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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68화 (168/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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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정

[크워어어억!!]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니아에게 트롤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기세 좋게 달려든 놈이었지만 움직임이 영 좋지 못했다.

놈의 눈가에는 초자연적인 어둠이 깔려 있어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것이었다.

“돼, 됐어요……! 성공했어요!”

휘청거리는 트롤을 보며 유미가 쾌재를 불렀다.

놈의 시야를 가린 어둠은 유미가 발동한 주술, 암흑의 영향이었다.

유미가 지속적으로 주문을 이어가는 한 놈은 계속 눈먼 공격만 하게 될 거다.

대상을 확실하게 특정할 수 없으니 니아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늘어나리라.

니아 쪽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무렵 내가 상대하던 놈이 주먹을 내리찍었다.

[크워어어억! 워어억!!]

콰아아아앙!

주먹 한 번 내리쳤을 뿐인데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트롤의 주먹 내리찍기 패턴은 타격 지점뿐만 아니라 주위에도 범위 피해를 입힌다.

허나 공격하기 전에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는데다 선행 모션도 쓸데없이 길다.

내 입장에선 ‘나 여기 칠거야! 빨리 도망치라고!’ 라며 경고해주는 거나 다름없다.

“친절하기도 하지.”

스텝을 밟아 놈의 품으로 파고든 나는 몇 번인가 공격을 날렸다.

한 쪽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는데 살점을 베자마자 눈에 보일 정도로 상처가 재생됐다.

초재생능력, 트롤의 아이덴티티이자 가장 성가신 특수 능력이다.

여느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트롤처럼 엄청난 재생 능력을 가졌는데 회복량이 어지간한 직업의 데미지 보다 계수가 높다.

게임 세계의 사람들이 트롤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아마 이 재생 능력 때문일 거다.

아무리 공격해도 상처는 금세 아물고 놈은 무지막지한 덩치를 무기 삼아 공격해오니 무서울 수밖에.

‘하지만 데미지가 안 늘어가는 건 아니지.’

날 붙잡으려는 손을 옆 구르기로 피하며 태세를 가다듬었다.

얼핏 보면 트롤은 무적처럼 보일 것이다.

생명력도 높은 놈이 받는 데미지마저 순식간에 회복해버리니까.

그러나 생명력이 회복될지언정 인내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그로기 수치도 꾸준히 쌓인다.

끊임없이 공격을 이어가면 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제이드 형! 다중 사격 쓸 수 있다고 했지!”

한 차례 더 다리를 썰면서 제이드에게 소리쳤다.

니아를 돕고 있던 제이드는 어렵사리 질문에 대답했다.

“쓸 수 있는데 왜?!”

[쿠워어어어억!!]

콰앙! 콰과아아앙!!

트롤 한 마리가 제이드가 있는 방향을 마구잡이로 난타했다.

니아가 상대하는 놈과는 다른 제 3의 트롤이었다.

제이드는 니아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놈을 자신 쪽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그놈은 그냥 내버려두고 나랑 같이 이놈 먼저 조져! 다중 사격 딜량이면 더 빨리 잡을 수 있어!”

“그러면 니아랑 다른 애들은 어쩌고?! 내가 어그로 안 끌면 세 사람 쪽으로 갈 거야!”

다리를 공격하며 말하는 내게 제이드가 반박했다.

여전히 사색을 띄운 그였지만 니아를 위해서 얼마든지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다.

반대로 그녀가 위험에 빠지는 일은 어떻게든 막으려 하겠지.

참 대단한 로맨티스트다. 하지만 지금은 정으로 움직일 때가 아니다.

트롤에게 맞는 공략법을 써야할 때인 것이다.

“시야가 차단돼서 니아 누나한테 한꺼번에 못 덤빌 거야! 걱정하지 말고 내 쪽으로 와!”

“크읏……! 그래 너만 믿는다……!”

피슈웅!

피이이이잇!!

내 지시에 응하면서 제이드가 화살을 한 발 쐈다.

그가 쏜 화살에선 피리처럼 맑은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진 화살 효시였다.

게임상에선 적들의 어그로를 끄는 효과가 있다.

그 효과대로 제이드를 노리던 트롤은 효시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돌렸다.

트롤의 지능이 낮아서 그런지 효시의 효과가 잘 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획이 뭐야 다키! 진짜로 이놈들 잡을 생각이냐?!”

빠르게 달려온 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태도로 물었다.

그에 나는 트롤 A와 거리를 벌리며 대답했다.

“도망쳐봤자 보폭이 커서 따라잡혀! 그리고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어떻게 잡을 건데?!”

“내가 상처 내놓은 부분 보이지? 거기에 영거리로 다중 사격 때려 박아! 내가 엄호할 테니까!”

카앙! 카아앙!

말하는 내내 트롤의 연속 공격을 튕겨냈다.

