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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16화 (11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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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자의 둥지

다키의 존재를 보고 여사제는 당황에 빠졌다.

‘뭐지 저 사람……? 어떻게 괴물의 팔을 순식간에…… 그보다 왜 팬티만 입고 있는 거야……?’

머릿속에서 온갖 의문이 피어올랐다.

난데없이 나타난 팬티 차림의 검사. 차림새부터 무력까지 뭐 하나 정상적인 게 없었다.

분명 자신을 구해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보면 희망과 안도감이 느껴질 법도 한데 지금 여사제가 느끼는 감정이라곤 황당함 뿐이었다.

여사제 입장에선 거미 괴물들 보다 다키가 더 정체불명이었다. 그만큼 다키의 존재는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사제가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할 때였다.

[키리아아아악!!]

투콰아아앙!

분노에 찬 괴성을 지른 거미 괴물. 놈이 다키를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순간 소닉붐이 일어날 정도였다. 다시 봐도 인간, 아니, 평범한 생물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신체 능력이었다.

“단순하기도 하지.”

카가아아앙!

“……!”

[……?!]

허나 다키는 그런 괴물 같은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튕겨냈다.

그가 쾌도를 휘두르자 새하얀 방어막이 생성되며 방패가 튕겨져 나갔다. 이에 거미 괴물도, 여사제도 아연실색한 얼굴로 다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속도만 믿고 공격하면 누가 못 막냐? 들어올 타이밍이 훤히 보인다고.”

[키케에에엑!!]

촤좌아아악!

방어패링을 성공한 다키는 가벼운 발놀림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가 회피하는 것과 동시에 옆에 있던 다른 괴물이 곡도를 휘둘렀다.

물론 수직으로 하강한 곡도는 허공만 벨뿐이었다. 마치 놈들의 생각을 전부 읽은 것 같은 움직임에 사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싸우는 사람은 처음 봐……! 대체 뭐야 저 사람……?! 랄칸도 리더도 못 당해낸 괴물들을 어린애 다루듯이……!’

자신의 동료들과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순발력, 예지에 가까운 상황 판단 능력과 날아드는 비수와도 같은 날카로움까지.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자 거미 괴물들이 한낱 애송이처럼 보였다. 여사제는 온몸에 전율이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은 격이 다르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거미 괴물들과도 말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니 뒤늦게 다키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영웅처럼 보였다.

“고개 좀 숙이세요, 기사님!”

“커흐윽?!”

두 놈에게서 멀어진 다키는 기사를 향해 달려갔다. 이를 본 세 번째 거미 괴물이 팔을 휘둘렀으나 다키의 검은 놈보다 몇 합은 더 빠르게 움직였다.

움직임 자체는 거미 괴물이 훨씬 빨랐다. 이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키는 정말 예지라도 한 듯 미리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촤아아아악!

[키뤼이이이이익!!]

푸화아아악!

그런 다키의 공격이 거미 괴물의 팔을 절단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공격을 가하는 팔을 잘라냄과 동시에 기사의 목을 감고 있던 거미줄까지 끊어버렸다.

“허으윽?! 허억, 허어억……!”

다키 말대로 고개를 숙였던 기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풀려난 것을 확인한 다키는 몸을 숙이면서 하단 베기를 시도했다.

“발목 좀 베자!”

촤아악!

풍차처럼 회전하자 그의 검에 단풍잎 형상을 한 오라가 휘감겼다.

엄청난 강풍과 함께 거미 괴물의 다리를 베어 버리려 한 다키였지만 거미 괴물 역시 쉽게 당해주지는 않았다.

[키리익!]

놈은 날렵하게 점프하여 하단 베기를 피했다. 그 상태로 거미줄을 뻗어 다키의 목을 조르려 했으나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휘이이이잉!!

[키기익?!]

높게 뻗은 상승 기류가 거미 괴물을 집어삼켰다.

붉은색 토네이도가 된 그것은 거미 괴물을 빙빙 돌렸고 다키는 그 상태에서 연달아 놈의 몸을 베었다.

촤악! 촤악! 촤좌악!

[키리이이익!]

[키리리리릭!!]

동료가 유린당하는 광경을 본 두 마리의 거미 괴물이 황급히 달려갔다. 놈들에게 지시를 받은 새끼 거미들도 일제히 다키를 향해 쇄도했다.

“빨리도 움직인다. 너무 안 와서 네 친구 버리는 줄 알았잖아.”

[키리야아아악!!]

팅! 티잉! 티이잉!

연달아 날아드는 방패와 검을 여유롭게 막아내는 다키. 방어할 때마다 하얀색 보호막이 그를 감싸 거미 괴물들의 공격을 완벽히 상쇄했다.

허나 막아내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두 마리만 상대하면 모를까 새끼 거미들까지 가세하니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위험해요……!!”

