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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05화 (105/217)

105====================

불경한 자의 둥지

“키게에에엑!!”

“크리야아아악!”

칼과 창을 치켜든 채 달려드는 고블린 무리. 놈들은 우리 진영의 사각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유미가 아니었다면 꽤 성공적인 기습이 됐겠으나 보기 좋게 물 건너갔다. 나는 다나에게 소리치면서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그놈들은 너한테 맡길게! 빨리 죽이지 않아도 되니까 칼 든 녀석부터 차근차근 처리해!”

“이놈들을 나 혼자서?! 당신은 어쩌려고?!”

내 지시에 다나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확실히 다나 혼자 상대하기엔 비교적 많은 수였다. 내가 섬격으로 베어버리면 단번에 처치할 수 있는 수기도 하다.

허나 지금은 저 놈들을 상대할 틈이 없다. 먼저 달려온 서너 마리는 총알받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블린들이 튀어나온 돌기둥 주위에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 있다.

종유석들을 지나치며 그 뒤로 꺾어 들어가자 다섯이나 되는 고블린들이 기습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먼저 튀어나간 놈들이 주의를 끄는 틈에 후열을 칠 생각인 듯했다. 나나와 유미를 노려보고 있던 놈들은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당혹을 터뜨렸다.

“크르윽?!”

“키케엑!!”

화들짝 놀라는 다섯 마리의 기습조. 놈들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내질렀으나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잔머리하고는!”

촤아아아악!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횡 베기를 가했다.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다섯 마리가 전부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켁……!”

푸화악!

고블린들의 머리가 피를 흩뿌리며 허공에 떠올랐다. 213이나 되는 참격의 데미지는 놈들을 즉사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뭐야……! 이 자식들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이 튀어나오는 거야?!”

내가 기습조를 처리하고 있을 무렵 다나는 몰려오는 고블린들 사이에서 고전하고 있었다.

서너 마리로 그치는 줄 알았던 고블린은 어느새 여섯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다른 곳에서 튀어나온 놈들이 합세한 것이었다.

“키 얀카 쿨라!!”

“크히힛! 얀 후! 브훌라 지보나!!”

여섯 마리의 고블린들은 먼저 만난 놈들 보다 훨씬 뛰어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인간들에게 약탈한 건지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무기들을 착용했으며 조악하게나마 갑옷도 입고 있었다.

천조가리 한 장 걸친 초반부 고블린에 비하면 확실히 정예병이라는 느낌이 났다. 그로 인해 다나도 상대하기 버거워보였다.

“괜찮아?! 내가 좀 도와줄까?!”

후방으로 튀어나온 놈 중 하나를 처치하며 린크가 물었다. 그에 거부로 지원하던 나나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너 이 새끼 금붕어예요?! 다키님이 후열이나 잘 지키라고 했잖아요! 가만있어 봐요!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홀장을 뻗는 나나, 그녀는 다나가 위치한 장소를 직시하며 주문을 영창했다.

“위대한 빛의 창세신이시여, 태양처럼 눈부신 빛으로 저 새끼들 눈을 멀게 해주세요!”

파아앗!!

“우, 우왓?!”

나나의 외침과 함께 나타난 빛나는 구체. 그것을 본 다나는 한순간 당황했으나 이후에 일어난 일을 보며 금세 감을 잡았다.

“기절 주문이구나! 고마워 사제님!”

“알았으면 빨리 죽여요! 그거 지속 시간 은근 짧다고요!”

다나를 채근함과 동시에 나나는 다시 한 번 찬광 주문을 외웠다.

고블린들은 기절 저항이 낮아서 두 번 정도는 확정적으로 기절시킬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을 이동하는 도중에 미리 말해뒀는데 나나는 이를 머릿속에 잘 새겨 넣은 듯했다.

“맡겨둬! 멍 때리는 놈들 찔러 죽이는 거야 쉽지!”

파바박!!

“케헤엑……!”

최대한 거리를 벌리며 검을 든 놈부터 공격한 다나. 그녀에게 달려들던 고블린들의 머리통이 창졸간에 꿰뚫렸다.

기교 전투 기술 중 가장 기초인 삼연격이라는 스킬이다.

도검 계열 무기와는 어울리지 않아서 나는 안 찍은 스킬인데, 창을 든 다나가 사용하니 탁월한 효과를 선보였다.

삼연격

액티브

요구 스탯: 기교 11

비용: 20 기력

사용 조건: 근접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빠르게 세 번 찔러서 +80퍼센트의 관통 피해를 세 번에 걸쳐서 준다. 시전 중일 때 공격 속도가 대폭 상승하며 관통 속성 무기를 착용했을 경우 사용자의 기교만큼 적의 방어력을 무시한다.

공격 속도도 무척 빠르고 방어 무시 효과까지 있는 스킬이지만 관통 속성 무기를 착용해야 본연의 효과를 발휘한다는 단점이 있다.

도나 직검도 관통 속성이 붙어 있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관통 속성 무기는 아니다.

