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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랭크 모험가 감다키
푸화아아악!!
내가 가볍게 검격을 날리자 두 마리의 고블린은 일제히 쓰러졌다. 정확히는 상체가 먼저 바닥에 떨어졌고 하체는 몇 걸음인가 걷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키힛! 키히잇!”
“클후 타! 울루 크챠!!”
내가 세 마리를 처치하고 있을 무렵 찬광에 맞은 세 놈이 기절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놈들은 몇 번인가 눈을 깜빡이더니 곧 나나를 발견했다. 측면으로 빠진 나와 다르게 나나는 계속 자리를 지켜서 고블린들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온 것이었다.
“키히힛! 니주 카 브훌라!!”
“쿤타 지보나, 인카 얀후 바!!”
고블린들의 언어는 모르지만 저 말이 성희롱이란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놈들의 얼굴에서 추잡한 욕망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혀를 길게 내민 채 헐떡이던 고블린 무리는 곧 역겨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나나에게 달려들었다.
“크히히히히히힛!!”
“쿤타아! 브훌라 카 얀후!!”
치안이 안 좋은 국가에선 잼민이들도 강력 범죄를 저지른다던데, 지금 고블린들의 모습은 그런 사악한 잼민이들 같았다.
태생부터 잘못된 잼민이들이 성욕에 찌들어 여성을 겁탈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히, 히익!”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에 나나가 비명을 질렀다. 한순간 위축된 그녀였으나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달려오는 고블린들을 보며 반사적으로 거부를 발동한 것이었다.
“오지 마 좆병신들아!!”
콰아아아앙!!
“케헤엑……!”
“크헤에에엑!!”
나나를 기점으로 강력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무작정 돌진하던 고블린들은 여지없이 이에 휘말렸고 곧 허공에 붕 떠올랐다.
놈들의 인내력이 너무 낮은 나머지 넉백만으론 끝나지 않았다.
운이 좋은 놈은 그냥 저 멀리 날아갔지만 어떤 놈은 벽에 머리부터 부딪쳤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면에 피가 튀었다.
이게 바로 거부의 진가라고 할 수 있다.
개활지에서 사용하면 그저 적을 밀쳐내는 용도로 밖에 쓸 수 없지만 동굴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면 벽에 부딪치게 하여 데미지를 줄 수 있다.
비록 높은 데미지를 기대하진 못하나 생명력이 110 밖에 안 되는 고블린들에겐 그마저도 치명적이리라.
“잘 했어 나나야! 이제 뒤로 빠져!”
“네 다키님!”
훌륭하게 대응하는 나나를 칭찬하며 고블린들을 잇따라 베어 넘겼다.
날아가는 적을 베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상송의 망토 덕분에 강화된 민첩성을 살려 종횡무진 이동하며 참격을 가했다.
서걱! 서거억!
푸화아아악!
고블린들의 몸이 연이어 잘려나갔다. 목을 노린 깔끔한 공격에 두 마리의 고블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공중 분해됐다.
“마무리!”
퍼어어어억!!
“케흐으으윽!!”
그렇게 두 놈을 해치운 나는 벽에 부딪친 놈에게 달려가 싸커킥을 날렸다.
축구공을 차듯이 고블린의 머리통을 걷어차자 턱뼈가 머리에서 분리되고 두개골이 박살났다. 놈은 곧 깨진 두개골 사이로 피떡이 된 뇌를 쏟아내며 절명했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내 신체 능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고블린이 약하다곤 하지만 고작 발차기 한 번으로 골통을 부수다니. 그야말로 인간병기 아닌가.
“다 잡았나?”
마지막 고블린의 죽음을 확인한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아 움직이는 놈은 없었다. 다들 목이 날아가거나 머리통이 반으로 잘려서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찬광으로 환해졌던 동굴도 다시 어둑어둑해졌다. 나나가 밝힌 신성한 빛만이 주위를 비춰주고 있었다.
“이번에 거부 타이밍 진짜 좋았어. 나아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
쾌도를 칼집에 집어넣으면서 나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나에겐 정말 재능이 있는 건지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됐다.
당장 트롤 슬레이어들하고 싸울 때도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고블린들의 공격에도 훌륭히 대처하니 보는 내가 다 뿌듯했다.
그런 심정으로 칭찬을 건넸지만 나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귀를 감싼 채 불쾌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다친 데는 없는데 귀갱을 존나 세게 당했어요……! 쟤들 진짜 뭐하는 새끼들이에요?! 살아생전 저런 좆같은 목소리는 처음 들어봐요!”
“으, 응? 글쎄…… 몬스터가 기분 나쁜 소리 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거의 테러 수준이란 말이에요! 흐이잉……! 존나 기분 나빠요……!”
아무래도 나나는 고블린들의 목소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원작 게임에서도 고블린들은 목소리가 거슬리기로 악명 높았다.
