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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그 자체
그녀의 발밑에는 웬 몬스터가 골통이 깨진 채 쓰러져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몬스터를 보고 나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펴 보았다.
나나는 제이드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었고 유미는 죽은 괴물들의 시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들이 잡은 괴물들은 도합 5마리는 되는 듯했다.
이놈들 때문에 지원을 못 온 거였구나.
그보다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지?
정황을 깨달은 나였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그에 나는 시체를 확인하며 니아에게 물었다.
“얘네들은 다 뭐야? 습격 받았어?”
“후하아…… 트롤이 사라지자마자 갑자기 공격했어. 소란을 받고 몰려온 것 같아.”
수통을 들이킨 니아는 한 결 나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가 거친 숨을 내쉬면 이유는 다름 아닌 몬스터들의 습격 탓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시체를 확인해 본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이어 울프…….”
일행들이 처치한 몬스터는 다이어 울프였다.
식인 들개랑 비슷한 패턴을 가진 몬스터로 여럿이 덤비면 들개만큼이나 끔찍하다.
하지만 이쪽도 그만큼 인원수가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다.
내가 없었어도 균형 잡힌 우리 파티라면 충분히 잡고고 남는 상대다.
문제는 놈들의 스펙이 아니다.
시체들의 생김새는 일반적인 다이어 울프와 많이 달랐다.
베이스는 분명 늑대인데 새의 특징이 보였다.
털 대신 깃털이 돋아 있고 주둥이 끝에는 부리 같은 게 나 있었던 것이다.
다리도 늑대의 것이라기 보단 조류의 것에 더 가까웠다.
마치 늑대와 조류를 뒤섞어 놓은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
그것을 본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니아를 올려다봤다.
나와 눈을 마주친 직후 니아도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율리아나 근처에서 몇 년 동안 활동했는데, 이런 몬스터는 듣도 보도 못 했어.”
“우리 그런 게 아니라 누구든 그럴 걸. 깃털 달린 다이어 울프라니, 무슨 아울 베어도 아니고…….”
니아의 말에 제이드도 맞장구쳤다.
두 사람의 말이 맞다. 다이어 울프 중 깃털이 달린 개체는 없다.
나 역시 그런 몬스터가 있다는 정보는 난생 처음 듣는다.
그 말은 원작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란 뜻.
DLC, 즉 이번 아테르니아 사태로 인해 만들어진 몬스터란 뜻이리라.
“스승님…… 잠시 괜찮을까요……?”
“응? 유미야?”
시체를 살펴보던 유미가 문득 말을 걸어왔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불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조금 전까지 늑대의 혼령들하고 대화해 봤어요……. 이 아이들, 죽기 전에 웬 커다란 새를 봤다고 해요.”
“새라면…….”
“네…… 길드에서 세이나 씨가 보여준 그림이랑 비슷한 새였어요. 새라기 보단 사람 같은 모습의…….”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불길한 낌새를 느꼈다.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한 커다란 새.
분명 지혜 잃은 장원의 엘리트 몬스터인 맹금의 기사일 거다.
숲에서 서식하는 다이어 울프들이 놈을 봤다는 건 이 근처에서 놈이 활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늑대들은 아마 그놈과 접촉한 후 이러한 형태로 변한 거겠지.
“그게 언제 일이라는데? 그것도 알 수 있어?”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에요…… 늑대들과 마주친 후 그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고…….”
유미의 말을 들으니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설마 의도적으로 저주를 퍼뜨린 건가?’
맹금의 기사와 늑대의 조우는 결코 평화롭지 않았으리라.
다이어 울프들은 분명 기사에게 적의를 가지고 덤벼들려 했겠지.
그런데도 기사가 그냥 마주치기만 하고 떠났다면 놈의 목적은 사냥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직후에 늑대들이 이렇게 변했다면 저주를 퍼뜨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장원 안의 몬스터가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다.
그런데 다른 몬스터들에게도 재앙신의 기운을 심어 넣다니.
대체 장원의 괴물들은 뭐가 목적인 거지?
‘아테나가 이 모든 일을 꾸민 건가? 그 여신이?’
불현 듯 원작 게임에서 만났던 아테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아테나는 그런 짓을 벌일 만한 여신이 아니다.
무엇보다 재앙신이 된 시점에서 그녀에게 이성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다.
추종자들에게 수준 높은 명령을 내리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원작에서 그랬다고 게임 세계에서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지.
당장 스쿨드만 해도 원작 게임과 성격이 많이 다르지 않은가.
아테나도 게임 세계의 변수로 뭔가 이변을 겪었다면 그녀의 주도 하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어찌됐든 장원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야…….”