공격 패링을 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트롤의 패턴도 마냥 호구스럽지만은 않다.

연이어 가해지는 공격은 공격 패링 불가 판정이 있어서 막거나 방어 패링 해야 한다.

결정타를 못 먹이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무의미한 행동은 아니다.

방어 패링을 성공한 후 틈틈이 딜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보고 저길 들어가라고?! 다키 너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은 거 아니야?!”

내가 패링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던 제이드가 당황을 터뜨렸다.

슬슬 답답해진 나는 트롤의 팔뚝을 길게 찢으면서 소리쳤다.

“아 그런 거 아니니까 시키는 대로 좀 해봐! 형이 안 하면 다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안 할 거야?!”

“크으윽!”

나 혼자 히트 앤 런 전범을 사용하면 시간을 들이더라도 쉽게 잡을 수 있다.

허나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내가 히트 앤 런을 하는 동안 니아가 버텨주지 못할 거다.

이런 말하기 좀 미안하지만 트롤과의 싸움에서 여성진들은 조력자임과 동시에 짐짝이다.

빠르게 잡을 때는 큰 도움이 되지만 여유를 두고 잡으려면 아무 짝에도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여유롭게 잡는 동안 니아가 버티지 못해서 세 사람 다 트롤에게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이드의 도움이 필요하다.

니아가 어그로를 끌고 있는 사이에 한 놈, 한 놈 빠르게 해치우기 위해선 화력을 집중 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죽는데 무서워할 필요 없지!”

제이드도 이를 이해했는지 이를 악물며 화살을 뽑아들었다.

날렵하게 달려간 그는 트롤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를 감지한 트롤이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갔지만 내가 용납하지 않았다.

“아 지랄 마시고!”

카아앙!!

[크와아아악!!]

재빨리 가한 방어 패링이 트롤의 팔을 튕겨냈다.

연달아 막히는 공격 때문에 열이 뻗쳤는지 놈은 괴성을 내질렀다.

또 내려치기 패턴을 쓴다는 소리였다.

나름대로 저항해보려고 한 짓이겠지만 오히려 빈틈만 보여주고 말았다.

놈이 선행 모션을 보여주는 동안 제이드가 다리에 도착한 것이었다.

“흐으읍!”

파바바바박!!

낮은 기합과 함께 6발의 화살이 동시에 꽂혔다.

내가 지시한 대로 영거리에서 화살을 꽂아버린 것이었다.

푸화아아악!

매서운 기세로 날아간 화살들이 마치 산탄총처럼 트롤의 피부를 터뜨렸다.

6발의 화살을 일제히 발사하는 스킬, 다중 사격.

유저들 사이에선 흔히 샷건이라 불렸으며 그 이름대로 무지막지한 위력을 보여주는 스킬이다.

다중 사격

액티브

요구 스탯: 정밀 18

비용: 60 기력

사용 조건: 활 또는 석궁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최대 6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한다. 화살 한 발당 +20퍼센트의 관통 피해를 주며 발사된 화살은 점점 멀리 퍼져나간다

산탄처럼 퍼지는 제약이 있지만 다 맞추면 평범한 화살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결전기인 것이다.

[끄허어어어억!!]

그 증거로 제이드가 가세하자마자 재생이 눈에 띄게 더뎌졌다.

트롤 역시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놈에게 가해지는 데미지가 재생력을 압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과연 다중 사격이다.

한 발 당 약 180 정도의 피해를 주는 스킬인데 그걸 6발이나 쳐맞은 트롤도 맥을 못 추릴 거다.

트롤의 방어력을 감안해도 800이 넘는 딜이 들어갈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먹힌다! 이 자식 재생이 느려졌어!”

“나도 아니까 얼른 빠져 형! 거기 있다간 밟혀 죽어!”

자신이 가한 피해를 보며 쾌재를 부르는 제이드.

기쁜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멀뚱히 있어서 좋을 거 없다.

트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패턴 중 하나가 바로 발밑에 있는 적을 짓밟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워어어어억!!]

포효를 터뜨리며 다리를 들어 올리는 트롤 A.

그 정도 피해를 받았는데도 놈은 조금도 주춤하지 않았다.

아픈 거랑 인내력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활의 저지력은 개미 오줌만도 못 해서 트롤을 저지하기엔 무리였다.

놈이 제이드를 개미처럼 짓밟을 수 있는 것도 인내력이 무진장 높아서 그런 거다.

“크흣! 역시 이 정도론 턱도 없구만!”

타앗!

다행히 제이드는 신속하게 트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백스텝을 밟아 뒤로 빠지며 화살을 날린 것이었다.

궁수 계열 직업의 국민 회피기인 회피 사격이었다.

날렵하게 화살을 쏘며 뒤로 빠지는 고성능의 회피기지만 제이드의 판단은 잘못됐다.

