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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서의 하룻밤
“전…… 스승님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 아닌 유미였다.
유미가 수줍은 목소리로 말하자 나에게 향하던 시선이 곧장 유미에게 쏠렸다.
곧 린크가 못마땅한 태도로 그녀에게 반박했다.
“아니 유미야…… 선생님이 대단한 분이긴 하지만 이건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평범한 인간이 지배신을 어떻게 이겨?”
“그건 아까 싸웠던 아라크네도 마찬가지였잖아……. 할머니가 말씀하셨어. 그때 아라크네는 사실상 재앙신급의 힘을 가졌었다고.”
평소에는 소극적인 유미였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그녀는 린크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론을 펼쳤다.
나를 향한 신뢰가 그녀를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스승님은 혼자서도 아라크네를 쓰러뜨리셨을 거야……. 그런 분이니까 아테나한테도 밀리지 않을 거라 생각해…….”
거기까지 말한 유미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 뿐, 곧 시선을 피한 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뺨은 어느덧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런 유미를 보며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나는 혼자서도 아라크네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라크네가 난데없이 여신으로 각성했을 땐 정말 위험했다.
가디스 던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섭렵한 나에게 오히려 약점이 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때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정담할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며 유미에게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아. 나 혼자였다면 힘들었을 거야. 너희들이랑 같이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거지.”
“저, 정말요……?”
내 반론에 유미가 부끄러워하며 되물었다.
본인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유미는 불쾌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도리어 칭찬받았다는 사실이 기쁜지 그녀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기도 잠시.
그녀는 문득 내 눈을 직시하면서 강경하게 말했다.
“스승님……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응? 부탁이라니…… 갑자기 무슨 부탁?”
유미의 눈빛이 한층 비장해졌다.
마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처럼 말이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유미가 입을 열었다.
“지혜 잃은 장원에 가실 때…… 저도 파티원으로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물론 린크와 다나까지 화들짝 놀랐다.
이후 짧은 시간 동안 정적이 흘렀고 이내 두 사람이 유미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유미야 그게 무슨 소리야? 장원에 가겠다니?!”
“너 미쳤어?! 거긴 우리 같은 초보가 발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실력을 입증한 내가 들어간다 했을 때도 극구 반대했던 두 사람이다.
그런데 가족 같은 친구가 장원으로 들어가겠다니.
하물며 유미는 본인들과 같은 초보 모험가이지 않은가.
두 사람으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리라.
지금 그들의 눈에는 유미가 자살희망자처럼 보일 것이다.
절대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유미를 바라보는 린크와 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미는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 모험을 하면서 깨달았는걸……!”
“대체 뭘 깨달았기에 그러는 건데……?”
“스승님이야 말로 내 결점을 메워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걸! 스승님과의 만남이 나 자신을 바꿀 기회라는 걸!”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묻는 린크에게 유미가 큰소리로 답했다.
스스로의 결점, 나 자신을 바꿀 기회.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유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뭔가 트라우마라도 있는 건가……?’
처음 유미를 봤을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작 게임에서도 유미는 소극적이고 수줍은 매력을 가진 캐릭터였다.
그런데 게임 세계의 유미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한 것 같았다.
주술사임에도 불구하고 불 도깨비를 안 찍은 것도 그렇고, 자신이 실패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도 그렇고.
그녀에겐 뭔가 복잡한 과거가 있는 게 분명하다.
날 따라가는 이유도 과거의 트라우마를 떨쳐내기 위함이 아닐까.
내가 옆에서 칭찬해주고 이끌어주는 동안 유미는 조금이나 바뀌는 모습을 보여줬다.
날 인생의 멘토로 착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스승님과 함께 모험하면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어……! 설령 위험한 던전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주먹을 부르쥔 유미가 다시금 소리쳤다.
차분한 부탁으로 시작한 대화였지만 그녀는 도저히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았다.
“유미야…….”
그런 유미를 보며 린크가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린크는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겠지.
그렇기에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걸 거다.
그녀가 무슨 각오로 날 따라가겠다고 했는지 대강이나마 알 테니까.
