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불경한 자의 둥지
[키기기기기긱!!]
그때 아라크네가 세 사람을 추적하려 들었다. 놈도 마냥 벌레 새끼는 아닌지 상황 파악 정도는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세 사람을 방치하면 조금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판단한 듯했다.
이번엔 나나 일행을 향해 거미줄을 뿜으려 한 아라크네였지만 내가 그걸 용납할 리 없었다.
“어디 보냐 벌레 새끼야!”
쐐애액!
푹! 푸훅!
[키리이이익!]
주머니에서 꺼낸 투척 나이프가 연달아 날아갔다.
세 개의 나이프는 붉은색 눈동자를 꿰뚫었고 이에 아라크네는 꽤나 괴로워했다.
놈의 가장 취약한 부위는 다름 아닌 6개의 눈동자다.
덩치에 비해 작아서 맞추기가 쉽지 않지만 마침 위치가 좋아서 수월하게 명중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놈은 행동을 멈추었고 내 쪽으로 신경을 돌렸다.
[끼케에에에엑!!]
약점을 맞은 게 트리거였는지 놈이 광분하기 시작했다.
낫처럼 생긴 앞발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달려드는 아라크네.
이곳이 숲이었다면 순식간에 불모지가 됐을 거 같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벌목기가 따로 없었다.
“지금!”
“네!”
그 광경을 보며 린크에게 소리쳤다. 린크는 각오를 굳히며 놈의 앞발을 향해 달려갔다.
사람 하나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갈아버릴 것 같은 공격에 스스로 몸을 던진 린크.
누가 보면 자살 행위처럼 보이겠지만 다 설계된 거다. 단지 린크 본인의 용기와 피지컬이 필요할 뿐이다.
“으아아아아아!!”
우렁찬 기합과 함께 린크가 아라크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쯤 되니 저게 비명인지 기합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엔 공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린크는 내가 알려준 타이밍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앞발이 날아들기 직전에 몸을 숙여 슬라이딩을 시도했다. 아주 간발의 차이였지만 어쨌거나 공격을 피한 것이다.
덕분에 린크는 앞발에 타격당하지 않은 채 놈의 배 아래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생님! 들어왔어요!”
“좋아, 이제 나한테 맡겨!”
린크의 진입을 확인한 뒤 나 역시 아라크네를 향해 돌진했다.
“쯔아아아아앗!!”
린크가 아래로 들어갔으니 이제는 내 차례다.
내가 크게 소리치며 달려가자 아라크네는 배 아래로 향한 린크 보단 내게 주의를 기울였다.
어쩌면 그냥 린크를 놓친 걸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줬다.
놈의 혐오스러운 입에서 무언가가 꿀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키기이이이익!!]
푸화화화확!!
놈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진녹색의 물방울이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총알과 비견될 정도였으며 도무지 눈으로는 쫓을 수 없었다.
아라크네의 패턴 중 하나인 독액 분사다.
한 발 당 15의 중독 수치를 부여하는 독액을 무려 50발이나 발사하는 스킬.
다 맞으면 1초당 750이나 되는 막대한 데미지를 받게 된다.
정면으로 맞았다간 패턴이 끝나기도 전에 사망. 허나 나는 당당하게 접근했다.
나에겐 독왕의 정수가 있기 때문에 15의 중독 수치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크흐윽!”
추륵……! 추르륵……!
기분 나쁜 액체가 온몸에 뿌려졌다.
빗나간 독액은 바닥에 떨어져서 지면을 부식시켰지만 나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독왕의 정수가 얼마나 사기 아이템인지 실감이 된다.
그야말로 만독불침.
신체 스탯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선 그 어떤 독도 나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물론 독액 특유의 불쾌한 감각은 썩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금부터 내가 놈에게 할 짓을 생각하면 이런 끈적거리는 녹색 물쯤이야 얼마든지 맞아줄 수 있다.
[키기이이이익!!]
내가 아무렇지 않게 접근하자 아라크네도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했다.
그렇다고 패턴을 캔슬하진 않았다.
놈은 화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열심히 독액을 뿜을 뿐이었다.
그 안일함이 놈의 패인이 될 거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스킬을 준비했다.
“하아아아압!!”
파지지지직!
기합을 내뱉으며 검을 휘두르자 쾌도가 청백색 번개를 뿜어냈다.
