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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25화 (12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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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클리어한 후

“무리예요!! 저 때문에 모두 죽을 거예요……! 그런 건 보고 싶지 않아요!!”

수치심 속에서도 유미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렇게 협박하면 순순히 따를 만도 한데, 유미도 고집이 참 셌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 보다 나나의 추행이 훨씬 강했다.

유미가 계속 거부하자 나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경고했던 대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유미의 팬티를 내려버린 것이다.

“그으으래요?! 어디 다키님 앞에서 보지 보여주고도 그런 말 할 수 있는지 보죠!”

“꺄, 꺄아아아악!!”

급기야 팬티를 벗긴 나나.

거미들에게 대응하느라 움직이지 못한 유미는 곧이곧대로 탈의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그렇게 드러난 보지는 무척이나 요야했다.

나나처럼 떼 묻지 않은 핑크색 보지였지만 보지털은 조금 수북했다.

하반신의 노출도가 그리 높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신경을 안 쓰게 된 듯했다.

‘나나처럼 백보지이거나 적은 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외견만 보면 유미는 헤베만큼이나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 유미의 보지가 저런 모습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흉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의외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아, 아아……! 아아앗……!”

순간 넋을 잃고 유미의 보지를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유미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쉴 새 없이 흔들렸고 말문은 꽉 막히고 말았다.

분명 수치심 때문에 이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리라.

외간 남자 앞에서, 게다가 한창 싸우는 와중에 저런 꼴을 보였으니 미칠 듯이 부끄럽겠지.

“나나야 그만하고 떨어져! 그런 걸론 오히려 역효과라고!”

정신을 차린 나는 나나를 다그치며 검을 휘둘렀다.

나나의 의도는 알겠지만 저런 식으로 해결될 거였으면 유미는 진즉에 스킬을 사용했을 거다.

결과적으론 나나와 유미의 빈자리로 우리 진영이 더욱 불안정해질 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다키님! 야겜에선 이런 식으로 각성하고 그랬다구요!”

“이게 야겜이냐?!”

“어쨌든 비슷하잖아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나는 계속해서 유미를 희롱했다.

팬티를 내린 것만으로 모자라 웬 길쭉한 막대기를 꺼낸 것이었다.

아니 저거 설마.

“셋 셀 때까지 안 쓰면 혼쭐이 날 줄 알아요! 제 윙윙이로 암컷의 기쁨을 경험시켜드리죠!”

“그, 그런 건 또 어디서 나신 거예요……?!”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유미도 경악을 터뜨렸다.

나 역시 적잖게 당황했다.

나나가 꺼낸 물건은 다름 아닌 딜도였던 것이다.

“어디서 났긴요 사창가에서 다키님 몰래 사놨지! 자! 마지막 기회예요! 주문 쓸래요 아니면 박힐래요?!”

위이이이잉!

나나가 딜도를 강하게 움켜쥐자 딜도가 푸른색 빛이 뿜으며 진동했다.

발광에 전동 기능까지 달린 딜도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도구란 말인가.

판타지 세계에 전동 딜도가 있는 것부터 굉장히 이상한데 발광 기능까지 달려 있으니까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더 중요한 건 나나가 저 무시무시한 물건을 유미의 안에 집어넣으려 한단 것이다.

비단 협박하는 걸로 끝내지 않고 보지 위를 슬슬 문지르면서 말이다.

“히잇?! 하지만……! 히이이이잇!!”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진짜 혼 좀 나봐야겠네요! 각오 단단히 하세요!”

보짓살과 클리토리스를 자극해대길 잠시, 나나는 진심으로 삽입할 생각인지 구멍에 딜도를 맞췄다.

내가 다 자괴감이 드는 광경이었지만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유미의 몸에서부터 웬 보라색 오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 저건……!”

선명한 마력의 흐름이 유미의 전신을 뒤덮었다.

수차례 요동친 그것은 이내 뚜렷한 현상을 갖추었는데 흡사 여우와도 같았다.

마치 유미에게 여우의 귀와 꼬리가 달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건 분명 여우신의 형상이다…… 설마 유미한테 깃든 신이 여우신이었던 건가……?’

나도 주술사 캐릭터를 몇 번인가 키워봤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여우신은 주술사가 맹약할 수 있는 신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신이다.

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맹약을 맺으면 그 신으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게 된다.

유미가 가진 신내림 능력은 초기 은혜 같은 게 아니었다.

여우신이 하사한 은총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키기이이익!!]

[키리익! 키이이이익!!]

“사, 사부! 거미들이……!”

내가 여우신의 형상을 보며 당혹스러워할 때였다.

