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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동행
“하지만 간신히 내가 놈의 기습을 눈치 챘어. 놈이 우리에게 다리를 뻗은 순간 등줄기가 서늘하더라고!”
“굉장해……!”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던 거군요!”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청중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뭔가 내 입으로 내 활약상을 말해서 낯간지러웠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더 좋아했다.
그들 머릿속에서 난 이미 재앙신 아라크네를 처치한 영웅이었다.
좀 잘난 척 하듯 말해도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에 비하면 내가 한 자화자찬 정도는 겸손한 수준이리라.
“간발의 차이로 내 검이 놈의 목을 베어 넘겼지. 아라크네의 목이 떨어지는 걸 보고 나서야 놈의 날카로운 다리도 내 목전까지 와 있는 걸 깨달았어.”
“세, 세상에…….”
“진짜 죽을 뻔했구만……!”
잔뜩 긴장한 내 목소리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스스로의 목을 쓰다듬었다.
다들 자신도 모르게 아라크네가 자신의 목을 노리는 걸 상상했나 보다.
“그래도 우리 모두가 힘낸 덕분에 아무도 죽지 않고 끝낼 수 있었어. 마침내 거미들한테 붙잡힌 여사제, 요르나도 안전하게 구출해냈고.”
“다행이다아……!”
“목숨 바쳐서 광휘의 자매를 구하다니! 정말 훌륭한 일을 해냈군, 젊은이!”
이야기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찬사가 터져 나왔다.
손에 땀을 쥐며 이야기를 듣던 종업원은 참아왔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대신전의 사제로 보이는 중년 아저씨는 내 어깨를 탁탁 두들기면서 거듭 칭찬했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내 방송인으로서의 감도 아직 죽지 않았구나 싶었다.
동경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서비스 멘트를 날렸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여러분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어요. 어쩌면 지금도 하고 있을지 모르죠.”
내가 겸허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명 받았다.
모험가들이 특히 그랬고, 주문도 팽개치고 모여든 종업원들은 얼굴을 붉히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뭐하는 놈인가 싶었는데, 사람 됨됨이가 아주 좋은 친구였네!”
“그래,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됐어.”
“팬티만 입고 다녀도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해냈다면 응당 대우를 해줘야지!”
어느덧 내 민심을 말 그대로 떡상했다.
처음엔 이럴 생각이 없었는데 듣는 귀가 많아지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자기 관리를 하게 됐다.
내가 부족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스트리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자기관리를 잘 해서다.
남들이 이런저런 논란을 터뜨릴 때 내 채널은 항상 청정지대를 유지했다.
그만큼 내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부끄러운 짓을 안 해서 그런 거다.
천성 찐따라 사건사고 터질 여지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내 즉흥적인 민심관리는 대성공이었다.
듣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다음부턴 길거리에서 이상한 시선을 조금 덜 받지 않을까.
이 기회에 걸어 다니는 유해물 취급 좀 털어냈으면 좋겠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도 벗고 다니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런 거야.
“진짜 굉장한 모험을 했구나. 초보자라는 게 안 믿겨지는걸.”
“다음엔 우리랑 같이 모험하자! 네 실력을 직접 보고 싶어졌어.”
다른 사람들이 감탄을 보내올 때였다.
제이드와 니아가 파티 제안을 해왔다.
오늘은 쉬기로 한 두 사람이지만 당장 내일부턴 또다시 모험을 떠날 계획인 듯했다.
‘니아 누님이랑 파티라.’
문득 우리 파티의 부족한 자리가 떠올랐다.
니아의 갑옷과 무장을 고려했을 때 그녀는 전형적인 딜탱형 기사일 것이다.
탱킹에선 다소 뒤처지지만 적의 방어구를 파괴하는 둔기 특유의 능력 ‘손상’은 장원에서도 유용할 거다.
장원의 몬스터들은 비행도 비행이지만 정예몹들 중엔 방어구를 덕지덕지 붙인 놈들이 많다.
마딜이 유미 하나 밖에 없는 우리 파티로선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것이다.
그런 우리 파티에 니아가 탱딜을 맞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하지만 니아 누님한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긴 좀 그렇지.’
당장 세이나의 반응만 떠올려도 알 수 있다.
게임 세계의 사람들은 지혜 잃은 장원을 무슨 인외마경처럼 여기고 있다.
인간이 결코 발을 들여선 안 되는 불가침의 지옥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세간의 인식이 그런 마당에 장원 파티 모집! 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면 같이 죽자고 홍보하는 걸로 보일 거다.
