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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랭크 모험가 감다키
그 후로 우리는 모험가로서 지켜야할 수칙이나 길드 규정들을 들었다.
이번에도 특별한 건 없었다.
의뢰 완수를 통해 받는 보상금은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이라든지, 파티를 맺고 활동할 때는 길드에 멤버 목록을 고지해야 한다든지 같은 내용만 주구장창 들을 뿐이었다.
그 중 파티 멤버를 길드에 알려야하는 이유는 보상 분배 때 분쟁을 최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듣자하니 의뢰금의 분배는 길드에서 맡아주는 모양이다. 모험가들이 자체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분쟁의 온상이 될 수 있기에 아예 규정을 정해놨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길드는 범국가적 조직이기에 한 곳에서 등록하면 다른 곳에서도 모험가 자격을 인정받는다거나, 모험가 증패는 신분증 대신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등 여러 규정들이 있었다.
등록할 땐 신분증 검사를 안 하면서 등록한 후에 받은 증패는 신분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했지만 판타지 세계니까 그러려니 했다. 애당초 신분증이란 것도 세금 떼어먹기 위한 수단에 그치는 듯했으니까.
그렇게 규정들을 하나하나 새겨듣고 있을 때 세이나가 유독 한 부분을 강조했다. 다름 아닌 분쟁 관련 규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험가들은 결코 사람을 해쳐선 안 됩니다. 민간인은 물론 같은 모험가끼리의 분쟁 또한 용납되지 않아요. 살인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면 즉시 자격을 박탈당하고 수배가 올라가게 될 겁니다.”
“수배가 되면 어떻게 되나요?”
“보통 경비대에게 연행되지만 경우에 따라선 몬스터랑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으며 사냥당하죠. 모험가들 중에선 그런 범죄자들만 잡는 사냥꾼도 있을 정도예요.”
요컨대 살인도 폭행도 절대 금지. 사상자가 나오는 순간 모험가 생활은 물론 인생까지 종칠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칼부림해선 안 된다며 세이나는 재차 경고했다.
새삼 면죄부를 쓰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금태양을 죽인 뒤 경비대에게 잡혀갔다면 좋은 꼴은 보지 못했으리라. 그대로 도망쳤다면 후환이 더 안 좋았겠지.
다음부터는 조심하자고 생각하며 다시 세이나의 말에 집중했다.
“경범죄 역시 그 정도에 따라서 강도 높은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특정 기간 동안 모험가 자격 정지부터 강등, 도시와의 협의 하에 추방 선언까지 가능하죠. 그러니 어떠한 경우에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세이나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걸 보면 모험가들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확실히 모험가들은 위험한 족속들이다. 일반인들 보다 무력도 뛰어나고 항상 무장한 채로 다니며 수틀리면 사람 하나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그런 모험가들이니 길드에서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이리라. 모험가 길드는 모험가를 서포트 하는 영리 조직임과 동시에 그들을 통제하는 고삐이기도 한 것이다.
“제가 말씀드릴 건 여기까지예요. 질문 있으신 분?”
이야기를 마친 세이나가 나와 나나를 차례대로 보며 물었다.
규정과 관련해선 특별히 궁금한 게 없었다. 등록 절차도 끝난 것 같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모험가 활동을 시작해도 되지 않나 싶다.
그렇기에 나는 줄곧 생각해왔던 의뢰에 관해 넌지시 질문했다.
“의뢰 관련 질문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여러분은 지금 당장이라도 퀘스트를 수행하실 수 있습니다. 첫 퀘스트니 통과의례가 되겠네요. 원하시는 종류의 퀘스트라도 있나요?”
“네, 아무래도 처음이니 고블린 같은 약한 몬스터를 잡아볼까 하는데 괜찮은 게 없을까요?”
퀘스트 내용이 게임과 다르지 않다면 아마 남쪽 동굴에 관한 퀘스트가 하나 있을 거다.
