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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01화 (1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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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랭크 모험가 감다키

촤아악!

“크후욱……!”

내가 지근거리에서 검을 휘두르자 홉 고블린이 손을 뻗었다. 눈을 감싸 쥐고 있던 손에 내 검을 막아섰고 놈의 팔에서 붉은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조금 전에 그랬듯이 자신의 특수 능력인 ‘우악스러운 손아귀’를 사용하려는 듯했다.

허나 나는 검방 청년처럼 당해줄 생각이 없다. 놈이 팔을 뻗으려는 순간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대각선 방향을 굴렀다.

“……?!”

“하하! 훼이크다 병신아!”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홉 고블린은 크게 당황했다. 설마 중간에 공격이 끊길 거라곤 예상치 못한 기색이었다.

애초에 난 놈을 앞에서 칠 생각이 없ㅇ?ㅆ다.

우악스러운 손아귀는 적을 붙잡은 뒤 내던져 +50퍼센트의 피해를 주는 잡기 공격이다.

내가 사용하는 기교 스킬처럼 공격받을 때 사용하면 부가 효과를 발동하는데 즉시 해당 공격을 상쇄해버린다.

조금 전 검방 청년의 방패 치기가 막힌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굉장히 성가신 능력이지만 파훼하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아크 데몬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측면으로 후면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촤아악!

“크허어어억!”

대각선으로 회피한 직후 놈의 등을 크게 베었다.

날카로운 사선이 진녹색의 등가죽을 찢어발겼다. 홉 고블린은 피를 뿜어내며 괴성을 질렀고 곧장 등을 돌려 나에게 손을 뻗었다.

“키 칼루! 키 칼루우!!”

죽일 듯이 덤벼드는 고블린이었지만 날 잡기엔 한참이나 부족했다.

이번엔 구르지도 않고 가볍게 스텝을 밟아 회피했다. 놈의 우락부락한 손은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이거 학습 능력이 없구만. 짧은 팔 휘저어댄다고 누가 잡히겠어? 병신이냐?”

“쿠워어어어억!!”

욕설은 언어장벽조차 넘나들 수 있다고 했던가.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홉 고블린이지만 내 욕설 섞인 모욕엔 일일이 반응했다. 나를 향해 휘두른 손과 클럽의 기세가 더욱 매서워졌다.

그래봤자 결과는 같았다.

우악스러운 손아귀는 오직 전방에서 가해지는 공격만 붙잡을 수 있다. 후면이나 측면에서 공격하면 홉 고블린이 플레이어를 추적하려고 빙글빙글 돌게 된다.

그 시점에서 이미 승부는 결정된 거다.

놈은 움직임이 둔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플레이를 추적할 수 없다. 아크 데몬처럼 갑자기 뒤로 돌아서는 패턴도 없어서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샌드백이 된다.

그러한 홉 고블린의 특성을 떠올리며 나는 놈을 시시각각 썰어댔다.

공격이 한 번 가해질 때마다 163의 피해와 함께 피가 온 바닥에 흩뿌려졌다.

연이은 공격에 홉 고블린은 어떻게든 저항해보려 했지만 놈이 할 수 있는 짓이라곤 허공을 휘젓는 것뿐이었다.

“그러게 자기 주제를 잘 알았어야지. 내가 멍 때리고 있을 때 기습했으면 네가 좀 더 유리했잖아. 왜 멍청하게 도발이나 하고 있어?”

“크…… 허억……!!”

공격이 6번을 넘어섰을 무렵, 놈도 경직을 받기 시작했다. 인내력이 0이 되어 더 이상 경직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제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놈의 생명력이 바닥을 향하고 있다.

정면으로 파고든 나는 쾌도의 공격 속도를 살려서 연속 공격을 퍼부었다.

촤자자자자작!!

공격을 붙잡으려던 홉 고블린의 팔이 보기 좋게 썰려나갔다.

저놈은 자신의 능력을 너무 맹신한다. 하나만 믿고 덤비는 적은 손쉬운 사냥감일 뿐이다.

팔을 썰어버린 뒤 그대로 홉 고블린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푸후우우욱!!

“케헥……!!”

치명타 표시와 함께 붉은색으로 표시된 데미지가 놈의 숨통을 끊었다. 나는 거칠게 쾌도를 뽑은 뒤 놈을 발로 걷어찼다.

걸레짝이 된 놈은 추하게 쓰러져 바닥에 피를 흩뿌렸다.여자를 가지고 노는 쓰레기에게 어울리는 최후였다.

“너희 괜찮아? 아직 살아 있어?”

칼에 묻은 피를 털 틈도 없이 난 모험가들에게 달려갔다.

린크라는 이름의 청년도, 다나라는 이름의 창술사도 정말 심한 몰골이었다.

팔다리가 꺾인 다나는 말할 것도 없었고, 린크 역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두 사람 다 아직 숨은 붙어있다는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사실 두 사람의 상태를 보면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을 뿐이지 거의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출혈량도 상당하여 이대로 두면 얼마 못갈 거다. 순간 망설인 나였지만 이내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냈다.

