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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그럼 조심해서 잘 타. 익숙해질 때까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네, 이것저것 알려줘서 고마워요 제시.”
에보니 스피어를 구입한 후 나는 제시로부터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
대체로 에보니 스피어가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숙지하는 것이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에보니 스피어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다.
전투에서 직접 활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수영이나 등반까지도 가능하단 것이다.
정말 이 정도면 말의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은 거 아닌가?
그런 식으로 물어봤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종속의 인장을 새겨 넣을 수 있는 말들은 전부 명마의 피를 계승한 말이라고 한다.
여기서 명마란 단순히 뛰어난 말을 칭하는 것이 아니다.
부케팔로스, 베이야드, 그라니 등 평범한 말이 아닌 환수의 영역에 들어선 말들을 뜻한다.
내가 타고 있는 에보니 스피어의 몸에도 옅게나마 전설적인 말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고맙기는. 참고로 우리 가게는 다른 탈 것도 다루니까 혹여나 발견하면 데리고 와줘.”
판타지 마구간이라 환수들도 취급하는 건가.
확실히 건물 2층에선 말의 것과는 거리가 먼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말 외에도 여러 탈 것들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는 듯하다.
“네, 나중에 또 올게요.”
“응, 응~ 잘 가 아라크네 슬레이어~”
마지막으로 배웅을 받은 뒤 나는 마구간을 나왔다.
우선 감을 익힐 겸 경보로 성문 밖까지 나가봤다.
첫 승마인데도 에보니 스피어를 타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다행히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탈 수 있었던 것이다.
난생 처음 타보는 거라 어색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몸이 기억하듯 문제없이 주행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에보니가 내 말을 잘 따라줘서 곧 숙련된 사람들처럼 승마 자체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성문을 벗어난 우리는 드넓은 평원에 접어들었다.
주변에 장해물도 없겠다 나는 에보니를 토닥이며 말했다.
“좋아 에보니, 좀 더 빨리 가보자. 어디 전력으로 달려봐!”
[히이이이잉!]
가급적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에보니 스피어를 독촉했다.
딱히 채찍질이나 발길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에보니는 내 말을 곧장 알아들었다.
작은 신호에도 곧장 내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들판을 박차는 다리가 점점 빨라졌다.
머지않아 에보니에게 가속도가 붙었고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다.
주위의 광경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방금 전에 봤던 나무가 수 미터 뒤에 있었고 성문은 자그마한 점이 됐다.
시속 70km가 이렇게 빠르구나.
모험가용 말이라 그런지 체력도 좋은 것 같았다. 지칠 기세도 없이 계속 이 속도를 유지했다.
과연 10만 아웬을 현찰 박치기한 가치가 있었다.
“와하아아앗! 에보니 너 진짜 빠르구나! 완전 바이크 저리 가란데?!”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 좋은 속도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매순간마다 바람이 얼굴을 강타했으나 그마저도 신나고 짜릿했다.
처음엔 좀 무서웠으나 에보니가 중심을 잘 잡아줘서 가속에 대한 공포도 금세 극복할 수 있었다.
[히히이이이잉!!]
다음 순간 에보니 스피어가 속도를 높였다.
칭찬을 받아서 더욱 의욕이 솟아난 듯했다.
그렇게 에보니 스피어의 쾌속 주행으로 나는 고작 십여 분 만에 남쪽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걸어서 왔다면 1시간 거리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것이었다.
다시금 에보니 스피어의 속도에 감탄하며 나는 그녀의 목을 쓰다듬었다.
“후우! 수고했어, 에보니. 이제 불편하게 걸어 다닐 필요 없겠다.”
[푸릇, 푸르릉…….]
내가 목을 어루만져주자 에보니는 더 쓰다듬어달라는 듯 목을 기울였다.
이렇게 보니까 말이 아니라 댕댕이 같다.
처음엔 덩치도 크고 인상도 무서워서 몰랐는데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여기서부턴 천천히 가자. 곧 목적지야.”
[히히잉.]
이 앞은 나무가 우거진 숲이라 평원에서처럼 빠르게 달릴 순 없었다.
그래도 에보니가 지나다닐 만한 길은 있었다.
다소 험준한 지형이 나와도 그녀는 요령 좋게 움직여 개울가를 지나거나 바위를 넘었다.
어제 사용한 길을 그대로 따라가 동굴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동굴과 가까워질수록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깐 에보니, 멈춰 봐.”
에보니에게 지시하자 그녀는 소리 없이 자리에 멈췄다.
내 말투로 조용히 해야 된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다.
참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에보니의 등에서 내렸다.
