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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80화 (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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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넘어서

카가가가각!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놈들을 머릿속에 떠올리자마자 지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느낀 나는 서둘러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얼른 움직여! 곧 놈들이 올 거야!”

“놈들이라니?! 성벽 위의 놈들은 우리가 자기네 편인 줄 안다며!”

“그건 성벽 위에 있는 놈들이고! 밀밭엔 다른 놈들도 있어!”

콰과과과과과!!

일행들에게 설명한 직후, 땅의 울림이 더욱 강해졌다.

마침내 그것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 밑에서 기어 올라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샤아아아아아!!]

땅 속을 물처럼 해치고 온 그것은 거대한 뱀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뼈만 남은 언데드 뱀이다.

길이는 족히 수십 미터는 될 법했으며 쩍 벌린 입은 내 키보다 컸다.

“저건 또 뭐야?! 뱀?!”

“그냥 뱀이 아니야! 머리 위에 누가 타고 있어!”

모두가 당황하는 와중 제이드는 용케 기수의 존재를 확인했다.

놈의 머리 위에는 웬 갑옷 입은 미라가 고삐를 잡은 채 서 있었다.

이집트풍의 갑옷과 무기를 갖춘 황금빛 전사.

자세히 보니 뼈만 남은 뱀도 평범한 뱀과는 달리 황금색과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놈의 이름은 파이톤 라이더.

사막에서부터 건너온 불멸의 기병들.

이놈들이야 말로 장원의 정문 진입이 어려운 이유다.

카가가가각!

카각! 카가각!!

“뭐야…… 한 놈이 아니잖아…….”

“저런 놈이 몇이나 더 있는 거야……?”

한 놈이 나타나자 곳곳에서 비슷한 놈들이 튀어나왔다.

처음 나타난 녀석은 지휘관이었다.

이후에 나타난 녀석들은 놈보다 다소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그 수는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열댓을 족히 넘었다.

하나둘씩 나타나 진형을 이룬 파이톤 라이더들은 이내 지면을 긁으면서 성벽을 향해 진격했다.

수십 미터의 언데드 뱀이 일제히 돌진하는 모습은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끄어어어억……!!]

[으어어어어어……!]

파이톤 라이더 분대를 필두로 수많은 언데드 병사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미라와 스켈레톤 형상을 한 그것들은 전부 이집트 풍의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전부 먼 사막에서 온 외적들인 것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언데드 군세를 보며 일행들은 경악을 터뜨렸다.

“저건 서쪽 사막의 언데드들이잖아! 저놈들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너도 나도 대경실색하는 와중 카시아가 빠르게 설명했다.

“세트의 언데드 군단이야! 아테르니아 침공 때 남은 자들이 아직까지 살아 움직이는 걸 거야!”

과연 연륜에서 흘러나오는 지혜는 놈들의 정체를 한 눈에 꿰뚫어봤다.

아테르니아가 멸망한 이유는 외적의 침략 때문이었다.

당대 최고의 무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자는 사막의 대신이자 최후의 파라오 ‘세트.’

그는 아테르니아를 시작으로 유르돌리아 전역을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품었으나 아테나가 재앙신으로 변하면서 패퇴하고 말았다.

이 언데드들은 그가 퇴각하는 과정에서 남긴 패잔병들이다.

허나 그들 본인은 스스로가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망집에 사로잡힌 그들은 10여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 아테나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너무해요…… 이 사람들 자기가 죽은지도 모르고 있어…….”

언데드 군단을 본 유미는 망연자실한 중얼거렸다.

세트의 패잔병들은 던전의 영향으로 죽지 않는 몸이 되었다.

발리스타가 쏘는 화살에 아무리 몸이 관통되어도 다시 살아난다.

그런 죽지도 살지도 않은 몸을 불사르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성벽을 향해 진격하는 광경은 누가 봐도 충격적이었다.

특히 주술사인 유미 눈에는 끔찍하기 그지없을 거다.

몸을 바르르 떠는 유미를 보니 그녀가 느꼈을 심정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콰과아아아앙!!

[끄허어어어억!!]

언데드 군세가 몸을 일으킬 무렵, 성벽에서 다시금 화살이 날아왔다.

그것은 선두에서 움직이던 언데드 병사들을 한꺼번에 꼬챙이로 만들어버렸다.

침입자들을 두고 볼 아테르니아가 아니다.

파이톤 라이더들이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발리스타는 이미 장전이 끝났을 거다.

이를 증명하듯 곧 성벽 위에서 수많은 화살들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콰과과과과과광!!

“이런 미친……!”

“다들 달려! 가만히 있다간 개죽음이야!”

융단 폭격을 방불케 하는 무시무시한 공격.

대화살들이 지면에 꽂힐 때마다 천지가 요동쳤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올빼미 깃발이 있어서 직접적으로 노려질 일은 없지만 스플래시 데미지는 논외다.