“그래, 이놈들은 분명 장원의 영향을 받은 게 틀림없어. 그게 아니면 깃털 달린 늑대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여긴 장원이랑 꼬박 하루나 떨어져 있는데…….”
나와 제이드가 의견을 모을 때 니아가 의심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하지만 장원의 몬스터들 앞에서 그 정도 거리는 무의미하다.
“거기 괴물들은 대부분 비행이 가능해. 우리한테 하루 걸리는 거리도 몇 시간 정도면 충분히 오갈 수 있겠지.”
“뭐야…… 그러면 어디에서든 그 괴물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거 아니야?”
“장원 근처는 더 심할 테고…….”
하루 거리인 숲에 있는 몬스터들까지 변이가 시작됐다면 장원 근방의 상황은 더욱더 심각하리라.
이러한 현상이 율리아나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여유 부릴 틈은 없을 것 같아. 내일 당장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하자.”
내 말에 일행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그저 보상과 성장을 위해서만 장원을 공략하려 했다.
허나 이제는 그냥 두면 안 될 정도로 중대한 문제가 됐다.
* * *
성소로 향하기 전, 우리는 다이어 울프들의 시체를 적당한 곳에서 전부 불태웠다.
다이어 울프 무리는 고작 맹금의 기사와 마주친 것만으로 변이가 진행됐다.
그 말은 시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장원의 힘이 퍼질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하물며 다른 짐승들이 다이어 울프들의 시체를 포식을 가능성도 있다.
훨씬 더 호전적인 장원맛 괴물들이 더 늘어나는 걸 방치할 수는 없지.
그리하여 우리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시체들을 처리한 것이다.
“저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돼?”
불탄 늑대들의 재를 땅에 묻인 직후.
니아가 부담스러운 어조로 내게 말했다.
늑대들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지적한 것은 다름 아닌 크림힐트의 행색이었다.
“당연하지. 이 녀석이 우리 가는 길 봐두면 좋을 거 없다고.”
그리 말하며 나는 제이드에게 받은 헝겊으로 크림힐트의 눈을 묵었다.
즉석으로 만든 안대는 크림힐트의 시야를 확실하게 가렸다.
팔도 구속되어 있는 그녀에게 안대까지 씌우니까 참 가학적인 광경이 연출됐다.
크림힐트의 복장도 복장이라 누가 보면 엄한 짓 하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스쿨드와 합의를 했어도 성소로 가는 길까지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안다고 해서 멋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이유로 씌운 안대인데, 크림힐트는 생각보다 순순히 따랐다.
구속할 때와는 달리 일절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웬일로 아무 말도 없냐? 또 구시렁구시렁 거릴 줄 알았더니.”
내 물음을 듣고 크림힐트는 슬쩍 내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보는 건 아니지. 검은색 천이라 실루엣으로도 안 보일 테니까.
아무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두운 건 싫어하지 않으니까. 이러고 있으니까 마음도 안정되고 좋아.”
“뭔…… 야 너 지금 나한테 끌려가는 거야. 보통은 무서워해야 정상이라고.”
“어머, 걱정해주는 거야?”
순간 크림힐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뭐랄까, 날 놀려먹으려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진 내가 할 말을 잃을 때, 유미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앗……! 그 기분 저도 알겠어요…… 어두우면 확실히 마음이 편해지죠.”
“그, 그래……?”
“네, 그래서 저는 잘 때 항상 안대 쓰고 자요. 아니면 침대 밑에서 자거나.”
느닷없이 유미의 이상한 취향을 들어버렸다.
잘 때 안대 쓰고 자는 건 이해하겠는데 침대 밑에 들어가는 건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침대 밑은 언제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공간이란 말이다.
그런 곳에 들어가서 잔다니, 난 상상도하기 싫다.
물론 유미는 주술사라서 귀신이 안 무섭겠지만.
“아, 아무튼 난 너 같은 거 개뿔도 걱정 안 되거든! 너한테 칼빵까지 맞았는데 걱정이 되겠냐!”
“그래…… 네 마음 잘 알겠어.”
내 말에 크림힐트는 잔잔한 어조로 대답했다.
마치 츤데레 히로인을 다루는 라노벨 남캐 같은 어투였다.
아니 이러니까 내가 이 여자한테 존나 츤츤거린 거 같잖아.
내가 실로 오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무렵.
문득 나나가 크림힐트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잠깐만요 다키님!”
“넌 또 왜?”
“다키님을 다치게 한 년인데 취급이 너무 좋잖아요! 저는 좀 더 험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나의 어투에는 분노가 한껏 담겨 있었다.