기껏 맛깔 나는 모험담으로 올려놓은 내 민심도 다시 떨어지겠지.
아쉽지만 니아와의 파티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미안 누나, 이미 다른 던전에 가기로 계획해뒀거든. 파티는 다음에 맺어야 될 것 같아.”
“뭐? 어제 공략했는데 또 들어가겠다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대답을 들은 니아와 제이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에 나는 태연하게 손사래를 쳤다.
“걱정 마. 남는 게 체력이라서 힘들 것도 없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고작 하루 쉬고 또 던전 공략이라니. 너 그러다가 진짜 죽을 수도 있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해도 니아는 내가 걱정스러운가 보다.
“엄밀히 따지면 내일 모레 갈 거긴 한데…….”
괴물과 싸우는 건 모험가들에겐 일상적인 일이다.
허나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지 않다.
한 번 들어가면 며칠 동안 못 나올 수도 있고, 야외에서 싸우는 것보다 위험 부담도 크다.
그렇기에 던전은 철저한 준비 기간을 갖춘 뒤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애초에 공략하기 만만한 던전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공략 계획이 없는 날에는 토벌 의뢰를 받거나 사냥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세이나 씨가 알려줬다.
“내일이나 내일 모레나 그게 그거지. 던전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천천히 해.”
“그래, 다키. 내일은 기분 전환 삼아 우리랑 토벌 의뢰나 받자고. 서쪽 늪지에 버닙이 출몰했다는데 보상이 아주 쏠쏠해.”
이때다 싶었는지 제이드가 날 회유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펼쳐보니 새와 뱀이 섞인 괴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늪지에서 출몰하는 미니 보스, 버닙이었다.
별로 어려운 보스는 아니지만 찾기가 귀찮아서 보류했는데 내일 두 사람의 타겟이 이놈인 모양이다.
버닙 사냥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난 좀 더 빨리 강해지고 싶다.
연달아 대형 클랜의 멤버들과 만나서 그럴까.
나도 빨리 그들처럼 유명해지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테르니아를 방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재앙신은 존재만으로도 황혼을 불러오는 살아있는 재액 그 자체.
비록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긴 했지만 몬스터들의 던전 밖 진출도 황혼과 관련 있을 거다.
내겐 여명의 투사로서 이를 하루 빨리 해결할 의무가 있다.
“어떻게든 그래야 될 이유가 있거든. 자세히 말해주진 못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버닙 토벌의 의뢰서를 돌려주며 진중한 어투로 말했다.
내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의미심장을 기색을 느낀 듯했다.
그들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으나 끝내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모험가들은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테니 구태여 캐묻지 않으려는 것이리라.
그래도 어떤 던전을 공략하는지는 궁금한 모양이다.
니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번에는 어떤 던전인데? 혹시 동쪽 산맥에 있다는 유적이야?”
“아니면 북쪽에 있는 대분묘라거나.”
율리아나 근처에 있는 던전을 이것저것 말하며 두 사람은 어느새 던전 맞추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되니까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나중가면 다 탄로 날 거 그냥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니, 이번엔 지혜 잃은 장원으로 갈 거야.”
“뭣…….”
“……!”
내 말 한 마디로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경악어린 시선이 내게 쏟아진 것이었다.
술잔을 옮기던 바텐더는 들고 있던 잔을 모조리 떨어뜨렸고 다시금 바쁘게 움직이던 종업원들은 일제히 멈춰 섰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모험가, 상인, 일꾼들을 가리지 않고 입을 쩌억 벌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제이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이, 다키……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차마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설마. 농담이겠지.
그런 생각이 표정으로부터 드러났지만 난 주저 하지 않고 수긍했다.
“응, 거기서 아테나 여신을 쓰러뜨리고 장원을 해방하려고.”
쐐기를 박은 순간 홀 전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테나 여신이라니……! 그 무패의 전신을 상대로 싸우겠다고?!”
“다른 클랜들도 십 년 넘게 손도 못 댔잖아. 거기 갔다간 개죽음 밖에 안 당할 텐데…….”
“창창한 젊은이가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누군가는 날 미친 사람 취급했고, 누군가는 우려어린 시선을 보냈다.
제이드는 양쪽 다 반씩 섞인 눈빛으로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유미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차마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또 같은 레파토리가 이어지겠구나.
아마 니아도, 제이드도 가지 마라 미친 짓이다 하며 만류하겠지.
이번에는 어떻게 그들을 안심시켜야 될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예상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갈래.”
“응……?”