저들은 아군을 지키기 위해서 요격을 포기할 정도로 정이 많지 않다.

우리가 휘말리든 말든 언데드들부터 조지려 볼 것이다.

“크림힐트! 우리 주위에 안개 깔아! 니아 누나랑 안티오페는 양쪽에서 원거리 멤버 보호하고!”

아비규환 속에서 일행들에게 다급히 지시했다.

나나랑 유미, 크림힐트 등은 날아오는 화살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다.

비단 화살뿐만 아니라 주위의 언데드 무리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우선순위가 성벽을 넘는 것일 뿐이지, 그들 눈에는 우리도 똑같이 물리쳐야 하는 적이다.

인식 당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공격이 가해질 것이다.

콰과과과광!!

콰앙! 콰아아아앙!!

[으어어어어어!!]

화살이 지면에 박힐 때마다 언데드들의 몸이 차례차례 파괴되어갔다.

허나 그들은 사라질 줄 모르는 집념으로 다시금 일어났다.

어디 그뿐이랴, 한 번 쓰러진 놈들은 더욱 광분하여 미친 듯이 성벽을 향해 달려갔다.

[크라아아아아아!!]

쿠구구구궁!

본격적인 공성전이 시작될 무렵, 유독 화려한 갑주를 걸친 파이톤 라이더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다시금 지면이 울리더니 곳곳에서 거구의 괴물들이 나타났다.

사막신의 형상을 한 거대한 모래 골렘들.

5미터는 가뿐히 넘기는 거병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놈들은 바닥에 꽂힌 화살들을 뽑아서 성벽을 향해 집어던졌다.

아테르니아의 성벽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지만 종종 발리스타를 맞춰서 성벽 위의 병력을 약화시키곤 했다.

그 후엔 모래 골렘들을 방패삼아 다른 병력들이 매섭게 약진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언데드들의 함성이 노을로 물든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우리 던전 공략하러 온 거 아니었어?!”

다가오는 미라를 쏴 맞추면서 제이드가 항의했다.

난데없이 휘말린 공성전. 이미 겪어본 나로서도 참 황당하다.

왜 이 언데드들은 여태까지 잘 누워 있다가 이제야 일어나는 걸까.

그건 가디스 던전의 개발자들만 알고 있겠지.

아니면 그들조차 마땅한 이유를 안 정해뒀을 수도 있고.

“조잘거릴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맞춰 활잽이!”

“맞아요!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막고 있잖아요!”

내가 제이드에게 설명하기도 전에 여성진들이 구박을 퍼부었다.

확실히 안티오페도, 나나도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는 중이다.

성벽에 가까워질수록 언데드 무리와 겹치는 일이 잦아졌다.

코피스로 무장한 병사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었고 안티오페는 칼을 맞아가며 놈들을 베어 넘겼다.

대열을 지켜야하기에 피할 수는 없었다.

나나가 그녀와 니아에게 지속적으로 회복 법술을 사용해줬지만 계속해서 상처가 생겼다.

“이 자식들……! 성벽이 목적이라며! 우리는 왜 자꾸 공격하는 거야!”

“조금만 버텨 누나! 거의 다 왔으니까!”

연이어 방어하는 니아를 격려할 무렵이었다.

[키아아아아아!!]

“……!”

평원 전체에 퍼진 소란 때문일까.

다른 곳으로 가버렸던 천둥새가 다시 밀밭으로 돌아왔다.

급강하 하는 놈의 날개엔 푸른색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젠장 다들 피해!!”

“꺄아악!!”

바로 뒤에 있던 나나를 끌어안으며 옆쪽으로 몸을 날렸다.

일행들도 내 행동을 보며 반사적으로 회피를 시도했고, 그런 우리 옆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과아아앙!!

콰아앙! 콰아앙!!

천둥새의 번개가 지면에 내리꽂힌 것이었다.

놈은 사방에 벼락을 떨어뜨리면서 언데드 병사들을 쓸어버렸다.

낙뢰가 떨어진 자리는 시커멓게 불탔으며 그곳에 있던 언데드 병사들도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불사의 몸이라 언젠가 다시 일어나겠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졌으나 천둥새의 등장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샤아아아아아!!]

[키아아아아아!]

몇몇 파이톤 라이더들이 천둥새에게 도전하듯 언데드 뱀을 타고 응전했다.

천둥새는 그들에게도 번개를 퍼부으려 했으나 언데드 뱀들이 저공비행하는 천둥새를 붙잡았다.

콰직! 콰지익!!

[키아아아아악!!]

파지지지직!!

놈들의 이빨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량의 전류를 뿜어내는 천둥새.

밀밭이 불타고 하늘에선 쉴 새 없이 벼락이 내려쳤다.