비록 내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아라크네는 날 공격하고 있다.
그런 놈에게 섬격을 사용했으니 반격 효과가 발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놈이 독액 패턴을 유지하는 이상 난 끊임없이 반격 효과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촤아악! 촤악! 촤자자자작!
그렇기에 나는 한 번으로 끝내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아라크네의 독극물을 맞아가면서 연달아 섬격을 사용했다.
섬격을 세 번 연속으로 사용한 후엔 파고들기까지 퍼부었다.
청백색 뇌광이 아라크네의 얼굴을 베었고 이어진 올려치기가 놈의 눈동자 중 절반을 터뜨렸다.
기력이 바닥날 때까지, 이 기회를 최대한 살려 스킬들을 욱여넣은 것이다.
[끼기이이이이익!!]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공격을 퍼붓자 아라크네도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놈은 더 이상 독액을 퍼붓지 않고 내게서 몇 걸음인가 물러났다.
허나 놈은 이미 연계에 걸려든 지 오래다.
“린크. 다 설치했어?!”
“네 선생님! 지금 당장이라도 터뜨릴 수 있어요!”
내가 스킬을 쏟아 붓는 동안 린크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질문 받은 린크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나 역시 그에게 미소를 보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좋아, 터뜨려 버려!!”
신호를 보내자마자 린크가 발화깃을 꺼내들었다.
깃털처럼 생긴 도구가 활활 타올랐고 린크는 그것을 여지없이 아라크네의 배로 던졌다.
참고로 아라크네의 배에는 무수히 많은 화염병과 기름병이 매달려 있었다.
“요르나를 돌려줘 이 괴물 자식아!!”
콰과과아아앙!!
[끼에에에에에엑!!]
귀가 먹먹할 정도의 굉음이 공동 전체를 뒤흔들었다.
직후엔 아라크네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고 우리들은 모두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서, 성공이다아앗!”
“린크는?! 린크는 괜찮은 거야?!”
이를 지켜보던 세 사람은 쾌재를 부르며 우려의 기색을 비쳤다.
사실 세 사람의 이동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원귀 세 마리를 붙이고 물귀신까지 불러내는 것으로 유미는 자기 할 일을 다 했다.
애당초 유미의 역할은 다리를 공격하는 것.
즉 기동력을 약화하여 귀찮은 패턴이 안 나오도록 막는 것이다.
이를 완수함으로써 아라크네는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못한 채 한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 사이에 내가 정면에서 어그로를 끌고 그 틈을 타 린크가 놈의 배 밑에 화염병을 설치한 것이다.
“콜록! 콜록! 난 괜찮아……!”
“린크!”
아라크네가 불길에 휩싸일 무렵 린크가 일행 쪽으로 이동했다.
놈의 배 아래에서 수많은 화염병을 터뜨리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기름으로 인해 범위도, 위력도 강력해진 불길이 자신마저 태우려 들 테니까.
허나 린크는 타죽기는커녕 생채기 하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보스방에 들어오기 전 그에게 화염의 리본을 건네줬으니까.
‘여기사님 덕을 진짜 많이 보는군.’
화염의 리본은 하루에 1번만 화염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효과를 가졌다.
허나 여기엔 자그마한 허점이 하나 있다.
먼저 착용하고 있던 사람이 효과를 발동한 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면 쿨타임 없이 효과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이걸로 내구도가 다 달았겠지만…….’
효과가 발동할 때마다 내구도가 감소하는 페널티가 있기에 더 이상 이런 편법은 쓰지 못할 거다.
그래도 뭐 상관없다.
폭풍의 숏소드와 다르게 화염의 리본은 수리 가능한 아이템이니까.
“너희들은 물러나 있어.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까.”
한 자리에 모인 일행들을 뒤로 물리며 나는 쾌도를 움켜쥐었다.
내 연속 공격으로만 무려 3000이 넘는 피해를 입혔다.
거기에 더해 린크가 준 화염 데미지까지 더하면 놈은 거의 빈사 상태에 다다랐을 거다.
[끼기이이익……!]
예상대로 아라크네는 불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놈의 배는 거의 걸레짝이 되어 있었으며 녹색 피가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라크네는 그로기 상태에 빠져 움직이지 못했다.
그 모습이 마치 장작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놈의 숨통을 끊으려 했다.
“적어도 갈 때는 편하게 보내줄게.”