니아가 불현듯 말했다.
순간 귀를 의심한 나는 반사적으로 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는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날 따라오겠다는 생사의 결심이었다.
‘뭐지……?’
니아의 요구를 들은 뒤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엉켰다.
왜 갑자기 니아가 따라오겠다고 하는 거지?
이 누님이 날 따라올 이유가 있나? 게임 세계 사람들이라면 어지간한 이유론 안 그럴 텐데?
수많은 의문이 끊임없이 피어오를 때였다.
니아가 초조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다키 너 아직 파티원도 못 구했을 거 아니야. 분명 너랑 나나 둘이서 가려 했겠지. 안 그래?”
“그, 그렇긴 한데…….”
당황스러운 나머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에 반해 니아는 마치 예전부터 생각해둔 대사를 읊듯 청산유수로 제안해왔다.
“보다시피 나는 탱커야. 막고 지키는 데엔 자신 있어. 데려가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아니 그건 아는데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해서…….”
“갑작스러울 거 뭐 있어? 길드에서도 처음 만난 사람끼리 파티 맺곤 하잖아. 게다가 나 같은 탱커는 흔하지도 않은데 너희한텐 좋은 일 아니야?”
막무가내로 나오는 니아를 보며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확실히 우리 파티엔 탱커가 필요하다.
린크처럼 애매한 탱커가 아닌 제대로 된 능력을 갖춘 진짜 탱커가 말이다.
니아 말대로 순수한 탱커는 흔치 않은 듯했다.
모험가 길드를 휙 둘러봤을 때도 근딜로 보이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 반면 아무리 봐도 탱커다 싶은 사람은 몇 안 됐다.
아마 장비의 비용과 압도적으로 높은 위험 부담 때문이겠지.
다른 파티를 보면 대부분 근접 멤버들이 탱커의 역할을 나눠서 분담하는 식이었다.
어느 게임에서나 그렇듯, 가디스 던전에서도 탱커는 없어서 못 모시는 귀족들이었다.
당연히 니아의 제안도 나에겐 무척 달콤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쉽게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야…….’
지혜 잃은 장원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생지옥이다.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수백만 아웬을 준다 해도 절대 들어가려 하지 않을 거다.
니아는 대체 왜 그런 곳에 자진해서 들어가려는 걸까?
돈 때문에? 아니면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어떤 이유건 그녀가 왜 장원에 들어가려 하는지 정도는 파악해야 한다.
그리 생각한 내가 질문을 건네려 할 때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제이드가 니아를 만류했다.
“아니, 듣자 듣자하니까! 니아 너까지 왜 그래?! 장원에 들어가면 무사하지 못할 거 뻔히 알잖아!”
격양된 목소리로 니아의 팔을 붙잡는 제이드.
다소 거칠었지만 그의 팔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연인이 사지로 나가겠다고 하는데 어찌 안 그럴 수가 있을까.
흔들리는 눈빛으로도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허나 니아는 더욱더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도 알잖아 제이드. 장원이라고……! 아빠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단 말이야!”
‘아빠?’
신경 쓰이는 말을 듣고 나는 니아의 사정을 대강 유추했다.
아마 그녀의 아버지와 장원 사이엔 모종의 사건이 있는 듯하다.
아버지가 장원에 들어갔다가 실종됐다거나 그런 류의 이야기일 테지.
그런 거라면 니아가 저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따라오려는 것도 설명이 된다.
덩달아 칠흑검 클랜을 보면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말이다.
‘아빠를 찾고 싶어서 계속 노력했던 거구나…….’
내가 들은 이야기는 아주 단편적이고 대부분은 내 추측이다.
하지만 흐트러진 퍼즐들을 하나하나 맞추면 니아의 사정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아쩌시랑 관련 있다고 해도 그렇지! 아무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데, 거길 들어가서 뭘 어쩌려고 그래?!”
내가 니아의 배경을 추측하는 와중에도 제이드는 그녀를 뜯어말렸다.
허나 거듭된 설득에도 불구하고 니아는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언젠간 들어가려 했잖아. 기회가 조금 빨리 온 것뿐이야.”
“니아 너…….”
망연자실한 제이드로부터 시선을 돌린 뒤 니아가 날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 발자국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미 니아의 머릿속에선 본인이 장원에 들어가는 게 확실 시 됐겠지.
그렇게 니아와 제이드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문득 어떤 정보를 떠올렸다.
니아를 처음 봤을 때부터 신경 쓰인 부분이 불현 듯 상기된 것이다.
‘설마 니아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