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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100화 (1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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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랭크 모험가 감다키

“커헉……!!”

교통사고라도 일어난 것처럼 어마어마한 굉음이 공동 전체를 뒤흔들었다.

공격에 직격당한 여전사는 공중에 붕 떴으며 잠시 후 머리부터 떨어져 몇 번인가 바닥을 굴렀다.

그녀가 굴러간 경로에는 새빨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차에 치이는 것만큼 강한 충격을 받았을 테니 저 정도 상처를 입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나……! 안 돼……!!”

저 멀리 날아가는 여성을 보며 주술사가 소리쳤다. 그녀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외칠 무렵 여전사는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허나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른 그녀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녀가 멈춰선 자리에 피웅덩이가 고였다. 한 번의 공격으로 사람을 피떡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크흐윽……! 하아……! 하아아……!”

다행히 즉사하진 않았는지 여전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클럽에 직격당한 충격으로 팔이며 다리며 성한 곳이 없었다. 골절 상태에 빠졌을 테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거다.

“칼루 후 쿠타…… 키 칼룩크 우 훌 쿠다!”

도망칠 힘도 없어 보이는 여전사에게 다가간 홉 고블린. 놈은 걸어가는 내내 거친 숨을 내쉬면서 몽둥이로 바닥을 마구 찍어댔다. 성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상당히 흥분한 듯했다.

“안 돼……! 하지 마……! 하지 말란 말이야!”

“키헤헤헤헷!”

“쿤타 즈카! 브훌라 카 얀후!”

이를 본 주술사가 처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는 서둘러 즉발 주문을 발사하려 했으나 고블린들이 가만 둘 리가 없었다.

“내, 내 무령……! 돌려줘……!”

“케헤헤! 브훌라 지보나!”

“츄릇, 츄르릅! 야카 아크투 얀후!!”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고블린이 주술사의 무령을 낚아챘다.

근력도, 민첩도 낮은 주술사는 고블린들의 기습에 곧이곧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무령까지 빼앗겼으니 그녀에겐 대항할 수단이 별로 없으리라.

“으아아아아아……!”

그때 벽에 처박혀 있던 청년이 홉 고블린에게 몸을 던졌다.

그대로 놈을 넘어뜨릴 생각인 듯 했으나 이 역시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홉 고블린의 인내력은 60. 대검 같은 대형 무기로 공격하지 않는 이상 눈 하나 깜짝 안 할 수준이다.

전사 청년은 그런 고블린을 그저 방패로만 들이박았다.

검을 찾아올 수 없을 만큼 급박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런 빈약한 공격으론 홉 고블린을 넘어뜨릴 수 없다.

“크르르르르르…….”

“하아, 하아……!”

홉 고블린이 전사를 바라보았다. 순간 위축된 전사였지만 동료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방패를 휘둘렀다.

“다나를 놔줘!!”

후우웅!!

위협적으로 날아든 방패 치기. 하지만 홉 고블린은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마저 가볍게 붙잡았다.

놈의 가장 강력한 특수 능력, 우악스러운 손아귀를 사용한 것이다.

“크하하하핫!!”

“……?!”

고블린의 팔에서 붉은색 빛이 일렁거렸다. 손목을 붙잡힌 청년은 빠져 나오려 안간 힘을 썼지만 홉 고블린의 완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침팬지는 근육 구조가 달라서 인간 보다 월등히 높은 완력을 가졌다고 한다.

홉 고블린도 마찬가지다. 신체 구조부터가 다른 놈을 완력으로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즈후 카 울바, 운칸야 얀그후 쿠다.”

“크하악! 아아악!!”

홉 고블린이 청년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 과정에서 팔을 부러뜨릴 듯 쥐는 바람에 청년은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허나 그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키 칼루!!”

콰아아아앙!!

“컥……!!”

놈은 청년의 몸을 그대로 내다꽂았다.

전력을 다한 메치기에 청년은 머리부터 바닥에 부딪쳤다. 팔 또한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꺾였다.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겠지만 청년은 외마디 비명 밖에 지를 수 없었다. 두 번이나 공격을 허락한 그는 이미 빈사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거 진짜 위험한 거 아니야……?’

전투를 지켜보던 나는 슬슬 위기감을 느꼈다.

초보들이라고 무조건 도와줄 필요는 없기에 가급적 안 나서려 했다.

허나 홉 고블린의 등장으로 얘기가 달라졌다.

전사와 창술사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남은 건 주술사 뿐. 허나 고블린들에게 포위된 터라 그리 오래 버틸 것 같지 않았다.

