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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그 자체
순식간에 제압된 여마법사.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날 돌아보려 했다.
허나 나는 그녀가 움직이는 것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목덜미에 가져간 칼을 더욱 바짝 대며 그녀를 꽈악 끌어안았다.
그로 인해 마법사는 꼼짝도 못하게 됐다.
그녀가 움직일 수 없는 걸 확인 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빙결 법사치곤 패턴이 너무 단순하단 말이야. 실력은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연습 좀 해야겠는데?”
“으읏…….”
지적받은 마법사는 분개하듯 신음을 흘렸다.
본래 빙결 마법은 근거리, 중거리에서 다채로운 공격을 펼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대부분의 주문에 동상 또는 동결 효과가 붙어 있어서 적을 얼리고 다양한 공격을 퍼붓는 게 주된 전략인 것이다.
‘얼음 쐐기를 맡았다면 내 쪽이 엄청 불리해졌겠지만.’
마법사가 단순한 패턴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 번째 공격, 얼음 쐐기가 빗나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날 몰아붙이기 위해 근거리에서 효율이 높은 주문들을 사용했다.
한 대라도 맞춰서 동결 상태로 만들어야 자신이 다른 주문들을 영창할 시간이 생기니까.
애당초 얼음 쐐기를 맞췄다면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 내가 혼령화를 써서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상송의 망토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죽은 상송에게 잠시 감사하고 있을 무렵 마법사가 다시금 질문해왔다.
“……내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그녀는 본인의 존재가 발각된 것이 의아한 모양이다.
그에 나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줬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지. 날은 이상하게 춥지, 트롤은 세 마리씩 몰려다나지, 이쯤 되면 빙경환을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
빙경환.
유저들 사이에서 흔히 포켓볼이라 불리는 거울 형태의 유물이다.
효과는 제압한 몬스터를 포획하는 것으로 포획된 몬스터는 능력치가 약화된 채로 플레이어에게 사역된다.
얼핏 들어보면 개사기 같지만 원작에선 그렇게 잘 쓰이는 유물이 아니었다.
몬스터 본연의 힘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없는데다가 가디스 던전의 AI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서 마음대로 다룰 수도 없다.
힘들게 잡아봤자 헛짓만 하다가 죽어버리니 실전에서 사용하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보통 예능용으로 사용하는데, 나는 이걸로 컨텐츠를 몇 번 만든 적이 있어서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당신…… 어떻게 빙환경을 알고 있는 거야……?”
내 대답을 듣고 마법사는 화들짝 놀랐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리는 동공을 보면 어지간히도 충격적인 모양이다.
확실히 빙환경은 희귀한 유물이긴 하다.
게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물건이기도 해서 세간에는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빙환경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여자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리라.
‘너무 아는 척 했나.’
뒤늦게 그리 생각한 나였지만 이미 입 밖으로 꺼낸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목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당장 소환 해제하고 거울 버려.”
“…….”
내 협박에 마법사의 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협박이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빙환경의 작동 원리까지 알고 있는 걸 보고 한 차례 더 당황한 듯했다.
설마 이거 스쿨드 쪽 클랜의 1급 비밀이라거나 그런 거 아니야?
마법사가 너무 당황해서 나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행여나 기밀을 들켰다고 자결하지는 않겠지.
돌발 행동을 하지 않나 계속 경계했지만 그녀는 의외로 순순히 거울을 내려놓았다.
챙그랑!
쇳소리를 울리며 바닥에 떨어진 빙환경.
유물을 내려놓은 그녀는 얌전히 양손을 들어 올리며 내게 말했다.
“시키는 대로 했어…… 나는 이제 완전히 비무장 상태야…….”
일말의 거짓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마법사.
하지만 내게는 우습게 들릴 뿐이었다.
마법사의 말에 나는 코웃음 치며 얘기했다.
“까지 말고 손에 차고 있는 보옥도 빼. 내가 설마 모를 줄 알았어?”
“…….”
허리를 끌어안던 손으로 왼손을 붙잡자 마법사는 낭패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녀는 웬 보석 장식을 착용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그냥 장식품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건 보옥이라 불리는 마법 무기다.
