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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45화 (14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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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그 여신이라면 분명 바리에 필적하는 대형 클랜을 만들었을 게 분명하다.

원작 게임에서도 바리와 더불어 상당히 영향력 있는 여신으로 등장했으니까.

이러한 추측을 통해 여전사 파티가 여신이 보낸 스카우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들은 서천 클랜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다른 방식으로 날 끌어들일 생각인 듯했다.

처음엔 파티로 시작해서 점차 클랜으로 영입할 심산이겠지.

검은 산양의 뿔이 있으니 완전히 연기는 아니겠지만 나를 향한 호의도 어느 정도는 계획됐을 것이다.

‘어중간하게 거절하는 걸론 끝나지 않겠어.’

클랜에서 보냈다면 그녀들도 작정하고 왔을 거다.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대놓고 유혹을 하는 것부터가 날 어떻겠다는 데려가겠다는 뜻이리라.

나는 뒤늦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성 모험가들을 뿌리쳤다.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 찾아보셔야 될 것 같아요. 말씀드렸듯이 오늘은 바쁜 일이 있거든요.”

“앗……!”

내가 유혹에서 벗어나자 여전사 파티는 크게 놀랐다.

자신들이 실패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기색이다.

그녀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얼른 벗어나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키님! 이렇게 예쁜 언니들이 먼저 초대해줬잖아요! 일정 파토내서라도 가야죠!”

나나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이야기하는 내내 나나의 입에선 거친 숨결이 흘러나왔다.

나는 유혹을 뿌리쳤는데 정작 나나가 여전사 파티에게 푹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래…… 네가 그럼 그렇지…….’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체념한 내가 한숨을 내쉴 때 여전사 파티도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오, 오늘 바쁘면 나중에라도 같이 가자 오빠! 어디서 묵어? 나중에 우리가 찾아갈게!”

“그래……! 꼭 오늘만 날인 건 아니잖아! 다음에 얼마든지 같이 가면 되지!”

내가 주저 않고 벗어나자 여전사 파티도 슬슬 초조해진 모양이다.

수상쩍어 보이는 말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그녀들은 내게 매달렸다.

그런 모습들이 썩 귀엽긴 했지만 무턱대고 내 행적까지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겠죠. 한동안 이 도시에서 지낼 테니까 또 봐요.”

“잠깐 오빠! 아직 할 말이 더 남았……!”

유독 집요하게 덤벼들던 여마법사가 무어라 더 말하려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여기서 한 마디 들으면 한 마디가 두 마디가 되고 두 마디 들을 때쯤엔 그녀들에게 끌려갈 거다.

지금은 냉정하게 판단하도록 하자. 장원 공략 준비만 해도 정신없으니까.

“가자, 얘들아. 나나 너도 그만 올라와.”

“히잉, 네…….”

내가 계단을 오르며 재촉하자 나나도 미련을 버렸다.

결국 여전사네 파티는 멀뚱히 남겨져 날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오빠 정말 이러기야?! 어떻게 우리 같은 미인들을 버릴 수가 있냐구!”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요……! 약속이라도 잡아요!”

1층에 남은 그녀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끝까지 날 불러 세웠다.

허나 제대로 한 번 거절하니 쫓아오지는 않았다.

여기서 더 물고 늘어지면 본인들만 구질구질해 보일 테니까 그럴 만도 하다.

내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장원 공략이 아니었으면 그녀들과의 동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거다.

물론 파티에서 끝내고 클랜까진 안 들어갔겠지만 말이다.

‘인기가 많아도 문제구나.’

서천 클랜을 대놓고 찼으니 한동안 조용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다른 클랜들이 더욱 교묘하게, 시도 때도 없이 영입을 걸어오니 꽤나 곤란했다.

물론 남들 보기엔 이마저도 행복한 고민이겠지

저런 미녀들이 나한테 파티를 권유해주는 것도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고.

남들은 날 배부론 놈이라며 욕할 거다. 그러니까 너무 불평하진 말자.

‘이럴 바엔 아예 클랜을 드는 편이 더 편할 거 같은데…….’

어딘가에 소속되는 건 나 자신을 구속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서천에 이어서 또 다른 대형 클랜도 날 영입하려 들었다.

즉, 내 가치는 대형 클랜들이 앞 다툴 정도로 높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전제 조건을 걸어도 클랜 측에선 흔쾌히 수긍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하면 난 클랜 가입의 혜택은 그대로 얻으면서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될 거다.