내 말을 들은 세이나는 한 차례 눈을 깜빡인다.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예상대로인 듯했다. 하지만 세이나의 눈빛에는 곧 걱정스러운 심정이 담겼다.
“고블린…… 모험가님 말대로 약한 몬스터긴 하죠. 하지만 아무리 약한 고블린이라도 몬스터는 몬스터예요. 지금 모험가님의 상태로는 조금 위험하지 않을지…….”
세이나가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일단 신의를 걸치긴 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내가 영락없는 반라로 보일 것이다. 하물며 가디스 던전의 고블린은 잡몹 중에서도 꽤 센 편에 속하니 우려할 수밖에 없으리라.
“에이, 그래봤자 고블린이잖아요! 저희가 그 정도도 못 잡을 것 같아요?”
세이나의 만류에 나나가 분개했다. 가디스 던전에 대한 기억이 없는 그녀는 고블린의 악랄함을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저리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고블린은 결코 만만한 적이 아니에요. 한두 마리만 있을 땐 약하지만 여러 마리가 뭉치면 오크나 리자드맨 못지않게 위험하죠. 어느 몬스터보다도 희생자를 많이 내는 몬스터기도 하고요.”
세이나 말대로 고블린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별 볼 일 없는 잡몹이지만 여러 마리가 뭉치면 무척이나 강력한 몬스터다.
고블린들이 위험한 이유는 뛰어난 조직성 때문이다.
무리가 몰락하지 않는 이상 놈들은 절대 혼자 다니지 않으며 놀들 이상으로 체계적인 역할 분담을 한다.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탱커, 근딜, 원딜로 포지션을 나눈 뒤 마치 레이드하듯 모험가를 사냥하는 것이다.
지성도 어린아이 정도는 되니 위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초보자들을 가장 많이 죽이는 몬스터가 고블린이란 통계도 있을 정도다.
“무슨 고블린 슬레이어도 아니고…….”
설명을 들은 나나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블린이 강하게 묘사되는 매체 보단 약하게 묘사되는 매체가 많으니 고블린이 강한 몬스터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런 나나를 보면서 세이나는 가져온 자료 중 몇 가지를 꺼내며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코볼트나 큰 쥐들을 잡으면서 경험을 쌓는 게 좋아요. 보상은 크지 않지만 아직 미숙한 여러분들에겐 이 정도가 적당하겠죠.”
“이잇! 아무리 그래도 쥐새끼나 잡는 건 아니죠! 저희 다키님은 커다란 놀들도 단칼에 썰고 다녔어요! 그런 분 보고 세슷코 노릇이나 하라뇨!”
세이나가 내민 의뢰서를 보며 나나가 불만스럽게 얘기했다. 그녀의 반박을 들은 세이나는 순간 놀라면서 되물었다.
“놀이라고요……? 방금 놀이라고 하셨나요?”
“그래요! 다키님은 혼자서 놀 수십 마리도 학살한 진짜 괴물이라구요! 어지간한 모험가들하고는 급이 다르다 이거예요!”
나나의 말을 듣고 세이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은 곧 나를 향했고 나는 가방에서 놀들의 이코르를 꺼내 세이나에게 보여줬다.
“낙오된 무리였을 뿐이지만 나나가 한 말은 사실이에요. 그러니 고블린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예요.”
“……! 이, 이건 놀의 이코르잖아요……? 마력량도 엄청 높아 보이는데…… 어떻게 초보 모험가가 이런 걸…….”
이를 알아본 세이나가 화들짝 놀라며 이코르를 살폈다. 접수원 중에서도 높은 직급이라 그런지 그녀는 그것이 놀의 이코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봤다.
이코르를 콕콕 눌러보고 뚫어져라 보기도 한 그녀는 다시 한 번 내 차림새를 살폈다.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물증까지 받은 마당이어서 부정할 수 없는 듯했다.