이를 보고 있던 여사제는 다급히 소리쳤다. 그녀 딴에선 다키를 걱정하여 소리친 거겠지만 걱정할 필요 없었다.

“지금이야! 전부 날려버려!”

“지금이라니 그게 무슨……?”

다키의 외침에 여사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의아하고 있을 무렵 어느새 여사제 곁으로 온 단발의 여전사, 다나가 숏소드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잘 피해 사부……! 처음 써보는 거라 잘못 날릴 수도 있으니까!!”

“……? ……?!”

뒤로 한껏 당긴 숏소드에서 폭풍이 일렁였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번갯불이 번뜩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게 대체 뭐지? 마검? 아니 아무리 마검이라 해도 이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단 말이야?

여사제의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그 중 대부분은 경악과 공포였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었다.

“바람의! 상처어어어!!”

파지지지지직!!

여사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다나는 거침없이 숏소드를 내리쳤다. 큰소리와 함께 검을 수직으로 베자 거대한 폭풍이 거미들을 향해 몰아쳤다.

“꺄, 꺄아아아아아!!”

무자비하게 몰아치는 직선의 폭풍. 비단 마법이라곤 설명할 수 없는 그 강렬한 일격에 여사제는 비명을 내질렀다.

‘저, 저건 절대 마법 같은 게 아니야……! 신의 힘이야……!!’

고작 숏소드에 담겨 있는 마법이 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낼 수는 없다.

이런 것이 가능한 건 오직 신의 권능 뿐. 길드의 정예 병력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기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래서야 마치 그 분 같잖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인물을 떠올릴 무렵 거대한 폭풍이 거미들을 덮쳤다.

[키기이이이익!!]

[키에에에에엑?!]

다키에게 신경이 쏠려 있던 거미들은 차마 그 어마어마한 일격을 피하지 못했다.

놈들이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비바람과 번개가 키틴질의 몸체를 말 그대로 분쇄하고 있었다.

“우, 우와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정작 이 공격을 가한 다나조차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차마 자신이 해낸 일이라곤 생각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이를 보고 여사제는 검의 주인이 다나가 아니란 것을 단번에 눈치 챘다.

거미 무리를 일순간에 휩쓸어버린 폭풍의 검. 이 또한 저 팬티 차림 검사의 것이리라.

‘저 남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렇게 생각할 무렵 다나가 만들어낸 폭풍이 모습을 감췄다.

범위 안에 들어간 거미들은 번개에 맞아 숯덩이로 변했으며 시커멓게 탄 시체들을 강풍이 찢어발겼다.

그런 와중에도 다키는 멀쩡하게 공격을 피해냈다. 그것만으로 모자라 기사까지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고 있었다.

“리더……!”

그제야 여사제도 기사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녀는 황급히 다키와 기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고 곧장 회복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회복 보단 정화 먼저 걸어주세요. 지금 독이 너무 많이 퍼져서 위험하거든요.”

“아, 네……! 그, 그보다 당신은…….”

저도 모르게 지시를 따른 여사제. 그녀는 다키를 올려다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에 다키는 일말의 고민 없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냥, 게임이 취미인 사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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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취미인 사람……? 그게 무슨 뜻이죠……?”

내 대답에 힐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나는 내 대답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깨달았다. 정신머리가 없는 나머지 방송에서 하던 멘트를 그대로 꺼내고 만 것이다.

‘아 개쪽팔려…….’

게임 세계 사람들은 절대 못 알아먹을 말을 쿨찐마냥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가며 내뱉다니.

당장이라도 말을 바꾸고 싶었지만 이제 와서 멋있는 대사를 생각할 시간은 없다. 쓰러진 거미 괴물들, ‘지주귀’가 하나 둘씩 일어났기 때문이다.

뒤늦게 후회하며 나는 여사제에게 말했다.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일단 그 분 챙기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세요.”

턱으로 우리 일행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나랑 다나가 거미 떼를 상대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쓰러진 사람들을 챙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여사제는 무언가가 북받친 듯 촉촉한 눈빛을 보내더니 이내 고개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직후 여사제는 동료들을 향해 뛰어갔다. 거미들은 방금 전 공격으로 전부 처리됐고 저쪽에는 유미도 있으니 더 이상 위험하진 않으리라.

“그보다 너희도 엄청 질기다. 어떻게 그걸 맞고도 멀쩡히 살아 있냐? 아, 멀쩡하진 않나?”

여사제와 기사가 피신하는 걸 확인한 뒤 지주귀들을 확인했다.

지주귀 蜘蛛鬼.

불경한 자의 둥지에서만 등장하는 정예 몬스터로 새끼 거미들과 함께 던전 난이도 상승의 주범으로 꼽힌다.