그 후 나무가 우거진 쪽으로 들어가 슬쩍 확인해봤는데 여러 명의 사람들이 동굴 주위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피로 물든 풀밭을 조사하고 시체를 회수하고 있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길드에서 파견한 조사대원들 같다.
분명 아라크네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온 것이리라.
‘아라크네 사건만 조사하는 것 같진 않지만…….’
그들이 회수한 시체는 동굴 안에서 나온 것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수풀에 던져 놓은 트롤 슬레이어들의 시체도 섞여 있었다.
“이거 심하구만. 어떤 게 괴물한테 당한 거고 어떤 게 사람한테 당한 건지 구분이 안 가.”
“얼굴까지 찍어 놓을 걸 보면 꽤 용의주도하네요. 신상 조회 못할 수도 있겠는데요.”
몇몇 조사대원들은 트롤 슬레이어들의 시체를 눈 여겨 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거미들한테 당한 시체도 충분히 끔찍했지만 놈들의 시체는 다른 의미로 처참했다.
신상이 밝혀지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옷을 전부 벗기고 얼굴을 함몰시켜 놨다.
거기에 더해 온몸은 짐승들에게 뜯어 먹힌 흔적들로 가득했다.
내 생각만큼 들짐승들이 열심히 먹어치우진 않은 모양이다.
“늑대들이 대부분 뜯어먹었어. 신상 조회는커녕 가족이 와도 못 알아볼 지경이야.”
“그럼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거미한테 당한 사람 챙겨주기도 바빠. 적당히 신원미상 시체로 처리하고 화장터로 보내.”
시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좀 철렁했는데 다행히 조사가 심도 있게 이뤄지진 않나 보다.
그래도 사람 시첸데 너무 막 대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곧 이해가 갔다.
게임 세계는 원래 세계와 다르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괴물이나 들짐승, 도적들에게 죽임 당한다.
그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슬퍼하고 공들여 장례를 치르기는 힘들 거다.
더군다나 신원불명의 시체는 장례비를 내줄 사람도 없으니 자연스레 화장으로 끝내는 거겠지.
“좋아, 깔끔했다.”
안도감을 느끼면서 주먹을 부르쥐었다.
게임 세계기에 가능한 완벽 범죄다. 이제 펜리르의 권속들도 내 꼬리를 못 잡을 거다.
깔끔한 기분으로 내 할 일을 하면 되겠지.
[푸르릉…….]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에보니. 이 세상엔 필요악이란 게 있는 법이라고.”
묘한 시선을 보내오는 에보니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그녀가 이 상황을 이해한 건 아니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이상하게 이 녀석의 눈빛에선 사람 같은 감정이 느껴진단 말이지.
아무튼 나는 에보니를 이끌고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 동굴 앞으로 걸어간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방해하고 싶지도, 방해받고 싶지도 않았기에 돌아서 가기로 했다.
애초에 내 목적지는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는 곳이니까.
발걸음을 돌려 향한 곳은 좀 더 으슥한 숲길이었다.
나무가 머리 위를 가려서 햇빛이 덜 들어왔고 야생동물의 흔적도 많았다.
와호가 살던 숲만큼은 아니었지만 여기도 꽤 음산한 기운이 흘렀다.
“이쯤일 텐데……. 아 여기다.”
조사대원들의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까지 걸어오자 머지않아 또 다른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사람은커녕 고블린들조차 이용하지 않은 곳인지 입구 주위에는 녹음이 가득했다.
불상처럼 생긴 묘한 신상들도 늘어서 있는 게 신비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너도 들어갈 수 있으려나?”
[히이잉.]
입구의 크기와 에보니의 몸집을 재고 있으려니 그녀가 먼저 앞장섰다.
다소 좁은 입구였지만 적당히 고개를 숙이니까 잘 들어갔다.
그렇게 우거진 수풀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간 나는 랜턴을 꺼내들었다.
잡화점에서 구입해둔 마법 랜턴이었다.
횃불도 광원으로서 썩 괜찮지만 굳이 불을 붙일 일이 없었기에 그보다 더 편리한 랜턴을 꺼낸 것이었다.
푸르스름한 빛에 의지한 채 얼마간 걸어 나가길 잠시, 곧 특이하게 생긴 공간이 나타났다.
어제라면 절대 도달하지 못했을 비밀 장소.
아라크네가 죽은 뒤 개방된 공간이다.
사방에 푸른 꽃이 가득한 그곳에는 여신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전에 봤던 여신상들과 다르게 온전한 것이었다.
“이제야 겨우 하나 나오다니. 개발자들도 진짜 야박하다.”