프란체스카가 준 그 포션이다. 붉은색과 녹색 중 전자를 꺼내 두 사람에게 반씩 먹여줬다.

“쿠, 쿨럭……! 쿨럭……! 이, 이건…….”

“생명력 회복 포션이야.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마셔. 나중에 다 갚으라고 할 거니까.”

복용한 양은 같았지만 린크 쪽이 보다 빨리 정신을 차렸다. 파티에서 탱커를 맡을 정도니 태생적으로 생명 스탯이 높은 것이리라.

반면 다나는 별 다른 차도 없었다.

찢어진 상처는 어느 정도 회복됐으나 부러진 뼈는 여전했다. 연신 피를 토하는 걸로 보아 클럽에 맞았을 때 내장을 다친 것 같다.

이건 포션만으론 못 고치겠군. 마음 같아선 넥타르라도 주고 싶었으나 그것은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회복 아이템이라 다나한텐 효과가 없을 거다.

다행히 우리에겐 실력 좋은 힐러가 있다.

응급 처치를 끝낸 나는 나나 쪽을 돌아보았다. 마침 저 멀리 떨어져 있던 그녀도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나나를 부르려던 순간이었다.

“……! 조심하세요……! 옆에!”

유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동료들에게 다가오던 그녀는 무언가를 본 듯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웬 지팡이 든 고블린이 주문을 영창하고 있었다.

고블린의 또 다른 강화 개체, 고블린 샤먼이었다.

“인 카훌라…… 오바크 얀 후, 쿠갈라……!”

“이런 씨……!”

뒤늦게 놈을 발견한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아니, 이제 와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신경 써야할 건 놈이 준비하고 있는 주문이다.

홉 고블린이 신체적으로 발달한 개체라면 샤먼은 지성적으로 발달한 개체다.

놈은 지성 15의 마법사로 취급되며 해당 스탯에 해당되는 주문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모션으로 보건대 놈은 이미 영창을 끝낸 뒤였다. 지금 당장 나이프를 던지더라도 마법은 발동된다.

나는 낭패감을 느끼며 지면을 박찼다. 다음 순간 뼈로 만든 지팡이에서 진녹색 액체가 부채꼴 모양으로 뿜어져 나왔다.

푸화아아악!!

범위 내의 있는 모든 높은 중독 수치를 부여하는 광역 주문. 무려 자신의 지성만큼의 중독 수치를 5번이나 부여하는 정신 나간 스킬이다.

5번 다 맞으면 무려 75라는 중독 수치가 쌓인다. 중독 데미지는 방어를 무시하기 때문에 난 9초도 안 돼서 죽을 수 있다.

허나 나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극물을 맞으면 샤먼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아아아!!”

샤먼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설령 옆으로 구른다 해도 독액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내 뒤에는 뉴비들이 있다. 가뜩이나 사경을 헤매고 있는 그들인데 중독 수치까지 쌓이면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죽을 거다.

그렇기에 난 피할 생각 같은 건 진즉에 접고 공격에 나섰다.

“크룩?!”

위험은 곧 절호의 기회. 갑작스러운 돌진에 샤먼도 꽤 당황한 듯했다.

“얀 후 크투바……! 나즈가 쿨타 운!!”

다급히 주문을 영창하는 샤먼. 놈의 손에 청회색 전류 같은 게 흘렀다.

고블린 샤먼은 맹독 분출을 포함하여 총 세 개의 주문을 사용할 줄 안다.

화염구를 영창했다면 골치 아팠겠지만 놈이 사용한 것은 나머지 하나의 주문이었다.

파직! 파지직!

샤먼이 손을 뻗자 청회색 전류가 내 머리를 향해 뻗어왔다. 순간 눈앞이 어지러운 듯했으나 금세 멀쩡해졌다.

놈이 사용한 마법은 혼란 상태를 부여하는 정신 계열 마법, 정신 붕괴였던 것이다.

“유감이다!”

“케헤엑?!”

서걱!

나를 향해 뻗은 팔을 그대로 썰어버렸다.

졸지에 외팔이가 된 샤먼은 고통을 호소하며 뒷걸음질 쳤다. 상위종이어서 한 방으론 안 죽는 것이었다.

“크할 얀투 즈운카?!”

놈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 보단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째서 정신 붕괴가 통하지 않는 거지? 그런 생각이 표정 위로 드러나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한텐 그런 거 안 통하거든.”

역시 와호를 잡은 건 정답이었다. 놈이 남겨준 부적이 아니었다면 골치 아파질 뻔했다.

하얀 짐승의 부적

와호의 털을 엮어 만든 기이한 부적. 와호를 숭배했던 어떤 주술사가 만들었다. 소지하고 있을 시 정신 계열 상태이상을 무조건 저항한다. 단, 혼령형 적에게 받는 피해가 방어력을 관통하며 빙의에 저항할 수 없게 된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상단에서 휘두른 검이 놈을 반으로 썰었고 샤먼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두 동강났다.