미친 듯이 덤벼들던 거미들이 점점 물러나기 시작했다.

놈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차마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이는 유미의 마력이 여신의 권속조차 찍어 누를 정도로 강력하다는 뜻이다.

정확히는 여우신의 힘에 의해 유미의 마력이 몇 배나 증폭된 것이리라.

“이제…… 더는 싫어…… 그만 하고 싶어…….”

다음 순간 유미의 몸이 불안정하게 떨렸다.

그녀의 얼굴엔 더 이상 수치심도, 소심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무언가 위험한 낌새를 느낀 나는 서둘러 유미 쪽으로 달려가 나나를 낚아챘다.

“숙여!”

“아잉……!”

내가 나나를 끌어안고 바닥에 몸을 눕힐 무렵이었다.

파아아아앗!!

[키에에에에엑!!]

유미의 몸에서 엄청난 충격파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갔고 경로 상에 있는 거미들을 모조리 찢어발겼다.

그 광경은 마치 여우가 먹잇감을 찢는 것과도 같았다.

“천호의 발톱…….”

거미들이 찢겨 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반사적으로 유미가 쓴 스킬 이름을 중얼거렸다.

천호의 발톱.

여우신과 맹약을 맺은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맹약 전용 스킬이다.

순간적으로 여우신의 발톱을 소환하여 부채꼴 방향의 적들에게 마력 피해를 입힌다.

횟수 제한이 있는 스킬이지만 그만큼 데미지도 강력하다.

그 증거로 발톱에 맞은 거미들은 모조리 절명하고 말았다.

“너 때문에 추행당하는 것도 싫고…… 친구들이 위험해지는 것도 싫어…….”

순식간에 거미 무리 중 절반 이상을 처치한 유미가 아라크네를 노려보았다.

강풍처럼 휘몰아치는 마력 때문에 유미의 앞머리가 위로 나부꼈다.

그로 인해 드러난 유미의 눈동자는 피처럼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너만 없으면 돼…… 너만 없으면 친구들이랑, 스승님이랑 같이 도시로 돌아갈 수 있어…….”

유미의 주위에서 무언가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지변에서 나타난 그것은 보라색으로 빛나는 원혼이었다.

수많은 원혼들이 유미의 부름에 응하여 소환됐다.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미는 지금 아라크네에게 원령쇄도를 발사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죽어줘…….”

주문이 빠르게 완성되어간다. 이 또한 여우신의 은총 중 하나다.

그녀는 지금 고속 영창 보다 뛰어난 영창 스킬, 여우 부름을 사용하고 있다.

여우 부름의 효과는 채널링을 하지 않고 캐스팅을 하는 것.

즉 직접 주문을 영창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주문이 완성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캐스팅 시간도 기존보다 대폭 감소된다.

이를 이용하여 유미는 여러 개의 스킬을 한 번에 캐스팅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유미가 영창할 스킬은 당연히 두 번째 원령쇄도였다.

[으어어어어어!!]

[아아아아아악!]

사방에서 원령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들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한 자리에 모이더니 이내 거대한 섬광이 되었다.

직후, 유미가 두 눈을 부릅뜨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두우우움!!”

[끼아아아아아악!!]

두 줄기의 섬광이 아라크네를 향해 날아갔다.

고속으로 발사된 빛은 레이저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강렬한 빛으로 인해 보스방 전체가 환하게 빛났고 지면과 천장이 뒤흔들렸다.

[고작 그런 걸로……!!]

아라크네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는지 대응에 나섰다.

그녀는 뒤늦게 양손으로 독액을 뿜어냈다.

거미 형태일 때 쏜 독액보다 한층 더 강했다.

거의 맹독으로 이루어진 물대포라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허나 아무리 발악한다 한들 유미의 원령 레이저에 비하면 턱없이 약했다.

파아아아아앗!!

[……?!]

강줄기처럼 뻗어나간 원령들이 독액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물대포처럼 뿜어져 나간 맹독은 단 1초도 버티지 못했다.

그저 수백, 수천의 영혼들과 뒤섞여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아, 안 돼……! 오지 마……! 오지……!]

대항에 실패한 아라크네는 당황과 함께 광선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끝내 원령들의 강줄기는 아라크네에게 직격했다.

콰과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아악!!]

아라크네와 격돌한 원령들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보랏빛 불꽃이 허공에 흩뿌려졌고 아라크네의 다리가 모조리 박살났다.

그대로 수직 낙하하는 아라크네.

이를 멀뚱히 보고 있던 나는 다급히 정신을 차리며 아라크네에게 달려갔다.

