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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71화 (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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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그 자체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러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마법사를 보며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허나 금세 마음을 다 잡고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 여자……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전혀 안 웃고 있어.’

마법사의 얼굴을 직시한 나는 어색한 부분을 발견했다.

얼핏 봤을 때는 진심으로 나와 몸을 섞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히 살펴보면 그것이 연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법사의 웃음은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웠다.

웃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명령으로 억지로 웃는 것 같았다.

수줍어하는 태도나 음란한 어투도 전부 꾸며낸 것.

즉, 지금 마법사가 보여주는 태도는 미인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산양의 뿔이 있으니 완전 연기는 아니겠지만……. 사창가에서 만났던 창부들이랑은 다른 느낌이야.’

찝찝함을 느낀 나는 곧 그녀의 심리를 이해하게 됐다.

현 시점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 나다.

마법사는 내 변덕 하나에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미인계를 사용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데, 살기 위해서 미인계를 안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마법사는 자신의 처지에 맞게 현명한 대처를 하고 있는 거다.

‘뭔가 썩 기분 좋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막 다루는 행보에 조금 거부감을 느끼길 잠시, 나는 다시금 마법사의 몸을 바라보았다.

어찌됐든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때부터 굉장히 꼴리는 차림새구나 싶었다.

젖꼭지와 보지만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슬링샷 비키니에 안쪽이 비쳐 보이는 시스루 로브라니.

어떤 사람 머리에서 나온 디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먹어 달라고 시위하는 꼴이다.

이렇게 입은 여자가 자길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데 발기하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

적어도 정상적인 성기능이 가능한 남자 중에선 없을 거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한 남자들 중 한 명이었고 끝내 흥분을 참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몸을 밀착함으로써 느껴지는 그녀의 온기와 체취가 나의 욕정을 더욱 부추겼다.

차가운 블루베리와도 같은 향기, 그녀의 냉철한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리는 향이었다.

이런 것들이 한 데 모이니 자지가 발딱 서버리고 말았다.

“어머…….”

내가 발기한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 때, 마법사도 내 발딱 선 육봉을 눈치 챘다.

그럴 만도하지, 나랑 그녀는 상당히 밀착해 있으니까.

크기도 워낙 커서 조금만 움직여도 내 자지가 그녀의 엉덩이에 닿았다.

“벌써부터 의욕적이네……. 내 몸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크읏……!”

다음 순간, 마법사는 자지의 감촉을 확인하듯 엉덩이를 더욱 뒤로 뺐다.

덕분에 내 자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에 비벼져서 쿠퍼액을 왈칵 쏟아내고 말았다.

팬티가 순식간에 젖었고 그녀의 살결에도 자지물이 묻어 버렸다.

“이렇게나 딱딱하게 세웠으니까 승낙한 걸로 봐도 되지……?”

무덤덤하게 고개를 돌린 마법사가 내 눈을 응시했다.

남자가 자길 보고 욕정하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기색이었다.

얼굴은 얼음장 같은데 몸은 계속해서 날 유혹했다. 그 둘의 부조화가 색다른 흥분을 안겨줬다.

저 무뚝뚝한 얼굴을 음탕하게 바꾸고 싶다.

담담한 태도를 바닥에 내던지게 하고 발정난 암캐처럼 앙앙 울게 만들고 싶어졌다.

왼팔에 스며든 검은 산양이 나를 계속해서 꼬드겼다.

네 목숨을 노려 놓고 몸으로 때우려 하다니.

그런 건방진 암컷에겐 합당한 벌을 내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옷을 벗어던지고 저 년을 마구잡이로 범해라.

누가 위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거다.

“으읏……!”

그 말에 곧이곧대로 따를 뻔한 나였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역시 마법사와 섹스하고 싶다. 허나 꼭 지금 따먹을 필요는 없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성소가 나온다.

이미 비무장 상태가 된 그녀를 성소까지 데려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왕 섹스하는 거 야외에서 위태롭게 할 필요는 없지.

무엇보다 지금은 다른 동료들도 같이 있고 말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마법사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하으읏……!”

“수작 부리지 말고 하란 대로만 해. 언제 따먹을지는 내가 정할 거야.”

“하아아…… 그런 거치곤 당신도 하고 싶은 거 같은데. 내 엉덩이는 마음에 들어……?”

무표정한 얼굴로 도발하는 마법사.

나는 그녀에게 다키는 무어라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방금 전의 행동도 굳이 할 필요가 없는데 사심 때문에 한 거였으니까.

그래도 적에게 놀아날 생각은 없다.

나는 그녀에게 한 걸음 떨어진 뒤 칼을 들이밀며 지시했다.

