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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자의 둥지
“뭐……?”
“시체라고……?”
유미의 외침에 일행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순간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는 그들에게 나 역시 진실을 말해줬다.
“유미 말이 맞아. 저 남자 말 귀 담아 듣지 마. 유미랑 나나는 당장 캐스팅하고.”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사부! 저건 어떻게 봐도 살아있는 사람……!”
못 믿겠다는 듯이 항의하는 다나였지만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자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아아악……! 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악!!”
쩌억! 쩌저억!!
고통어린 비명을 지르는 남자. 목청껏 소리친 그는 쉴 새 없이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의 복부가 갈라졌다.
[키이이이익!!]
“……!!”
“저건 또 뭐야?!”
이형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후, 갈라진 틈새에서 기다란 다리가 튀어나왔다.
갑각으로 뒤덮인 그것은 남자의 몸을 우악스럽게 찢어발기더니 이내 피범벅이 된 본체를 드러냈다.
타닥, 타다닥.
내장을 씹으면서 나타난 그것은 커다란 거미였다.
평범한 거미보다 더욱 흉측하게 생겼으며 8개의 눈동자가 수시로 깜빡거렸다. 기다란 창자를 우물거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욕지기가 올라왔다.
“우, 우웁……!”
“말도 안 돼…… 저런 게 사람 몸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그럼 저 남자는 살아있는 채로 계속 먹히고 있었던 거야……?”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다들 넋을 잃고 말았다.
다나는 구역질을 참으려고 입을 틀어막았고 린크는 남자가 죽는 광경을 떠올리며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나와 유미 역시 말이 없을 뿐이지 충격이 상당한 듯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안 나오는 것이었다.
‘원작에선 저렇게 세세하게 묘사해주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훨씬 끔찍하네…….’
나 역시 충격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은 원작 게임에서도 등장하는 일종의 이벤트 씬이다. 중반부의 잔혹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투 시작 전에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허나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인 가디스 던전도 저 정도 수위로 잔혹함을 묘사하지는 않았다. 픽션이 논픽션 보다 끔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뇌리 속에 박아주는 듯했다.
[키기이이익!!]
우리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뱃속에서 튀어나온 거미가 펄쩍 뛰어올랐다.
“흐읍!”
촤아악!
거침없이 도약하는 놈을 신속하게 베어 넘겼다.
생명력이 내 평타 공격력 보다 높아서 한 번에 죽지는 않았지만 공격 속도를 살려서 재빨리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키이익……!]
허공에서 연달아 썰린 거미는 이내 두 동강 난 채 바닥에 떨어졌다.
허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이놈은 그저 이벤트성 몬스터,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경종일 뿐이다.
거미들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나나야, 횃불 꺼내. 린크랑 다나한테 하나씩 나눠주고 두 사람은 후열 멤버들 옆에 딱 붙어 있어.”
“네 다키님……!”
“알겠어 사부……!”
재빨리 횃불을 꺼내 나눠주는 나나와 그것을 받아드는 두 사람. 붉은 깃털처럼 생긴 도구, 발화깃을 꺼내 불을 붙이자 우리의 주위가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렇게 횃불을 준비하고 주위를 경계하길 잠시, 유미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 사방에 놈들이 있어요……!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에요!”
“나나야 너도 들려?! 몇 마리나 오는지 알겠어?!”
“모, 못 세요……! 너무 많이 오고 있다구요! 족히 수십 마리는 되겠어요!”
내 질문에 나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조금 전의 일 때문인지, 아니면 몰려오는 적에 대한 두려움인지 그녀의 얼굴에는 진심어린 공포가 담겨 있었다.
“다들 잘 들어! 여기 들어온 순간부터 포위되는 건 예정된 일이었어! 그러니까 내가 지시하기 전까진 계속 자리 지켜! 불만 들고 있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야!”
일행들에게 이야기하며 나 역시 횃불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공격에 대비한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아서 습격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기이이익!!]
[키이이이이이!]
꽃밭에서부터 튀어나온 그것은 조금 전에 봤던 거미와 비슷한 개체들이었다.
허나 크기가 더 커서 대형견 만했으며 주위에 핀 꽃들처럼 전신이 청록색으로 빛났다. 도약하기 전까진 옆에서 다가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잘 만났다, 지긋지긋한 새끼들!”
촤악! 촤아악!
화르륵!
[키기이이잇!!]
달려드는 놈들을 베면서 횃불을 휘둘렀다.
일제히 덤벼든 거미들이었지만 횃불을 한 번 들이대 주니 사방으로 산개했다.
