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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44화 (14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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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야외 플레이

내심 음흉한 생각을 하며 모험가 길드로 향할 때였다.

“야, 야……! 저기 봐봐! 저 사람이 그 사람 아니야?”

“설마 서천 클랜 제안 거절했다는 그…….”

“고작 다섯 명이서 재앙신급 던전도 토벌했다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그 소리의 중심엔 내가 있었다.

율리아나에 온 첫 날에도 날 보며 뭐라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그들은 비단 내가 팬티 한 장만 입은 변태여서 눈길을 주는 게 아니었다.

어제 길드에서 있었던 일이 도시 전역으로 쫙 퍼져 나간 것이었다.

“다키님 저희 완전 인기인 됐네요!”

“그러게, 이러다가 연예인병 걸리겠어.”

활발하게 말하는 나나에게 쓴웃음으로 답했다.

지금까지는 인적이 드문 길로 와서 별 소란이 없었지만 길드에 가려면 필연적으로 대로를 지나야 한다.

그러다 보니 도저히 조용히 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 차림새는 굉장히 눈에 띄지 않는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이 거기! 감다키 맞지?! 아직도 클랜 들어갈 생각 없어? 있으면 우리 클랜으로 와!”

“어제 정말 멋있으셨어요!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파티랑 같이 모험하시지 않을래요?”

개중에는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이들도 많았다.

나름 규모 있는 클랜의 관계자부터 단순히 팬심을 가진 여성 모험가까지 다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사방에서 말을 걸어오니 온 도시가 나를 가만두지 않는 기분이었다.

‘지친다, 지쳐…….’

아침부터 온갖 사람들이 들이대오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이야 말로 내가 바라마지않던 것이다.

대 도시에서 이토록 인지도를 얻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내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겠지.

실제로도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 능력을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이걸로 목표에 좀 가까워졌을까?’

나나랑 밤새도록 뒹군 것도 있어서 피로감이 몰려 왔었다.

허나 기분이 좋아지니 컨디션도 금세 되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밤새 쌓인 피로를 날려 보내주는 듯했다.

이런 걸 보면 나도 천성 관심종자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길드에 도착했다.

길드 정문에 발을 들였을 때는 피로감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길드홀에 접어들자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저 녀석 분명…….”

“서천 클랜이 영입하려 했던 그 사람이잖아?”

“어제 재앙신급 던전을 클리어했으면서 또 모험 나가려는 건가……?”

내 모습을 본 사람을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궁금한 듯 별의별 추측을 다 했다.

저렇게까지 관심을 보낼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관점을 바꿔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원래 세계에서도 실검 1위에 뜬 사람은 대중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지 않는가.

대중매체랄 게 딱히 없는 세계니까 그날그날 퍼지는 소문에 관심을 쏟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물론 관심을 받는다고 좋은 시선만 오는 건 아니었다.

모험가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 그런지 나를 향한 안 좋은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저런 놈이 뭐가 대수라고 다들 난리야?”

“던전 공략된 게 어디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저런 놈도 잡을 수 있는 보스였으면 우리끼리도 충분히 잡았겠다.”

나를 향한 험담은 대체로 시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던전 공략자라는 칭호가 있다 보니 대놓고 욕을 하진 않았지만 아니꼬운 말들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웃긴 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놈들은 내가 스윽 쳐다보기만 해도 눈길을 피하느라 바빴다.

말하는 것과 다르게 나에게 내심 겁을 먹고 있는 것이리라.

하긴, 트롤도 못 잡아서 트롤 슬레이어들을 무서워하는 놈들이다.

던전 보스를 잡은 상대와는 눈도 차마 눈도 못 마주치겠지.

놈들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어디서나 남의 악담을 해대는 놈들은 그런 식으로 밖에 못 사는 찌질이들이니까.

도리어 진짜 실력자로 보이는 사람은 내 험담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날 훑어보거나 직접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여어, 아라크네 슬레이어. 오늘은 길드에 무슨 일이야?”

“네, 네?”

“다음에 기회 되면 우리랑 같이 파티 맺읍시다. 심심하진 않게 해드릴게~”

초면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거리낌 없는 접근에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고 다나와 유미는 나지막이 내게 물었다.

“아는 분들이세요, 스승님……?”