아라크네는 한 번 빈사 상태에 빠지면 무기한 그로기에 걸린다.
죽을 때까지 계속 무방비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놈을 끝장내기 위해 왼손을 마신의 것으로 바꿨다.
이제 결정타로 얼마 안 남은 생명력을 0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분명 그럴 터였다.
[키릭, 난, 키리리리릭. 나는, 키리리리릭.]
“어……?”
뭐지? 잘못 들었나?
왜 아라크네가 사람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야?
“스, 스승님……!”
내가 의혹을 느끼며 멈출 때였다.
유미가 다급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전과는 달리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엄청난 위험을 경고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거미 뭔가 이상해요! 혼이 두 개라고요!!”
“혼이 두 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하기 힘든 얘기에 나는 얼빠진 채 물었다.
그러자 유미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 거미 안에 진짜가 들어 있어요! 우리가 상대하고 있던 건 가짜란 말이에요!!”
“뭐라고……?”
이해할 수 없는 얘기다. 이 아라크네가 가짜라니.
유미가 말한 정보와 내 머릿속의 정보가 충돌을 일으켰다.
아니, 아니, 그럴 리는 없어.
원작 게임에선 아라크네가 둘로 분열한다든가 허물을 벗는다거나 하는 기믹은 없었단 말이다.
가디스 던전의 아라크네는 그저 무식하게 크기만 한 거미 괴물일 뿐이다.
그런 놈이 뭔가 다른 기믹을 보여줄 리는 절대…….
쩌적, 쩌적!
“……!”
머릿속에서 수차례 부정한 나였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놈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나오고 있다.
내가 모르는, 생각지도 못한 미지의 무언가가 말이다.
“이런 씨……!!”
푸후욱!
푸화아아악!!
초조함을 느낀 나는 곧장 놈의 머리통에 왼팔을 쑤셔 넣었다.
악마 같은 팔이 머릿속을 헤집고 그 안에 담긴 장기들을 뽑아낸다.
붉은색 숫자와 함께 막대한 데미지가 표시됐다.
일반적으로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수치다. 결정타에 크리티컬이라니. 절대 살 수 없다.
그럼에도 아라크네는 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안쪽에 있는 놈이 멀쩡히 살아 있었다.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
걸레짝이 된 몸통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온다.
그것은 마치 젊은 여성과도 같았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무척이나 기괴한 용모.
인간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6천 시간 동안 플레이한 나조차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어어어어어어!!]
파아아아아앗!!
“……?!”
“꺄아아아악!!”
거미 몸에서 튀어나온 여성이 큰 소리로 포효했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를 넘어 강력한 충격파가 되었다.
재빨리 여자를 공격하려 한 나였지만 충격파에 막혀서 멀찍이 튕겨나갔다.
다른 일행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충격파를 맞고 날아가 바닥을 구르거나 벽에 부딪쳤다.
“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크흐윽…… 다들 괜찮아요……?!”
낙법을 취한 다나가 서둘러 일행들을 살폈고 맷집이 좋은 린크도 이를 악물며 일어났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주문 사용자들이라서 민첩성도 낮은 데다 부딪친 위치도 영 좋지 못했던 것이다.
“으으으…….”
벽에 부딪친 유미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늘어졌다.
곧장 일어나지 못하는 걸로 보아 뇌진탕이라도 온 듯했다.
허나 그런 그녀도 나나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이런 씨바알……! 앰창 존나 아프네……!!”
“나나 씨……!”
그녀의 다리는 기형적으로 꺾여 있었다.
부러진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온 데다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린크! 다나! 나나랑 유미 보호해! 나나는 일단 네 다리 먼저 치료하…….”
정신을 다 잡으며 일행들에게 소리칠 무렵이었다.
[…….]
“……!”
거미 안에서 기어 나온 여성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인간의 것 같은 않은 붉은 눈은 흰 자위가 검은색이었다.
비단결 같은 하얀 머리는 무척 아름다웠지만 스스로 나풀거리는 게 어딘가 섬뜩했다.
더군다나 그녀의 등 뒤에는 8개의 거미 다리가 날개처럼 뻗어 나와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동시에 소름끼치는 용모를 한 여인.
난생 처음 보는 적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불경한 자 아라크네가 승천의 힘을 개방했다.]
[새롭게 태어난 신, 실과 거미의 여신 아라크네가 그대를 적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