일반적으론 관통 공격을 주로 하는 창이나 세검 같은 무기를 관통 무기라 칭하곤 한다.

“나나도 다나도 잘 했어! 계속 그렇게 차근차근 처치하면 돼!”

열심히 싸우는 그녀들을 격려하며 나는 내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적을 노려보았다.

“크르르르르르!!”

콰득! 콰드득!

종유석을 부수며 나타난 것은 또 다른 홉 고블린이었다.

이게 1회차라면 양손검으로 무장한 고블린 약탈조장이 나와야 정상이다.

약탈조장 역시 다른 고블린 보다 상대적으로 크고 강하다만 지금 내 앞에 나타난 놈은 그보다 훨씬 강력한 홉 고블린 정예병이다.

기다란 투 핸드 소드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쇠망치를 든 우락부락한 거구.

처음 만난 홉 고블린은 장난이었다는 듯이 온몸에서 위압감이 뿜어져 나온다.

고블린들만 상대하던 초보자가 조우하면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얼어붙을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그래, 1회차는 절대 아니라 이거지?”

“크워어어억!!”

입 꼬리를 올리면서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정예병이 포효를 터뜨리면서 내게 도약했다.

카가아아앙!!

내 쾌도와 놈의 장검이 격돌했다. 그 충격이 너무 강렬해서 내 발밑에 방사형 균열이 생길 정도였다.

“크후욱!”

방어 패링에 의해 공격이 막히자 홉 고블린은 주저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묵직한 쇠망치가 내 안면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뻔해!”

너무나 단조로운 패턴이다. 나름 위협적이긴 했지만 공속이 느려서 대처하는 게 너무 쉬웠다.

당연히 나는 사영격으로 망치를 튕겨냈고 놈을 지나치며 빠르게 목을 베었다.

촤아악!

“크허억?!”

뒤늦게 목덜미를 가린 정예병. 허나 놈의 목에선 이미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홉 고블린 이상으로 생명력이 높은 놈이라 이 정도론 죽지 않겠지만 기선 제압엔 성공했다. 놈의 눈에서 당혹감이 번지는 게 보였다.

“왜? 휘두르면 족족 맞아줄 거라 생각했냐? 꿈이 너무 거창한 거 아니야?”

“쿠와아아악!!”

살짝 도발해주니 놈은 금세 이성을 잃었다. 쉽다 쉬워. 체감상 원작 게임에서 잡는 것보다 게임 세계에서 잡는 거 더 편할 정도였다.

정예병은 기본적으론 홉 고블린과 비슷한 스펙을 가지고 있으나 무장이 다른 만큼 상대법은 확연히 다르다.

일단 쌍수 무기를 들고 있기 때문에 우악스러운 손아귀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범한 홉 고블린처럼 패턴 가지고 농락할 수는 없다.

게다가 윈드밀 돌듯이 한 바퀴 돌며 공격하는 스킬도 있어서 돌려 깎기도 안 통한다.

놈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못 맞춰? 눈 감고 때리냐?”

“키 칼루! 키 칼루 크얀바 온 후카아아악!!”

콰과과아앙!!

내가 도발하며 뒤로 물러나자 정예병은 눈이 뒤집힌 채 쫓아왔다.

그에 난 재빨리 종유석 뒤편으로 이동했고 이로 인해 날카로운 종유석들이 정예병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공격은 못 맞춰도 눈은 똑바로 뜨고 다녀야지!”

푸후욱!

“커흐윽……!”

그렇게 이동 경로가 막히자마자 나는 놈을 향해 찌르기를 가했다. 찰나의 틈을 타 차지 공격을 먹이니 정예병의 어깨가 뚫렸다.

“크얀바……!!”

부우우우웅!!

이에 정예병도 장검을 휘둘렀지만 날 맞출 수는 없었다. 찌르기 모션이 끝나마자 뒤로 굴렀기 때문이다.

홉 고블린의 덩치는 동굴에서 활동하기엔 지나치게 크다.

게다가 종유석들로 인해 이동이 제한되는 이곳에선 특히나 더 불리하다. 옆으로 뚱뚱한 체형 때문에 여기저기 몸이 걸리는 것이었다.

물론 놈이 몇 칼질 몇 번 해주면 종유석쯤이야 쉽게 부술 수 있지만 그 짓을 하느라 딜레이가 생긴다는 게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정예병은 안 그래도 안 좋은 추적 능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반면 난 효율적으로 치고 빠질 수 있었다.

‘다른 애들은 잘 하고 있나?’

상황이 너무 잘 풀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경 쓸 겨를이 생겼다.

나는 정예병과 거리를 벌릴 때마다 다나 쪽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작작 좀 나오라고 새끼들아!!”

촤자아아악!

측면에서 달려드는 고블린을 뚫어버린 뒤 곧장 파고들기를 사용한 다나.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가속하더니 후방에 있던 창병을 허공으로 쳐올렸다.

“쿠헤에에엑!!”

질풍 같은 일격에 두 마리의 창병들이 피를 흩뿌리며 반으로 갈라졌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는데 다나의 전투 센스는 나쁘지 않았다.

