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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76화 (17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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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잃은 장원

“다키의 전생…….”

“그러고 보니 리단 씨가 그랬지. 평범한 인생이 아니었다고.”

“분명 올림포스의 대영웅이라고 했어요…….”

전생이라는 말에 동료들은 전율에 찬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리단이 그 부분에 관해서도 설명해준 모양이다.

그도 헤베한테 이것저것 들었을 테니 이야기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겠지.

리단 덕분에 이런저런 수고를 덜었다.

그리 생각할 무렵 제이드가 감탄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 줄 알겠네. 대영웅의 환생에다가 여신님의 지원까지 받는 모험가라니! 자신이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제이드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어렸을 적부터 선망해왔던 영웅과 만난 것 같은 기색이었던 것이다.

그런 제이드의 말에 니아도 맞장구쳤다.

“역시 믿고 따라오길 잘 했어. 다키랑 함께라면 분명 클리어할 수 있을 거야.”

처음부터 맹목적으로 따라오려 한 니아도 날 보다 신뢰하게 된 듯하다.

갑작스러운 영웅 대접에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걸로 동료들이 내 지시에 좀 더 잘 따라줄 것 같다.

트롤 세 마리를 상대로도 기죽지 않은데다 영웅의 환생이라는 타이틀까지 달았으니 리더로 인정해주겠지.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브릴린트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마침 잘 만났다. 세 사람도 같이 가자.”

“가다니, 어딜?”

“다키님이 새 장비 보여주신데요! 대장장이의 여신님이 계신다던데요?”

나나의 말을 듣고 세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특히 니아와 제이드는 전에 한 말을 떠올리곤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장비 얘기를 꺼냈던 거였구나…….”

“대장장이 여신의 장비를 받을 수 있는 거야……?”

성소에 오고 나서부터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으나 이번엔 좀 더 특별할 것이다.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뛰어난 장비는 그야말로 이상과도 같은 것이다.

원래 세계의 사람들이 좋은 차, 명품 옷에 매달리듯이 모험가들은 더 나은 장비를 끝없는 쫓는 거다.

자기 장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었으나 여신이 만든 물건이라면 못 참겠지.

그들의 반응을 즐기면서 나는 일행들과 함께 대장간에 발을 들였다.

“휘유~.”

작업장에 들어서니 나도 모르게 휘파람이 나왔다.

하루 만에 다시 온 대장간은 이전과는 다르게 휘황찬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못 보던 장비와 설비들이 가득했으며 낡고 때 묻은 구조들은 전부 새 것으로 교체되었다.

“와아…… 여기가 여신님의 대장간이야……?”

“도시에서 봤던 대장간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신기한 구조물로 가득한 작업장 안을 보며 일행들은 탄성을 흘렸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브릴린트의 작업장은 다른 대장장이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증축을 한 번 하고 나니 진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대장간과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과연 거금을 들여 증축하 보람이 있다.

나 역시 흡족한 기분을 느끼며 새로운 대장간을 둘러보았다.

‘도깨비들이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구만.’

이걸로 브릴린트는 강력한 장비들을 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 가능 품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그 안에는 보스 이코르 무기까지 포함되겠지.

벌써부터 새로 받을 장비들이 기대된다.

그리 생각하며 브릴린트를 찾았다.

확장 작업까지 마친 대장간은 이전보다 훨씬 넓어져 있었다.

그래서 브릴린트를 찾으려면 수고를 좀 들여야 했는데, 안쪽의 가마에서 쇠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푸후우! 푸쉬익!

캉! 캉! 카앙!

“읏! 차! 읏! 차! 읏! 차!”

“불 꺼지면 안 돼! 더 세게 지펴!”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는 용광로와 그 옆에서 풀무를 밟아 누르고 있는 도깨비들이 보였다.

이전보다 더 커진 용광로는 도깨비들의 도움을 받아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보스의 강력한 이코르도 가공할 수 있느 환경이 완성된 것이다.

그 앞에 앉은 브릴린트는 의욕적이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한창 집중하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이번에도 장난스러운 어투로 인사를 건넸다.

“새 대장간 좀 어때 누나? 쓸 만해?”

“……?! 다키야!”

내 부름에 브릴린트는 퍼뜩 고개를 들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반색하며 달려온 그녀는 곧장 나를 끌어안았다.

“진짜 너무 고마워! 대체 나 때문에 얼마를 쓴 거야! 예전에는 꿈도 못 꿨던 설비들이 다 들어왔다고!”

“그, 그래 다행이네.”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근력에 좀 투자해두길 잘 했다.

안 그랬으면 지금쯤 풍선 인형처럼 사정없이 휘둘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브릴린트의 감사 인사와 포옹을 받으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모두가 보는 앞이라 진득하게 받아주기는 힘들었지난 말이다.