덕분에 밀밭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천둥새를 끝장내기 위해 모인 언데드 병사들 때문에 주위는 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 말은 곧 우리가 빠져나갈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일행들을 이끌었다.

“지금이야! 이 틈에 성문 넘어야 돼! 다들 낙오되지 않게 정신 바짝 차려!”

말하는 즉시 지면을 박찼다.

그런 나를 보며 동료들도 다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동료들은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했다.

니아와 안티오페는 가끔 가다 달려오는 몹들을 날려버렸고, 제이드와 카시아는 화살로 두 사람을 지원했다.

나나랑 유미, 크림힐트 역시 각종 주문들을 사용하여 적들이 우릴 포위하는 걸 적극적으로 막았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눈먼 공격에 다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으나 일행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다치거나 넘어지더라도 금세 태세를 다잡아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사방에서 대화살과 바위가 날아다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문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성문이다! 드디어 도착했어!”

“이제 진짜 조금이야, 다들 힘내!”

서로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며 두 다리에 힘을 주는 우리들.

허나 한 무리의 언데드들이 우리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천둥새로부터 시선을 돌린 파이톤 라이더 한 마리가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길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샤아아아아아!!]

날카롭게 울부짖는 해골 뱀.

놈의 눈이 붉은 빛으로 일렁였다.

당장이라도 거구를 무기 삼아 우리들을 쓸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도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들고 있던 깃발을 나나에게 집어던진 뒤 큰 소리로 외쳤다.

“안티오페! 협공해!”

“오옷! 알겠어, 대장!”

안티오페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칼집에서 나온 음산한 칼날이 현실과 저승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

[아슈나아앗!!]

다음 순간 파이톤 라이더가 우렁찬 함정을 내지르며 돌격해왔다.

맹렬히 달려오는 놈의 뒤를 수 십, 수 백 명의 언데드 병사들이 뒤따랐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물량.

게임 세계에 온 이후로 이 정도 병력을 상대해 보는 건 처음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차마 감당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리! 비켜엇!!”

촤좌아아악!!

달려오는 언데드들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검기를 날렸다.

명줄 절단의 고유 스킬, 명도참을 발동한 것이다.

콰과과과과과!!

큰 횡을 그리며 검을 휘두르자 보라색의 검기가 언데드들을 향해 날아갔다.

초승달처럼 생긴 검기는 막힘없이 수 백 마리의 언데드들을 집어삼키더니 놈들을 한꺼번에 썰어버렸다.

사거리가 다소 짧긴 했지만 몰려있는 병사들을 처리하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샤아아아아앗!!]

거기에 더해 파이톤 라이더까지 명도참에 직격 당했다.

고작 한 반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놈이 타고 있던 해골 뱀이 두 동강 나고 말았다.

저놈도 생명력이 쓸데없이 높은 놈이지만 상대가 안 좋았다.

지금 밀밭에 나타난 몬스터 중 골렘을 제외한 다른 놈들은 전부 영체형 적들이다.

그 말은 곧 명줄 절단의 세 번째 효과를 적용 받는단 뜻이다.

명줄 절단+3   성물

분류: 도   속성: 참격, 관통

공격력: 465   저지력: 15

공격 속도: 매우 빠름

내구도: 60/60   무게: 6

요구 스탯: 기교 25

보정 스탯: 기교

부가 효과: ◈ 치명타 확률 20퍼센트 증가, 치명타 공격력 30퍼센트 증가

◈ 전용 스킬, 명도참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치명타 발생 시 적의 방어력과 보호 효과를 무시하여 영체형 적에겐 무조건 치명타가 발생한다.

언데드 병사들이 우후죽순 썰려나간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명줄 절단만 있다면 수백 마리의 언데드 병력도 얼마든지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크하아아아!!]

해골 뱀이 처참히 무너져 내릴 때였다.

유일하게 명도참의 범위에서 벗어난 파이톤 라이더가 뱀의 머리에서 도약했다.

펄쩍 뛰어오른 놈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내 쪽.

놈은 코피스를 휘둘러 날 내려찍을 생각이었다.

최후의 발악 중에선 꽤나 멋진 편이다.

물론 그 공격이 내게 닿을 일은 없다.

“으랴아아앗!!”

[……?!]

내가 혼자 있었다면 빈틈을 보여서 맞았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쉽게도 혼자가 아니다.

측면에서 점프한 안티오페가 파이톤 라이더를 덮쳤다.

허공에서 도끼를 든 채 회전하는 그녀는 마치 빠르게 날아가는 톱날과도 같았다.

촤자자자작!!

나를 신경 쓰느라 안티오페의 공격에 그대로 명중당한 파이톤 라이더.

놈은 뼈란 뼈가 모조리 박살나서 말 그대로 공중 분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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