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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자의 둥지
“진짜 사부는 보면 볼수록 수상하다니까. 나한테 빌려줬던 검도 그렇고, 그 리본도 그렇고. 어떻게 그만한 물건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가지고 다니는 거야?”
다나도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의심쩍은 시선을 보내왔다.
폭풍의 숏소드를 써본 그녀는 계속 내 정체에 의혹을 품어온 듯했다. 절대 평범한 모험가는 아닐 거란 확신이 그녀의 표정 위로 드러났다.
“너희도 모험하다 보면 자연스레 얻을 거야. 운이 좋을 때 얘기지만.”
“그으래~?”
적당히 변명하자 다나가 내게 바싹 다가왔다. 어서 빨리 실토하라는 의사겠지만 난 애써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 그보다 조금 전의 일은 너무 무모하셨어요……. 아무리 리본이 있다고 해도 맨몸에 불을 지르다니……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다나에게 무언의 심문을 받고 있을 무렵, 유미가 안도와 우려가 반쯤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 얘기를 듣고 린크 역시 유미에게 동조했다.
“저희가 이런 이야기 하는 건 주제넘은 참견이겠지만…… 너무 위험한 행동은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스승님한테는 나나 씨도 있으니까…….”
두 사람 말이 맞다.
어떤 미친놈이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싸울 생각을 하겠는가. 더군다나 자기 여친 앞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미친 짓도 대범하게 할 수 있기에 고인물인 거다. 걱정 끼친 건 미안하지만 공략을 위해서라면 난 이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다.
“흥~! 다들 뭘 모르는군요! 그게 다 너희가 좆늅이라는 증거예요!”
“예……?”
그때, 나나가 자만 가득한 목소리로 린크에게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반박에 린크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고 그런 린크를 보며 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자고로 다키님처럼 격이 다른 사람은 일반인들이 할 수 없는 비범한 일도 해내는 법이에요! 그걸 비단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너희의 우매함이 불쌍하군요!”
“아니 나나 씨가 제일 걱정하셨잖아요……. 저희도 아까 선생님한테 안겨서 울먹이는 거 다 봤어요.”
“그건 뭔 개소린지 모르겠구요! 아무튼 다키님처럼 실력자가 되고 싶다면 상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익어예요!”
린크의 지적 같은 건 가볍게 무시해버린 나나. 그녀의 뻔뻔함에 나도, 린크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뭐,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기분이 어느 정도 풀렸다는 뜻이겠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일행들에게 말했다.
“어찌됐든 거미들은 다 해치웠잖아. 방해하는 놈들도 없어졌으니 슬슬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자고.”
그러면서 저 멀리 보이는 통로를 가리켰다.
벽면에 뚫린 좁은 구멍이었는데 뭔가 동굴 속에 또 다른 동굴이 있는 느낌이었다. 새삼 이 평원이 얼마나 넓고 이질적인 곳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야겠어요. 이대로 가다간 연기 때문에 질식할지도 모르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하며 린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덧 우리 주변엔 꽃과 거미들이 타면서 피어오른 연기가 가득했다.
여기선 잘 안 보이지만 이 지역의 천장은 뻥 뚫려 있는 구조다. 그렇기에 린크 생각처럼 우리가 질식해서 죽을 일은 없다.
하지만 매연에 오래 노출돼서 좋을 거 없고 무엇보다 불길이 쉽게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서둘러 벗어날 필요는 있을 듯했다.
“그럼 얼른 가자……. 나 여기에 한 시라도 더 있기 싫어…….”
“저, 저도요…….”
조금 전의 일들이 떠올랐는지 표정이 어두워지는 다나와 유미. 그런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뒤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와아……!”
“여긴 또 뭐람……?”
동굴 안에 들어선 일행들은 다시 한 번 감탄을 터뜨렸다.
푸른 꽃으로 가득한 들판도 신기했지만 이곳은 한층 더 몽환적인 광경이었다.
다른 곳과 다르게 벽면이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여기저기 청록색의 광석들이 솟아나 있었다.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아름다운 동굴. 꿈의 세계로 가는 통로 같은 비주얼에 일행들은 너도 나도 탄성을 흘렸으나 곧 긴장감을 되찾았다.
조금 전의 전투가 그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준 것이리라. 그들은 아름다운 광경에 심취하기 보단 이곳에선 또 어떤 끔찍한 적이 나타날지 경계했다.
“여기 오면서 느낀 건데요, 이런 곳일수록 좆같은 몹들이 나오더라고요…….”
