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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 거미의 여신
나나의 말을 받아치며 아라크네에게 접근했다.
이로써 회복 수단은 차단했다.
새끼 거미들도, 아라크네 본인도 찬광으로 기절한 상태니 기회를 노리려면 지금이다.
“충간충 아웃!!”
촤아아아악!
[꺄흐윽?!]
온힘을 다해 날린 섬격이 아라크네의 몸을 길게 베었다.
하지만 공격을 가한 순간에 기절이 풀린 나머지 제대로 들어가진 않았다.
카아앙!
단단한 거미 다리가 내 공격을 막아냈다.
기절이 풀린 직후라 완벽한 방어는 아니었지만 데미지가 상당량 감소됐다.
더군다나 아라크네는 골치 아픈 일을 벌이기까지 했다.
[성가신 계집이네…… 넌 나중에 줄여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누구 마음대로 순번을 정하는…… 크윽?!”
아라크네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이변을 감지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끈적끈적한 실들이 양다리를 지면에 고정하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원인을 찾았다.
분명 아라크네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으나 반대였다.
기절에서 풀려난 몇몇 거미들이 실을 뿜어낸 것이었다.
‘새끼 거미가 거미줄 뿜는다고?!’
원본 새끼 거미에겐 거미줄을 뿜어내는 능력이 없다.
적을 물어서 기절시키는 신경 독만으로 새끼 거미는 충분히 강력한 몬스터다.
그런 놈들이 이동을 방해하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명백한 오버 밸런스지 않겠는가.
‘설마 자기 능력을 다른 몹들한테 줄 수 있는 거야……?’
말도 안 되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라크네는 자신의 능력을 새끼 거미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그렇기에 거미줄 능력이 없는 새끼 거미들이 단체로 날 포박할 수 있었던 거다.
“가게 둘 것 같냐!!”
비록 다리를 묶였지만 양손은 아직 멀쩡하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투척 나이프를 꺼내 아라크네에게 내던졌다.
하지만 덩치 큰 거미를 맞출 때와 인간형 적을 맞출 때의 명중률은 천차만별이었다.
[소용없어, 예의 없는 수컷. 네 장난감은 너무 허접해.]
티잉! 티디잉!
“뭣……!”
멀쩡히 맞아주던 대형 거미와 다르게 인간형 아라크네는 거미 다리를 사용해 나이프를 쳐냈다.
그때마다 새하얀 보호막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모습이 달라진 그녀는 방어 패링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얌전히 네 여자들이 죽는 거나 구경하고 있으렴.]
카가가가각!!
도발 담긴 미소를 지으며 질주하는 아라크네.
거미들 사이를 가로지른 그녀는 순식간에 일행들 앞까지 당도했다.
“저 좆같은 새끼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다리에 묶인 거미줄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했다.
허나 현실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키기이이익!!]
[키이이이익!]
“이런 씨……?!”
기절에서 풀려난 거미들이 내 쪽으로 몰려들었다.
날카로운 턱을 게걸스럽게 부딪치며 다가온 놈들은 주저 없이 도약하여 날 덮쳤다.
그놈들을 일일이 베어 넘기느라 구속을 풀 여유가 없었다.
하물며 후방에 있는 놈들이 끊임없이 거미줄을 쏘아대서 이에 대응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렇게 아라크네가 나나를 찢어발기려 할 때였다.
“으오오오오오!!”
카앙! 카앙! 카아앙!
누군가 큰 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포효의 주인공은 물어볼 것도 없이 린크였다.
그는 자신의 방패를 칼로 두들기면서 아라크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 그의 주위에선 붉은색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이를 본 아라크네는 광분하여 린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하핫……!! 그래, 그렇게 죽고 싶단 말이지?! 바라는 대로 해주겠어!!]
도발 스킬의 효과는 탁월했다.
코앞에 있는 나나 일행을 내버려두고 아라크네는 린크를 향해 경로를 바꿨다.
심지어 내게 몰려든 거미들까지 린크에게 달려들었다.
“뭐하는 거야 린크?! 죽고 싶어?!”
이를 본 다나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린크의 희생을 보고 감정이 북받친 것이리라.
“난 괜찮으니까 어서 선생님이랑 합류해! 거미들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그런 다나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린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일행들을 지키려 한 것이다.
“미친놈아 그걸 말이라고 해요?! 너 그러다가 진짜 뒤진다고요!”
린크의 희생정신은 감탄스러웠지만 나나의 말이 맞다.
저 많은 적들을 혼자 감당하려 하다니. 너무 무모하다.