“하아…… 하아…… 치졸한 새끼가 기습이나 하고 말이야. 동료들 다 죽을 때까지 혼자서 뭐한…… 크흐윽!!”

그렇게 샤먼을 썰어버린 직후였다.

“크하아아악……!”

온몸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독액이 닿은 부위에서 타는 것 같은 아픔이 일어난 것이었다.

마치 다쳐서 까진 부위에 팔팔 끓는 소금물을 붓는 듯했다. 확인해보니 실제로 피부가 점점 녹아내리고 있었다.

[중독 상태에 빠졌다. 독이 온몸에 퍼져나가고 있다.]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떴다.

고통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건 중독 수치였다.

총합 75의 중독 수치가 쌓였으니 이대로 가다간 진짜 중독사할 것이다. 눈 코 입에서 무언가가 줄줄 흘러 내렸는데 당연하게도 피였다.

“나나야……! 정화……!!”

위기감을 느낀 내가 급박하게 소리쳤다.

아플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건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다행히 나나는 이미 영창을 거의 끝내둔 참이었다.

“위대한 빛의 창세신이시여, 청렴한 빛으로 부정한 것을 씻어내 주세요!”

다음 순간 밝은 녹색 빛과 함께 청아한 공기가 내 주위에 감돌았다.

살을 태우던 고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고 피눈물도 멎었다. 나나의 정화 법술이 중독 수치를 전부 제거한 것이었다.

“와씨,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나나가 정화를 써줬다곤 하지만 5초 동안 무려 375나 되는 피해를 입었다. 한두 대라도 맞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말도 안 돼…… 홉 고블린이랑 샤먼을 순식간에…….”

린크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는지 다나의 곁을 보살펴주고 있었다.

놀란 건 린크 뿐만이 아니었다. 유미 역시 넋을 잃은 채 날 바라보았다.

한동안 날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용기를 내어 질문을 건넸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어떻게 혼자서 그 많은 고블린들을…….”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지 유미는 얼마 안 가 입을 다물었다.

하긴 고블린들에게도 고전하는 세 사람에겐 내가 보인 활약상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냥 고블린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홉 고블린에 샤먼까지 나왔으니까. 초보자들 입장에선 경심을 느껴질 만하다.

“그냥 너희 같은 모험가야. 위험해보여서 도와준 거고.”

뒤늦게 칼에 묻은 피를 털며 대답했다.

그런 내 대답에 유미는 순간 가슴을 부여잡았다.

앞머리에 가려진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뺨도 살짝 붉어진 것을 보아하니 지금 내 모습이 꽤나 멋있게 보인 모양이다.

유미의 그런 모습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귀여워 미치겠다. 그렇게 귀여운 표정으로 날 대단한 사람 보듯이 보지 말란 말이다. 설렘을 참을 수가 없잖아.

마음 같아선 당장 팬티를 벗어던지고 그녀에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자중하기로 했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다. 원작 게임 같은 짓을 했다간 기껏 보여준 멋있는 모습이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튼 최애캐와의 첫 만남이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유미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내가 끼어들기 전까지 엄청 몰리고 있던데.”

“아……!”

내 질문에 유미는 뒤늦게 자신들의 처지를 자각한 듯했다.

린크도, 다나도 큰 부상을 입었다. 특히나 다나는 생명력 포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녀를 돌아본 유미가 곧 절박한 목소리로 부탁해왔다.

“저는 괜찮아요……! 저보다 동료들이 많이 다쳤어요! 뒤에 계신 분은 사제인 거죠……?! 제발 부탁이에요! 제 동료 좀 살려주세요……!”

싸울 때부터 알아봤는데 유미는 다른 두 사람과 꽤 각별한 관계인 듯했다.

새삼 그들의 관계가 궁금해진 나였으나 그런 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사람이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 꺼낼 주제는 아니니까. 어차피 처음부터 도와줄 생각이기도 했고.

“나나야. 이 친구들 좀 치료해줘. 네가 회복 주문 몇 번 써주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부탁드립니다……! 조금 전부터 숨이 점점 가빠지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

나나를 보며 이야기할 무렵 린크도 힘겹게 걸어와서 간절히 부탁했다.

본인도 엄청 다쳤는데 동료부터 생각하다니. 참 아름다운 동료애구나 싶었다.

허나 그렇게 생각하는 나와 달리 나나는 두 사람의 부탁에 냉담히 반응했다.

“뭔 개소리세요? 내가 너네를 왜 치료해줘야 되는데요?”

“네……?”

“그, 그게 무슨…….”

인상을 구기면서 내뱉듯 말하는 나나. 그에 린크와 유미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나는 담담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우린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댁들 친구도 아니에요. 그런데 왜 이유도 없이 당신네들을 치료해줘야 되는데요?”

“그, 그렇지만 이대로 가다간 제 친구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진짜 위험하다고요……!”

“아니 그건 너네 사정이죠. 개죽음 당하려던 거 다키님이 다치면서까지 도와줬는데, 그것만으로도 과하단 생각은 안 들어요? 다키님이 어떤 꼴이었는지 못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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