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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51화 (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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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성소

나나랑 헤베 중에 누가 더 좋았냐고?

그건 정말 결정하기 힘든 문제다. 둘 중 누가 더 귀여우냐는 것보다 훨씬 더 난제인 것이다.

‘경험으로 따지면 나나 쪽이긴 한데…….’

한 번만 몸을 섞은 헤베와 달리 나나와는 벌써 이런저런 플레이를 해봤다.

하지만 헤베와의 첫 경험 또한 잊을 수 없는 쾌락을 안겨주었다.

더군다나 두 사람 다 각기 다른 매력과 특징을 가지고 있으니 고르기는 더욱 힘들었다.

‘아니 근데 이건 고민해봤자 아무 의미 없잖아?’

잠시 생각에 잠긴 나였지만 곧 헤베의 의도를 깨달았다.

지금 헤베에게 진실 같은 건 1도 중요하지 않다.

생각해보라.

내가 여기서 나나랑 했던 게 더 기분 좋았다고 말하면 무슨 참사가 벌어지겠는가?

내 머리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연달아 벌어질 거다.

그렇다고 해서 헤베와 했던 게 더 기분 좋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성취향이 독특해서 그렇지 나나는 엄연히 내 여자친구다.

여자친구보다 원나잇 한 여신님이 더 좋았다는 이야기는 절대 할 수 없다.

물론 헤베가 원하는 건 본인과의 경험이 더 좋았다고 말해주는 것이겠지.

이 질문은 그녀의 입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답정너의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걸 따질 수는 없죠. 여신님이랑 제 동료를 비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지혜를 짜내봤다.

헤베가 더 낫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그녀를 치켜세우는 어투를 사용한 것이다.

“투사님…….”

그 말을 듣고 헤베는 얼굴을 발그레 붉혔다.

예상대로 그녀는 내가 한 말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고 해석한 모양이었다.

허나 헤베도 바보는 아니었다.

처음에야 얼굴을 붉히며 좋아했지만 머지않아 내 말의 속뜻을 간파해냈다.

한낱 연애고자인 내가 여신님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흥…… 그렇군요. 투사님이 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주 잘 알겠어요.”

머릿속에서 정리를 마친 헤베는 뾰로통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어쩜 삐지는 것도 이렇게 귀여울까.

나도 모르고 부풀어진 볼을 붙잡고 쪽쪽 입 맞출 뻔했다.

그나저나 진짜 삐졌다면 큰일인데.

헤베는 뒤끝이 긴 NPC로 악명 높다.

가끔 대화 도중에 나오는 선택지 중에서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는 선택을 하면 후환이 세게 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그녀를 나이 많은 여신 취급하면 기분이 풀릴 때까지 넥타르를 보충을 못한다.

소울라이크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끔찍한 재앙인지 잘 알 거다.

포션이 그야말로 생명수나 다름없는 게임에서 보충을 막아버리다니.

그냥 게임을 하지 말란 소리나 다름없다.

이전의 실수로 몇 번이나 헤베의 뒤끝을 봐왔던 나기에 내심 근심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만회할 기회는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둔 게 있지 않은가.

“여신님? 잠깐만 눈 좀 감아보실래요?”

“네? 갑자기 왜요?”

헤베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난 뒤 부탁조로 얘기했다.

헤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목소리엔 여전히 삐진 기색이 가득 담겨 있었다.

“깜짝 놀랄 만한 걸 준비했어요. 바로 보여드리면 재미없으니까 한 번만 감아보세요.”

“투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내가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하자 헤베도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녀도 알게 모르게 기대한 것이리라.

남자가 깜짝 놀랄 만한 걸 준비했다고 하면 십중팔구 선물일 테니까.

“목걸이.”

헤베가 눈을 감은 틈을 타 차원낭을 열었다.

그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곧 내 손에 목걸이가 든 상자가 쥐어졌다.

다시 봐도 신기한 기능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에 들어온 목걸이를 들고 나는 헤베에게 돌아갔다.

“됐어요, 여신님. 이제 눈 뜨셔도 돼요.”

“네 투사님. 그보다 뭘 준비하셨기에 이렇게까지 하시는…… 어머……!”

헤베가 눈을 뜨는 것과 맞춰서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목걸이가 짠하고 나타났다.

“이, 이게 웬 목걸인가요 투사님……?”

자신에게 내밀어진 선물을 보며 헤베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정황상 본인에게 주는 것임이 분명한데도 이를 확신하지 못했다.

그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마냥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여신님 생각나서 사본 거예요. 받아주실래요?”

