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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정
“쿠, 쿨럭! 맙소사…… 다키 너 지금 혼자서 트롤 잡은 거냐……?”
달려오는 나를 보며 제이드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상자에 있던 걸 따로 챙겨둔 모양이었다.
그런 제이드의 뒤를 봐주며 나는 웃음기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혼자라니, 형하고 같이 잡았잖아. 트롤 슬레이어된 거 축하해.”
“하, 하핫……! 푸하하하핫!”
내 말에 제이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포션을 세 병이나 들이킨 그는 금세 멀쩡해져선 빈 병을 집어던졌다.
“나한텐 과분한 칭호다. 하지만 업혀가는 것도 나쁘지 않네.”
제이드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쿠워어어어억!!]
효시를 따라갔던 트롤 C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실명 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하던 놈은 어디선가 나무 하나를 뽑아오더니 그걸 둔기처럼 휘둘러댔다.
이를 본 나는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며 칼을 움켜쥐었다.
“그래, 그 정도는 저항해야지. 샌드백처럼 쳐맞기만 하면 나도 재미없잖아.”
“다키 너 지금 뭐라고…….”
내 말을 들은 제이드는 흠칫 몸을 떨었다.
너무 전투광처럼 말했나.
나도 모르게 꺼낸 말이 제이드 입장에선 경악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제이드는 그 이상 따지지 않고 트롤에게 집중했다.
본의 아니게 아군에게까지 공포심을 심어준 것 같았다.
그래도 이러한 내 태도는 사기로 직결됐다.
조금 전까지 죽을상을 짓고 있던 제이드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활시위를 당긴 것이었다.
* * *
다키가 트롤 한 마리를 쓰러뜨렸을 무렵.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크림힐트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거짓말.”
크림힐트는 투영 마법에 비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저 트롤들은 과거 스쿨드의 영토 주위에서 출현한 숲 트롤을 포획한 것이다.
그녀가 소지한 유물, 빙환경의 힘으로 사역한 괴물이기에 이전보다 약해졌지만 어찌되었든 트롤이다.
저 놈들 중 한 마리를 잡는 데에만 병사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다키가 방금 쓰러뜨린 트롤, 창칼 어금니는 플레티넘 등급의 모험가를 죽인 전적도 있다.
그런 괴물들이 유물에 의해 사역되었다고 해서 엄청나게 약해질 리 없다.
실제로 저놈들은 썬더 드레이크 토벌에 참가해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자신이 가진 괴물 중 최강의 전력이거늘.
그런데 다키는 그 트롤들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유린했다.
그냥 유린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어린애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말이다.
‘어쩜 저렇게 강할 수가 있는 거지……? 마치 언니를 보는 것 같아…….’
다키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자신의 친언니가 떠올랐다.
스쿨드의 클랜, 노르니르의 현 마스터이자 2대 검성 중 한 명인 지클린데가 말이다.
허나 다키는 단순히 무력만 강한 게 아니었다.
마치 트롤들의 행동을 전부 읽어낸 듯 놈들을 압도하고 있다.
십 수 년 동안 수많은 전장을 거쳐 온 자신의 언니처럼.
“대체 저 남자 정체가 뭐야…… 앗…….”
아연실색하며 다키의 전투를 눈 여겨 보고 있을 때였다.
크림힐트는 다시 한 번 크게 놀라고 만다.
불과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트롤이 당한 것이었다.
“또 당했어…… 그것도 이렇게 단시간에…….”
창칼 어금니를 쓰러뜨림으로서 다키는 이미 스스로의 무력을 입증했다.
다른 트롤들을 잡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빨리 잡다니.
자신만만하게 보낸 트롤 삼형제가 어느덧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평소에 무표정하기만 하던 크림힐트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추측이 점점 확신이 되어갔다.
“아니…… 그래도 괜찮아.”
놀란 마음을 추스른 크림힐트는 냉정하게 전황을 살폈다.
죽은 두 마리의 트롤이 다키 일행의 전력을 상당히 깎아 놓았다.
메인 딜러인 다키와 궁수는 기력이 상당히 감소했을 테고 탱커 역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주문 사용자들의 마력 소모는 말할 것도 없다.
트롤들을 잃은 건 뼈아프지만 여기서 원래 소환하려 했던 하이오크 무리를 가세시키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
한 번에 소환할 수 있는 소환수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저장할 수 있는 소환수는 그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이오크까지 당한다면 3군을 보내면 그만. 여차하면 자신이 직접 가세해도 된다.
고작 다섯 명이서 숲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이미 승부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당신한텐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진심으로 나설 수밖에 없어…….”