설정상 고블린들이 던전의 주인에게 힘을 나눠받으면 저런 모습으로 변한다고 한다.

전사와 길쌈꾼 총 두 종류가 있는데 무기를 든 놈이 전사고 맨손에 거미줄을 뿜을 수 있는 놈이 길쌈꾼이다.

지금 살아남은 두 놈은 전부 전사. 한 마리당 생명력이 1500이 넘는 피돼지들이어서 열공의 헌 획을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내가 사용했다면 죽이지는 못 해도 빈사로 만들 수는 있었겠지만 다나가 사용해서 그런지 데미지가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가 어그로를 끌지 않았다면 저놈들이 맞아줄 일도 없었을 테고, 저 다섯 명도 거미들에게 당하거나 폭풍에 휘말렸을 테니까.

[키기이이익!!]

[키리릭! 키리리리리릭!!]

내 말을 들은 지주귀들이 이를 갈며 분개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놈들이지만 역시 열공의 한 획에 직경당하여 몸 상태가 말끔하진 않았다.

전신은 번개에 의해 검게 그을렸으며 등에 달려 있는 거미 다리들은 전부 이상한 곳으로 꺾이거나 아예 부러져버렸다.

전신으로 보호하는 갑각도 대부분 파손됐으니 놈들의 가장 큰 강점인 방어력도 꽤나 감소했으리라.

‘길쌈꾼은 안 보이네. 바람의 상처 맞고 죽었나?’

놈들과 대치한 상태에서 길쌈꾼을 찾았다. 당장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다른 거미들처럼 폭풍에 휘말려서 산산조각 난 듯했다.

그럴 만도 하다. 길쌈꾼은 전사들 보다 생명력이 500이나 더 낮으니까. 원거리 홀딩 스킬을 가지고 있는 대신에 내구성 자체는 전사들 보다 못한 것이다.

그 놈까지 살아 있었다면 꽤나 귀찮아질 뻔했는데 다행이다. 다 죽어가는 전사 둘만 살아남았으니 전투를 끝내는 건 순식간이리라.

[키릭, 키리릭.]

[키이이이익!]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이런 씹…….”

뒤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6천 시간 동안 숙련된 내 사플 실력이 위험을 감지해냈다.

“아니 진짜 너희는 양심도 없냐?!”

타아앗!

촤라락! 촤라라라락!!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곧장 옆으로 굴렀다. 그러자 내가 있던 자리를 새하얀 거미줄이 지나쳤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말이다.

“니미……!”

그 광경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길쌈꾼이 두 마리나 더 몰려온 것이었다.

[키 칼루루루룩!! 카후 키리릭! 니 후카 즈얀바키리리리릭!!]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뭐라 뭐라 떠드는 지주귀 길쌈꾼. 내 예상대로라면 넌 이제 죽었다며 엄포를 놓는 듯했다.

원래 구간마다 한 마리씩 있는 놈들인데 세 마리가 한꺼번에 등장하다니.

이 사람들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녀서 그런가? 아니면 이것도 게임 세계의 변수라고 봐야 하나?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의 등장으로 내 쪽이 훨씬 더 불리해졌다. 한 마리만 있어도 지랄 맞은 놈들이 네 마리로 불어났으니 얼마나 귀찮겠는가.

‘그래도 전사들은 더 나오지 않았어. 그나마 다행이야.’

홉 고블린의 경우를 생각하면 전사들이 더 나오는 상황도 있을 법 했는데 다행히 이 이상으로 더 하드코어해지지는 않나 보다.

게다가 지금 살아있는 지주귀 중 한 놈은 팔 한 쪽이 없는 반병신. 사실상 세 마리를 상대하는 거니 어떻게든 될 거다.

무엇보다 지금의 난 혼자가 아니니까.

“린크! 몸통 박치기!”

“네 선생님!”

타앗!

계산을 마친 내가 린크에게 소리쳤다. 뒤에서 대기하던 그는 힘차게 대답하며 방패를 들고 달려왔다.

“하아아아압!!”

퍼어억!

[크히이이익?!]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린크가 전사 한 놈을 들이박았다.

수사슴 같은 돌진에 잠시 당황한 전사였지만 아무리 약해졌어도 엘리트는 엘리트다. 놈은 꿈쩍도 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얀후 즈자나 우 쿠 타훌라!!]

애송이 주제에 감히 어딜 덤비는 거냐! 대충 그런 식으로 말하는 듯했다. 그로 인해 린크는 졸지에 목이 날아가게 생겼다.

하지만 이 역시 내 예상대로다. 지주귀는 일말의 오차도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줬다.

놈이 린크를 노린 틈을 타 나는 품 안에서 화염병을 꺼내 집어던졌다.

“붕어 새끼냐! 내가 있는 걸 그새 잊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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