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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78화 (178/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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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잃은 장원

“아~ 재미없어. 모처럼 같은 파티 돼서 좋아했는데, 이렇게 철벽 치면 서운하다고~.”

“그래, 그래. 마음껏 서운해 해라.”

내가 계속 거절 의사를 보이자 안티오페 역시 슬슬 그만둘 기미를 보였다.

그녀는 연이은 거절에 힝, 하고 울상을 지었따.

굳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관심 가져달라는 의사를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보다 티오 쟝은 몸매 엄청 좋네요. 이렇게 복근 있는 여자는 실제로 처음 봐요!”

그때 나나가 난데없이 안티오페의 몸매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녀의 주의를 돌려서 내 부담을 덜어줄 생각인 듯했다. 아니면 그냥 본인이 추파를 던지는 걸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안티오페는 살가운 태도로 나나에게 말했다.

“아마조네스들은 다들 그래. 개인차는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근육이 잡히기 쉽거든.”

“그렇구나~ 티오 쟝은 그 중에서도 유난히 좋은 편이죠? 모델 해도 되겠는데?”

안티오페의 복근을 감상하며 연신 칭찬하는 나나.

그녀 말대로 안티오페는 참 예술적인 몸매의 소유자였다.

몇 시간 동안 커마해서 만든 나나의 몸매와 비견될 정도로 훌륭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었다.

예쁘게 잡힌 복근은 안티오페가 강인한 전사라는 것을 과시함과 동시에 그녀의 섹시함을 한껏 끌어올려줬다.

이전까지 복근 있는 여자는 별로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안티오페의 몸매를 보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나저나 나나 저 녀석, 크림힐트는 엄하게 다루더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왜 친한 척이지?

생각해보면 카시아한테도 언니, 언니하면서 살갑게 굴었다.

여러모로 황당했으나 곧 이해가 갔다.

어제야 장원으로 출발하기 전이었고 어느 정도 여유가 보장돼서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거다.

반면 지금은 장원이 코앞까지 가까워진 상황.

지금 같은 때 괜히 우열을 정하겠다고 거친 행동을 하면 괜히 반감만 살 가능성이 높다.

나나도 그걸 알기에 조교 보다는 친분을 쌓는 걸 선택했으리라.

참 보면 볼수록 현명한 녀석이다.

아니, 이럴 때는 교활하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괜히 자기 혼자 조교 당한 크림힐트가 한 소리 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런 생각으로 크림힐트 쪽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그녀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성소에서 출발한 이후로 줄곧 자기 할 일만 꿋꿋이 하고 이동 중엔 마법서를 읽을 뿐이었다.

어제 했던 조교가 효과를 발휘한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저런 성격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여태까지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다.

새로 들어온 동료들의 모습을 살피며 정비 시간을 가지길 수 분.

창밖을 내다보던 제이드가 문득 우리들에게 말했다.

“어이, 다들 저기 좀 봐.”

“뭔데? 어…….”

“저기는…….”

제이드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성채가 있었다.

드넓은 밀밭 너머로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의 성벽.

율리아나의 것과 비슷했지만 이쪽이 훨씬 더 높고 견고해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율리아나의 빛나는 성벽은 아테르니아의 것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니까.

이를 확인한 나나가 나에게 말했다.

“다키님 저거…….”

“……그래, 지혜 잃은 장원이야. 도착했다.”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도착한 장원.

실제로 보니까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마침 날도 저물고 있어서 불길함까지 더해졌다.

저곳에 들어가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거다.

풍경 자체가 그렇게 경고하는 듯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장원의 자태를 눈에 담았다.

깐죽거리던 안티오페도 지금만큼은 입을 꾹 다문 채 주먹을 부르쥐었다.

떨리는 것을 꾸욱 참는 것이리라.

아무리 전투에 미쳐 사는 아마조네스라고 해도 저 걸 보면 압도될 수밖에 없겠지.

“아빠…….”

그 중에서도 가장 심란해 하는 건 단연 니아였다.

그녀는 목걸이는 움켜쥐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곧 다가올 재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졌다.

하지만 이 또한 필연이리라. 지금은 별 말하지 않고 그녀에게 각오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래서 어쩔 거야 다키? 바로 진입해?”