오죽하면 고블린 구간에선 사운드를 끄고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있을 지경이다. 청각이 좋은 나나는 그 부분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을 거다.
“쟤들 목소리 듣기 싫은 건 사실인데 듣다 보면 좀 익숙해질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거의 패닉 상태에 접어든 나나를 조심스럽게 격려했다. 하지만 나나는 위안을 얻기는커녕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면서 반론할 뿐이었다.
“절대 그럴 리 없어요! 저런 개좆같은 목소리가 어떻게 익숙해지겠어요?! 얼른 힐링하지 않으면 귀가 썩어버릴 것 같다구요!”
거기까지 말한 나나가 내게 간절한 시선을 보내왔다. 이와 마주한 순간 난 나나의 속내를 직감할 수 있었다.
“혹시 그 힐링이라는 거…… 나로 하는 거야?”
끄덕, 끄덕, 끄덕1
내 예감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질문 받은 나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의 뾰족한 귀를 톡톡 치면서 말한다.
“다키님이 도와주시면 좀 괜찮아질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부탁드릴게요…….”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아이잉……! 엘프녀가 귀 내밀면서 뭐 해달라고 하면 당연히 그거죠, 그거!”
그거라니. 순간 고개를 갸웃거린 나였지만 나나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나 역시 아다단 중 한 명, 그런 그녀가 원하는 건 결코 정상적인 것은 아닐 거다. 나도, 그녀도 서브컬처를 사랑하는 씹덕이란 점까지 감안하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나보고 네 귀 빨아달라고……?”
“네헹~”
이번에도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나나는 요망한 미소를 지으면서 날 올려다봤다. 그녀의 입가에서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온다. 벌써부터 나에게 귀를 빨릴 생각에 흥분한 것이리라.
엘프가 등장하는 야애니나 망가를 본 사람들은 알 거다. 열이면 아홉 떡씬에서 엘프 히로인의 귀를 쪼옥쪼옥 빨아주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는 몰라도 꼭 이런 장르의 엘프들은 귀가 성감대란 기이한 설정을 달고 나온다.
이는 가디스 던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메인 스토리에서 나오는 엘프 여왕님도 공략하다 보면 그런 이벤트씬을 보여준다. 가디스 던전에서 엘프 귀가 성감대인 건 여왕님이 공인한 국룰인 것이다.
“……정말 그거면 괜찮아지는 거지?”
“물론이죠~ 다키님이 질척하고 야하게 빨아주면 저 좆같은 새끼들 목소리에 몇 시간 정도는 면역이 생길 거예요!”
대체 무슨 논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나에겐 귀를 빨아주는 게 큰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솔직히 나도 그녀의 성감대를 빤다는 생각에 여러모로 흥분됐다.
처음엔 좀 당황했으나 나 역시 엘프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오따꾸 중 한 명이다. 금발의 엘프녀가 자진해서 귀를 빨아 달라 하는데 싫을 리가 없다.
“여기서 해주긴 뭐하니까 좀 더 들어가서 갈까? 가다보면 안전한 장소가 나올 거야.”
곧장 그녀를 껴안고 귀를 핥으려 했지만 뒤늦게 주위의 상황을 깨닫고 생각을 바꿨다.
우리의 곁에는 방금 전에 죽은 고블린들이 그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짙은 피 냄새와 고블린 특유의 역겨운 체취가 공기 속에 섞여 있다.
도저히 커플끼리 음란한 시간을 가질 장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흠흠! 확실히 고블린 시체가 널브러진 곳에서 받으면 효과가 반감될 것 같네요! 그렇게 해요!”
나나도 내 의견에 적극 찬성했다. 이게 다 고블린들 때문인데 고블린들 시체를 보면서 애무 받고 싶지는 않겠지.
그리하여 우리는 시체들을 지나 안전지대를 찾기로 했다.
동굴 안쪽으로 진입하기 전 나는 다용도 단검을 꺼내 고블린들의 귀를 잘랐다.
고블린 귀 한 쌍 당 500아웬이다. 나나의 예쁜 귀와 달리 생긴 것도, 위생 상태도 끔찍해서 별로 만지고 싶지 않았지만 수입을 위해 챙겨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고블린의 귀를 자른 나는 그것을 나나가 든 가방 안에 집어넣는다. 해체 작업을 도운 나나는 표정을 확 구기면서 중얼거렸다.
“으으으…… 씹극혐…….”
사람이 토막 나는 광경을 보고도 멀쩡하던 애가 이렇게까지 질색하다니. 정말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었다. 고블린들 생긴 걸 보면 충분히 이해되긴 했다.
귀를 자르고 달리 쓸 만한 게 있나 살펴봤는데 역시나 고블린은 고블린이었다.
