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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동행
장원으로 들어간 아버지. 남겨진 딸.
잊고 있었던 정보들이 하나둘 씩 맞춰졌다.
내가 왜 니아를 보고 익숙함을 느꼈는지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니아 누나, 성이 어떻게 돼?”
기억을 되짚으면서 문득 니아에게 물었다.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니아는 몇 번인가 눈을 깜빡거리더니 또박또박 얘기했다.
“다윈글레이드…… 풀네임은 니아 엘리나 다윈글레이드야.”
엘리나 다윈글레이드.
본편을 통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나 분명 원작에서 언급된 캐릭터다.
그 말은 즉 니아가 게임 세계에서 태어난 엑스트라가 아닌 원작을 따라 구현된 NPC라는 뜻이다.
‘엘리나가 미들 네임이었다니……. 그러니까 못 알아보지.’
한 방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니아가 걸고 있던 목걸이를 확인했다.
표범 문장이 그려진 방패 모양 목걸이였는데 원작에서도 등장한 목걸이다.
장비로 등장한 건 아니어서 기억이 잘 안 났다.
하지만 니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것이 다윈글레이드 가문의 문장이란 것도, 니아가 누구의 딸인지도 다 생각났다.
이쯤 되면 니아와의 만남 자체가 운명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편에 없었던 루트가 DLC로 추가된 건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니아가 엘리나 다윈글레이드라는 사실만으로 나에겐 그녀를 데려갈 이유가 있다.
“왜 그래? 내 성이 어쨌는데……?”
내가 한동안 말이 없자 니아는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뜬금없네…… 아무튼 나도 꼭 데려가줘.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싸울 테니까.”
석연찮은 기색으로 반응한 니아는 곧 본론으로 돌아왔다.
안 데려간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따라올 분위기였다.
그런 니아에게 나는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누나가 따라오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어. 하지만 살아 돌아온다는 것도 보장 못 해. 그래도 갈 거야?”
“응, 난 꼭 가야 돼. 10년 전에 실종된 아빠가 거기 있을지도 몰라.”
질문 받은 니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좀 더 잔인한 방식으로 그녀의 의지를 시험했다.
“알고 있겠지만 장원은 평범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아버지께서 10년 전에 실종됐다면 멀쩡히 살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그래도 괜찮아?”
내 질문은 중의적이었다.
멀쩡히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다는 건 죽었을 거란 의미도 있지만,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니아가 날 따라온다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아버지의 모습을 봐야할지도 모른다.
아니, 원작과 같은 스토리라면 반드시 보게 될 거다.
난 이미 이 스토리의 결말을 알기에 단언할 수 있다.
“이봐 다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직설적인 거 아니야? 니아한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대답을 기다릴 때 제이드가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럴 만도 하다. 니아의 동행을 극구 반대하는 그였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니까.
특히나 니아의 소꿉친구라면 그도 니아의 아버지와 잘 알고 지냈을 거다.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란 아저씨가 괴물이 됐을 거란 얘기는 듣기 거북하겠지.
내가 일단 사과하려고 할 때, 니아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제이드. 틀린 말도 아니니까.”
“하지만 니아……!”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어. 아빠가 살아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고.”
한 마디, 한 마디 꺼낼 때마다 니아는 괴로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테이블 아래에 숨겨진 그녀의 손은 피가 배어나올 듯이 꽉 쥐어져 있을 거다.
그럼에도 니아는 날 똑바로 응시하며 얘기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난 가고 싶어. 아빠의 유품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거야.”
니아의 의지를 시험하고자 질문을 던졌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나 보다.
어쩌면 그녀는 나와 만난 순간부터 장원에 따라 들어갈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아, 장원 공략 파티에 합류한 걸 환영해.”
니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니아도 얼굴을 환하게 빛내더니 힘차게 내 손을 맞잡았다.
“응……! 나도 잘 부탁해!”
잔뜩 힘이 들어간 손아귀를 잡고 있으려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니아가 과연 이 스토리의 결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원작에선 엘리나 다윈글레이드가 어떻게 됐는지 상세히 묘사되지 않았다.
그저 장원에서 발견된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비탄에 잠겼다고 간접적으로 알려줄 뿐이었다.
원작에서도 고작 슬퍼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만 게임 세계의 니아는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거다.