“왜 다짜고짜 와서 인사하는 거야……?”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혹시 어젯밤 주점에서 만난 사람인가 싶어 유심히 살펴봤는데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우리가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린크가 입을 열었다.

“상급 모험가들은 이런 식으로 안면을 튼다고 해요. 언제 같은 파티가 돼서 동행할지 모르니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세이나에게 얼핏 들은 얘긴데, 동료가 있다고 해서 항상 고정 파티를 맺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각자의 사정에 따라 스케줄이 엇갈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세이나는 다른 모험가들과 최대한 우호적으로 지내고 인연을 많이 쌓으라고 조언했다.

원작 게임에서도 어떤 던전에 가느냐에 따라 파티의 구성이 달라진다.

게임 세계의 모험가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서로서로 연줄을 트려는 것이리라.

‘확실히 여러 직업군과 알고 지내면 편할 거 같긴 해.’

현 시점에서 우리 파티의 고정 멤버는 나나뿐이다.

그녀하고만 같이 다녀도 어지간한 던전은 클리어할 수 있겠지만 머지않아 한계를 느낄 거다.

특정 직업군만 해결할 수 있는 기믹들은 파티원 두 명만으론 절대 못 뚫으니 말이다.

이참에 여러 사람들과 만나 고정 멤버 후보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저쪽에서 먼저 와주니까 한결 더 수월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주고받을 때였다.

“저기, 아라크네 슬레이어. 혹시 한가해?”

“네?”

유독 친근하게 접근해오는 인물이 있었다.

다른 모험가들이 그냥 인사만 건네고 지나간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내게 다가온 여전사를 훑어보았다.

‘폴암에 구릿빛 피부…… 아마조네슨가?’

말을 걸어온 그녀는 귀엽게 생긴 아마조네스 여성이었다.

아마조네스는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이종족이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인간과 비슷하나 매끈한 구릿빛 피부와 곳곳에 새긴 특이한 문양으로 알아볼 수 있다.

내 앞에 나타난 여성 역시 허벅지와 가슴, 얼굴 등에 붉은색 도료로 문양을 그렸다.

엄청 야한 비키니 아머를 입은 탓에 그러한 특징들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가디스 던전 세계는 기본적으로 노출도가 높지만 아마조네스들은 거기서 한 술 더 뜨는 것이다.

“아직 퀘스트 안 받았으면 우리 파티 들어오지 않을래?”

내가 여전사의 외관을 살펴볼 때 그녀는 자신의 등 뒤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곳엔 여전사와 같은 파티원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모여 있었다.

마법사와 궁수, 성직자 등으로 구성된 파티였는데 전원 여성이었다.

거기에 더해 다들 여전사처럼 상당한 노출도를 자랑했다.

딱 야겜 히로인하면 생각나는 인상의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어, 음…… 죄송해요 제가 오늘은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인데? 오래 안 걸리면 우리가 기다려줄게. 식인 악어 잡으러 갈 건데 근딜이 부족하단 말이야~”

내가 차분히 거절 의사를 보이려던 찰나 여전사가 바싹 다가와 팔짱을 꼈다.

순식간에 나와 그녀의 거리가 좁혀졌다.

몸이 밀착하니 자연스레 그녀의 커다란 젖가슴이 내 팔에 닿았다.

과연 아마조네스. 몸매 좋기로 유명한 종족답게 가슴의 볼륨도 훌륭했다.

비단 몸매만 좋은 게 아니라 피부의 감촉이 진짜 예술적이었다.

나 역시 팬티만 입은 상태라 그녀의 매끈하고 탄력 있는 피부가 잘 느껴졌다.

괜히 아침에 봤던 니아와 제이드의 모닝 섹스까지 생각나서 고간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소문 들었어, 너 서천 클랜도 무시 못 할 정도로 강하다며? 너랑 같이 가면 의뢰도 금방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차마 거절을 못하고 있을 때 여전사의 유혹이 점점 더 심해졌다.

그녀는 아예 노골적으로 가슴을 비비면서 나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부드러운 붉은색 머리카락이 내 목덜미를 간질였다.

뺨에는 수시로 여전사의 뜨거운 숨결이 닿았고 그때마다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이쯤 되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여자, 비단 파티 권유 때문에 접근하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열성적으로 유혹해올 리 없다.