“됐으니까 손 위로 올린 다음에 무릎 꿇어. 움직이면 바로 칼 맞을 줄 알아.”

“그래, 얼마든지.”

쿨하게 대답한 마법사가 바닥에 무릎 꿇었다.

나는 그녀에게 칼을 겨눈 채 천천히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진 빙환경을 줍기 위해서였다.

빙환경을 주울 때도 마법사는 이렇다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날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투항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빙환경을 집어 들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면에 패턴을 그려 넣자 거울이 환하게 빛났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울 위로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이야 크림힐트! 일처리 빠르네~ 우리 귀여운 신입은 어떻게 됐... 꺄아악?! 가, 감다키?!]

거울 속에 비친 앳된 미모의 여성이었다.

별빛처럼 빛나는 금색과 보라색의 투톤 헤어. 그 모습을 보아하니 스쿨드 본인인 듯했다.

연락을 받은 스쿨드는 내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대경실색했다.

빙환경에는 제압한 몬스터를 포획하는 것과 동료들과 연락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평범한 거울에 빙환경의 힘을 불어넣으면 장거리 연락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크림힐트가 연락할 거라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내 얼굴이 보이니 놀랄 만도 하겠지.

그렇게 스쿨드와 연락한 나는 불쾌한 어조를 드러내며 말했다.

“처음 뵙네요 스쿨드님. 아니, 처음은 아닌가? 정황상 그때 당신도 있었을 거 같은데.”

“……!”

내 인사를 받은 스쿨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지배신 중 한 명인데 당황해서 말도 못하는 꼴이라니.

웃기면서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사진이라도 찍고 싶다.

“무, 무슨 말을 하는지 스쿨드는 잘 모르겠는걸~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나~”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길 잠시, 스쿨드가 어렵사리 대답했다.

그녀는 온갖 귀여운 척을 다 부리면서 모른 채했다.

앙증맞게 애교 부리는 스쿨드의 모습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귀여웠지만 나는 냉담히 받아쳤다.

“발뺌하시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죠. 오늘 있었던 일을 다른 곳에 알리는 수밖에요. 이를 테면 경비대라거나.”

“뭐, 뭐라구?!”

협박조로 으름장을 놓자 스쿨드도 더 이상 발뺌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초조한 기색으로 말을 걸어왔다.

“자, 잠깐만 오빠! 이, 일단 진정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이야기하는 게 어때?! 대형 클랜을 고소하겠다니, 오빠한테도 전혀 좋은 일이 아닐걸!”

스쿨드의 말도 맞다.

비록 힘을 사용하는 게 제한될지라도 그녀는 엄연히 지배신이다.

게다가 율리아나에서도 손에 꼽는 대형 클랜을 거느리고 있을 테니 공권력의 힘을 빌려도 상대가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믿을 구석이 경비대 밖에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안타까운 어조로 스쿨드에게 말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보네요. 제가 경비대한테만 말할 거 같아요?”

“그, 그러면 또 어디에 말할 건데?”

“요즘 서천 클랜이랑 친해졌거든요. 듣기로는 바리님이랑 스쿨드님 사이가 별로 안 좋다는 거 같은데, 그분한테도 얘기할까요?”

서천과 바리까지 언급되자 스쿨드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원작에서도 바리와 스쿨드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관계였다.

지배 영역이 겹치는데다 성향의 차이도 있어서 사이가 영 나빴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바리한테 떡밥을 던져준다면 어떻게 될까.

무슨 일이 벌어지든 결코 스쿨드에게 좋은 일은 아닐 거다.

“이, 이잇! 여기서 그 년 얘기가 왜 나와?! 이 일이랑은 관계없잖아!”

“지금은 그렇죠. 계속 관계없길 바라면 협박하려 들지 마세요. 안 그래도 충분히 기분 안 좋으니까요.”

으름장을 놓은 뒤 나는 위치를 바꿔 크림힐트를 보여주었다.

스쿨드와 나 사이의 갑을 관계를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였다.

“크, 크림힐트……?”

속옷 차림으로 무릎 꿇고 있는 크림힐트를 보며 스쿨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는 누가 봐도 패배한 꼬락서니를 한 채 거울을 보며 말했다.

“죄송해요 여신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스쿨드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크림힐트.

이번에도 별로 미안한 기색은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스쿨드는 크게 충격받은 듯했다.

“보내주신 클랜원은 제가 제압했어요. 여신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오늘 있었던 일이 세간에 알려질 수도 있고, 안 알려질 수도 있죠.”

“뭐?! 그건 안 돼!”

내 말을 듣자마자 스쿨드는 눈에 불을 켜고 소리쳤다.