허나 아버지를 찾겠다는 니아의 각오는 망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니아가 무척 걱정 됐지만 이제 와서 말릴 수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직접 진실과 마주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하아…… 니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나와 니아가 악수하는 것을 보며 제이드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도 니아의 고집에는 못 당해내는 듯했다.
결국 니아를 말리는 걸 포기한 제이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다키, 혹시 원딜 자리는 안 남아?”
“응? 원딜도 필요하긴 했는데…… 설마 형도 따라오려고?”
내가 당황스러운 눈초리로 묻자 제이드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익! 맑은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진 후 여관 천장에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키아아!]
날카로운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은색 깃털을 가진 매였다.
녀석은 우리의 머리 위를 한 차례 빙글 돌더니 이내 제이드의 팔위에 내려앉았다.
그 광경을 본 나는 눈을 가늘데 뜨며 관련 정보를 떠올렸다.
‘동물친구…… 제이드 형, 매 사냥꾼이었구나.’
동물친구.
영문명으론 파트너 비스트라고 하며 사냥꾼들이 길들일 수 있는 일종의 펫이다.
이동수단에 초점을 맞춘 탈것과 달리 동물친구는 전투와 유틸 면에 중점을 뒀다.
전투 시에 협공을 가하거나 정찰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등 유용한 스킬들로 플레이어 돕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매는 최상위 티어의 동물 친구다.
정찰은 물론 전투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어 매 사냥꾼이라는 전용 빌드가 따로 있을 정도다.
이를 자유롭게 다룬다는 것은 제이드 역시 뛰어난 매 사냥꾼이라는 뜻이리라.
“이렇게 떼쓰는데 어쩌겠어. 좋아하는 여자가 사지로 들어간다는데, 남자라면 당연히 따라나서야지.”
내 질문에 제이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남자인 내가 들어도 멋있는 대사였다.
경박하기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굉장한 로맨티스트였던 것이다.
“매 사냥꾼이 따라와 준다면 나야 환영이지. 하지만 살아 돌아올 거란 보장은 못 해.”
“뭐, 아라크네 슬레이어를 믿어 봐야지. 너도 맨땅에 박치기 하는 건 아닐 거 아니야?”
살벌한 질문에도 제이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물친구의 깃털을 쓰다듬어주는 제이드의 모습은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도 나름대로 결의를 다졌을 거다.
진중한 눈빛은 그의 다짐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의도치 않게 탱커와 원딜을 구해버렸다.
물론 딱한 사정으로 참가한 두 사람이기에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파티장 입장에선 두 말할 거 없는 횡재였다.
내가 필요로 한 부분들이 알아서 척척 충족되니 작위적인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미안 제이드…… 나 때문에 말려들어서…….”
내가 묘한 기분이 들 때 니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제이드에게 사과를 건넸다.
따라오지 말라곤 안 하는구나.
뭐, 니아가 결사반대해도 제이드는 들어먹지도 않을 거 같다.
니아도 그걸 알고 있기에 구태여 동행을 거부하지 않는 거겠지.
오랫동안 사귄 커플이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 빠른 듯했다.
“당연한 건데 뭘 그래. 이 정도도 못 하면 좋아할 자격이 없지.”
“제이드…….”
사과하는 니아를 끌어당기며 제이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덕분에 니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이 이상 방치하면 이야기 진행이 안 될 것 같아 나는 두 사람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으흠…… 애정행각도 좋은데 하던 얘기는 먼저 끝내자. 인원이 늘어나서 의논할 부분이 좀 있거든.”
“으, 응! 그, 그래야지! 미안 딴 길로 세서……!”
키스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니아는 황급히 제이드와 떨어졌다.
그걸 본 제이드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큭큭 웃음을 흘렸다.
니아와 제이드의 참가로 장원 공략 파티는 나와 나나, 유미까지 더해서 총합 다섯 명이 되었다.
탱커에 힐러, 근딜과 원딜, 서포터까지 고루 갖춘 훌륭한 조합이다.
허나 앞서 말했듯 장원의 정예 몬스터들은 높은 방어력을 자랑한다.
썬더 드레이크의 역린처럼 눈에 띄는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근딜로는 상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특성상 강력한 화력을 가진 원거리 딜러가 하나 더 있으면 좋을 거다.