새끼 거미들은 몰라도 아라크네에겐 금방 따라잡힐 거다.
[잡았~ 다~!]
“크하아아악!!”
푸후욱
예상대로 린크는 얼마 가지도 못해서 아라크네에게 붙잡혔다.
그녀의 날카로운 거미 다리가 린크의 다리를 관통한 것이었다.
“린크!!”
“파파고!”
유미와 다나, 심지어는 나나까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 역시 숨을 집어삼키며 린크에게 달려갔다. 어떻게든 그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라크네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생각이 바뀌었어. 네가 뜯어 먹히는 걸 네 친구들에게 전부 보여줄 거야.]
“그게 무슨……?! 끄하아아악!!”
콰직! 콰지이이익!!
다음 순간, 아라크네가 린크의 목을 물어뜯었다.
그의 혈관 안으로 진녹색 액체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맹독이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린크를 놔줘 미친년아!!”
그것을 막기 위해 나는 들이박듯 쾌도를 찔러 넣었다.
하지만 내 공격은 허무하게 빗나갔다.
내가 거리를 좁히자마자 아라크네는 거미줄을 사용해 천장으로 올라가버린 것이었다.
“뭣……?!”
“안 돼……!!”
비상하는 아라크네를 보며 모두가 경악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 침착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평온하진 않았다. 낭패한 심정으로 아라크네와 린크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납치 패턴을 쓰다니……!’
납치, 아라크네의 가장 성가신 패턴이다.
말 그대로 캐릭터 한 명을 납치하는 패턴으로 아크 데몬의 공중 뇌우처럼 피격당하기 전엔 절대 내려오지 않는다.
심지어 납치된 대상은 일정 시간 후 최대 생명력의 절반만큼 고정 피해를 입는다.
이미 린크는 아라크네에게 물리면서 생명력이 절반 이상 감소했을 것이다.
그런 린크가 고정 피해까지 받는다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
“으우웁! 우우웁!!”
[너무 발악하지 마. 물리다 보면 고통도 안 느껴질 거야.]
거미줄을 타고 천장까지 올라간 아라크네는 린크의 몸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온힘을 다해 발버둥친 린크였지만 몸 안에 퍼진 독 때문에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결국 그는 먼저 잡혀온 사람들처럼 고치에 갇히게 되었다.
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아라크네는 순식간에 커다란 거미집을 만들었다.
린크를 느긋하게 빨아먹기 위한 식탁을 만든 것이다.
[후후훗…… 친구가 잡아먹히는 걸 보는 심정은 어때?]
콰득, 콰드윽!
고치 안으로 이빨을 박아 넣으며 아라크네가 말했다.
그녀는 우리를 발밑에 둔 거미처럼 내려다보며 자신의 우월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 그만 둬……! 린크를 놔주란 말이야 미친 거미년아!”
“당장 안 내려오면 니 다리로 만든 딜도로다가 존나 박아버린다?!”
고압적인 아라크네의 태도에 다나와 나나가 반발하듯 소리쳤다.
허나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천장의 높이가 너무 높다. 저 높이라면 나나의 찬광도, 다나의 투창도 안 닿는다.
내 투척 나이프 또한 마찬가지다. 설령 거리가 닿는다 해도 아라크네가 튕겨낼 거다.
지금 우리에겐 놈을 떨어뜨릴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이다.
[정말로 천박한 아이들이구나……. 너희처럼 입이 더러운 아이들은 먹을 생각도 안 들어…….]
[키기이이익!!]
[키릭! 키리이이익!!]
불쾌하다는 듯 말한 아라크네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지상에 있던 거미들이 미친 듯이 공격해왔다.
“사부! 이놈들 뭔가 이상해! 평원에서 싸웠을 때랑 같아!”
다나의 말대로다.
거미들의 모습은 마치 광전사 거미에게 영향을 받은 것과 비슷했다.
광전사 때보다야 약하지만 아라크네한테도 새끼 거미들을 강화하는 능력이 있는 건 확실했다.
“일단 벽 쪽으로 붙어! 유미랑 나나는 우리 뒤에서 떨어지지 말고!”
“찬광으로 좀 기절시켜 볼까요?!”
“아니! 많이 당해서 저항 생겼을 거야! 차라리 거부로 날려버려!”
나나의 거부를 활용하니 거미들을 상대로 어떻게든 후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러서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린크가 아라크네 손에 죽는다.
뿐만 아니라 납치 패턴이 끝나면 아라크네는 대상이 받은 피해만큼 생명력을 회복한다.