주술을 쓰지 못하는 주술사가 버텨봤자 얼마나 버티겠는가?

지금 저들을 방치하면 여기서 왜 나왔는지도 모를 홉 고블린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는 건 검방 청년뿐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을 당하겠지.

“크흐흐흐흐흐!!”

“크흐윽……! 아아악……!!”

린크라는 청년을 걷어찬 홉 고블린. 놈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창술사 다나에게 손을 뻗었다.

불현 듯 고블린이 어떤 몬스터인지 떠올랐다.

놈들은 오크 못지않게 성욕이 왕성하고 이는 종족을 가리지 않는다.

홉 고블린의 목적은 다나를 죽이는 게 아니다.

죽을 때까지 능욕한 뒤 그 시체마저 추악하게 가지고 놀 것이다. 저 불쾌하기 그지없는 웃음이 그것을 증명했다.

생판 모르는 남이라도 그런 꼴을 당하게 두는 건 아니지 싶다.

“야! 거기 잼민이 새끼들! 여기 좀 봐라!”

“크륵?”

“키이잇!”

칼을 뽑아든 채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공동 안에 있던 고블린이 일제히 내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다키님……? 뭐하시려구요……?”

나나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지면을 박차며 대답했다.

“뭐하긴, 들박하러 가는 거지.”

타앗!

간결한 대답과 함께 내 몸이 가속한다.

이를 본 고블린들은 한순간 당황하는가 싶더니 내쪽으로 무기를 뻗었다. 내가 적이란 걸 인식한 것이다.

“키에에에엣!!”

“얀카 키 칼루! 아 쿤다!!”

노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고블린 무리. 놈들에겐 자신감이 가득했다.

적은 고작 한 명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엄청 강한 아군도 있다.

그런 우리가 질 리 없다. 저놈도 죽여 버리자. 암컷들이 보는 앞에서 산채로 뜯어먹는 거다.

인간의 언어를 구사한 건 아니지만 놈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고블린들한테도 무시당하다니. 새삼 서러워졌지만 놈들의 뜻대로 될 리는 없다.

“뭐래!”

샤아아!!

달려오는 고블린들을 향해 사영격을 날렸다.

마침 맨 앞에서 달려오는 놈이 내게 직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얄궂게도 청년이 휘두르던 무기였다.

본인들이 쓰던 녹슨 칼보다야 나았지만 그래봤자 고블린이 휘두르는 무기. 너무 느려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채애앵!

서걱!

“케흐으으윽?!”

뱀과 같은 참격이 공격을 튕겨내고 고블린의 목을 베었다. 고블린은 반쯤 썰린 목을 움켜쥔 채 부르르 떨더니 이내 피거품을 물며 절명했다.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면 들지를 말아야지!”

한 놈을 쓰러뜨린 나는 곧장 다른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 덤벼든 놈은 창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사영격으로 대처했다.

“하아압!!”

촤악! 촤악! 촤아악!

고블린들 사이를 오가며 연달아 스킬을 날렸다.

그로 인해 놈들의 목이 잇따라 날아갔고 불과 5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처치했다.

“후우우……!”

순식간에 175의 기력이 빠져나갔다.

명백한 오버 페이스였지만 이걸로 나도, 주술사도 다치지 않았다. 만약 평타로 대처했다면 한 놈이 엄한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 저, 저기……!”

그때 주술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정확히는 말을 더듬으며 우물쭈물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아군인지, 그렇다면 왜 자신을 돕는지 파악하려고 안간 힘을 쓰는 기색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얌전히 있어. 곧 동료들도 구해줄…….”

그렇게 말하며 주술사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어……?”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주술사의 얼굴이 내게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을 본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뭐야…… 얘가 왜 여기 있어……?’

어두워서 착각한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수록 내가 알던 그녀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연보라색 단발을 가진 소극적인 분위기의 여성.

나이는 나나처럼 갓 20살이 된 듯했으며 앳된 분위기가 남아 있다.

눈가를 살짝 가린 앞머리엔 수줍은 매력이 있었으며 바들바들 떠는 몸을 보니 지켜주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그녀를 보며 나는 문득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전에 한 번 말했듯이 가디스 던전에는 동료 시스템이란 것이 있다.

파티 플레이를 권장하는 가던에선 NPC들을 동료로 영입하는 것이 주요 컨텐츠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나 역시 6천 시간 동안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모험을 즐겼었다.

워낙 캐릭터를 잘 뽑는 게임이라 마음에 드는 NPC가 한둘이 아니었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여성은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NPC다.

동시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최애캐기도 하다.