불이 약점일 뿐만 아니라 본능적으로 불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어서 횃불만 써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야 린크! 이놈들이 네가 봤다던 거미야?! 이것들이 요르나를 잡아갔다고?!”
“마, 맞아……! 하지만 이 정도로 많지는 않았어! 내가 봤을 땐 어두운 곳에서 나타났었고!”
다가오는 거미들에게 맞서며 린크가 이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원작 게임에선 플레이어가 중반부에 접어들자마자 수많은 거미들이 몰려오곤 했다. 이 웨이브 자체가 던전의 기믹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린크의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오기 전엔 다소 다른 행동을 보인 듯하다. 마치 내가 던전에 들어오는 게 기믹의 트리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야,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쓸 틈 없어.’
수상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당장은 거미들을 잡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보기엔 그냥 잡몹 같아도 이놈들은 던전의 난이도를 높이는 원흉 중 하나다.
놈들의 이름은 새끼 거미. 유저들 사이에선 일명 씹새끼 거미라고 불리는 악명 높은 몬스터로 이놈들이 등장하면서부터 던전의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이제 여기는 비단 고블린 소굴이 아니다.
수많은 초보자들을 좌절시키고 꼬접하게 만들었던 생지옥, ‘불경한 자의 둥지’인 것이다.
“쯔아앗!!”
서걱! 서걱! 서걱!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거미들을 연달아 처치했다. 그때마다 초록색 피와 함께 조각난 신체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럼에도 거미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압도적인 물량 때문에 일행들도 많이 동요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대형견 크기의 거미들이 수십 마리씩 몰려드는데 어느 누가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평범한 사람들은 손바닥 크기 되는 거미만 봐도 자지러지곤 한다.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오는 놈들이 자신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든다면 누구라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마치 크리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을 보면서 나는 타이밍을 쟀다.
그놈은 아직 안 왔나? 그놈이 나오기 전에 섣불리 움직이면 이쪽만 불리해질 거다. 지금 상황이 위험해도 함부로 이동하면 이후 벌어질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놈이 나타나길 기다렸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크아악!!”
“린크!”
린크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뜨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발밑에는 거미 한 마리가 있었다. 빈틈을 파고든 거미가 린크의 다리를 깨문 것이었다.
“크훅……! 컥, 커억……!”
거미에게 물린 린크는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신경 독이 퍼진 것이다. 그의 눈은 순식간에 흰 자위를 드러냈고 전신이 감전된 것처럼 마구 경련했다.
“이 새끼가!!”
푸후욱!
[키이이이잇!!]
이에 다나가 욕설과 함께 거미를 내리찍었다. 창이 바닥과 함께 거미의 몸을 꿰뚫었고 놈은 괴성을 지르며 발광했다.
“으으으……! 죽어 이 징그러운 새끼야……!”
화르륵!!
혐오스러운 광경이 질색하며 횃불을 들이미는 다나. 그녀의 자비 없는 처형에 거미는 끝내 활활 타올랐다.
“린크……! 린크 부탁이야! 제발 정신 차려……!”
그 사이에 유미가 쓰러진 린크를 흔들어 깨웠다. 허나 린크는 쉽사리 깨어나지 못했다. 신경독이 지속되고 있으니 당장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게 놈들이 씹새끼 거미라고 불리는 이유다.
놈들에게 물리는 순간 대상은 100퍼센트의 확률로 다운 및 기절 상태에 빠진다.
중독 저항 또는 마비 저항이 50퍼센트를 넘기지 않으면 대항할 방법도 마땅히 없으며 독에 걸리자마자 모든 행동이 제한되기에 해독제도 쓸 수 없다.
심지어 기절의 지속 시간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공격을 받으면 3초 후에 풀리긴 하는데 수많은 거미에게 3초 동안 맞으면 그냥 죽는 거라고 봐야 한다.
“동요하지 마 유미야! 나나가 금방 치료해줄 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동안 네가 횃불로 막고 있으면 돼!”
“네, 네 스승님……!”
안 그래도 나나는 린크가 누운 시점부터 정화 주문을 영창하고 있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쓰러진 린크가 아니라 린크가 당한 후에 생긴 구멍이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거미들이 횃불 하나가 떨어지자 곧장 몰려든 것이었다.
[키기이이익!]
“히, 히익……!”
내 말을 듣고 유미가 횃불을 집어든 순간 거미 한 마리가 그녀에게 도약했다.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은 유미였지만 그녀의 손은 반사적으로 횃불을 휘두르고 있었다.
“오, 오지 마아앗!!”
퍼어억!
[끼이이이익!!]