들리지 않을 사과를 전하며 크림힐트는 빙환경을 조작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거울 표면을 문지르자 하이오크 무리의 모습이 비춰졌다.
평범한 오크와 달리 새카만 피부를 가지고 있는 거구의 전사들.
한 번 싸움을 시작하면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멈추지 않는다는 진짜배기 광전사들이다.
트롤들과의 전투로 지친 다키 일행에겐 저승사자로 보이겠지.
그리 생각하며 하이오크를 소환하려할 때였다.
“어라?”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다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거울 형태로 전개된 투영 마법은 다른 일행들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어디 갔지……?”
잠깐 시야에서 벗어난 건가?
하지만 투영 마법은 숲 곳곳에 전개해뒀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크림힐트는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그들이 이동 경로를 추측하여 꼼꼼히 투영 마법을 깔아뒀다.
사각 지대는 없을 터.
그런데 다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가 투영 마법을 설치해둔 장소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설마 그 남자…… 술식을 눈치 채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추측이 머릿속에 떠오를 무렵.
타아앗!
“……!!”
누군가가 지면을 박차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극도로 집중한 끝에 크림힐트는 그 방향을 특정할 수 있었고 기척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주문을 날렸다.
쐐애액!!
품에서 꺼낸 지팡이를 휘두르자 날카로운 얼음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빙결 마법 중 하나인 얼음 쐐기였다.
적에게 피해를 입힘과 동시에 동결을 부여하는 효율성 높은 마법.
사거리가 짧긴 하지만 발사 속도가 빨라서 피하기 쉽지 않은 공격이다.
허나 상대방은 이를 가볍게 피해냈다.
스르륵!
“뭣……?!”
수풀을 가르고 달려온 남자가 갑자기 그림자로 바뀌었다.
유령처럼 변한 그의 모습을 보며 크림힐트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이 현상의 정체는 바로 상송으로부터 얻은 장신구, 주살의 망토의 효과였다.
주살의 망토 성물
분류: 망토
상승 스탯: 민첩 5
내구도: 30/30
부가 효과: 전투 시작 시 한 번에 한하여 혼령화를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사용한 혼령화는 마력을 소모하지 않으며 캐스팅도 필요하지 않다.
[상송이 애용한 망토. 그가 섬겼던 여신이 손수 짜줬다. 세월에 의해 많이 헤졌지만 정성스레 새겨진 문양은 여신이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혼령화
액티브
요구 스탯: 신념 25
비용: 마력 150
사용 조건: 주술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3초간 캐스팅한 뒤 무적 상태가 된다. 2초 동안 지속되며 이동 속도가 대폭 상승한다. 스킬 발동 도중엔 이동 밖에 할 수 없다. 적에게 공격받을 때 사용하면 선딜레이가 대폭 감소한다.
일정 시간 동안 무적 상태가 되어 빠르게 이동하는 사기 스킬.
다키가 상송에게 고전한 제 1순위 요인을 다키 본인이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쯔아아아앗!!”
그렇게 유령처럼 돌진한 다키는 혼령화가 풀리는 즉시 검을 휘둘렀다.
단순히 정면으로 돌진한 것이 아니라 그새 크림힐트의 뒤로 돌아간 것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공격이었으나 크림힐트 역시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하앗……!”
카가가가각!!
그녀가 다시 한 번 지팡이를 휘두르자 이번엔 지면에서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빙결 마법사의 방어 스킬인 빙하였다.
빙하
액티브
요구 스탯: 지성 21
비용: 마력 60
사용 조건: 마법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3초간 캐스팅한 뒤 전방을 향해 높이 3미터, 폭 3미터의 얼음 방벽을 소환한다. 얼음 방벽은 시전자의 지성 x30의 피해를 방어하며 공격한 대상에게 동상을 부여한다. 소환된 얼음 방벽은 3초 동안 지속된다.
근거리, 중거리에 특화된 빙결 마법사들이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최고의 방어 수단.
적의 이동 속도, 공격 속도를 감소시키는 동상까지 부여하는 최상위급의 방어 스킬이다.
“쯧……! 그래, 빙결 법사면 안 쓸 리가 없지!”
공격이 막힌 다키는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태세를 정비한 뒤 방어를 뚫고 들어오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두지 않겠다는 듯 크림힐트는 즉시 새로운 주문을 발동했다.
콰득! 콰드득!
촤자자아악!
허공에서 냉기가 모여 들더니 날카로운 얼음의 검으로 변했다.
그것은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어검처럼 스스로 움직이며 다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카앙! 캉! 카가앙!
얼음으로 만들어진 어검이 날아들자 다키 또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처음에는 가볍게 대처하는 듯했지만 점점 열세로 몰렸다.