근접전을 주로 하는 마법사들이 애용하는 물건으로 지팡이와 다르게 캐스팅 없이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
단 마법을 저장하는 방식인데다가 몇 번 쓰면 부서져서 통상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딱 지금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쓰기 위한 보조 무기인 것이다.
“알겠어…….”
내 말을 듣고서야 마법사는 손에 찬 보옥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가 뭣 모르고 안심했다면 캐스팅 없이 날아온 마법을 맞아서 전세가 역전됐으리라.
완전히 비무장 상태가 된 걸 확인한 나는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본 뒤 마법사에게 물었다.
“어제 모험가 길드에서 본 얼굴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지? 너 혼자 온 건 아닐 거 아냐?”
그때 당시엔 이 여자 말고 세 명의 파티원이 더 있었다.
스쿨드가 작정하고 날 잡으러 온 거라면 그보다 더 많은 인원이 있을 수도 있다.
언제라도 기습이 가해질 수 있는 상황. 그렇기에 나는 긴장한 채로 마법사에게 정보를 캐내려 했다.
“……지금은 나 혼자야. 동료들은 오지 않았어.”
“이미 한 번 속이려 했는데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바른 대로 말 안 해?”
“정말이야…… 나 혼자 왔다면 당신이 이러고 있는 걸 동료들이 방치할 리 없잖아.”
강압적인 내 말에 냉정히 반박하는 마법사.
워낙 무감정해서 진의를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정황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당시 이 여자의 파티에는 궁수도 있었다.
그녀가 함께 왔다면 난 진즉에 저격당했을 거다.
아니, 저격당하는 걸 떠나서 이런 식으로 마법사를 제압할 수도 없었겠지.
마법사의 말을 믿기로 한 나는 목소리를 낮게 내리 깔며 심문을 시작했다.
“좋아, 그러면 어디 느긋하게 들어보자.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너희 목적은 날 영입하는 거 아니었어?”
다소 황당한 어투로 묻자 마법사는 더욱 황당한 답변을 꺼냈다.
“맞아……. 우리는 당신을 원해. 가급적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러면 왜 공격한데?”
“그야 당신이 우리 제안을 거절했으니까. 우리 여신님은 성격이 나쁘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잡아오라고 날 보낸 거야.”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는다.
클랜 영입을 거절했다고 진짜 사람을 반 죽이려 한다고?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다지만 트롤을 보낸 시점에서 멀쩡히 데려갈 생각도 없다는 뜻 아닌가.
아무래도 게임 세계의 스쿨드는 원작 게임 보다 훨씬 패악한 모양이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나 하나 잡겠다고 상관없는 사람까지 공격한 거야?”
“응, 목격자가 남으면 안 되니까.”
질문에 대답하며 마법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투에는 명백한 살의가 담겨 있었다.
경우에 따라선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얼마든지 죽일 심산이었던 것이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지……?’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얼음으로 깎아놓은 조각상을 앞에 두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생각을 돌린 나는 황당함과 분노가 반씩 섞인 심정으로 마법사를 노려보았다.
날 공격한 건 용서가 돼도 동료들을 죽이려 한 건 참을 수가 없다.
고작 클랜 가입을 거절했다고 이런 짓을 하는 것도 용납이 안 됐다.
슬슬 화가 나려 할 시점에서 마법사가 슬쩍 눈을 돌리며 말했다.
“……당신들을 공격한 건 사과할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차분한 어조로 사과를 건넨 마법사.
말은 그렇게 해도 미안한 기색은 1도 없는 말투였다.
그러한 마법사의 태도가 내 화를 도지게 했다.
나는 진심으로 베어 버릴 마음으로 마법사를 힐난했다.
“아 그래? 그럼 나도 너 죽여 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되겠네?! 이게 사과한다고 될 일이냐?!”
위협적인 어투로 소리쳤지만 마법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는 게 무섭지 않은지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목에 칼이 들어오는 와중에도 어떻게 빙환경을 알고 있는지만 신경 썼지.
조금 전의 대답까지 생각해보면 이 여자는 평범한 사람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다.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법사가 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맨 입으로 미안하다는 건 아니야. 우리 쪽에서 먼저 벌인 일이니까 그에 따른 책임을 질게.”
“책임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어떻게 책임질 건데?”