“동감…… 여기도 절대 예쁘기만 한 장소는 아닐 거야…….”
무기를 들며 주위를 둘러보는 나나와 다나. 그녀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심 흡족해했다.
언제나 경계심을 곤두세우는 건 아주 좋은 자세다.
소울라이크는 방심하는 순간 죽는 장르다. 가디스 던전에선 아름다운 배경으로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게 만드는데, 그러다가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이 구간은 새끼 거미 웨이브 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지는 않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이 던전의 엘리트 몬스터들이기 나오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난 주위 있던 꽃을 꺾어 흩뿌렸다.
“응? 뭐하시는 거예요 다키님?”
“꽃에 뭔가 효과라도 있는 건가요……?”
내 뜬금없는 행동에 일행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질문엔 내가 직접 대답해줄 필요도 없었다. 허공에 뿌려진 꽃잎들이 하나둘씩 잘려나간 것이다.
“……!”
“이, 잎이 스스로…….”
마치 칼로 베어버린 것처럼 깔끔하게 잘리는 꽃잎들. 그 광경을 보며 나를 제외한 모두가 숨을 집어삼켰다.
나는 곧 즙이 묻어 반짝거리는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와이어처럼 날카로운 거미줄이 몇 가닥이나 걸려 있었다.
“이 앞부터 길 곳곳에 거미줄이 설치되어 있을 거야.”
“거, 거미줄……? 이게 다 거미줄이라고?”
“그래. 모르고 지나가면 살짝 베이는 걸론 안 끝나. 주위에 있는 적들에게 발각당하기까지 하니까 조심해야 돼.”
거미줄의 존재를 모르고 그대로 전진했다면 우리 역시 방금 전의 꽃잎처럼 잘게 썰렸을 것이다.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봐도 이 함정은 무척 위험하다. 접촉할 경우 무려 270의 참격 데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치명타가 터지면 그대로 참수당할 수도 있다.
일행들은 잘게 썰리는 자신의 모습이라도 떠올린 건지 다들 사색이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진중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내가 앞장 설 테니까 너희는 딴 길로 새지 말고 내 뒤에 딱 붙어 있어.”
“네, 네……!”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침을 꿀꺽 삼키면서 일행들이 내 뒤에서 바싹 붙었다.
서로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따라오는 모습이 무슨 기차놀이 하는 유치원생들 같다. 쓸데없이 일사분란해서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그보다 말이야. 사부는 이런 거 어떻게 알고 있었어? 전에 간 던전에도 이런 게 있었던 거야?”
“화, 확실히 스승님…… 처음 와본 분이라기엔 이 던전에 대해 너무 잘 아시는 것 같아요…….”
다나와 유미가 벌벌 떨며 물었다. 나는 딱히 거짓말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이런 식의 함정은 거미형 몬스터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거든. 당연히 여기에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렇구나…… 거미줄을 저런 식으로 쓸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야 우리는 저렇게 큰 거미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 유미라면 모를까…….”
그렇게 말하며 유미를 바라보는 린크. 그에 유미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론했다.
“내, 내가 아는 큰 거미는 여기 나오는 괴물들하고 차원이 다른 걸……. 애초에 그 거미는 인면지주라고 해서 사람들한테 이로운 요괴고…….”
“엑…… 인면지주면 몸통 부분이 사람 얼굴처럼 생긴 괴물 아니에요? 그런 게 사람한테 이롭다고요?”
유미의 얘기를 듣고 나나가 질색하며 물었다. 그러자 유미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들려주었다.
“그건 조로구모라는 천신도의 요괴가 와전된 거예요……. 인면지주는 비록 거미의 하체를 가졌지만 상체는 아름다운 여성인 선한 요괴예요.”
인면지주, 비록 설정상으로만 등장하는 몬스터지만 나도 알고는 있다.
원래 동방을 배경으로 한 DLC에서 등장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본편부터가 처참한 흥행성적을 기록한 탓에 끝내 출시되지 못한 몬스터 중 하나다.
‘가만, 그런 걸 알고 있다면 유미도 동방 출신이란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나는 유미를 바라보았다.
물망초 세트가 본편에도 등장하는 방어구라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유미의 외견은 서양인 보단 동양인에 가까웠다.
머리색도, 눈동자 색도 현실의 동양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동양인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가능.”
“네?”
“쌉가능.”