타오르는 횃불이 거미의 안면을 강타했다.
모험가 길드에서 구한 횃불은 특별한 송진이 발라져 있어서 훨씬 더 쉽게 불이 붙는다.
그런 횃불에 맞은 거미도 마찬가지였다. 놈의 얼굴은 빠르게 불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몸 전체로 불길이 퍼져나갔다. 거미가 타죽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허억……! 허억……! 뭐, 뭐죠?! 제가 어쩌다가 쓰러진 거예요?!”
때마침 정화 주문을 받은 린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쓰러질 때의 기억이 없는지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에 나나가 호통을 치며 린크를 일으켜 세웠다.
“정신 차렸으면 닥치고 싸우기나 해요! 누워 있으니까 편한가 보죠?!”
“죄, 죄송합니다! 흐으읍!!”
촤아악!
다급히 일어난 린크가 검을 휘둘렀다. 이후 유미에게 횃불까지 넘겨받아 다시금 대형이 안정되었다.
허나 계속되는 웨이브 앞에선 얼마나 버틸지 미지수였다. 그 새끼의 출현이 늦어지는 만큼 우리도 다른 방식으로 버텨야 했다.
“유미야, 발밑에다 물귀신 깔 수 있겠어?!”
“……! 네, 해볼게요!”
내 의도를 알아차린 건지 유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곳 방울을 흔들면서 주문을 영창했다.
“한 많은 원혼들아, 편히 눈 감지 못하고 수면 위로 떠오른 영혼들아……! 이리 와서 데려가라, 물밑까지 끌고 가 동포로 삼아라……!”
풍덩! 풍덩! 풍덩!
[으어어어어어!!]
유미의 주문이 완성되자마 우리 발밑에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그 안에서 수많은 물귀신이 손을 뻗어왔고 그들은 거미들이 다가올 때마다 붙잡아 움직임을 저지했다.
“진즉에 이럴 걸 그랬네! 이놈들 물귀신 깔리니까 아무 것도 못 하잖아?!”
“잘했어 유미야! 덕분에 훨씬 수월해졌어!”
눈에 띄게 느려진 거미들은 린크와 다나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정도였다. 놈들의 특기라고도 할 수 있는 도약을 사용하지 못하니 전투력이 급감하는 것이었다.
“응……! 도움이 돼서 다행이야……!”
자신이 활약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유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자신감을 되찾고는 더욱 열심히 주문을 영창했다.
허나 물귀신의 지속 시간은 15초. 다시 시전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해도 이와 같은 전술을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
마력 소비가 무려 80이나 되는 스킬이어서 거미들을 다 죽이는 것보다 유미의 마력이 바닥나는 게 더 빠를 거다.
물귀신에만 의존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몰려오는 거미를 일행들에게 맡기고 놈을 찾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피길 잠시, 이내 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내가 찾아낸 건 붉은색 갑각을 가진 거미였다. 보기만 해선 새끼 거미의 색놀이 버전 같지만 이놈이야 말로 이 던전의 가장 큰 위험요소다.
신령이 다니는 길에 비유하면 사냥개 조련사급 몬스터인 것이다.
[끼에에에에에에!!]
놈은 우리 쪽으로 다가오자마자 앞발을 들며 포효를 터뜨렸다.
올 것이 왔다. 놈의 울음소리는 꽃밭 전역에 울러 퍼졌고 소리를 들은 거미들의 눈이 붉은색으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키기익! 끼기이이익!!]
눈동자가 붉게 변하자 거미들이 더욱 흉포해졌다. 비단 공격성만 짙어진 게 아니었다. 이전에 비해서 속도가 대폭 상승한 것이었다.
“어, 어어?!”
“사, 사부! 이놈들 이상해! 물귀신도 뚫고 오려 한다고!”
더욱 사납게 달려드는 거미들을 보며 일행들이 당혹감에 빠졌다. 나는 붉은 거미를 노려보면서 일행들에게 말했다.
“저 빨간 거미 능력이야! 저놈이 있으면 주위에 있는 거미들이 전부 강해져!”
붉은 거미의 정식 명칭은 광전사 거미.
이름처럼 매우 흉포한 성향을 가진 거미인데,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페로몬을 주위에 흩뿌려 다른 거미들을 강화하는 능력을 가졌다.
광분 페로몬의 영향을 받은 거미들은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대폭 상승한다. 이렇게 오른 공격력은 무려 300이나 돼서 나도, 일행들도 두세 방이면 죽는다.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이러다간 뚫리겠어!”
위기감을 느낀 다나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에 나는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쩌긴. 저 새끼 잡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