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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잃은 장원
“예전에 어떤 도공 아저씨한테 들었던 얘기를 참고해서 만들어봤어. 이름은 명줄 절단, 쾌도랑은 비교도 안 되게 좋을 거야.”
브릴린트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칼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밤의 어둠까지도 베어버릴 것 같은 비현실적인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줄 절단+3 성물
분류: 도 속성: 참격, 관통
공격력: 465 저지력: 15
공격 속도: 매우 빠름
내구도: 60/60 무게: 6
요구 스탯: 기교 25
보정 스탯: 기교
부가 효과: ◈ 치명타 확률 20퍼센트 증가, 치명타 공격력 30퍼센트 증가
◈ 전용 스킬, 명도참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치명타 발생 시 적의 방어력과 보호 효과를 무시하여 영체형 적에겐 무조건 치명타가 발생한다.
[거미 여신 아라크네의 이코르를 소재로 한 신묘한 도검. 한 도공의 경험담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
젊은 시절의 도공은 요괴들과의 사투 중 한 차례 저승길을 밟았다. 그때 자신을 데리러 왔던 사자의 도검이 무척이나 소름끼치면서도 신비로웠다고 한다. 도공은 수십 년의 노력 끝에 그 검을 모방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그 산물이다.]
명도참
액티브
요구 스탯: 없음
비용: 기력 100
사용 조건: 명줄 절단 착용
습득 방법: 명줄 절단 착용 시 자동 습득
효과: 1초 동안 기를 모은 뒤 저승의 힘을 빌려 적의 영혼을 베어버린다. 전방 5미터, 폭 7미터 이내에 있는 모든 적들에게 공격력 +600퍼센트의 참격, 어둠 피해를 주며 생명력이 50퍼센트 이하인 일반 몬스터는 즉사시킨다. 이 공격은 적의 방어력을 무시한다.
칼날을 확인하자 무기의 옵션이 눈앞에 떠올랐다.
실로 어마어마한 스펙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쾌도는 공격력이 고작 156 정도 밖에 안 됐다.
쾌도의 경우 1강 밖에 안 했다곤 하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공격력이 거의 세 배 가까이 차이 났다.
고급 무기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능력치.
성물 등급이 괜히 성물이라고 불리는 게 아닌 것이다.
‘물론 공격력만 좋은 건 아니지.’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효과를 읽었다.
명줄 절단은 동 레벨대 도검 중에서 가장 훌륭한 스펙을 가진 무기로 많은 유저들에게 사랑 받아왔다.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이 도검이 인기 있는 이유는 바로 전용 스킬, 명도참 덕분이다.
+600퍼센트라는 어마어마한 계수와 즉사 효과, 방어력 무시 효과까지 가진 사기 스킬.
명도참으로 하여금 가뜩이나 좋은 스펙이 더욱더 흉악해진다.
지금 내 스펙으로 사용하면 크리티컬이 안 떠도 무려 3700 가량의 데미지가 나온다.
여기에 크리티컬이 터지면 약 6600까지 치솟겠지.
지주귀의 생명력이 1500 정도였고 아라크네는 각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8000 정도다.
지귀들은 떼로 덤벼봤자 한 방에 썰려나가며 그 아라크네조차 세 방이면 절명한다.
이 얼마나 무서운 스킬이란 말인가.
쾌도의 신속 발도도 상당히 좋은 효과이긴 했지만 명도참에 비하면 잔재주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거면 충분하다.
이 무기라면 전신 아테나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으리라.
결전 병기가 완성됐으니 이제 가서 모조리 쓸어버리는 일만 남았다.
“칼 진짜 예쁘다. 이게 다키님 무기예요?”
내가 명줄 절단을 살펴보고 있을 때 나나가 내 어깨 위에 턱을 올렸다.
확인해보니 날 뒤에서 껴안은 채 명줄 절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근 귀여운 행동거지에 웃으면서 나나에게 답했다.
“그래, 아라크네 이코르로 만든 무기야.”
“딱 봐도 세 보이네요! 보기만 해도 든든해요!”
나나가 보는 앞에서 명줄 절단을 가볍게 휘둘러 봤다.
그러자 맑은 소리와 함께 보랏빛 잔상이 허공을 갈랐다.
성능으로도 시각적으로 훌륭하기 그지없는 무기다.
이러니 검객 유저들이 너도 나도 명줄 절단을 쓰려 하지.
나나 역시 그 자태에 홀딱 반했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야아…… 존나 개간지…….”
그렇게 나나가 칼에서 눈을 못 떼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키 너 사제 장비도 부탁했잖아. 이 친구가 사용할 거야?”
“아 깜빡했네……. 맞아 누나. 그건 어디 있어?”
“진열대가 꽉 차서 안쪽에 넣어뒀어. 조금만 기다려. 네 갑옷이랑 같이 가지고 올게.”
그리 브릴린트는 얼마 후 준비한 장비들을 가져왔다.
그녀가 가져온 것은 화려한 홀장과 두 종류의 방어구 세트였다.