이것을 통해 다시 성소로 돌아갈 수 있다.
성소에 나온 지 며칠 만에 찾은 온전한 여신상이다. 감격스러울 정도다.
이 또한 여길 찾은 이유 중 하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나 따라오면 징그러운 거 보게 될 테니까.”
제단에 고삐를 묶으며 말했다.
내 말을 듣고 에보니는 얌전히 꼬리를 살랑거렸다.
기특하게 기다리는 에보니의 콧잔등을 스윽스윽 문질러준 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신상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어두운 통로가 있었다.
새카만 칠흑 속으로 들어갈수록 무언가가 움직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타닥, 드르륵.
어떤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불빛을 비쳐 확인하니 베틀이 보였다. 누군가가 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베를 짜고 있었던 것이었다.
베를 짜는 존재는 충격적이게도 커다란 거미였다.
허나 어제 봤던 새끼 거미들과 비슷했는데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얼굴이 사람과 같다는 것이었다.
“와우 쉣…….”
기괴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마치 노년 남성의 얼굴을 가진 거미.
그야말로 인면지주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놈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하던 일을 계속했다.
특이하게도 그가 짜는 베에는 아무런 그림이 없었다.
다 짠 베는 다시 풀어버릴 뿐이었다. 정말 무의미한 반복 노동처럼 보였다.
“저기…… 저기요……?”
한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허나 인면지주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귀가 안 좋은 건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죄송한데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인면지주도 뒤늦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아아…….”
그는 검은 자 밖에 없는 눈을 몇 번인가 깜빡거렸다.
커다란 눈동자 주위엔 거미처럼 자그마한 눈동자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진짜 존나게 혐오스러운 면전이었다.
저 녀석이 무해한 NPC란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칼을 뽑아들 뻔했다.
생긴 건 끔찍해도 플레이어에게 유용한 물건을 제작해주는 우호적인 NPC인 것이다.
‘기왕 우호적인 거 나나 말대로 상반신이라도 미인이었으면 좋으련만…….’
내가 가능충인 건 아니나 적어도 상반신이 미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소름 돋지 않았을 거다.
아무튼 부름을 받은 인면지주는 날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낼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그런 그에게 찢어진 태피스트리를 보여줬다.
아라크네의 보상방에서 챙겨뒀던 그것이다.
“당신을 위한 선물이에요. 이거 드릴 테니까 저한테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주실래요?”
“아아…… 아아아……!”
불빛을 비춰서 제대로 확인시켜주자 인면지주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기괴하게 생긴 몸을 이끌고 타닥타닥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 뻔 했지만 꾹 참고 그에게 태피스트리를 넘겨줬다.
그러자 인면지주는 거의 낚아채듯 태피스트리를 받아갔다.
그리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내 흐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오오…… 아테나…… 나의 여신, 나의 고향…… 다시 뵈어 영광입니다…… 이 몸으로 다시 뵐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의미 불명의 말을 중얼거리는 인면지주.
그는 이 자리에 없는 여신에게 예의를 갖추듯 한껏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그 행동을 이어가던 인면지주는 이윽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한평생 그곳에 돌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난 결국 돌아갈 수가 없었어…… 이렇게나마 그곳을 떠올리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아 예……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아무 말이나 주워섬겼다.
내 대답을 들은 인면지주는 태피스트리를 소중히 끌어안으며 베틀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면서 말을 이었다.
“나 대신 널 들여보내주마…… 아름답고 웅장한 그곳이 널 환영할 수 있도록…….”
그가 거미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빠르게 직물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아무 그림도 없던 직물이 아니었다.
푸른색 올빼미가 그려진 아름다운 태피스트리였던 것이다.
불과 몇 초 만에 완성된 올빼미의 태피스트리.
인면지주는 그것을 내게 건네며 간절히 얘기했다.
“부디 내 몫만큼 그 아름다운 성벽을 봐줘…… 그 분의 총명한 눈을 봐줘…….”
무척이나 애절한 목소리였다.
나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얼마든지 봐줄게요.”
“고맙다…… 아아 아테나…… 나의 여신, 나의 고향…….”
그 말을 끝으로 인면지주는 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베틀도 완전히 멈췄다.
그에게 쓴웃음을 보낸 뒤 나는 다시 여신상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장원 안으로 진입할 수단은 갖췄다.
이 태피스트리를 통해 장원의 요격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푸른 올빼미의 태피스트리.
어두운 동굴 안에 은거하던 이형의 존재가 만들어준 태피스트리. 지혜 잃은 장원에 진입할 때 원거리 공격을 받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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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생기기 전에 말씀드리자면 작가는 말박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