“저, 정말요……?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내 확인사살에 헤베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이런 선물을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한 기색이었다.

나와 목걸이를 번갈아 보는 눈빛에는 혼란스러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럼 누구한테 주려고 사왔겠어요? 이런 게 잘 어울리는 분은 성소에서 여신님뿐이잖아요.”

재차 묻는 헤베를 향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목걸이를 집어서 직접 헤베의 목에 걸어줬다.

“햣……?!”

한 차례 흠칫 몸을 떤 헤베였지만 저항하진 않았다.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리긴 했으나 얌전히 목걸이가 채워지는 것을 기다렸다.

“여신님은 저한테 해주신 게 많은데 전 막상 보답해드린 게 없더라고요. 약소하지만 이런 걸로라도 보답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리 말한 뒤 한 걸음 물러섰다.

푸른색 보석 목걸이가 헤베의 목에 걸렸다.

헤베는 멀뚱히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말이 없는 헤베. 그녀를 보며 나는 조금 걱정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설마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는 나름 이름 있는 여신이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금지옥엽이 이 정도 장신구도 못 걸어봤을 리 없다.

그녀 입장에서 내 선물은 문방구에서 산 장난감 목걸이 정도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침묵이 계속 되자 추측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왜 불길한 추측은 항상 들어맞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를 믿고 싶지 않았던 나는 조심스레 헤베에게 물었다.

“그…… 마음에 안 드세요……?”

목걸이를 직접 걸어줄 때만 해도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말없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점점 초조해져갔다.

허나 불길한 추측이라고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다.

“네, 네?! 죄, 죄송해요 투사님! 너무 갑작스러워서 잘 못 들었어요……!”

내 말을 듣고 나서야 헤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목걸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목걸이에 집중하느라 내 말을 못 들은 것이다.

이 말은 곧 목걸이가 더없이 마음에 든단 뜻이겠지.

내 불길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음에 안 드시나 해서 여쭤봤어요. 지금 보니까 여신님한텐 너무 소소한 거 같기도 하고.”

“그, 그럴 리가요!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투사님이 주신 선물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최고예요!”

내가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묻자 헤베는 고개를 마구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이번에도 너무 세게 고개를 돌려서 그녀의 트윈테일을 통해 바람이 휘몰아쳤다.

몇 번이나 고개를 붕붕 저은 그녀는 곧 엄격, 진지, 근엄한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소소하건, 소소하지 않건 투사님이 주신 선물인 걸요! 저한텐 그 어떤 보물보다 값진 물건이에요!”

“그, 그러세요?”

너무 박력 있게 말해서 기가 눌릴 정도였다.

헤베의 강력한 주장 덕분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내가 흐뭇함을 느낄 무렵, 헤베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더니 가슴께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이 목걸이…… 저한테 잘 어울리나요?”

“잘 어울리다마다요. 딱 봤을 때 여신님을 위해 만들어진 줄 알았다니까요?”

질문을 받자마자 힘껏 긍정했다.

남들 보기엔 좀 오글거릴 수도 있는데 내 말엔 한 점의 과장도 없었다.

선물해준 목걸이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어울렸다.

금색과 파란색은 헤베의 상징적인 색이지 않은가.

퍼스널 컬러와 특유의 수수한 디자인이 헤베의 이미지와 환상적으로 부합되었다.

“헤헤…… 다행이네요…… 투사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정말 기뻐요.”

내 극찬을 듣고 헤베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

직후 헤베가 다시금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그녀는 갑작스레 까치발을 서더니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쪽…….”

“엇…….”

너무나도 달콤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녹여버릴 것 같은 소리와 부드럽기 그지없는 감촉.

헤베에게 뽀뽀를 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새삼 얼굴을 붉혔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투사님. 저는 시녀로서 보필해드린 것 밖에 없는데 이런 걸 받으니까 너무 기뻐요.”

입술이 닿은 뺨을 어루만지며 헤베와 눈을 마주쳤다.

헤베의 만면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처럼 화사한 미소였다.

마음을 빼앗겨버릴 정도로 청순한 미모.

과연 헤베는 여신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피를 확실하게 이어받은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성의 마음을 이렇게 녹아내리게 할 수 없다.

“이, 이 정도로 뭘요. 오히려 여신님이 절 더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헤베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부끄러운 기분이 몰려왔다.

그건 헤베도 마찬가지인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선물 하나로 이렇게 기분이 풀릴 줄은 몰랐다.

뇌물 공세가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 깨달을 무렵이었다.

헤베가 어색한 어투로 내게 물었다.