침을 꿀꺽 삼킨 뒤 제이드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은 놈들의 활동 시간이야. 내가 말 한 거 기억하지?”

“앗, 네. 늦은 저녁까지는 새들의 활동 시간이라고 하셨죠?”

확인하듯 묻자 유미가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장원의 몬스터들은 대부분 주행성이다.

새들처럼 낮에는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밤이 되면 다들 둥지로 들어가 잠드는 것이다.

밤에도 활동하는 건 맹금의 기사를 포함한 몇몇 정예 몬스터들 뿐.

사실 그놈들이 제일 까다롭긴 하지만 다른 놈들과 같이 덤비는 것보단 낫다.

그러니 우리는 적들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덜한 시간대에 숨어들 것이다.

장원 공략은 못 해도 며칠이 걸린다.

내가 길을 알고 있으니 헤맬 일은 없지만 애당초 엄청 큰 도시기도 하고 길을 가로막는 적도 많아서 하루 만에 클리어하는 것은 무리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안전지대를 확보하기 위해선 첫 진입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이를 상기하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지금 시간이 대충 7시 30분이니까…… 3시간 정도 쉰 다음에 진입하자. 그러면 잡몹들은 확실하게 잠들어 있을 거야.”

“알겠어요, 다키님! 다 같이 낮잠 한숨 때린 다음에 들어가죠!”

“지금 시간이면 낮잠이 아니라 저녁잠이지만 말이야.”

내 말에 일행들은 모두 동의했다.

리자드맨에 다이어울프, 거기다 아울 베어까지.

여기 오는 동안 상당히 많은 전투가 있었다.

대부분 우리 쪽이 일방적으로 유린했지만 다들 조금씩은 지쳐 있으리라.

최상의 컨디션으로 장원에 들어서려면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해두는 게 좋을 거다.

결정을 내린 나는 반드에게 말했다.

“반드 씨, 저희 3시간 정도 잘 테니까 슬슬 정차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마침 저기 좋은 곳이 보이는…….”

내 말을 듣고 반드가 고개를 돌릴 무렵이었다.

[키아아아아아!!]

“……!”

“……?!”

어디선가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맹금류의 것과 같았으며 평범한 새들 보다 훨씬 더 소리가 컸다.

어찌나 울음소리가 큰지 순간 천둥이라도 치는 줄 알았다.

난데없는 울음소리에 일제히 놀란 일행들.

등줄기를 꼿꼿하게 세운 그들은 한 결 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장원에서 들리는 소리 아니야?”

“가까워져서 그런가…… 벌써부터 기분 나쁜 소리가 다 들리네.”

깜짝 놀란 것에 비하여 일행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이곳은 던전 앞이다. 저 안에 있는 괴물들을 생각하면 괴성이 들려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듯했지만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설마 그놈도 장원 밖으로 나왔단 말이야……?’

방금 전에 들린 울음소리는 내가 알고 있는 소리다.

평범한 몬스터의 것이 아닌, 특정 구간에서만 나오는 미니 보스의 울음소리였던 것이다.

섬뜩한 기분을 느낄 무렵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콰아앙! 콰과앙!

처음에는 그것이 날갯짓 소리인지도 몰랐다.

너무 우렁차서 천둥소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사실 비단 착각인 건 아니었다. 어느 샌가 주위에선 파지직! 하며 전류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벽력과도 같은 날갯짓과 주위에 흐른 전류.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본래 이곳에 있지 말아야 할 놈이 밖으로 나온 게 분명하다.

“젠장할 다들 내려! 놈이 우리를 인식했……!!”

카가아아악!!

다급히 지시를 내리려 했지만 놈이 더 빨랐다.

갑자기 대낫처럼 크고 날카로운 발톱이 마차의 벽과 천장을 뚫고 들어왔다.

마차 안에 있던 모두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것을 바라보았고, 곧 마차 내부는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뭐, 뭐예요?! 저게 대체 뭐냐고요 씨발?!”

“꺄아아아앗!!”

“이런 젠장, 이런 젠장, 이런 젠장!”

잇따라 터져 나오는 욕설과 비명.

그러는 도중 난데없는 부유감이 느껴졌다.

마차가 점점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크흐읏!”

위기감을 느낀 나는 곧장 문을 열어젖히려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또 다른 발톱이 문 쪽을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콰지이이익!

“……!!”