물론 클랜원으로서 최소한의 협력은 해줘야 할 테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해줄 수 있다.

‘저 사람들이 모시는 여신도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였고…….’

여전사 파티가 모시는 신은 틀림없이 운명의 세 여신 중 한 명인 스쿨드일 것이다.

노른의 막내인 그녀는 장난기 많고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소악마 같은 이미지를 가졌다.

귀찮은 성격이긴 하지만 애교도 많고 플레이어를 오빠라고 부르기도 해서 인기가 상당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여마법사, 스쿨드랑 은근 닮지 않았나?’

외모는 많이 달랐지만 날 부르는 호칭이나 분위기 자체가 스쿨드랑 비슷했다.

권속이어서 서로 닮기라도 한 건가?

‘그나저나 이제 와서 스쿨드한테 붙으면 바리가 엄청 서운해 할 텐데.’

여마법사에 대해 생각하던 내 머리에 문득 바리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서천은 공개적으로 차버렸으면서 나중에 스쿨드의 클랜으로 가버리면 바리 쪽에서 어떻게 나올까?

어떤 반응이든 썩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원작 게임에서도 바리, 스쿨드는 또 다른 여신 1명과 함께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으니까.

괜히 그녀들 사이에 끼여서 등살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내가 클랜을 만들어 봐?’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빠르게 접었다.

난 리더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다.

살면서 누군가를 이끌어 본 적은커녕 반장조차 해본 적 없다.

그런 나보고 클랜을 이끌라니. 소규모 클랜이라 해도 잘 굴러갈지 미지수다.

나는 뭐라고 할까, 누군가의 듬직한 파트너 혹은 오른팔이 되었으면 좋겠다.

애초에 권력 같은 건 별로 바라지도 않고 날 인정해줄 사람 또는 환경만 있으면 되니까.

‘뭐, 이건 천천히 결정해도 되겠지.’

어제 있었던 일로 제법 유명해졌지만 아직 부족하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는 건 장원을 클리어한 뒤겠지.

어느 클랜에 들어갈지는 그때부터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그때가 되면 내가 애써 찾지 않아도 수많은 클랜들이 내게 몰려들 테니까.

난 그 중에서도 제일 마음에 들고 적절한 클랜을 고르기만 하면 될 일이다.

이러니까 내가 무슨 잘 나가는 축구 선수라도 된 기분이군.

“아, 여기예요 선생님. 여기서 전리품들을 사고 팔 수 있다고 들었어요.”

“아, 그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목적지에 도착했다.

2층 중심부에 있는 가게였는데 다른 곳들과 달리 경매소라고 커다랗게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규모도 다른 가게들과는 차원이 달랐으며 사람들의 왕래도 많았다.

“오오, 이게 누구십니까? 화제의 아라크네 슬레이어시군요!”

우리가 안쪽으로 들어서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살갑게 다가왔다.

상인 복장을 입은 중년 남성이었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주변의 이목이 순식간에 우리 쪽으로 쏠렸다.

이제는 좀 익숙한 수군거림을 들으면서 나는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물건을 얻으셨다고요? 안으로 들어오시죠!”

비앙카에게 말 해두길 잘했다.

직원은 이미 다 준비되었다는 듯이 우리를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여러 신기한 물건들이 즐비한 창고를 지나자 곧 깔끔한 방이 나왔다.

비지니스를 위한 방인지 화려한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곳곳엔 마력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직원은 우리에게 테이블 앞자리를 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져오신 물건을 보도록 하죠. 아라크네의 둥지에서 나온 전리품이라니, 듣기만 해도 기대되는군요!”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직원 아저씨는 꽤 하이텐션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방에서 태피스트리를 꺼내들었다.

“오, 오오……! 이토록 훌륭한 태피스트리라니…… 혹시 아라크네가 직접 짠 겁니까?”

가방에서 나온 태피스트리는 주변의 빛을 받아 아름다운 광택을 뿜어냈다.

이를 본 직원은 한 눈에 태피스트리의 정체를 알아봤고 기대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직접 짜는 걸 보진 못했지만 아마 그럴 거예요. 아라크네의 침소에 고이 모셔져 있었거든요.”

“제가 보기에도 그녀가 짠 게 확실한 듯하군요. 이런 정교함은 인간의 작품 중에선 찾아보기 힘들죠.”