대부분의 공격 마법은 적의 방어력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프랑 누나는? 웬일로 같이 안 다니네?”
뒤늦게 프란체스카의 부재를 떠올린 내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니아와 프란체스카는 항상 붙어 다녔다.
그런데 어젯밤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프란체스카를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제이드랑 단 둘이 있을 때는 굳이 만나지 않는 걸까?
사창가에서 따로 다녔던 걸 생각하면 서로 사생활은 보장해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프랑 누나까지 껴주면 진짜 황금 밸런슨데…….’
듣기로 프란체스카는 화염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 딜러다.
유미도 엄밀히 따지면 마법 딜러긴 하지만 그녀의 스킬은 대부분 적을 방해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원령 쇄도를 무한정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프란체스카 보단 화력이 떨어질 거다.
그렇기에 프란체스카의 합류는 우리 파티의 전력을 더욱 높여줄 거다.
훌륭한 조합과 내 사전 지식을 합치면 장원의 지랄 맞은 몬스터들도 쉽게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 생각하며 프랑 누나의 행적을 물었으나 니아와 제이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으으음…….”
“그게 말이지…….”
제이드는 웬일로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고, 니아는 차마 고개를 못 들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확히는 두 사람이 무척이나 부끄러워할 일인 듯했다.
한참이나 말을 고른 끝에 니아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게 부끄러운지 그녀의 목소리는 굉장히 작아져 있었다.
“그 언니…… 잡혀갔어.”
“뭐? 잡혀가? 어디로?”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프란체스카가 잡혀가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디긴…… 당연히 경비대지……. 지금쯤 철창 안에 있을 거야.”
하지만 내 귀는 이번에도 제 역할을 다 했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번인가 니아와 제이드를 번갈아 본 끝에야 이유를 물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구금까지 당한 거야?”
“으으…….”
황당한 심정을 드러내며 묻자 니아는 귀까지 새빨개진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가 대답을 못하자 제이드가 대신 설명했다.
“어젯밤에 나랑 니아랑 같이 술 마시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날따라 과음을 해버린 거야.”
어지간해선 잘 안 취하는 프란체스카지만 어젯밤엔 달랐다.
술안주 삼아 내 얘기를 꺼냈는데 이야기가 즐거워지다 보니 술이 막 들어갔다는 것이다.
“내 얘기라니? 나 가지고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았어?”
“실은 그 누님이 다 말해버렸거든……. 너랑 나나 씨랑 같이 뭘 했는지.”
멋쩍게 웃으면서 제이드가 시선을 피했다.
제이드의 말을 들은 나는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아니 씨 이 누나가 진짜.
아무리 입이 가벼워도 그렇지 두 사람한테 나랑 떡친 썰을 풀어?
그냥 떡친 것도 아니고 술 취해서 쓰리썸한 썰을?
“다키 네가 이해해. 그 누나 원래 그런 여자야. 척 봤을 때부터 감오잖아?”
쓴웃음을 지으면서 먼 산을 보는 제이드.
그의 어투에선 경험이 우러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나랑 만나기 전에 그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제이드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프란체스카도 제이드 못지않게 경박한 성격이다.
아니, 그녀의 경우 경박한 걸 넘어서 문란하다고 해야겠지.
그런 프랑이 비밀을 지켜줄 거라 생각한 내가 순진하고 바보 같은 것이리라.
“그래서…… 누나가 내 떡썰 푸느라 꽐라가 됐는데, 그 다음엔?”
혼란한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를 채근했다.
그에 제이드는 자기가 생각해도 창피한지 뺨을 긁적이며 이야기했다.
“그 누나가 만취하면 마법 쓰는 버릇이 있어서, 주점 벽에 화염구를 날려버렸지 뭐야.”
“뭣…….”
스케일이 다른 술주정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허나 제이드가 말한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이성을 잃은 프란체스카는 화염구를 시작으로 온갖 마법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발화 마법으로 주변 사람들의 옷을 모조리 태워버리질 않나, 언데드들을 소환하여 난동을 부리질 않나.
듣기만 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만행들을 수도 없이 저질러 여관을 폐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목제 건물은 빠르게 불탔고 주점 외벽은 형체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잡혀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프란체스카는 경비대에게 제압되어 감옥에 갇혔다는 게 이야기의 결말이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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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코멘트 덕분에 힘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