놈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는 전부 녹슬거나 부러진 것이었으며 활이나 바람총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폐품으로 팔아도 10아웬은 나올까 싶었다.
‘샤먼이 섞여 있었다면 그나마 좀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잡은 고블린은 일반 고블린과 아처들. 전부 무리에서도 말단에 해당하는 놈들이기에 사실 이런 놈들에게 좋은 템이 나오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진짜 좋은 템을 떨구는 건 역시 이들의 지도자격인 샤먼이다.
놈들이 들고 있는 지팡이는 비록 고블린이 만든 거긴 하지만 엄연히 마도구이기 때문에 꽤 비싸게 팔린다. 설정상으론 마법사들이 연구용이나 마력 추출용으로 쓴다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아주 낮은 확률로 희귀 아이템을 떨구기도 한다.
와호의 부적처럼 내성을 부여하는 아이템인데, 솔직히 이건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드랍률이 너무 낮아서 나도 6천 시간 동안 몇 번 못 먹어본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블린 여섯 마리를 모두 파밍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남쪽 동굴은 상당히 규모가 큰 동굴이었다.
천장이 매우 높고 곳곳에는 바위나 종유석 등으로 뒤덮여 있다. 마치 툼레이더 같은 곳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 동굴인 것이다.
[찌지지지지직!!]
빛을 비추면서 걸어가자 놀란 박쥐들이 일제히 날갯짓 했다. 그 광경을 본 나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감탄했다.
“와아, 박쥐 날아다니는 건 처음 봐요! 멋있어~”
다른 사람이라면 깜짝 놀랐을 텐데 나나는 오히려 발랄하게 웃으면서 좋아했다. 그에 나도 웃음기를 담아 이야기했다.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박쥐도 울음소리 시끄럽잖아.”
“에이, 시끄러운 거랑 좆같은 건 다르죠. 게다가 박쥐들이 나오니까 진짜 던전 탐험하는 맛도 나잖아요!”
나나 말도 맞았다. 어두침침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저런 연출이 나오니 모험이 좀 더 흥미진진해졌다. 어릴 때 난생 처음으로 놀이기구를 탈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썩 즐거운 기분으로 이동하길 잠시, 나는 벽면에서 통로 하나를 발견했다.
뻥 뚫려 있는 다른 통로보단 훨씬 작았다. 내가 그곳으로 들어가자 나나가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여기가 그 안전지대예요?”
“응, 이 안으로 들어가면 몹들이 못 쫓아와. 나나 너도 얼른 들어와.”
그렇게 말하며 좀 더 앞으로 나아가자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왔다.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빛이 새어들어 꽤나 환했으며 그 한 가운데에는 반쯤 부서진 여신상과 제단이 놓여 있었다.
“앗! 폐허에서 봤던 여신상이네요! 이 여신님이 지켜주는 거예요?”
“맞아, 여신상에는 몬스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결계 기능이 있어. 내가 활성화를 시켜야만 발동되지만.”
기억을 되짚으며 묻는 나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제단에 왼손을 올려서 활성화를 시도했다.
파아앗!
내 왼손과 제단의 표면이 닿자 손등에 새겨진 태양 문양이 환하게 빛났다.
그것은 곧 내 손으로부터 퍼져나가 제단을 푸른색으로 물들였다. 곧 여신상에도 같은 색의 빛줄기가 감돌았다.
여명의 투사의 힘으로 여신상을 활성화한 것이다.
어떤 여신상이든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여명의 투사의 힘이 필요하다.
설령 다른 모험가들이 이곳을 발견했었더라도 그들 눈엔 부서진 여신상만 덩그러니 놓인 허전한 공간으로 보였을 것이다. 몬스터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결계 역시 발동되지 않았으리라.
“히야, 이러니까 뭔가 다키님만을 위한 공간 같네요!”
“뭐, 틀린 말도 아니야. 애당초 여신상이나 성소 관련 NPC들은 전부 여명의 투사를 위해 존재하니까.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투사가 나밖에 없으니 사실상 전매특허인 거지.”
나나에게 설명해주면서 바닥에 쌓인 흙먼지를 털어냈다. 딱히 앉을 자리라 할 만한 곳은 없었지만 흙만 좀 털어내도 휴식공간으로써 나쁘지 않았다.
“헤헤헤…… 어쨌든 지금은 저희 둘만의 공간이 됐네요.”
내 옆에 앉으면서 나나가 어깨를 맞대왔다. 거리가 가까워져서 그녀의 풍만한 가슴도 내 팔에 닿았다. 나나 특유의 복숭아 향까지 풍겨와 흥분감이 더해졌다.
“그, 그렇지…… 그러면 바로 시작할까?”
내가 질문을 건네자 나나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단정하게 옆머리를 쓸어넘기면서 이야기했다.
“네 다키님, 잔뜩 빨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