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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잃은 장원
나나의 자기소개에 다시 한 번 놀라는 헤베.
뒤로 넘어가려는 그녀를 지탱해주면서 나나가 말을 이었다.
“저 암퇘지는 다키님을 위협한 악당이었어요! 하지만 다키님이 제압했고 교화시키는 중이랍니다!”
“아, 암퇘지? 교화시키는 중이라고요……?”
나나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하자 헤베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워한 그녀였지만 결국 모든 일의 정황을 파악하곤 마음을 가라앉히며 이야기했다.
“그, 그렇게 된 거군요. 하지만 굳이 저런 식으로 교화시킬 필요가 있었나요……?”
“아…… 그게 말이죠…….”
너무 맞는 말이라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파티원을 교화시킬 때 굳이 성적인 조교를 할 필요는 없지.
그것은 오히려 교화하기 보단 타락시키는 거 아닌가.
내가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할 때.
나나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물론 그럴 필요 있죠! 이게 다키님 취향이니까요!”
“……?!”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나도, 헤베도 당황을 터뜨렸다.
나나 이 녀석, 기어이 유언비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여신님 앞에서 말이다.
좆된 걸 느낀 나는 나나를 잡아끌면서 서둘러 부정했다.
“아, 아니에요 여신님! 제 취향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얘가 주도한 거라고요! 나나 넌 무슨 헛소리야!”
부정과 질타를 동시에 할 무렵 헤베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와 나나, 그리고 크림힐트를 번갈아 보는 헤베.
급기야 그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저, 저도 저런 거 할 수 있어요! 서방님이 저런 게 좋으시면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다고요!”
헤베가 눈물을 훌쩍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척 부끄러운 듯했지만 그래도 다른 여자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오기를 부리는 듯했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엽다고 느낀 순간, 이번에는 나나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서방님?!”
헤베가 그랬듯 나와 헤베를 몇 번이나 번갈아본 그녀는 숨을 헐떡이면서 물었다.
“서, 설마 다키님이랑 여신님은 결혼한 사이였던 건가요……?”
“아, 아니 나나야…… 그런 게 아니라…….”
“그러면 저는 유부남을! 그것도 여신님의 남편을 따먹은 거네요?!”
나나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순간 혼란스러운 나였지만 곧 그녀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나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여신의 남편을 상대로 불륜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 없는 것이리라.
이 변태 녀석.
남자 친구한테 다른 여자가 있다는데 화를 내기는커녕 본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흥분하다니.
나나도 참 보면 볼수록 무시무시한 취향의 소유자다.
가끔은 나랑 같은 원래 세계 사람인지도 의심될 정도다.
아니,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지.
어찌되었든 어서 빨리 수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보다 더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 거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대뜸 나나가 헤베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여신님!”
“네, 네?!”
갑작스러운 부름에 화들짝 놀라는 헤베.
나나는 그녀에게 일말의 필터링도 없이 문란한 말을 내던졌다.
“저 여신님 남편 분이랑 섹스했어요! 야외에서 짐승처럼 뒹굴었다구요!”
“……?!”
헤베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느덧 얼굴을 새빨갛게 물든 그녀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서, 서방니이임?!”
나나의 어그로는 대성공이었다.
저 녀석이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폭로한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을 통해 성적인 쾌감을 느끼려는 거겠지.
헤베는 그런 나나의 계획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덕분에 나나는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극도의 배덕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응흐읏……! 하으응!”
아니나 다를까 나나는 음탕한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헤베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 걸 보니까 진짜 이 상황이 어지간히도 좋은 모양이다.
헤베를 통해 흥분하는 나나의 모습은 정말이지 순수한 광기 그 자체였다.
“서, 서방님이……! 외간 여자랑 야, 야외……!”
반면 헤베는 패닉 상태에 빠진 채 같은 말을 반복했다.
큰일이다. 헤베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머리 위에 가시 모양 아이콘이 떠오르며 비이성적인 상태에 빠질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 헤베는 기어이 자신의 새하얀 드레스를 훌렁 벗어던졌다.
“여신님?!”
“우효오오옷!”
나는 대경실색했고, 나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진짜 내 여자친구만 아니었어도 바로 쥐어박았다.
내가 나나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힐 때 헤베가 울분을 터뜨리듯 말했다.
“저도 할 수 있어요……! SM플레이도 할 수 있고 야외 플레이도 할 수 있다구요! 저 말고 다른 여자 분들이랑 그런 걸 하다니, 너무해요……!”
날 똑바로 보며 말하는 헤베는 반쯤 알몸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신체를 가려주는 것이라곤 새하얀 팬티 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아서 봉긋한 가슴은 전부 드러났다.