“이거 봐라? 꼬맹이들이 몇 시간 만에 설비고 인테리어고 전부 바꿔줬어! 처음엔 내 작업장도 아닌 줄 알았다니까?”

포옹을 마친 브릴린트가 열띤 목소리로 대장간을 이곳저곳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브릴린트는 새 대장간이 정말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예전의 작업장은 엔틱한 맛은 있어도 최신식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말이다.

실력은 출중한데 그에 맞는 무기를 못 만들어서 브릴린트도 내심 아쉬워하고 있었겠지.

이쯤 되면 누구나 의문이 들 것이다.

브릴린트의 실력이면 장비를 팔아서 돈을 벌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냐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장비를 유통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본인의 장비가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사용되어 무의미한 살생을 할까 봐 걱정되는 것이다.

단순히 자기 장비를 아껴서 그런 게 아니라 과거사와 관련된 트라우마 비슷한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브릴린트는 오직 투사들에게만 장비를 제공한다.

그녀가 스스로 도깨비들에게 의뢰를 할 수 없었던 건 이러한 이유에서다.

항상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텐데 내가 대신 의뢰를 해줘서 무척 기쁠 거다.

“그런데 진짜 괜찮은 거야? 꼬맹이 녀석들이 이렇게 열심히 해줬다는 건 엄청 많이 쏟아 부었다는 소리잖아…….”

신나서 떠들던 브릴린트가 문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마 뒤늦게 내 부담을 생각한 것이리라.

나는 그녀를 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좀 많이 쓰긴 했지. 그래도 괜찮아. 누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날 위한 거기도 하니까.”

“다키야…….”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자 브릴린트는 감격해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서로의 이득을 위해서 한 일이라지만 브릴린트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새 집 사고 싶은데 명의는 네 걸로 해줄게 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니 감동 받을 만도 하지.

그녀의 호감도 게이지가 쭉쭉 오르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오늘 밤에 시간 있냐고 물어보면 고민 없이 승낙할 것 같은 기색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데 정신을 팔 수 없다.

나는 브릴린트에게 한 걸음 떨어져서 동료들을 소개했다.

“아무튼 인사들 해. 여기는 이번에 모은 내 동료들, 그리고 이쪽은 성소의 대장장이 브릴린트 누나야. 이 누나도 여신이니까 예의 정도는 갖춰.”

장난기를 담아 말하자 동료들은 얼른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여신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자, 잘 부탁드릴게요!”

그들은 헤베에게 못한 것만큼 하려는 듯 한껏 예의를 갖췄다.

허리는 90도로 깍듯이 숙이고 쓸데없이 목소리를 깔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걸 본 브릴린트를 양뺨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내 어깨를 팡팡 쳤다.

“야, 야아! 친구들한테 뭘 시키는 거야! 난 저런 인사 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라구!”

“에이, 뭘 그래. 위대한 대장장이의 여신님인데 대우 받을 건 받아야지.”

“다키 너 정말……! 친구들도 그만하고 고개 들어! 첫 만남부터 부담스럽잖아……!”

안 그래도 칭찬에 약한 브릴린튼데 남들 앞에서 띄워주니까 눈도 못 뜨며 부끄러워했다.

덩치는 산만한데 이런 데서 수줍어하다니.

그녀도 참 귀여운 구석이 많다.

한동안 브릴린트를 놀려준 나는 일행들을 가리키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 장원 공략에 필요한 장비들 좀 구하려고. 동료들한테도 쓸 만한 장비 좀 맞춰줄래?”

“후우…… 그래, 장비 말이지.”

한참이나 얼굴을 붉히던 브릴린트는 그 말을 듣고 숨을 골랐다.

그리곤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일행들의 장비 상태를 살폈다.

“흠, 다들 괜찮게 관리했네. 하지만 이런 장비론 장원에서 한 시도 못 버틸 거야.”

그리 말하며 곧장 치수를 재기 시작하는 브릴린트.

그녀는 내게 했던 것처럼 몸을 이곳저곳 더듬어서 동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힛?!”

“어, 어어?!”

“자, 잠시만요……! 흐으읏!”

잇따라 남사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정작 브릴린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동안 일행들의 몸을 살핀 브릴린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충 다 알았어! 만들어둔 게 많아서 치수만 좀 조절하면 될 것 같네.”

말하는 것과 동시에 브릴린트는 작업장을 가리켰다.

불을 품은 망치에 작업장까지 증축해서 또 장비가 엄청 쌓인 모양이다.

그녀는 꽉 찬 진열장을 이리저리 둘러봤고 그런 브릴린트를 보며 일행들은 조심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저기 다키야…… 이거 정말 받아도 되는 거야?”

“대장장이 여신님이 만들어준 장비라니, 우리 돈으론 절대 못 살 거라고.”