“서천 보단 못하지만 우리도 나름 골드 상위야. 같이 가도 심심하진 않을 걸?”

“원래 우리 파티는 남자 잘 안 받는데, 오빠처럼 잘 생긴 남자면 환영이야!”

“의뢰 같은 건 빨리 해치워버리고 우리랑 술이나 한잔 하는 거 어때?”

여전사가 유혹을 시작하니 다른 파티원들도 하나둘씩 다가왔다.

레오타드 형태의 복장을 입은 궁수가 반대쪽 팔을 붙잡았고, 유독 어려 보이는 마법사는 등 뒤에서 날 껴안았다.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영입을 권유하는 여성 파티.

이 정도면 파티 모집이 아니라 작업에 가까웠다.

슬슬 부담스러움을 느낀 나는 그녀들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오늘은 정말 바쁘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왜애……? 우리 같은 여자는 싫어……? 우리는 오빠 엄청 마음에 드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너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은 좀처럼 없단 말이야~”

슬쩍 거절의 의사를 보이자 등 뒤에서 매달린 마법사 소녀가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거기에 여전사와 다른 파티원들까지 가담하여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늘 내 일정을 생각하면 딱 잘라 거절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미모와 복장 때문에 차마 단칼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예쁘고 귀여운 미녀들이 나 좋다고 달라붙는데 어찌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내겐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 저기 여러분……! 스승님이 곤란해 하시는데 그만 놓아주시는 게……!”

“마, 맞아! 댁들이랑은 안 간다잖아! 사부를 놔줘!”

내가 갈피를 못 잡고 있자 이를 보다 못한 일행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허나 그녀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애들한테까지 다가가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뭣 하면 너희도 같이 가자. 사람이 많을수록 빨리 끝날 테니까.”

“너희 초보지? 견학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와~ 우리가 좋은 경험시켜줄게.”

“저, 저흰…….”

차마 자신들까지 끌어들일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유미 일행도 혼란스러워했다.

상위 모험가들의 제안에 말문이 막힌 유미와 다나는 돌연 나나를 불렀다.

“야 김나나! 너도 뭐라 좀 해봐! 너희 남친 끌려가게 생겼잖아!”

“마, 맞아요……! 나나 씨도 한 마디 해주세요!”

언변하면 나나. 일행들 사이에선 그런 인식이 퍼져 있는 듯했다.

실제로도 그녀는 거침없는 말빨로 사람들을 입 다물게 하곤 했으니까.

허나 유미 일행은 나나의 변태성을 간과하고 있었다.

“우효오오옷! 야하게 입은 언니들한테 작업 걸리다니! 어이, 어이 이거 실화냐구!”

“…….”

어쩐지 아까부터 조용하다 싶었다.

나나가 말이 없었던 이유는 여전사 파티를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나는 길에서 만난 예쁜 누님도 쫄래쫄래 따라가는 녀석이다.

그녀에게 지금 상황은 포상 밖에 되지 않으리라.

애써 그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히힛, 그쪽 사제 언니는 좋다는 거 같은데? 오빠도 순순히 따라오지 그래~?”

“아니 그러니까 저희는……!”

나나 덕분에 정신이 확 들었다.

저 변태가 허튼 짓하기 전에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마법사 소녀에게 반박하려는데, 문득 익숙한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응? 저건…….’

수레바퀴와 풀어진 실로 이루어진 문양.

척 봐도 클랜 마크로 보이는 문양이었다.

여마법사의 손등에는 그것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고, 이는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그녀들의 몸을 훑어보니 동일한 문양을 찾을 수 있었다.

허벅지, 가슴께 등 각기 다른 위치에 수레바퀴 문신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녀들이 전원 같은 클랜 소속이란 걸 깨달았다.

이들이 어떤 신의 권속인지도 말이다.

‘수레바퀴에 풀어진 실이면 한 명 밖에 없지…….’

수레바퀴는 운명, 풀어진 실은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징한다.

펜리르의 늑대 문양이나 바리의 꽃문양은 생각나는 신들이 몇몇 있어서 한 번에 특정할 수 없었다.

반면 이 문양은 딱 한 여신을 지칭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바로 감이 왔다.

‘이 여자들도 대형 클랜에서 보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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