어느덧 단안경을 꺼내든 직원 아저씨는 태피스트리를 면밀히 살펴보며 동의했다.

그 후 몇 번인가 더 탄성을 흘린 그는 본격적으로 거래를 제안해왔다.

“이 정도 물품이라면 저희 쪽에서 즉시 매입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대금을 지불하고 경매에 올릴 수도 있죠. 어떻게 처리해드릴까요?”

즉처랑 경매 중에 선택할 수 있는 건가.

직원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원래 생각한 가격은 개당 25만 아웬.

허나 물건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 받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직원 아저씨의 반응만 봐도 이 물건의 희소성과 수요가 높다는 건 자명했으니까.

하지만 경매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런저런 귀찮은 절차가 따를 것이다.

그럴 바에야 지금 당장 길드에 팔아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다.

장원 공략을 준비하기 위해선 적잖은 거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조금 손해 보는 장사일지도 모르지만…….’

생각을 마친 나는 태피스트리 8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길드에서 바로 매입해줬으면 좋겠네요. 개당 25만으로 어떠세요?”

“흐음…… 25만이라…….”

내 제안에 직원은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개당 25만에 8개면 무려 200만 아웬이다.

길드 경매소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금액이겠지.

하지만 경매소 아저씨는 생각보다 쿨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가격이라면 즉시 지불해드릴 수 있겠군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아…… 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쿨거래라 좀 당황했다.

과연 길드에서 운영하는 경매장은 다르단 건가.

괜히 길드 경매장을 이용하라 그런 게 아니었구나.

니아의 조언을 떠올리면서 직원을 따라갔다.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태피스트리를 넘긴 후 직원으로부터 200만 아웬을 지불 받았다.

1000아웬짜리 금화로 지급 받았는데도 그 부피가 상당했다.

커다란 돈주머니가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과연 거금은 거금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와, 와아! 얘들아 이것 봐! 이렇게 많은 금화는 난생 처음 봐!”

“이 정도면 집 한 채도 거뜬히 사겠는데……?”

“너무 반짝거려서 눈부실 정도야……!”

유미 일행도 반짝이는 금화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동안 넋을 잃고 돈주머니 속을 보던 도중 다나가 내게 물었다.

“사부, 사부! 이 돈으로 뭐 할 거야?!”

다나는 일행 중에서도 유난히 돈을 밝히는 편이었다.

비록 이 돈이 전부 자신의 것이 되진 않겠지만 이걸로 뭘 할지는 알고 싶은 거겠지.

마치 복권 당첨되면 뭐 할 거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뭐하긴 너희들 몫부터 나눠줘야지.”

“……!”

다나의 질문에 나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보상 분배 얘기를 꺼내자 다나는 물론, 린크와 유미까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긴장감이 감도는 눈빛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 입에서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모험가 생활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테니 말이다.

나는 돈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일행들에게 말했다.

“나도 쓸 데가 있어서 너무 많이 줄 수는 없고, 25퍼센트 정도면 어때?”

“이……!”

“25퍼센트요?!”

내 말에 일행들은 일제히 경악을 터뜨렸다.

평소에 조용조용한 유미까지 비명 지르듯 소리치는 것이었다.

200만 아웬에서 25퍼센트면 50만 아웬이다.

나는 적당한 분배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이렇게 받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그것은 비단 유미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유미 일행이 말을 잇지 못할 때 나나가 다급히 난입했다.

“다키님 제 정신이세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버스만 탄 뉴비들한테 어떻게 그런 거금은 내줄 수 있어요?!”

냉정하기 그지없는 나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절반도 아니고 25퍼센트 밖에 안 되는데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다들 죽을 만큼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떼어줘야지.”

50만 아웬이면 상당한 돈이긴 하다.

허나 그들이 내게 준 도움에 비하면 충분한 금액이리라.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나나까지 보호해줬으니까.

물론 나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마구 가로저으면서 결단코 반대했다.

“다키님이 무슨 좆늅들 ATM기예요?! 10퍼센트를 줘도 감지덕지할 텐데 25퍼센트는 진짜 선 넘었어요!”

============================ 작품 후기 ============================

77페스티벌 최우수상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번에도 좋은 성적 거둘 수 있었습니다. 수상 기념으로 일러레님한테 외주나 맡겨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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