그들은 브릴린트가 여신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이태리에서 만든 명품 옷, 독일에서 만든 차처럼 게임 세계에선 여신이 만든 장비가 엄청난 이름값을 자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인신의 클랜은 무기 제조로 값비싼 물건들을 유통하기도 하니 가격 걱정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걱정하지 마, 누나는 그렇게까지 비싸게 안 부르니까. 형이랑 누나면 충분히 살 수 있어.”

“뭐? 정말?”

“그래, 유미랑 나나 건 내가 대신 내줄게. 다들 부담가지지 말고 챙길 수 있을 때 챙겨. 다 공략에 필요한 준비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브릴린트는 장비들을 다 찾아놓았다.

그녀는 방어구와 무기들을 선별해 일행들 앞에 늘어놓았고, 일행들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에게 맞는 장비를 고르기 시작했다.

“뭐야 이 메이스 왜 이렇게 가벼워? 그런데 무게 중심도 잘 맞고, 완전 신기해……!”

마음에 드는 메이스를 찾은 니아가 그것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후우웅! 하면서 엄청난 풍압이 일어나더니 옆에서 물건을 고르던 제이드가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니, 니아! 그런 걸 갑자기 휘두르면 어떡해?!”

“앗, 미안 제이드…… 아팠어?”

“아프기 보단 뭔가 보이지 않는 손에 밀려나가는 느낌이었는데…….”

자리를 털고 일어난 제이드도 신기하다는 듯이 니아가 집은 메이스를 바라보았다.

그에 브릴린트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아하핫! 그거 함부로 휘둘렀다간 사람 잡아~ 중력계 효과가 있어서 가까이 있는 건 그냥 날려버리거든.”

“죄, 죄송해요 여신님. 엄청 가벼워서 별로 안 셀 줄 알고…….”

“네 기력이랑 공명을 일으켜서 그런 거야. 원래는 네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무겁지만 기력이 통하면서 가볍게 느껴지는 거지.”

니아의 사과에 손사래 치면서 브릴린트는 친절하게 장비에 관해 설명해줬다.

공격만으로도 충격파와 넉백 효과를 일으키는 한 손 둔기라.

내 생각이 맞으면 거인의 추라는 메이스에 추가 효과를 뚫어 놓은 걸 거다.

브릴린트 누나도 진짜 괴물 같은 장비를 만들어냈군.

옵션이 어떤 지는 정확히 확인해봐야겠지만 니아가 저 무기를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1대1 전투에선 거의 밀리지 않으리라.

“제이드 씨 이 활 어떠세요? 괜찮아 보이지 않나요?”

니아가 장비 설명을 듣고 있을 때 문득 유미가 어떤 활을 찾아 제이드에게 보여줬다.

유미는 내가 상송에게서 파밍한 여신의 자장가를 사용할 예정이다.

그래서 다른 두 사람 보다는 장비를 신경 써서 고를 필요가 없었다.

이미 브릴린트가 그녀에게 맞는 보호 장비를 챙겨준 뒤였던 것이다.

그래서 여유가 남아 제이드의 것을 같이 골라준 모양인데 꽤 괜찮은 걸 찾았다.

검은색 깃털 장식이 된 활, 틀림없이 까마귀 사냥 장궁일 거다.

“괜찮아 보이는데? 이것도 저 메이스처럼 뭐 특별한 기능이라도 달려 있나요 여신님?”

활대를 어루만진 뒤 시위를 당겨보는 제이드.

그에게 브릴린트는 자신 있게 얘기했다.

“그렇고말고. 거기에도 특별한 재료를 사용했거든.”

“특별한 재료요?”

“그래, 밤 까마귀 숲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만든 거라 어두울 때 특히 효율이 좋아. 직접 써보면 바로 알 거야.”

브릴린트의 설명을 듣고 제이드는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밤이나 어두운 곳에서 저 화살을 쏴보면 생각이 확 달라질 거다.

까마귀 사냥 장궁은 주위가 어두울 때 유도 기능이 생기고 발사 속도가 대폭 상승하는 효과를 가졌다.

활을 사용한 암살 플레이에 제격인 무기인 것이다.

마침 장원은 어두운 곳에서 싸울 일이 많으니까 적절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저것만 해도 어지간한 놈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아무렴, 누나 장비를 들고 누굴 상대 못하겠어.”

일행들을 보며 말하는 브릴린트에게 나는 다시금 칭찬조로 이야기했다.

연이은 칭찬에 브릴린트는 또 부끄러워졌는지 시선을 돌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 그보다 다키 네 검도 다 만들어뒀어. 자, 여기.”

그리 말하며 건넨 물건은 검은색 손잡이와 칼집을 가진 도검이었다.

지금까지 써온 쾌도와는 정 반대되는 색상.

그 표면 위에는 은은한 보랏빛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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