이 여자와 대화하다 보니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시절이다.
반에서 유독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그 여자애 체육복을 훔쳐갔다는 누명을 쓰게 됐다.
당시 음침하고 말수가 적었던 나는 반 친구들에게 갖은 오해를 받아왔고, 누구 한 명이 추측을 하자마자 그 말은 곧 사실처럼 변했다.
여자애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한테 체육복을 돌려 달라 했지.
반 친구들은 날 변태로 몰아가며 비난을 퍼부어댔고.
허나 여자애의 체육복은 사실 다른 반 친구가 말없이 빌려간 거였고 나의 무죄는 몇 교시가 지난 후에야 입증됐다.
그 후에 여자애가 보인 태도가 가관이었다.
오해해서 미안해, 누명 씌운 책임은 내가 질게.
하지만 그래 놓고서 그 애는 나한테 개뿔도 해준 게 없다.
바로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와는 말도 섞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이 마법사가 그 여자랑 완전 판박이다.
말투도 그렇고 분위기도 비슷하고, 아무튼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말만 해. 여신님한테 직접 이야기해줄 테니까.”
내 물음에 마법사는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차 사고를 낸 후에 대뜸 얼마면 되냐고 물어보는 거 같았다.
그 시점에서 내 기분은 굉장히 나빠졌다.
그러던 도중 문득 마법사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여성들과 비교해도 상당한 노출도를 자랑하는 차림이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하늘색 로브는 시스루 재질이어서 속이 훤히 비쳐보였다.
그렇게 드러난 안쪽은 슬링샷 비키니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여성 마법사들의 의상은 다른 직업에 비해서 훨씬 더 야했지만 이건 그냥 야겜의 코스튬이라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원하는 건 뭐든지 말하라고 했지?”
“그래…… 사과의 표시로 가능한 한 전부 들어줄…… 읏……?!”
무덤덤한 태도로 대답하던 마법사가 문득 신음을 흘렸다.
내가 그녀의 출렁거리는 젖가슴을 세게 움켜쥔 것이었다.
“뭘 그리 당황해? 뭐든 하겠다면서? 그러면 당연히 이런 것도 염두에 둔 거 아니야?”
우악스럽게 젖가슴을 주무르면서 나는 마법사의 로브를 벗겨버렸다.
그러자 그녀의 요야한 몸매가 더욱 자세히 보였다.
군살 없이 예쁜 라인을 그리는 배와 나나랑 비슷한 크기의 젖가슴.
나나보다는 한 컵 정도 작아보였지만 그래도 한 손으로 다 못 쥘 정도로 커다란 가슴이었다.
그걸 직접 손에 쥐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쓰러뜨린 여자를 내 아래에서 지배한다는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이었다.
“설마 말은 그렇게 해놓고 못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가슴을 문지르던 손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맨들맨들한 배를 몇 번인가 쓰다듬은 뒤 팬티 위로 보지까지 매만졌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치한이었으나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먼저 용납한 건 이 여자다.
이건 결코 겁탈이 아니다.
승자가 패자의 것을 빼앗는 것일 뿐이다.
마법사도 그걸 인정하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당신이 원한다면 나한테 무슨 짓이든 해도 돼. 살려만 줘, 시키는 건 다 할 테니까.”
그리 말하며 마법사는 스스로의 손으로 비키니 상의 부분을 들췄다.
그러자 예쁜 분홍색의 유두가 슬쩍 드러났다.
영락없는 유혹이었다. 날 바라보는 마법사의 눈빛도 왠지 모르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갑작스러운 유혹에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원래 내 계획은 마법사에게 공포와 수치심을 안겨주는 거였다.
그녀를 따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동료들을 위협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마법사의 태도는 내 계획과 너무나 상반되는 것이었다.
공포는커녕 수치심조차 느끼지 않고 있다.
도리어 이 상황을 스스로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덧 마법사는 다른 한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으며 적극적으로 몸을 맞대왔다.
“뭐해……? 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어, 어…… 그렇긴 한데…….”
“난 이미 준비됐어…… 갑자기 공격하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원한다면 묶은 채로 먹어도 돼.”
급기야 마법사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까지 떠올랐다.
얼굴에 뜬 홍조를 보면 확실하게 흥분하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