트롤은 단순히 제이드를 짓밟으려고 발을 들어 올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웅!!

“……?!”

다음 순간, 지면이 요동치며 제이드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그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마치 땅에서부터 터져 나온 충격파가 제이드를 튕겨내는 것 같았다.

“크하아아악!!”

한 박자 늦게 터진 충격파가 제이드를 타격했다.

그것을 곧이곧대로 맞은 제이드는 곧 입에서 피를 왈칵 뿜어냈다.

트롤의 범위 공격기인 발 구르기에 당한 것이다.

‘앞으로 굴러야 하는데 깜빡하고 설명을 안 했네!’

제이드가 당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마를 탁 쳤다.

발 구르기는 부채꼴 모양으로 충격파를 보내서 범위 내의 모든 대상에게 기본 공격력만큼 피해를 주는 능력이다.

트롤의 공격력은 300이나 돼서 궁수인 제이드에겐 무척 치명적일 것이다.

더군다나 발 구르기에는 기절까지 붙어 있다.

즉, 제이드는 한동안 자력으로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제이드!!”

제이드가 공격 받은 걸 본 니아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다급히 니아를 돌아보며 외쳤다.

“걱정 마 누나! 형은 내가 챙길 테니까! 누나는 계속 그놈 막고 있어!”

[워어어어억!!]

콰과아아앙!!

내가 말하기 무섭게 트롤 B가 니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으그으으읏!!”

대포처럼 날아온 주먹질에 니아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

방패로 완전히 막았음에도 충격파가 그녀의 몸을 찢어발겼다.

그녀의 피부 곳곳에서 멍이 생기고 피가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힘내요 언니! 제가 치료해줄 테니까요!”

그럴 때마다 나나가 센스 좋게 회복 주문을 사용했다.

따스한 불빛이 니아의 몸을 감쌈으로써 상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래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다. 니아도 가드 게이지에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일단 형부터 챙겨야 돼.’

니아랑 제이드는 서로를 지나치게 걱정한다.

이건 좋은 작용을 주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나중에 좀 지적해주던가 해야지. 어쨌든 지금은 제이드를 구해서 공격을 재개해야 된다.

[크륵! 크르르으으윽!!]

내가 발걸음을 돌린 순간 트롤 A가 제이드에게 걸어갔다.

비명 소리로 제이드의 위치를 특정했는지 놈은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또 내려치기를 할 생각이다. 선행 모션을 보면 틀림없다.

놈의 내려치기는 패링 불가 공격.

지금 달려가서 막아주는 건 불가능하다.

“야! 이게 뭐게!”

[크후욱?!]

트롤 A에게 소리치면서 투척 나이프 두 개를 꺼내들었다.

내 부름에 트롤이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그것들을 놈의 고간을 향해 던졌다.

“뭐겠어, 심영샷이지!!”

쐐애액!

내 손을 떠나 허공을 가르는 두 개의 나이프.

눈을 노릴까 했지만 보다 이편이 더 확실할 것 같았다.

푸욱! 푸후욱!!

그리고 내 추측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불길한 소리와 함께 넝마에 감싸인 고간이 붉게 물드는 것이었다.

[끄오오오오오오오옷!!]

덩달아 트롤도 세상 다 잃은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원작 게임이었다면 생각지도 못할 전술인데 게임 세계에선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이야! 니 꼬추 존나 크다! 대충 던져도 그냥 맞네!”

[쿠와아아아아악!!]

“근데 이거 어쩌냐? 이제 알이 없어서 2세는 못 보겠어!”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트롤을 보며 나는 거침없이 도발을 가했다.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어그로를 끌자 트롤은 자연스레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증오와 살의로 가득 찬 주먹질이었지만 결국 눈 먼 공격.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 쉬웠다.

이를 가볍게 피한 뒤 제이드가 공격했던 다리를 향해 달려갔다.

촤악! 촤아악!

트롤의 다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거리가 좁혀지자마자 연달아 섬격을 날린 것이었다.

저며진 살점 너머로 놈의 굵직한 뼈가 보이기 시작했다.

[끄허어어어억!]

쿠구우우웅!!

제대로 먹혔는지 트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나는 놈이 쓰러지자마자 마신화한 왼팔을 들어올렸다.

“마참내!”

푸훅!!

내 왼팔이 다시 한 번 놈의 눈알을 쑤셨다.

거대한 눈알이 내 손에 의해 뚫리는 것이 느껴진다.

다음 순간 나는 그것을 거침없이 뽑아냈다.

푸화아아악!!

피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2천이 넘는 막대한 피해가 들어갔다.

두 번이나 결정타에 당한 트롤은 끝내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한 놈을 처치한 나는 쉴 틈 없이 제이드를 향해 달려갔다.

============================ 작품 후기 ============================

어느새 겨울이 다 되어 가네요.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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