하긴, 그녀 입장에선 크림힐트가 결코 달갑지 않을 거다.
늑대 시체 처리하며 사정은 다 말해뒀지만 어찌됐든 그녀 때문에 나도, 니아도, 제이드도 많이 다쳤으니까.
특히나 나나는 내가 다친 것 때문에 원한이 많이 쌓인 모양이다.
그런 나나를 보며 나는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했다.
“방금 전까진 적이었어도 이젠 우리 파티원이야. 너무 막 다루는 건 서로한테 안 좋아.”
나나의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크림힐트는 내일 공략에서 마법 딜러를 맡을 예정인 중요 인물이다.
괜히 분풀이 한답시고 이런 짓 저런 짓 했다가 그녀 컨디션에 문제라도 생기면 곤란해지는 건 이쪽이다.
합의도 본 시점에서 여자애한테 몹쓸 짓을 하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그 왜 적들에게도 예의를 갖춰라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러한 이해심을 나나에게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나나는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더욱 분개하면서 말했다.
“다키님은 사람이 너무 좋아요! 이 년은 이제부터 우리 노예잖아요! 자기 신분을 깨닫게끔 조교할 필요가 있어요!”
“그건 맞는데…… 어떻게 교육하게?”
“이렇게요!”
내가 나나에게 질문한 직후였다.
짜아악!
“……!”
“흥읏……?!”
나나가 크림힐트의 젖가슴을 세게 후려쳤다.
난데없는 손찌검, 그것도 젖가슴을 향한 손찌검에 나와 크림힐트 본인은 물론 주위에 있던 모두가 크게 놀랐다.
한 차례 정적이 흐르고나서야 손찌검 당한 본인이 당황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이,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야……?”
다소 무감정해보이던 그녀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슴을 맞았는데 태연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에 나나는 양손으로 크림힐트의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하으읏!?”
“뭐긴 뭐예요 조교지! 잘 들어요, 이 젖통 큰 암퇘지! 넌 우리 노예예요! 네 음탕한 몸뚱이를 어떻게 다룰지는 우리 마음이라 이거예요!”
사납게 말하면서 나나는 크림힐트의 젖가슴을 과격하게 주물렀다.
마치 반죽하는 것과도 같은 거친 손길이었다.
손가락이 파묻힐 정도로 주무르자 크림힐트는 결국 큰 소리로 신음을 흘려댔다.
“그, 그만…… 하아앗……! 하앙! 아하앙!”
어떻게든 신음을 참아보려 한 크림힐트였지만 나나의 손길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녀는 급기야 유두가 속옷 위로 드러날 만큼 흥분하여 연신 교성을 흘렸다.
옆에 있던 동료들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할 말을 잃었고 나나는 주머니에서 웬 재갈 같은 것을 꺼내 크림힐트에게 물렸다.
“이 음탕한 암퇘지 같으니! 젖통 한 번 만져주니까 아주 좋아 죽는군요! 돼지 같은 울음소리 듣기 싫으니까 이거나 무세요!”
“으후웁! 우웁!”
재갈을 문 크림힐트는 더욱 힘겨워 하며 몸부림쳤다.
그런데 그 재갈의 모양이 좀 묘했다.
평범한 재갈이라기 보단 성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 같은 모양새였던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심란한 심정으로 나나에게 물었다.
“너 그런 건 또 어디서 났어……?”
“당연히 성인 용품점이죠! 이럴 때 쓰려고 산 건 아닌데 사두길 잘 했네요!”
그리 말한 나나는 연이어 크림힐트의 가슴을 후려쳤다.
조교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나나가 너무 당당하게 해서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인가 가슴을 자극한 나나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아, 하아……! 좋아요, 이제 다키님 차례! 아주 그냥 조져버리세요!”
그리 말하며 꺼낸 건 검은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채찍이었다.
재갈에 이어서 채찍까지 나오다니.
나나는 대체 성인용품점에서 얼마나 쇼핑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얼떨결에 가죽 채찍을 받아들었다.
뭐랄까, 어처구니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나나 말대로 크림힐트는 우리들의 노예나 다름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나는 크림힐트 때문에 피까지 봤다.
얼마든지 보복을 가할 수 있는 입장인 것이다.
그녀도 사람을 해치려 한 이상 이 정도는 각오했겠지.
어물쩍 넘어가는 것도 별로 좋지 않으리라.
괜히 아량을 베풀었다가 호구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은가.
여기선 나나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나는 더욱 과감하게 말했다.
“나나야, 네가 옷 좀 벗겨줄래?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