방어구의 경우 토르소 마네킹이 입고 있었는데, 하나는 검은색과 진청색으로 이루어진 가죽 갑옷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얀색의 드레스였다.
“핫! 이게 다키님이 부탁해뒀다는 제 장빈가요?!”
“그래, 한 번 입어봐. 안 맞는 부분 있으면 바로 수선해줄 테니까.”
화들짝 놀라며 묻는 나나에게 브릴린트는 살가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녀는 나나에게 옷 갈아입을 장소를 안내해줬고 나나는 신이 났는지 방방 뛰어 들어갔다.
나는 굳이 입어볼 필요가 없었기에 그냥 옵션만 확인했다.
아라크네 코트 성물
분류: 경갑
방어력: 50 인내력: 11
내구도: 70/70 무게: 5
요구 스탯: 기교 23
부가 효과: ◈ 저주 저항력 50퍼센트 증가
◈ 상태이상을 부여하는 스킬의 공격력 30퍼센트 증가
◈ 한 번의 전투 당 한 번, 모든 상태이상을 제거하고 적용되어 있던 상태이상 하나당 기력을 150 회복
저항력
참격 30.0 관통 30.0 타격 10.0
마력 28.0 화염 0.0 빙결 25.0 전격 25.0 신성 30.0 암흑 10.0
아라크네의 태피스트리와 새끼 거미들의 갑각을 재료로 하여 만든 방어구, 아라크네 코트.
보스에게 얻은 전리품으로 만들어서 이 장비 역시 성물 등급을 갖추고 있었다.
과연 성물 등급답게 모든 면에서 훌륭했다.
경갑임에도 불구하고 방어력이 중갑 수준으로 높았고 저항력과 공격력을 높여주는 스킬까지 있다.
마지막 효과는 저항력이 높은 나와는 잘 맞지만 그래도 상태이상을 즉시 제거하고 기력까지 회복해주는 것은 틀림없이 최상위급 효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죽 갑옷만 걸치고 있던 내겐 감지덕지한 물건인 것이다.
이따가 여신님한테 신의로 만들어 달라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라크네 세트를 차원낭 안에 넣을 때쯤 나나가 돌아왔다.
“이것 보세요, 다키님! 이 옷 엄청 예뻐요!”
작업장으로 나온 나나는 새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토르소에 입힌 걸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굉장히 야한 복장이다.
전체적으로 판타지 게임에 나올 법한 디자인의 의상이었는데, 다른 다 제쳐두고 가슴 부위가 굉장했다.
역삼각형 형태의 천으로 가슴을 덮은 형태라고 해야 할까.
뛰거나 바람이 불면 그대로 맨 가슴이 드러날 것 같은 형태였던 것이다.
장비를 둘러보던 일행들은 그걸 보며 화들짝 놀랐다.
“나, 나나 씨……! 옷 덜 입으신 거 아니에요……?!”
“마, 맞아 나나야. 너 그러다가 가슴 보이겠어……!”
제이드는 말없이 복장을 감상했지만 유미와 니아는 그녀의 옷차림을 지적하느라 바빴다.
그에 나나는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가슴 위에 덮어둔 천을 확 들어올렸다.
“짜아안~”
“뭐, 뭐야 왜 갑자기 가슴을 드러내는……! ……어라?”
“가려져 있네요……?”
여자들이 대경실색한 다음 순간.
우리들은 나나의 유두가 웬 스티커 같은 걸로 가려져 있는 걸 확인했다.
야하게도 분홍색의 하트 모양 스티커였다. 흔히 유두 패치라고 불리는 그것이었다.
“아무리 저라도 대놓고 가슴을 드러내진 않는다구요~ 브릴린트 언니가 다 대비를 해줬죠~”
“그, 그렇구나…… 그래도 저런 디자인은 좀…….”
“맞아요, 너무 문란해요……!”
유두가 훤히 드러나지 않는 건 다행이었으나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가슴을 고작 유두 패치 하나로 가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다.
저 큰 가슴에 브래지어도 하지 않아서 모핑이 엄청나진 것이다.
나나가 이쪽으로 걸어올 때마다 그 사실이 실감났고, 결국 니아와 유미는 제작자를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브릴린트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여신님들 사이에서 저렇게 입으면 뭘 그리 껴입었냐고 오히려 핀잔 들어~”
잊고 있던 사실인데 브릴린트 역시 올림포스 출신이다.
문란함의 아이콘인 그리스 신들 중 한 명이니 저 정도 복장은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와 함께 지냈던 여신들은 저것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게 입지는 않았을 테니까.
“너도 나도 야하게 입기 대회하는데 제가 질 수야 없죠! 말 나온 김에 두 사람도 야한 걸로 골라 봐요!”
“뭐, 뭐? 아, 아니야 난 됐어!”
“저도 야한 건 좀……!”
나나의 제안에 손사래 치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녀를 말릴 수는 없었다.
거절 의사에도 불구하고 나나는 일부러 야한 장비들을 골라 두 사람에게 가져다주었다.
나나의 의지가 너무 강경한 나머지 니아와 유미는 반강제로 그것들을 입어보게 됐다.