경비대, 서천 클랜에 이어서 율리아나 전역에 폭로하겠다니.

내가 정말 전부 까발린다면 스쿨드와 그녀의 클랜은 굉장히 난처해질 것이다.

‘스쿨드는 이래저래 적이 많으니까.’

솔직히 대형 클랜이 평범한 모험가를 묻는 일 같은 건 어디서나 빈번히 일어날 거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서 용납되는 일인 건 아니다.

유르돌리아에도 엄연히 법이 있고, 특히 모험가들의 범죄는 강력히 처벌된다.

더군다나 스쿨드는 바리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여신과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다.

오늘 있었던 일이 세간에 퍼지면 아마 두 여신 모두 이를 약점 삼아 스쿨드를 공격할 것이다.

그녀의 클랜은 범죄 조직처럼 꾸며서 묻어버리려 들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추측한 나는 스쿨드를 연이어 몰아 붙였다.

“원치 않으면 제가 입 다물 만한 조건을 걸어보세요. 이번 일에 대한 거, 다 어떻게 보상하실 거죠?”

“보, 보상이라구?”

내 질문에 스쿨드가 얼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당황스러운 일이 잇따라 벌어져서 머리가 따라오지 못하는 듯했다.

“여신님의 터무니없는 짓 때문에 저랑 제 동료들이 위험에 처했잖아요. 그럼 당연히 사과의 보상이 있어야죠.”

“아, 아아~! 그거 말하는 거였구나! 그래 보상! 당연히 해주지!”

내 설명을 듣고 스쿨드는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그리곤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아양을 부리기 시작했다.

“정말 미안해 오빠아…… 오빠가 너무 좋아서 스쿨드도 모르게 심한 짓을 해버렸지 뭐야…… 스쿨드가 뭘 해주면 오빠 기분이 풀릴까……?”

가녀린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베베 꼬는 스쿨드.

진짜 이 여신님은 뼛속까지 시커먼 거 같다.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려 했으면서 일이 안 풀리니까 입 싸악 씻고 넘어가려 하다니.

귀여운 것과는 별개로 여러모로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그녀를 상대로 심한 짓을 할 수는 없다.

지금이야 아무 짓도 안 해서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거지, 진짜 빡치게 만들면 스쿨드 쪽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거다.

세간의 이미지 같은 건 뒤로 하고 나부터 조지려 들겠지.

내가 아무리 고인물이라 해도 수많은 클랜원들을 상대로 맞서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서 가장 훌륭한 대응책은 이번 일을 약점 삼아서 그녀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것이다.

그리 생각한 나는 뭘 요구할지 고민했다.

‘뭐가 좋을까?’

이것저것 떠오르긴 했지만 너무 무리한 걸 요구하면 저 쪽에서도 배 째려 할지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적당한 것을 요구해야 한다.

나한테 도움이 되고, 스쿨드 역시 거절하기 힘든 요구를 말이다.

한동안 고민한 끝에 뭘 받을지 결정했다.

나는 무릎 꿇고 있는 크림힐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 저한테 빌려주세요.”

[뭐……?!]

“……?”

내 말에 스쿨드도, 크림힐트도 놀랐다.

한순간 적막이 지나더니 이내 스쿨드가 기가 찬 얼굴로 되물었다.

[크, 크림힐트를? 걔를 어디에 쓰려고?!]

[내일부터 지혜 잃은 장원에 들어갈 건데 마법사 한 명 필요해서요. 실력 보니까 데려가면 쓸모가 많을 거 같네요.]

시원스러운 대답에 두 사람은 또 다시 놀랐다.

크림힐트는 눈을 크게 뜨며 날 바라봤고 스쿨드는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우리 애를 그 지옥도로 끌고 가겠다고?! 절대 안 돼!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해!]

항의하듯 소리치는 스쿨드.

그녀는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합의금도 달라고 할 거예요. 제가 고작 클랜원 빌리는 걸로 입 다물 거 같아요?”

[이, 이잇……!]

스쿨드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이를 악 문 그녀는 입 안 가득 모인 욕설을 어떻게든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게 날 무시하지 말았어야지.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스쿨드가 날 너무 얕잡아본 것에서 기인했다.

내가 크림힐트를 제압할 거란 가능성을 1도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여서 이 사단이 난 것이다.

그녀가 날 과소평가하지 않고 크림힐트 외에도 다수의 클랜원을 파견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자만의 대가는 큰 법이다.

나는 그걸 이 철부지 여신님에게 뼈저리게 알려줄 생각이다.

============================ 작품 후기 ============================

역관광 당한 여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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