어 있다.

“맞아, 다른 전리품들하곤 비교도 안 되게 중요한 물건이지.”

“대체 뭐길래 그래?”

“보여줄 테니까 기다려 봐. 눈부실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를 연 직후.

파아앗!

“앗……!”

“크읏……!”

주머니 안에서부터 푸른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순식간에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어찌나 빛이 강한지 순간 눈이 멀어버리는 줄 알았다.

다행히 눈부신 섬광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빛의 근원을 꺼낸 후엔 광량이 차츰 약해져 주위를 은은하게 비추는 선에서 그쳤다.

나나와 니아가 빛 때문에 깜짝 놀랄 때 나는 주머니 속 내용물을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

그것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였다.

마치 아쿠아마린을 깎아 만든 것처럼 청명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의안이네? 되게 예쁘다…….”

“반짝거리는 게 엄청 비싸 보이네요!”

옆에 있던 니아와 나나가 환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푸른색 의안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가공해서 장신구로 만들면 그 어떤 여성이라도 매료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전리품이 아니다.

팔아서 돈을 벌 생각도, 가공해서 장신구로 만들 생각도 없다.

이 의안은 주인에게 돌아가야만 한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의안은 아니야. 사치품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두 사람의 말을 부정하자 나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뭔데요?”

“생긴 게 의안처럼 생겼을 뿐이지, 엄연한 생체 기관이야. 진짜 눈이라고.”

“네에엥……?”

거기까지 말하자 나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봐도 가짜 눈인데 그걸 생체 기관이라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을 거다.

반면 니아는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나나와 달리 이 푸른색 눈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리라.

다음 순간 니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 다키야 설마 이거…….”

니아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이 큰 것이리라. 이 물건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거다.

나는 그녀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테나의 눈이야. 그 여신이 재앙신이 된 이유기도 하고.”

“뭐, 뭐라고요……!”

진실을 말하자 나나까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보석 같은 장기를 가진 존재는 오직 신족뿐이다.

그 중에서도 아테나의 눈은 그 어느 예술품 보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녀의 눈이 여기 있는 건 결코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푸른색 눈, 정확히 ‘푸른색 효안’은 아테나가 지혜의 여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물건임과 동시에 그녀를 파멸로 이끈 물건이기도 하다.

그 점을 떠올릴 때쯤 마침 아이템 설명이 눈앞에 떠올랐다.

푸른색 효안

올빼미 눈의 전신, 아테나의 눈동자. 신들은 인간과 달리 보석과도 같은 신체 기관을 가졌다.

아테나는 이 눈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고 전장을 평정했지만 신뢰했던 백성에 의해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눈이 제 자리를 찾는다면 괴물이 되어버린 여신도 이성을 되찾으리라.

“이 눈을 여신님한테 돌려주면 전부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가요……?”

효안을 바라보던 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의 눈에도 내가 본 것과 같은 설명창이 떴으리라.

그녀의 질문에 나는 반은 긍정하고, 반은 부정했다.

“전부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아니야. 괴물이 된 추종자들까지 인간으로 돌아오진 않아. 그래도 고통에서 해방되긴 하겠지.”

추종자가 된 시점에서 인간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신이 이성을 되찾는 일은 있어도 추종자가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계속 괴물로서 살아가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추종자로 산다는 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사는 거니까.

니아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아테나 여신이라도 돌아오는 게 어디야. 최소한 장원은 저주로부터 해방된다는 소리잖아. 이상 현상도 없어질 테고.”

“맞는 말이네요! 이게 없으면 여신님까지 죽였어야 했는데 훨씬 더 낫죠!”

나나도 니아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다시 내 쪽을 보며 물었다.

“어쨌든 이게 방앗간에 온 이유인 거죠, 다키님?”

“그래, 이것만 얻어도 공략은 반쯤 성공한 거나 다름없어.”

푸른색 효안이야 말로 내가 방앗간을 찾아온 이유다.

더 나아가선 불경한 자의 둥지를 공략한 이유기도 하다.

방앗간은 오직 성벽을 넘어야만 들어올 수 있는 지역이다.

그게 아니면 지하수로로 몰래 숨어들어야 하는데, 그쪽은 방앗간과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것만 있으면 아테나 여신을 구원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도 처치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쉽지 않으나 그럴 만한 가치는 있다.

아테나 여신이 폭유의 미인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챙길 것도 챙겼으니까 그만 올라가자. 다른 사람들 기다리겠어.”

“그래요! 여기 축축하고 곰팡내 오져서 더 있고 싶지 않다구요.”

방앗간에서의 볼 일은 끝냈다.

이제 안전지대로 가서 휴식을 취한 뒤 내일 새벽부터 본성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그리 생각하며 우리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여기 온 이후 처음으로 유의미한 물건을 얻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밖으로 나서려던 순간.

“끄아아아악!!”

“……!”

“……?!”

밖에서 고통어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난데없는 비명에 우리 모두는 등줄기를 빳빳하게 세우며 위쪽을 올려다봤다.

남자 목소리, 거기다가 익숙한 목소리다.

“이 목소리는…….”

“제이드!!”

그것이 제이드의 목소리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 순간 나나의 얼굴에는 불안한 빛이 감돌았고, 니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상을 향해 뛰어나갔다.

나 또한 푸른 효안을 챙겨 넣으며 재빨리 니아를 따라갔다.

“갑자기 웬 비명 소리래요……! 적이라도 온 거 아니에요?!”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올라가보자!”

당황하는 나나를 진정시키고 싶었으나 나 역시 그녀 못지않게 혼란스러웠다.