기껏 꽃거미들을 죽여 놨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으으으……! 어떡해 사부……?! 이러다간 진짜 다 죽겠어……!”
근처에 있는 거미를 찔러 죽이면서 다나가 물었다.
일행들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무척이나 초조해했다.
특히 다나와 유미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가족 같은 동료가 죽게 생겼으니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거기에 더해 자신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까지 더해져 사기도 대폭 떨어졌다.
이 상황을 어쩌면 좋지? 이대로 린크를 희생시켜야 하나?
절망적인 마음으로 전황을 돌아볼 때였다.
“그렇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다가오는 새끼 거미를 양단하며 나는 유미에게 물었다.
“유미야, 너 아직 숙달하지 못한 스킬 있다고 했지?! 그거 혹시 원령쇄도야?!”
“네, 네? 어떻게 아셨어요……?!”
물귀신으로 응전하던 유미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반쯤 도박하는 심정으로 물은 건데 천만다행이다.
나는 안도와 쾌재가 섞인 목소리로 유미에게 이야기했다.
“지금은 얘기해줄 여유 없어! 그런 것보다 린크를 구해야지!”
유미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천장을 가리켰다.
우리가 새끼 거미들과 싸우는 동안에도 아라크네는 린크의 목에 이빨을 박아 넣고 있었다.
“원령쇄도 사거리라면 천장까지 닿을 거야! 당장 영창해서 아라크네를 쏴! 린크를 살리려면 그 수밖에 없어!”
“하, 하지만 그 주술은 아직 한 번 밖에 성공한 적 없는걸요……! 실패하면 저는 물론이고 다들 크게 다칠 거예요……!”
급박한 지시에 유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령쇄도는 이름처럼 수많은 원령들을 다뤄서 적을 공격하는 스킬이다.
원작 게임에선 스킬을 실패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실패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 수많은 원령들이 통제를 벗어나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공격해대겠지.
새끼 거미들에게 공격받는 와중에 원령들까지 합세하면 그때는 정말 전멸을 각오해야할지 모른다.
“괜찮아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네 실력이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
“아니에요……! 전 결국 실패할 거예요……! 제 손으로 여러분을 해치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거듭되는 설득에도 유미는 한사코 주술사용을 거절했다.
그 말을 들으니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물론 유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어째서인지 그녀에겐 패배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마 그동안 살아온 삶이 그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리라.
한평생 동안 자괴감과 열등감을 달고 살았던 나였기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누구 보다 답답한 사람 역시 유미 본인이리라.
동료를 살릴 수단이 있는데도 자신이 실패할 거란 생각 때문에 망설이는 자신이 증오스럽겠지.
스스로를 책망하는 눈빛만 봐도 그녀의 심정이 내게 전해져 오는 듯했다.
“……잘 들어, 유미야.”
도약한 거미로부터 유미를 지키며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불확실해도 할 수밖에 없어. 네가 주술을 쓰지 않으면 린크가 죽어.”
“하지만……!”
“린크가 죽는 순간 너도, 다나도, 나나도 무사하지 못해! 어차피 다 죽을 거면 뭐라도 하는 게 낫잖아!”
상황은 이미 절망적이다.
다나와 유미의 상태를 보건대 그녀들은 린크의 죽음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리라.
말라비틀어진 린크가 천장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녀들은 틀림없이 패닉에 빠질 거다.
그 후에 이어지는 건 전멸 밖에 없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면 나와 나나 목숨 정도는 살릴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실패하고 싶진 않다.
“으, 으읏……!”
내가 간절하게 말하자 유미도 조금은 행동하려 노력했다.
허나 그녀는 여전히 스스로의 패배의식과 싸우고 있었다. 좀처럼 주술을 영창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계속 망설이면 안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린크도, 우리 진영도 슬슬 한계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나나를 데리고 도망쳐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암담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뭘 망설이는 거예요, 유미 쟝! 하라면 좀 해요!”
“꺄아아아악?!”
유미가 난데없이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러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나나가 그녀의 치마 안으로 코를 박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미친,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짓이긴요! 유미 쟝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중이죠!”
“이게 어떻게 동기부여예요?!”
유미도 나못지 않게 황당해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야 그렇겠지.
한시가 급급한 마당에 누가 치마 안에 코를 들이박으면 얼마나 어처구니없겠는가?
“자아, 유미 쟝! 빨리 하지 않으면 팬티를 내릴 거예요! 다키님 앞에서 유미 쟝의 팬티 속을 훤히 공개할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