허나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말없이 유미를 바라보는 린크와 다르게 다나는 더욱더 목소리를 높였다.
“웃기지 마 멍청아! 이유가 어쨌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친구가 죽으러 가는 걸 두고 볼 것 같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취해 있던 다나였지만 어느덧 그녀의 술기운은 모두 날아갔다.
급기야 그녀는 유미의 어깨를 붙잡은 채 생떼에 가까운 제지를 가했다.
“네가 간다면 나도 갈 거야! 정 죽고 싶으면 같이 죽자고! 이래도 갈 거야?! 어?!”
“다, 다나야…… 난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장원에 가는 게 죽으러 간다는 거지! 너 혼자 그런 곳에 죽게 둘 수는 없다고!!”
다나의 언성이 격해지자 유미도 조금 전처럼 당차게 말하지 못했다.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친자매를 보는 것 같았다.
유미도 다나를 언니처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친언니나 다름없는 사람이 저렇게나 말하는데 어찌 무시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미가 마음을 접은 건 아니었다.
“너희들한테는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번 한 번만 멋대로 굴게 해줘……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을 것 같단 말이야…….”
“유미 너 진짜……!”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유미와 다나의 의견.
이대로 뒀다간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 같았다.
두 사람 다 슬슬 말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듣자듣자 하니까 존나 얼탱이가 없네요.”
“나나 씨……?”
안주를 축 내고 있던 나나가 문득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 열심히 관전만 하던 그녀가 입을 열자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테이블의 시선을 한 데 모은 나나는 심드렁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아니, 누가 데려가 준대요? 다키님은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는데 왜 너희들끼리 가도 되네, 안 되네 하는 건데요?”
“그, 그건…….”
“애당초 우리가 어딜 가든 너희가 무슨 상관인데요? 다키님이 너희 같은 좆늅들 말에 휘둘릴 만큼 만만해 보여요?”
평온한 어투로 이야기하는 나나였지만 그녀의 말에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난 걱정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린크, 다나한테는 미안하지만 괜한 참견은 귀찮기만 할 뿐이다.
거기에 더해 유미가 우리 파티에 참가한다면 책임지고 무사 귀환시킬 자신도 있다.
잠시 할 말을 정리한 나는 유미를 보며 질문을 건넸다.
“일단 이거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유미 너, 정말 나랑 같이 가고 싶어?”
압박감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았다.
나나가 분위기를 잡아준 덕분일까. 린크도 다나도 차마 내 질문에 끼어들지 못했다.
“네! 꼭 따라가고 싶어요!”
대답은 초단위도 지나지 않아서 나왔다.
유미의 의지가 얼마나 강경한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사정이 어떻게 됐든 결코 가벼운 마음은 아니리라.
“유미 네가 진심이라면 난 데려가줄 의향이 있어. 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스승님…….”
“하지만 두 사람 말도 맞아. 거긴 진짜 위험해. 너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들 생각도 해야지.”
내 말을 듣고 유미가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유미가 걱정되는 것도 있겠지만 두 사람은 지금 유미의 태도에 적잖게 섭섭할 거다.
날 따라간다는 건 원래 있던 파티에서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계속 그녀와 함께 해왔던 두 사람으로선 배신감도 느낄 수 있으리라.
나 때문에 친구들 사이가 멀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랑 같이 가고 싶으면 친구들을 잘 설득해봐. 너희 전부는 못 데려가니까 참고해두고.”
불경한 자의 둥지야 던전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함께했지, 장원에선 린크와 다나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포지션이 확실한 유미에 비해 두 사람은 어느 쪽으로도 특출 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세 사람에게 못을 박아둘 때였다.
“린크, 다나?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요르나……?”
조용히 있던 요르나가 입을 열었다.
나와 나나 못지않게 침착함을 유지하던 그녀는 온화한 미소로 친구들에게 말했다.
“유미도 고심 끝에 이야기한 걸 거야. 유미가 옛날 일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는 너희도 잘 알잖아.”
“그래도…….”
“유미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걸. 믿음직스러운 스승님도 함께 해주시는데, 믿고 보내주자.”
요르나의 얘기를 듣고 조금 감탄했다.