크림힐트는 비단 검 하나로 그를 상대하려 들지 않았다.
연달아서 새로운 검을 만들어낸 그녀는 3개의 어검을 동시에 조작하여 그를 몰아붙였다.
세 명이 동시에 덤비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가뜩이나 다키는 동상까지 걸렸다.
결국 현저히 느려진 공격 속도로 인해 크림힐트의 어검을 전부 막아내지 못했다.
촤아악!
“크윽!”
빈틈을 비집고 들어간 검격이 다키의 어깻죽지를 찢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대응을 해서 상처 자체는 깊지 않았으나 어쨌든 부상을 입힌 것이다.
끊임없이 공격당하는 와중엔 치료도 쉽지 않을 터.
이것만으로도 크림힐트는 승기를 잡은 거나 다름없다.
그녀는 냉담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다키에게 말했다.
“내 위치를 특정해낸 건 칭찬해줄게……. 하지만 혼자 온 건 실수였어.”
카가악!
얼음의 검들을 유지하면서 그녀는 또 다른 주문을 준비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문을 영창하는 크림힐트.
그러자 그녀의 지팡이에 거대한 얼음 칼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끝내 주문이 완성되자 크림힐트의 지팡이는 얼음 칼날을 가진 대검과도 같은 형태가 되었다.
크림힐트는 그것을 가볍게 휘두르며 다키를 제압하려 들었다.
그 순간.
“걸렸구나.”
“뭐라고……? 핫……?!”
파지지지직!!
어검을 막느라 정신이 없던 다키가 갑자기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황금색 전류가 터져 나오는 구체였다.
크림힐트는 검을 휘두른 순간에서야 그것을 확인했고 다키는 그녀의 얼음 대검을 향해 구체를 던졌다.
그와 동시에 옆으로 굴러서 대검까지 절묘하게 피해냈다.
이 모든 상황이 1초 내외로 이루어졌다.
차마 대응할 수 없었던 크림힐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후에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아앗……!!”
대검에 닿은 전류 구체, 아니 벼락 폭탄은 더욱 큰 전격을 일으키며 크림힐트를 덮쳤다.
그것을 본 다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핫하! 그거 쓰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역시 예상대로구나!”
“크, 크으윽! 그게 무슨……!”
자리에 주저앉으며 크림힐트는 다키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 * *
마법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자리를 옮겼다.
벼락 구체의 효과로 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뒤로 돌아가 칼을 겨눈 것이었다.
“빙하에 빙결검까지 쓴 시점에서 네가 쓸 주문은 전부 파악했다고. 당연히 서리 대검도 쓸 거라 생각했지.”
조금 전까지 날 괴롭혔던 어검은 빙결검.
그리고 방금 전에 내가 카운터 친 스킬은 서리 대검이라는 마법이다.
빙결검
액티브
요구 스탯: 지성 13
비용: 마력 30
사용 조건: 마법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5초간 캐스팅한 뒤 얼음으로 이루어진 검을 만들어낸다. 생성된 빙결검이 시전자가 지정한 대상을 공격하며 시전자의 지성 x2만큼의 빙결 피해를 준다. 5초 동안 지속되지만 그전에 빙결검이 파괴될 수 있다.
서리 대검
액티브
요구 스탯: 지성 26
비용: 마력 90
사용 조건: 마법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5초간 캐스팅한 뒤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검을 생성하여 적을 베어 넘긴다. 전방 2미터, 폭 3미터 범위를 타격하여 시전자의 지성 x27만큼의 빙결 피해를 준다. 대상이 동상 또는 동결 상태라면 시전자의 지성 x32만큼의 피해를 준다.
보면 알겠지만 난 진즉에 빙결검을 파괴할 수 있었다.
저 여자의 어검술이 썩 나쁘지 않아서 귀찮기는 했지만 얼마든지 반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부러 공격까지 맞아주며 응전한 건 서리 대검을 쓰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방어 주문인 빙하와 중거리 공격 주문인 빙결검.
이 두 스킬을 사용했다면 그녀는 분명 중거리에서 싸우는 전투 마법사 빌드를 탔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전투 마법사의 주력기인 서리 대검도 배웠을 터.
그리고 서리 대검은 거대한 전도체이기에 전격 피해를 주는 벼락 폭탄으로 카운터치기 좋다.
“설마…… 당신 내가 사용할 주문을 전부 계산하고…….”
마법사도 내가 어떤 식으로 반격을 가했는지 파악한 모양이다.
그녀의 얼굴엔 아연실색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자신의 목에 칼이 겨눠지고 있는데도 두려워하거나 기죽기는커녕 감탄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