저 형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여긴 인면조 말고 다른 몬스터가 없을 텐데?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저런 비명이 나올 이유가 없다.

제이드 성격상 장난으로 그러는 걸 수도 있겠지만 저건 절대 장난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불길한 추측이 뒤따랐다.

‘노르니르 클랜이 배신 때린 건가……?’

지금 상황에서 제이드를 위협할 수 있는 건 그 세 사람 뿐.

그렇다면 비명의 원인도 노르니르 클랜일 가능성이 높다.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난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지금 말고도 배신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스쿨드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곳에서 공격을 지시할 리도 없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제이드에게 고통을 안겨줬단 말인가.

의문에 휩싸인 상태로 계단을 올라가던 중이었다.

밖에서 연달아 굉음이 들려왔다.

콰앙!

콰과아아앙!!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짧은 단말마.

그 후엔 격렬히 부딪치는 쇳소리가 잇따랐다.

어떻게 봐도 싸우는 소리였다.

다급한 마음에 속도를 높이자 곧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하게 됐다.

“크으윽! 이 자시익……!!”

[…….]

카각! 카가가가각!

방앗간을 나서자마자 보인 건 분전하고 있는 안티오페였다.

그녀는 양손 도끼를 방패삼아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녀를 공격한 것은 강철과도 같은 하얀 날개를 가진 중무장 기사.

올빼미를 연상케 하는 투구를 쓰고 있었으며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날카로운 팔카타였다.

그 특징적인 모습을 보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행을 공격한 건 장원의 대표적인 정예 몬스터, 맹금의 기사였던 것이다.

“안티오페! 숙여!”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검을 뽑아 들었다.

안티오페에게 경고하는 것과 동시에 명도참을 사용한 것이다.

돌진하는 내 몸과 함께 보랏빛 검기가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대장!”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며 소리치는 안티오페.

그녀는 내 지원에 반색하며 날렵하게 명도참을 피했다.

기사 또한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날개로 몸을 감쌌다. 방어 태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카가앙!

검기와 날개가 부딪치자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로막는 건 뭐든지 베어버릴 기세로 날아간 검기였으나 기사의 날개까진 뚫지 못했다.

놀랄 것도 없다.

척 봐도 단단해 보이는 기사의 날개는 어지간한 공격으론 뚫을 수 없다.

가드 게이지를 무려 5천이나 올려주는 말도 안 되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징그러운 새끼…….”

지금의 내 데미지라면 명도참을 두 번은 날려야 방어를 뚫을 수 있다.

물론 놈도 가만히 맞고만 있지 않을 거다.

방금 전의 방어로 명도참의 위력을 확인했을 테니 다음번엔 적극적으로 회피할 거다.

견고하기 그지없는 방어에 혀를 차며 놈과 대치했다.

그러면서 주위를 살펴 동료들의 상태를 살폈다.

“제이드 씨……! 정신 차리세요, 제이드 씨……!”

“크으읏……!”

“하아, 하아아…….”

제이드의 비명 소리가 들린 것은 불과 몇 초 전.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파티는 반쯤 괴멸해 있었다.

제이드는 흉부에 큰 상처를 입은 채 쓰러져 있었고 크림힐트와 카시아는 만신창이가 된 채 건물 외벽에 처박혀 있었다.

올라오는 도중 들렸던 굉음의 정체는 바로 두 사람이 나가떨어지는 소리였다.

이 자식, 일부러 원거리 딜러들 먼저 노렸다.

유미가 유일하게 멀쩡하긴 했으나 제이드가 감싸준 덕분이리라.

그녀마저 제이드를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어서 사실상 원딜 진영은 무너졌다고 보는 게 맞다.

“나나야 우선 형부터 살려! 니아 누나랑 안티오페는 다른 두 사람 챙겨주고!”

“알겠어요!”

“응……!”

역할을 부여 받은 세 사람은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키아아아악!]

일행들이 움직이자 기사도 날개를 펼쳐 돌진을 시도했다.

놈이 노린 건 나나였다. 지능이 높은 녀석이니 그녀가 힐러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으리라.

기동력을 살려 나나를 추적한 기사였으나 이쪽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어딜 기어 들어와!!”

기사가 나나에게 닿기 직전 지면을 박차 놈과 거리를 좁혔다.

몇 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었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놈의 앞길을 막은 것이었다.

아라크네를 처치하고 얻은 위업으로 배운 신 스킬, 신보의 효과였다.

신보

액티브

요구 스탯: 민첩 13

비용: 기력 50

사용 조건: 중갑 착용 시 효과 미적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최대 5미터의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전진한다. 기존의 행동을 캔슬하고 즉시 발동할 수도 있다.

[……!]

순식간에 육박해온 나를 보며 흠칫 놀라는 맹금의 기사.

놈은 이에 맞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마치 깃털을 뽑아 만든 것 같은 팔카타가 허공을 갈랐다.

놈의 궤도를 읽으며 나 역시 명줄 절단을 휘둘렀다.

내 공격은 놈의 검선과 정확하게 맞닿았고 이후 경쾌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카가아아앙!!

새하얀 보호막이 펼쳐지며 기사의 공격이 상쇄됐다.

공격 패링에 성공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겠지만 놈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내가 대응하는 찰나에 검의 궤도를 바꿔 공격 패링을 차단한 거다.

공격 궤도를 바꿔서 반격을 차단하는 능력이라니.

과연 장원의 몬스터답다. 트롤 같은 호구몹과는 차원이 다르다.

허나 놈이 공격 패링을 막을 거란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놈의 움직임은 내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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