“유미……?”

3인조 파티의 주술사는 내가 원작 게임에서 만났던 동료 NPC였다.

그것도 가장 힘들었던 초회차에서, 맨 처음으로 만나 엔딩까지 함께한 동료인 것이다.

“저, 절 아세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주술사 유미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기다란 앞머리 너머로 자수정 같은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눈물을 흘린 건지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 눈을 보며 나는 뭐라 대답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널 아냐고? 그야 물론이다. 내게 유미는 가디스 던전에서 만난 그 어떤 NPC 보다 뜻깊은 캐릭터인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유미는 가던의 아이돌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인기 높은 캐릭터다.

뛰어난 성능과 귀엽고 예쁜 외모, 거기에 수줍은 성격까지 더해져 수많은 씹덕들을 환호하게 만든 가디스 던전의 선녀.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 사람들도 유미는 알고 있을 정도다. 그런 캐릭터를 고인물인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곳은 게임 세계. 그녀에겐 처음 보자마자 아는 척을 하는 내가 수상쩍어 보일 것이다.

이를 어찌 설명하면 좋을까. 잠시 그런 고민을 한 나였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다시금 고통어린 비명소리가 공동 안에 울려 퍼진 것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콰득! 우드득!

비명 소리를 들은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큰일이다. 유미에게 한 눈이 팔려서 창술사를 신경 쓰지 못했다. 그로 인해 창술사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됐다.

“다, 다나……!”

동료의 모습을 본 유미가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그녀의 눈이 충격과 공포로 뒤덮였다.

그럴 만도 하다. 홉 고블린이 그녀의 사지를 하나하나 부러뜨리고 있었으니까.

“크헤헤헤헤헤!”

“끄하아아아아악!!”

우드드으윽!!

그러는 동안에도 홉 고블린은 계속해서 다나의 다리를 꺾었다. 작정하고 힘을 준 건지 부러진 뼈가 피부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 새끼가……?”

패악하기 그지없는 광경에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이 와중에 팔다리를 꺾는 이유는 자명하다. 나와 싸우는 사이에 다나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손을 써두는 것이리라.

허나 홉 고블린은 비단 그런 이유로 다나에게 고통을 준 것이 아니었다.

놈의 시선은 줄곧 날 향하고 있었다. 이건 일종의 유흥이다.

저놈은 자신의 변태 같은 이상성욕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날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작작 좀 해라 새끼야!!”

애당초 살려둘 생각 없었지만 여자애를 괴롭혀 가며 도발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느덧 나는 벨트 주머니에서 투척용 나이프를 꺼내 던지고 있었다.

노린 곳은 당연히 놈의 얼굴이다. 실실 쪼개고 있는 얼굴을 다른 의미로 쪼개 버리기 위해 온힘을 다해 던졌다.

휘이익!

푸후우우욱!!

“……?! 쿠워어어어억!!”

바람을 찢으며 날아간 나이프가 정확히 명중했다.

칼날이 박힌 부위는 다름 아닌 눈동자. 날카로운 고통이 안구 속으로 파고들자 홉 고블린은 비명을 내지르며 발악했다.

“크허어어억! 크오오오오오오!!”

놈은 공격에 당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기색이었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월등하다 해도 고블린은 고블린인 모양이다. 동료들이 다 죽은 와중에 대놓고 도발하는 것부터가 글러먹었다.

“하아, 하아……! 흐으윽……!!”

놈이 눈가를 감싸 쥐며 몸부림치자 창술사도 자연스레 풀려나게 됐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놈이 오른손에 쥔 클럽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가만 두면 창술사가 눈 먼 공격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다시금 투척 나이프를 던지면서 놈에게 달려갔다.

“아직 덜 아프다 이거지!”

쐐애액! 푸후욱!!

“쿠아아아악!!”

이번에도 내 나이프는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데미지가 변변찮다 보니 즉사시킬 수는 없었지만 놈은 순간 경직당하며 애꿎은 바닥만 후려쳤다.

투척용 나이프는 적의 급소를 정확하게 맞췄을 때 추가 효과를 발동한다.

50이던 피해량이 150으로 뻥튀기 될 뿐 아니라 적의 인내력을 무시하고 경직까지 준다.

인내력이 60이나 되는 홉 고블린이 저렇게 괴로워하는 것도 전부 이 효과 덕분이다.

맞추는 게 영 까다롭긴 하지만 원작 게임에서 숙달한 투척 기술은 내 몸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 사실에 만족하며 홉 고블린에게 검을 휘둘렀다.

“쯔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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