동방의 존재와 유미의 출신에 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나나가 난데없이 그런 소리를 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유미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지만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나나 쟤…… 반인반주(半人半蛛)의 요물이라도 예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하반신은 거미란 소리잖아? 우리가 상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거미를 두 다리 대신 붙이고 다닌단 얘기 아닌가?
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솔직히 새끼 거미들도 썩 유쾌한 디자인은 아니었는데 그 위에 사람이 붙어 있다면 아무리 예뻐도 불가능일 것 같다.
대체 나나의 이상성욕은 얼마나 깊고 어두운 걸까. 새삼 나나의 정신세계에 두려움을 품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다키님! 혹시 이 던전의 보스도 유미가 말한 요괴처럼 예쁜 거미 언니인가요?!”
기어이 나나는 숨을 헐떡이면서 내게 질문했다. 나는 순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러면 어쩌려고……?”
“어쩌긴요! 당연히 붙잡아서 사육해야죠! 애완 거미로 만들어버리자구요!”
비교적 순화해서 말했지만 그녀가 인면지주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할지 대강 예상이 됐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벌이겠지.
이 던전의 보스가 그런 모습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나나에게 대답했다. 당연히 그 한숨은 안도의 한숨이었다.
“여기 보스는 그렇게 안 생겼어. 거미는 맞지만.”
“으잇?! 뭐예요 재앙신에 필적하는 몬스터라면서요! 그러면 당연히 예쁘게 생긴 거미 언니여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 법은 누가 정한 건데……?”
다시 한 번 어처구니없는 어조로 반박할 때 이를 듣고 있던 다나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재앙신에 필적한다니…… 설마 우리 그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을 상대하러 가는 거야……?!”
가뜩이나 사색이 되어 있던 얼굴이 완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리단의 반응을 떠올려보면 다나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 세계의 주민들은 재앙신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다.
한 때 천지를 뒤흔들고 수많은 생명을 벌레마냥 죽여 온 살아있는 재앙이 신이란 족속이다.
그런 존재들이 이성 없는 괴물이 됐다고 하면 얼마나 무섭겠는가.
비록 이곳 보스가 재앙신과 동급은 아니라지만 재앙신이란 말만 나와도 초보 모험가 입장에선 등골이 서늘할 만하다.
“걱정 하지 마, 던전이라고 해서 전부 재앙신에 의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간혹 강한 신력을 가진 몬스터들도 던전을 만들곤 해.”
“저, 정말……?”
그런 다나에게 린크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보기보다 이런 쪽으로 잘 알고 있는 건지 린크는 나보다 더 유창하게 이야기했다.
“뭣보다 재앙신이 만든 던전이라면 위험한 괴물들이 나오는 걸론 그치지 않아. 강력한 신력의 영향으로 아예 다른 세상이 되어버리지.”
“그러면 여기엔 재앙신이 없다는 거지?”
“반드시란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보면 돼. 이 정도 이변을 일으키는 신이라면 그리 강하지도 않을 테고.”
린크의 해설에 다나가 크게 안도했다. 그에 나는 흥미로운 어조로 린크에게 물었다.
“어려운 이야긴데 잘 알고 있네? 그런 건 다 어디서 배웠어?”
“저희 마을에 은퇴하신 학자님이 한 분 계셨거든요. 그분한테 좀 배웠어요. 간간이 주워들은 정도라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요.”
학자라, 확실히 원작 게임에서도 설명충 노릇을 하던 부류니 그런 사람과 알고 지냈다면 이런저런 잡지식을 알고 있을 법하다.
그보다 의외인걸. 처음 볼 때부터 린크는 뼛속까지 열혈 바보일 줄 알았는데 그의 행동이나 지식들을 보면 은근히 지성 캐릭터인 것 같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응?”
전방에 있는 거미줄 중 몇 가닥이 끊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먼저 건드린 것처럼 말이다.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이 있나?’
그리 추측하며 난 바닥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피가 흥건할 정도로 쏟아져 있었다. 뒤늦게 짙은 피 냄새가 풍겨왔다. 누군가 함정을 건드린 게 분명하다.
‘안 좋은데…….’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동굴 안쪽을 바라봤다.
안 그래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던 참이었다. 이쯤 되면 슬슬 몬스터가 나와야되는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던 것이다.
그 말은 곧 주위에 있던 몬스터가 전부 먼저 온 사람들에게 몰려갔다는 뜻이리라.
‘어? 생각해보니까 이거 개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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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는 아라크네형 히로인을 정말 좋아합니다.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이번 작에선 안 넣기로 했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