나 말고 다른 남자들도 있는 와중에 이런 행동을 하다니.
다행히 리단도, 제이드도 여신을 향한 예우를 갖췄지만 엄청난 추태인 건 변함없다.
정말 어지간히도 뒤로 몰렸나 보다. 나나의 광기가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황이 점점 광기로 점철되어 간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나나가 계속 기름을 부어 대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래요, 정실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죠! 자아, 빨리 저한테 빼앗긴 다키님을 다시 빼앗아가 보세요! 제 앞에서 질척하게 뒤섞여 보시라구요~!”
크림힐트가 물고 있는 재갈을 빼다가 나나 입에 물려주고 싶다.
아니, 차라리 어느 한 쪽을 기절시키는 게 좋겠다. 둘 다 기절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고.
나는 참다못해 주먹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가 헤베의 몸을 망토로 가려주었다.
젠틀한 말과 함께 헤베의 몸을 가려준 건 다름 아닌 리단이었다.
“헤베시여, 경거망동하시면 안 됩니다. 방문객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거 놓으세요, 리단……! 저는 정실로서 서방님의 여자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구요~!”
“남들 앞에서 벗는다고 그런 게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그의 만류에도 헤베는 계속 몸부림치며 폭주했지만 적어도 모두의 앞에서 스트립쇼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아예 보따리 싸듯 망토를 꽁꽁 묶은 리단.
그렇게 포장을 마친 그는 헤베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참 유별난 동료를 뒀군, 다키.”
“그, 그렇죠…….”
“다른 친구들은 내가 안내할 테니 넌 여신님 좀 진정시키고 와라. 못 다한 말도 좀 나누고.”
그리 말한 리단은 일행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주위에 있던 천을 떼어 크림힐트에게 덮어주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안내하겠소. 숙소를 보여줄 테니 따라오시오.”
“아, 예…… 감사합니다.”
“우우움…….”
젠틀하고 정숙한 태도에 일행들은 군말 없이 리단을 따르게 됐다.
다들 분수대 앞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 때문에 당혹감에 물들었는데, 리단이 침착하게 나서서 빠르게 진정하는 기색이었다.
과연 전직 호위 기사답다. 자괴감만 털어내면 저 아저씨만큼 괜찮은 남자도 별로 없을 텐데.
반면 나는 여자들이 난동을 부리는 와중 아무 것도 못 해서 좀 부끄러워졌다.
리단 보고 좀 배워야지. 여자 좋다는 놈이 정작 여자를 못 다뤄서 어쩌잔 거야.
아무튼 난 리단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을 품으며 자리를 옮겼다.
참 다사다난한 일이 가득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성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한 차례 소동이 지난 뒤 나는 헤베에게 나나와의 관계를 전부 설명했다.
물론 나나에게도 헤베와의 관계를 이야기해줬다.
눈치 빠른 나나는 내가 하는 말에 그렇구나, 하며 맞장구를 칠 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덕분에 헤베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크림힐트를 포박한 후로부터 이어져온 광기가 비로소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렇군요…… 그러면 데리고 오신 분들은 모두 장원 공략을 위해 모은 동료 분들인 거죠?”
확인 차 묻는 헤베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하루 최종 정비를 한 다음에 내일 아침 출발하려고요.”
“그렇다면 저도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지 말씀만 해주세요!”
내 헤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본격적인 재앙신 토벌 파티가 구성돼서 그런지 헤베도 의욕이 넘치는 듯했다.
물론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아까 보였던 추태를 만회하기 위해서 일부러 화제를 돌리는 것이었다.
또 나나 앞이라서 더욱 기합을 주는 것도 있었다.
본인이 내 본처라는 것을 어필하듯이 말이다.
그런 헤베에게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감사합니다, 여신님. 도움 받을 일이 생기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네, 언제든 기다릴게요. 우선 점심 식사부터 준비해야겠네요.”
그리 말하며 헤베는 발걸음을 돌렸다.
방을 나서던 도중, 문득 그녀는 나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서방님의 본처는 저예요……! 나나님에게 양보하지 않을 거니까요!”
못이라도 박듯 선언한 헤베.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헐레벌떡 주방으로 뛰어갔다.
나름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지만 막상 이야기하고 나니 부끄러운 모양이다.
“머꼴.”
“…….”
복도를 달리는 헤베의 뒷모습을 보며 나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나나는 헤베가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녀의 이상성욕을 충족시켜줘서 그런 걸까.