‘그보다 찬란한 인도자 세트라니, 누나도 센스 좋은 걸.’
나나의 장비를 살펴본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찬란한 인도자 세트, 디자인이 디자인이라 음란한 인도자 세트라는 별명을 가진 사제 전용 장비다.
최대 생명력과 마력을 늘려주는 효과가 있으며 전투 중 1번에 한하여 피해를 상쇄하는 효과까지 있다.
이름에 걸맞게 찬란한 광채의 선딜을 감소시키기도 하여 지금의 나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장비라고 볼 수 있다.
새로 받은 홀장도 회복 법술의 위력과 범위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장원 공략에 큰 도움이 될 거다.
‘이제 준비는 다 갖춰졌다.’
명줄 절단을 납검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장원이 이제 코앞까지 다다랐다.
* * *
아테르니아까지 향하는 길은 매우 순조로웠다.
가는 길에 가끔 몬스터가 나타나긴 했지만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무려 8명의 모험가들이 한 번에 공격하니 어지간한 놈들은 상대조차 안 됐던 것이다.
“그나저나 진짜 와버렸네~, 장원 공략 파티라니. 차라리 자살 부대라고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아?”
구릿빛 피부의 여전사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피 묻은 도끼를 닦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안티오페.
크림힐트 파티의 근접 딜러로 출발 후에 편승한 멤버 중 한 명이다.
태생이 호전적인 아마조네스라서 그럴까.
사지로 향하고 있는데도 그녀에겐 일말의 긴장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투를 향한 기대와 흥분만이 얼굴 위로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조금 전에 장원맛이 된 리자드맨들을 쓰러뜨릴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천부적인 도살자임과 동시에 극도의 전투광이었다.
휠윈드를 돌면서 리자드맨들을 썰어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킬 머신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뭐, 겁먹어서 가기 싫어하는 것보단 낫지.’
그녀를 만나기 전엔 좀 걱정했다.
과연 다른 인원들도 스쿨드처럼 군말 없이 잘 따라올까.
반 강제로 보내져서 비협조적으로 구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난폭한 면모가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안티오페는 내가 하는 말에 한 마디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첫 만남 때부터 자신들이 내 부하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마음껏 부려달라고 자진할 정도였다.
안티오페처럼은 아니더라도 다른 한 명 또한 그녀처럼 고분고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안티오페, 우리는 스쿨드님의 명령을 수행하러 가는 거야. 사기를 저해하는 이야기는 삼가는 게 좋아.”
안티오페의 말에 활시위를 점검하던 엘프 궁수, 카시아가 점잖은 어투로 이야기했다.
녹색에 가까운 금발이 아름다운 그녀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엘프 여성이었다.
매사에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것이 나나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종종 보이는 식습관이나 동물들과 소통하는 모습들은 흔히 대중 매체에서 봐온 엘프의 것과 완전 판박이였다.
또한 그녀는 다른 두 명 보다도 훨씬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스쿨드의 클랜원인 만큼 그녀도 어디 하나쯤은 문제가 있겠지만 적어도 노르니르 클랜의 3인방 중에선 가장 정상적인 인물로 보였다.
“그래, 우리는 아무도 안 죽을 거고 반드시 던전을 클리어할 거야. 불길한 소리는 접어 둬.”
카시아의 말에 나도 맞장구쳤다.
안티오페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쿡쿡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애초에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있어야지 공략도 수월해지지 않겠어?”
발랄하게 말하며 자리를 옮기는 안티오페.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나나를 밀치고 나와 바싹 붙었다.
덕분에 그녀의 매끈한 구릿빛 피부와 몸에 닿았다. 그녀의 균형 잡힌 복근이 훨씬 잘 보이게 됐다.
“그리고 클리어할 거란 건 나도 잘 알고 있다구~ 대장이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 크림의 트롤들도 장난감 다루듯이 잡았다는데.”
내 팔을 끌어안으며 더욱더 피부를 맞대는 안티오페.
분명히 의식하고 한 행동일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바라보는 안티오페의 얼굴이 이토록 매혹적일 리가 없다.
“네가 그런 소리하면 긴장감이 아니라 불안감만 생겨. 괜한 말 하지 말고 맡은 일만 해.”
순간 그녀에게 홀릴 뻔했지만 난 단호한 어투로 그녀를 밀어냈다.
원래 같으면 이렇게 철벽 치지 않겠지만 지금은 던전 공략 직전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야 하며 마음을 다잡아야할 때인 것이다.
더군다나 안티오페의 이런 행위는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다.
남쪽 숲 초입에서 두 사람을 픽업했을 때부터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팔짱을 껴오거나 거리를 좁혀오는 등 의도적인 스킨 쉽을 해왔다.
솔직히 구릿빛 피부의 미인이 연신 작업을 걸어주니 내심 좋아 죽을 것 같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괜히 받아주면 나만 해이해지는 게 아니라 동료들까지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거다.
아주 작은 실수가 죽음으로 직결되는 던전 공략에선 그런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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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옷이 표지의 그 옷입니다. 드디어 입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