바닥에 떨어진 아라크네는 한순간 무방비 상태가 된다.

과연 저 공격을 맞고도 살아남을까 싶지만 그녀의 생명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 노릇.

마무리는 확실하게 짓는 게 좋다.

“쯔아아아앗!!”

그녀가 떨어질 위치까지 달려가 정확한 타이밍에 왼팔을 휘둘렀다.

마신화한 팔로 결정타를 먹인 것이다.

푸화아아악!!

직후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2300이라는 어마어마한 데미지가 떠올랐다.

또다시 치명타가 터졌다. 그 증거로 아라크네의 복부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났다.

분리된 팔과 머리는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혔고 초록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해, 해치웠나?!”

말 그대로 공중분해 되는 아라크네를 보며 나나가 긴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한 번 부활했던 녀석이라 그 말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지만 다행히 더 이상의 부활은 없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가 튀어나왔던 거미의 사체 역시 잿더미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아라크네의 죽음을 확정 짓는 메시지까지 눈앞에 떠올랐다.

[당신은 실과 거미의 여신 아라크네를 토멸했다. 그녀의 죽음이 당신의 새로운 위업이 된다.]

[보상으로 15 위업 포인트를 얻었다.]

“하아…… 하아…… 그래, 해치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나나에게 대답했다.

메시지까지 뜬 마당에 또 부활하진 않겠지.

아주 약간이나마 불길한 마음이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곧 사라졌다.

거미 사체에 이어서 인간형 아라크네의 사체도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이었다.

그녀가 있던 자리엔 밝게 빛나는 이코르만이 남았다.

아라크네의 이코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자, 잠깐만 사부……! 그럼 린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저대로 계속 매달려 있어야 돼?!”

“아 맞아 린크……!”

충격적인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 탓일까.

린크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급박함을 느낀 나는 곧장 린크가 매달려 있는 거미줄을 확인했다.

아라크네가 죽은 영향으로 거미줄 역시 서서히 사라져갔다.

거기에 묶여 있던 린크가 떨어지는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우와아아악! 린크! 린크 떨어진다아앗!”

“내가 잡을게! 내가 잡을게!!”

나는 검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면서 린크에게 달려갔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전속력으로 달려서 간신히 그를 받을 수 있었다.

“잡았다!”

수십 미터 위에 있던 애를 받느라 팔이 부러지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린크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고통을 날려 보낸 것이었다.

“후우……!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저린 팔에 힘을 주며 린크를 조심스레 바닥에 눕혔다.

비록 만신창이가 됐지만 숨은 확실하게 붙어 있었다.

납치의 효과가 제대로 발동되지 않아 생명력도 꽤 남아 있는 듯했다.

“나나야, 빨리 회복 주문! 중독도 걸렸을 테니까 정화 먼저 쓰고!”

“네 다키님! 당장 수술 들어가겠습니다!”

안 그래도 나나는 주문을 영창하고 있었다.

곧 따뜻한 불빛이 린크에게 쏟아져 내렸다.

독 때문에 창백해진 안색이 빠르게 핏기를 되찾았다.

회복 주문으로 물린 상처까지 치료하니 린크는 금세 멀쩡해졌다.

생명력을 되찾아서일까, 그는 머지않아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모두들…….”

“우와아아앙! 다행이야! 다행이야 린크!”

깨어난 린크를 보며 다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린크를 포옹했으며 린크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다나를 달래주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죠……? 아라크네는 해치운 건가요……?”

“그래, 너 잡혀 있는 사이에 유미가 다 처리했어. 기억 안 나?”

“네…… 거미줄에 묶인 이후론 계속 기절해 있었던 것 같아요…….”

린크의 사정을 들은 우리는 자연스레 유미를 바라보게 되었다.

“저…… 그게…….”

유미의 모습도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여우신이 형상을 한 마력이라거나 붉은색 눈동자 같은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성격도 기존의 소심한 유미로 돌아가서 무척이나 부끄러워했다.

“바, 방금 전에 그건 제가 그런 게 아니라…… 제 안에 계신 할머니가 멋대로……!!”

린크와 다르게 유미는 조금 전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별의별 모습을 보였으니 부끄러울 만하겠지.

나는 그런 유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됐어, 어찌됐든 네 덕분에 아라크네도 잡았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요…….”

“조금 전의 그건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고, 지금은 너희 친구부터 찾아보자.”

============================ 작품 후기 ============================

나나가 드립칠 때면 저도 덩달아 텐션이 오르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예요.

참고로 원령쇄도는 얼굴이 7개인 무사의 패턴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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