“이, 임무 수행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보고는 나중에 하시고 일단 방에 들어가서 쉬시는 게 어떨까요?”

“네? 아뇨, 푹 쉬고 와서 괜찮아요. 보고는 지금 당장이라도…….”

뜬금없는 헤베의 제안에 고개를 가로저으려 했다.

허나 그런 나를 막는 누군가가 있었다.

[푸르릉.]

“에보니?”

뜨거운 콧바람이 등에 닿았다.

당황하며 돌아보자 어느새 내 뒤로 온 에보니가 날 헤베 쪽으로 밀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그 행동에 에보니를 바라보려니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뭐지? 지금 에보니가 날 푸쉬해 주고 있는 거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말이…….

“히얏……?!”

내가 황당한 기분으로 에보니와 시선을 나눌 때였다.

헤베가 에보니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갑작스레 시커멓고 커다란 말이 나타나면 당황할 만도 하겠지.

나는 에보니는 진정시키면서 헤베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여신님. 오면서 구한 말인데 다른 말들이랑 다르게 좀 특이한 애더라고요.”

“마, 말이요? 아, 그, 그렇죠! 그러네요……! 아주 예쁘고 귀여운 말이네요……!”

헤베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뭐지? 왜 저렇게 당황하는 거야?

말 공포증이라도 있나? 마치 에보니가 말이 아니라는 것 같은 눈빛이다.

뭐 나도 에보니를 처음 봤을 때 비슷한 심정이긴 했다.

여신님이긴 해도 나름 소녀 감성을 가진 헤베니까 유난히 두려울 수도 있으리라.

[푸릉, 푸르릉.]

“그보다 투사님…… 역시 안쪽에서 쉬시는 게 좋겠죠?”

에보니의 투레질과 동시에 헤베가 내 팬티 자락을 붙잡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간절한 빛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으음…… 확실히 여기까지 오느라 좀 지치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할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러면 이쪽으로 와주세요. 고생하시고 오신 투사님을 위해서 준비한 게 있어요.”

헤베가 수줍은 미소를 흘리면서 날 안내했다.

앞장서면서 슬쩍 뒤쪽을 봤는데 왠지 모르게 내가 아니라 에보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뭐랄까, 방금 전까지 당황했던 것과 다르게 지금은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에보니가 의외로 순해서 마음에 들기라도 한 건가?

이 여신님의 속내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보다 준비한 거라.

우리 귀여운 여신님이 날 위해 뭘 준비해줬을까.

흐름상 건전한 서비스는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하게 섹스로 위로해주고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은데.

궁금증을 품으며 걸어가길 잠시, 우리는 어느 동굴에 도달했다.

성소 주위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굴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이런저런 구조물이 보였는데 낡은 느낌이 전혀 없는 걸로 보아 개조한지 얼마 안 된듯했다.

내부를 촛불로 밝혀서 어둑한 느낌이 있었고 안쪽에서부터 달콤한 향기가 났다.

“그…… 에보니 님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안쪽에 들어가기엔 너무 크시니까…….”

[푸르릉.]

동굴에 들어가려 할 때 헤베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정중하기 그지없는 부탁에 에보니는 얌전히 제 자리에 섰다.

물론 말이 정중이니 뭐니 하는 걸 알아들을 리 없을 테지만 말이다.

“꼭 여기서만 있을 필요 없어, 에보니. 피해 안 끼치는 선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

“히익……?!”

말 잘 듣는 에보니의 목을 몇 번인가 토닥여준 뒤 고삐를 풀었다.

그러자 헤베가 이상할 정도로 경악하면서 나와 에보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투, 투사님……! 조, 조금만 더 정중……! 아니, 상냥하게 대하시는 게……!”

“네? 예뻐서 토닥여준 건데 너무 셌나요?”

헤베의 과민반응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는 쓰다듬어주는 거랑 다를 바 없지 않나?

에보니도 불편해하는 기색은 안 보였다.

[푸릇, 푸르릇.]

“아, 앗……! 새,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도 같네요! 죄송해요 괜한 참견이었어요!”

오늘의 헤베는 어딘가 불안정했다.

내가 준 선물에 정신이 팔려 있는 건가?

아니면 오랜만에 야릇한 상황이 흘러서 긴장한 걸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에보니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날 응시하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내게 뺨을 비벼왔다.

[푸르릉…….]

============================ 작품 후기 ============================

약 먹고 하루 쉬니까 다행히 나아졌습니다. 여러분도 환절기 건강 관리 조심하세요.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서도 예민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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