린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민첩한 움직임을 선보였으며 공격 또한 정교했다.

저 정도 실력이면 금태양과 싸워도 이기지 않을까.

사실 홉 고블린과의 싸움도 인내력 때문에 진 거지, 그녀가 상대법을 알고 있었더라면 아마 훨씬 더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너무 튀어나가는 거 아니야?’

물론 다나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린크와 다르게 그녀는 싸움이 지속될수록 고블린들의 진영 속으로 파고들었다.

너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바람에 장창의 최대 장점인 사거리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었다. 적들을 빨리 처치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러는 듯했다.

하지만 경솔한 행동인 건 변함없었고 곧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됐다.

대책 없이 돌진한 탓에 적의 원거리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고 만 것이다.

“……?! 창쟁이! 위에 좀 봐요!”

“어……?!”

다나가 고블린들을 마구잡이로 찔러죽일 때 경사면 위에서 또 다른 적이 나타났다.

활로 무장한 아처들이었다. 그 수는 무려 다섯. 몸을 숙인 채 대기하고 있던 놈들은 다나가 가까이 다가오자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키키킷!”

“쿠얀 가 지보나!!”

그로 인해 다나는 순식간에 일제사격 당할 위기에 놓였다.

고블린 아처가 명중률이 나쁘다곤 하지만 저 정도 거리에서, 그것도 위에서 쏘면 맞을 수밖에 없으리라.

‘일났네……!’

아무래도 놀고 있을 틈은 없는 듯했다. 나는 달려드는 정예병에게 즉시 섬격을 날렸다.

파지지지직!

“쿠훠억……!”

마침 놈이 공격하고 있던 참이라 반격 효과가 발동했다.

청백색 뇌광과 함께 정예병과 양팔과 목은 깔끔하게 절단됐다. 나는 놈이 죽는 걸 확인하면서 아처들에게 투척 나이프를 던졌다.

“제발 맞아라……!”

아무리 유미가 있다곤 하지만 적은 무려 다섯이다. 유미에게 지네신 같은 주술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놈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도 투척 나이프로 지원했는데, 나와 아처들의 거리는 워낙 멀었다. 여러 마리를 조준할 시간도 없었다.

파박! 티이잉!

“케헥……!”

빠르게 날아간 단검이 아처 한 마리의 눈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허나 다른 나이프는 천장의 종유석에 맞고 튕겨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아처들이 다나에게 집중 사격을 퍼부었다. 물론 다나도, 그리고 유미도 가만히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부탁이야……! 다나를 지켜줘……!”

딸랑!

유미가 무령을 흔들자 그녀의 주위에서부터 검은색 물체가 생겨났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날아가더니 이내 아처 중 한 마리에게 달라붙었다. 대상이 된 아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크헤엑?! 케에에에엑!!”

촤라라라락!!

기괴하게 생긴 검은색 물체가 아처의 몸을 휘감았다. 곧 아처의 몸 곳곳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주술사의 가장 기초적인 딜링 스킬, 원귀의 효과였다.

원귀

액티브

요구 스탯: 신념 13

비용: 마력 15

사용 조건: 주술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주술사 선택 시 기본 스킬로 습득,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3초간 캐스팅한 뒤 적에게 원귀를 날려보낸다. 원귀는 적 하나에게 달라붙어서 시전자의 신념 x2만큼 암흑 피해를 5초 동안 주며 매 피해마다 적의 인내력을 5 감소시킨다. 전방 10미터 이내에 있는 적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상송이 사용한 주술에 비해선 조촐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원귀도 꽤나 훌륭한 주술이다.

지속 딜도 나쁘지 않은데다 인내력이 낮은 적은 5초 동안 홀딩할 수 있으며 인내력이 높은 적이라 해도 빠르게 인내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단점은 사거리가 공격 주문치곤 굉장히 짧다는 거다. 실제로 유미는 스킬을 맞추기 위해서 몇 미터나 달려가야 했다.

그럼에도 유미가 맞출 수 있는 건 오직 한 마리뿐이었다. 이 이상 들어가면 유미도 표적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다나 주위엔 아직 죽지 않은 고블린들도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불길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도깨비불을 안 배운 건가……?’

도깨비불은 주술사의 초기 공격 주문 중 가장 뛰어난 효율을 자랑한다.

범위도 넓고 데미지도 높은데다가 화염 속성 피해까지 준다.

뭐 하나 빼놓을 게 없는 스킬이어서 유미 역시 당연히 찍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행동을 보면 도저히 도깨비불을 익힌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애당초 도깨비불을 배웠으면 이 시점에서 원귀를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새끼들이 진짜……! 크흐윽?!”

내 나이프와 유미의 원귀가 두 마리의 아처를 처리했으나 세 마리는 여전히 건재했다.

다나도 자기 나름대로 잘 피해 보려 노력했지만 지상에 있는 고블린까지 상대하며 연달아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끝자락에 있던 한 마리가 화살을 명중시켰다. 놈의 화살이 다나의 허벅지에 꽂혔고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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