문을 뚫고 내 목전에 닿는 맹금류의 발톱.

나는 아주 간발의 차이로 발톱에 뚫리지 않았다.

발톱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전류 때문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히에엑! 다키님!!”

“괜찮으세요, 스승님?!”

그런 내 모습을 본 일행들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발톱에 목을 찔려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이에 질겁하여 다급히 뒤로 물러섰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마차를 붙잡은 거대한 새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욱더 지상에서 멀어졌고 상공의 강풍이 깨진 창문을 통해 들이쳤다.

“빨리 나가야 돼! 이러다가 꼼짝 없이 끌려간다고!”

“차, 창문으로 나가는 건 어떨까요?!”

“무리야! 우리가 나가기엔 너무 좁아!”

“좀 부수고 나가면 되잖아요! 근딜들이 뭐라도 좀 해봐요!”

“공간이 좁아서 내 도끼는 못 휘둘러! 괜한 짓 했다간 너희도 같이 맞는다고!”

당혹감을 드러낸 채 어떻게 탈출할지 논의하는 일행들이었으나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초조해진 나는 다급히 마부석 쪽으로 소리쳤다.

“반드! 당신이라도 살아요!”

우리는 마차 안에 갇혔지만 반드랑 말들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마차에서 떨어진다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반드는 단검으로 고삐를 끊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에는 일말의 당황도 없었으며 제 시간 안에 마차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히히이이잉!!]

울부짖으며 지상으로 떨어지는 말들.

다행히 고도가 높지 않아서 다치진 않았다.

반드 또한 낙법을 취해 안정적으로 착지한 듯했다.

에보니와 반드가 무사한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우리 쪽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힘차게 날아오른 거대한 새가 점점 고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다키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맞아, 저건 대체 뭐야?!”

어느덧 일행들은 내게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라면 전부 알고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의지하는 것이었다.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들의 질문에 답했다.

“천둥새야…….”

“천둥새……?”

“그래, 장원의 괴물 중 제일 큰 놈이야. 지하에 갇혀 있어서 못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천둥새는 장원의 미니 보스 중 하나다.

원전의 천둥새처럼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괴조이며 그 크기는 경비행기가 우스울 정도다.

머리 위에 떠있으면 정말 무서울 것 같은 놈이지만 다행히도 원작 게임에선 본성 지하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비행 능력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번개만 쏴대는 샌드백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게임과 다르게 멀쩡히 날아서 장원 밖으로 나왔다.

원작 게임에서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성 지하는 단단한 철문으로 겹겹이 막혀 있기 때문에 날지 못하는 천둥새가 자력으로 뚫고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원의 다른 몬스터들도 번개를 싫어하기에 놈을 풀어줬을 리 없다.

그렇다는 것은 장원 몬스터 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천둥새를 풀어줬다는 얘기가 된다.

‘뭐지……?’

이 상황 자체에서 악의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공략을 방해하려 드는 것 같았다.

심란하기 그지없었지만 지금 딴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다.

한 시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천둥새는 계속 고도를 높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천둥새의 목적은 우리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침입자들을 마차 째로 낙사시킬 생각인 것이다.

“이 자식 발톱이 왜 이렇게 단단해?!”

“찌르는 걸로는 꿈쩍도 안 하잖아! 마법사 씨, 그쪽은 어때?!”

“소용없어…… 아무리 얼리려 해도 얼지 않아.”

안티오페와 니아가 분개하듯 소리쳤다.

니아의 질문을 받은 크림힐트 또한 절망적인 어조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그녀들은 무기를 들고 천둥새의 발톱을 부수려 들었다.

당장이라도 무기를 휘두르고 싶어 하는 그녀들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이 마차 안에는 도합 8명이나 되는 인원이 타고 있다.

아무리 넓은 마차라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타고 있으면 움직일 공간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비좁은 공간에서 무기를 휘두르긴 힘들다.

메이스를 든 니아라면 모를까, 대형 도끼를 든 안티오페는 확실하게 무리다.

물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괜히 검을 뽑아 들면 다른 사람들만 다칠 거다.

크림힐트의 마법이 그나마 나았지만 안타깝게도 천둥새는 빙결 내성을 가지고 있다.

즉, 나와 일행들은 꼼짝없이 마차 안에 갇힌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제야 장원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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