아니 그걸 떠나서 헤베는 생긴 것부터 하는 짓까지 나나가 좋아할 만한 타입이었다.
유미를 좋아하는 걸 보면 이 녀석도 나처럼 오타쿠 취향일 테니까.
어찌되었든 두 사람 간의 관계는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남자 하나에 여자가 둘인데 서로 싸울까봐 걱정하기 보단 한 쪽이 다른 쪽을 추행할까봐 걱정하다니.
참 나와 그녀들의 관계도 기괴하구나 싶었다.
“그러면 우리도 슬슬 움직일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나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어디로 가는데요?”
“다른 여신님한테 장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거든. 네 것도 맡겨놨으니까 받아오자.”
“오오! 새 장비라니! 그런 건 또 언제 맡겨 놓으신 거예요~!”
여신이 만든 장비라는 말에 나나는 기대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금 나나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는 전부 캐릭터 생성할 때 지급하는 초보자 장비들이다.
어느 모로 보나 뉴비티가 나는 장비들이니 그녀도 슬슬 다른 걸로 바꾸고 싶었을 테지.
그게 아니더라도 장원 공략을 위해선 나나도 새 장비를 착용할 필요가 있다.
장원은 정말 빡센 던전이다.
나랑 니아가 전력을 다해 지킨다고 해서 나나가 맞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최소한 한 대 맞고 죽지 않을 정도로 장비를 맞춰야만 한다.
신나하는 나나를 데리고 숙소를 나온 직후, 나와 나나는 니아 일행과 재회하게 됐다.
“앗, 스승님……!”
제일 먼저 날 발견한 건 유미였다.
그녀는 주인을 본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날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 뒤를 니아와 제이드가 따랐다.
헤베와 이야기하는 동안 짐을 다 풀어뒀는지 그들은 장비를 벗은 편안한 차림새였다.
리단한테 여기는 안전하다는 얘기도 들은 모양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무기 정도는 소지하고 있었다.
“여어, 다키. 제수씨는 잘 달래드렸냐?”
“불경하게 무슨 소리야……! 아무리 그래도 여신님인데 경박한 소리 좀 하지 마!”
나를 보자마자 장난스럽게 말하는 제이드.
그에 니아는 제이드의 머리를 톡 치면서 다그쳤다.
괜히 까불거리다가 한 소리 들은 제이드였지만 그는 오히려 히죽거리며 반박했다.
“왜? 틀린 말도 아니잖아? 아내 대접 받아서 여신님도 좋아하실 거 같은데.”
“미쳤어 진짜. 바리님이나 스쿨드님 앞에서 그랬으면 넌 쥐도 새도 모르게 시체가 됐을 거야.”
질렸다는 듯이 말하는 니아였지만 그녀의 말은 비단 농담이 아니었다.
신들은 어지간히도 프라이드가 높은 족속들이다.
그 중에서도 지배신들은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당장 스쿨드도 나한테 차였다는 이유로 동료들을 모두 죽이고 날 납치하려 하지 않았는가.
그런 신들의 연애사를 가십거리 삼아 떠들면 어떻게 될 지는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제이드의 판단은 정확했다.
여신을 부르는 칭호치곤 너무 가벼운 느낌이 있지만 헤베는 분명 제수씨라는 호칭을 좋아할 것이다.
내 본처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호칭이니 말이다.
만약 이 자리에 본인이 있었다면 '맞아요! 전 제수씨예요!' 라며 적극적으로 동의했으리라.
“뭐 어때, 형 말대로 틀린 말도 아니잖아.”
옥신각신 하는 니아와 제이드 사이에 끼어들며 긍정했다.
그러자 니아는 화들짝 놀랐고, 마찬가지로 놀란 기색을 보이던 유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러면 스승님은 정말 여신님의 낭군님인 건가요……?”
유미가 물으니까 새삼 대답하기 어려워졌다.
마치 전여친에게 지금 여친을 소개시켜주는 기분이라고 할까.
썩 편한 기분은 아니었으나 여기서 괜히 다른 말을 했다간 나중에 헤베가 서운해 할 것이다.
이렇게 된 거 대놓고 말하는 편이 좋겠지.
나는 할 말을 정리한 뒤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정확히는 내 전생의 아내야. 현생에선 아직 결혼까진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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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진행이 더뎌서 정말 죄송합니다.
떡씬을 바라신 분들에겐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빠른 진행을 위해 성소에서의 자잘한 스토리는 전부 넘기고 장원 파트로 들어가겠습니다.
크림힐트의 본격적인 조교랑 브릴린트와의 떡씬은 스토리 진도 좀 뺀 다음에 후일담 등으로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