마냥 태평해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유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저 말도 단순히 ‘애가 열심히 하려는데 그냥 보내자’ 는 식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유미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은연중에 유미의 손을 꼬옥 붙잡는 게 그 증거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걱정스러운 마음보다 친구의 사정을 더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두 사람과 달리 그녀를 믿고 보내줄 수 있는 것이리라.
“좋아 친구들. 그럼 이렇게 하는 거 어때?”
요르나의 말로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유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제 쐐기를 박아줄 일만 남았다. 이 부분은 내가 좀 도와주기로 했다.
“장원에서 돌아오면 이것저것 가르쳐줄게. 아예 너희를 위해 특별 강습을 열어줄 수도 있어.”
“지, 진짜……?”
“물론 진짜지. 그리고 장원 안에는 아테나가 직접 쓴 비술서도 있대. 그것도 같이 배워보자.”
“비술서……!”
“아테나가 직접 썼다고요……?!”
비술서 얘기가 나오자 린크, 다나가 눈을 반짝였다.
아직 초보긴 하지만 그들 역시 모험가다.
모험가라면 누구나 새롭고 강력한 스킬을 추구하기 마련.
그런 모험가들에게 전쟁의 신이 직접 쓴 비술서는 무척이나 각별하리라.
더군다나 스킬이 얼마나 없는 그들은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겠지.
“그래, 너희들한테 그거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도 멀쩡히 돌아올게. 물론 유미도 무사히 데려오고.”
이런 걸로 그들의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을 안심시킬 수는 있을 거다.
기대감을 동반한 약속이 있으면 얌전히 기다려줄 수 있으리라.
“다키님 그거 왠지 사망 플래그 같은데요…….”
“넌 좀 조용히 해…….”
나나의 입을 틀어막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서로를 마주본 린크와 다나.
그들은 이내 결단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린크가 대표로 이야기했다.
“선생님과 유미의 뜻은 잘 알겠어요. 이 이상 저희가 뭐라 하면 폐 밖에 안 되겠죠.”
“헹! 알긴 잘 아네요. 그러면서 왜 여태까지 이래라저래라 훈수질 했어요? 좆늅 주제에.”
“그, 그야 걱정돼서 그렇죠. 실력이 없다고 걱정까지 못할 건 없잖아요.”
나나의 팩트 폭력이 유난히 아픈 순간이었다.
정곡을 찔린 린크였지만 그는 여전히 날 직시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장원 안에는 어떻게 들어가실 생각이세요? 듣기론 대부분의 모험가들이 성벽을 넘기도 전에 당했다고 하던데요.”
“그래, 확실히 요격 생각하면 골치 아프긴 하지…….”
린크의 말을 듣고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장원의 위험은 비단 아테나와 그녀의 권속들뿐만이 아니다.
아테르니아는 율리아나 만큼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던전에 진입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넓은 개활지를 지나 성벽까지 도달해야 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플레이어가 성벽까지 이동하는 동안 성벽 위에서 적들이 요격을 가해오는 것이다.
“아니, 던전 안의 괴물들은 절대 밖으로 못 나온다면서요? 그런데 공격은 어떻게 해요?”
“본인들이 못 나오는 거지 투사체는 얼마든지 쏠 수 있거든. 가령 활이나 마법 같은 거 말이야.”
실제로 수많은 던전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플레이어의 접근을 차단하곤 한다.
당장 인내하는 자의 신전만 해도 함정과 가고일로 입장을 방해하지 않았는가.
이번엔 원거리 공격으로 기믹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 수법이 발리스타란 게 문제지…….’
모험가들이 성벽에 도달하기도 전에 당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테르니아의 성벽 위에는 수많은 발리스타가 현재진행형으로 가동되고 있다.
침입자로 추정되는 물체를 포착하는 순간 수십 개의 발리스타가 일제히 화살을 발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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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말없이 잠수 타서 정말 죄송합니다. 갑자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져서 그대로 기절해버린 것 같습니다. 조절 해야지, 조절 해야지 하는데 새벽까지 쓰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네요. 가능한 한 빨리 정상 컨디션을 되찾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