“……확실히 여러분은 평범한 초보 모험가가 아닌 모양이네요……. 좋습니다. 마침 만족하실 만한 의뢰가 있던 참이었어요.”
그녀는 이내 서류 한 장을 내밀며 퀘스트에 관해 설명했다.
의뢰 내용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최근 들어 도시 인근에서 고블린의 목격담이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를 추적해보니 남쪽 숲 어느 동굴에 대규모의 고블린 무리가 터를 잡은 것이 확인됐다.
무리를 이루는 고블린의 수는 어림잡아도 50 이상. 고블린들은 번식력이 좋기 때문에 이대로 방치했다간 금세 100마리를 넘길 것이다.
지금이야 마을 인근에서 가축이나 작물을 훔쳐가는 것에 그치지만 100마리를 달성하는 순간 수많은 인명 피해가 벌어지리라.
“이를 파악한 율리아나 행정부에서 대규모 토벌 공고를 올렸어요. 누구든 남쪽 동굴의 고블린들을 토벌하면 처치한 고블린 한 마리당 500아웬을 지급하겠다는 거죠.”
“500……!”
세이나의 말을 듣고 나나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한 마리당 500아웬이면 다 해서 25000아웬이잖아요! 고블린 잡고 그 정도면 완전 거저네!”
25000아웬이면 원화로 약 250만원. 확실히 괜찮은 보수다. 저 정도 돈만 벌어도 당분간 생활하는 데에는 문제없으리라.
“여러분이 50마리를 온전히 잡을 수는 없겠지만요. 말씀드렸듯이 이번 퀘스트는 대규모 토벌입니다. 여러분 외의 다른 모험가들도 참가한다는 거죠. 이미 남쪽 동굴로 출발한 인원들도 꽤 되고요.”
“앗…… 그러면 한 마리도 못 잡고 빈털터리로 올 수도 있다는 거네요?”
“맞아요. 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게 줄어듭니다. 그 많은 고블린을 여러분끼리만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니까요.”
세이나의 대답에 나나는 다리를 꼬면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예요~! 허탕만 칠 수 있는 의뢰라니 이럴 거면 그냥 쥐새끼 잡고 말지. 진짜 이걸로 할 거예요 다키님?”
“뭐, 반대로 생각하면 꼭 허탕 칠 거란 보장도 없으니까. 경험 삼아서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나나의 말에 대답하면서 나는 은근슬쩍 그녀의 허벅지를 만졌다.
물론 사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기 위해서였다. 내가 적당히 ‘메인’이라고 적어주니 나나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으흠, 그것도 그러네요! 고블린이야 저희가 남들보다 더 많이 잡으면 되죠!”
“그러면 이 퀘스트로 수주해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세이나에게 대답하면서 남쪽 동굴에 대해 상기했다.
그 동굴 끝자락에는 다음 던전 진행에 꼭 필요한 아이템이 있다.
내가 다른 루트를 선택한다면 모를까 마신의 힘을 얻은 이상 고블린 소굴에서 나오는 아이템은 반드시 얻을 필요가 있다.
고작 칠흑검 정도의 모험가를 강자 취급해주는 걸 보면 던전 끝자락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블린의 목은 다른 사람들에게 좀 넘겨줘도 내가 원하는 보상은 뺏기는 일이 없겠지.
“다시 한 번 확인해드릴게요. 두 분은 남쪽 동굴의 대규모 고블린 토벌 의뢰에 참가하시는 겁니다. 참가자는 감다키와 나나, 이렇게 두 분. 고블린을 처치한 후에 귀를 잘라 가져오시면 한 쌍 당 500아웬을 보수로 드리죠.”
퀘스트 내용을 되짚은 뒤 세이나는 한 가지 더 덧붙였다.
“참고로 고블린들은 독을 이용한 공격을 자주해요. 놈들의 무기에는 항상 독이 발라져 있고 우두머리 격인 샤먼 또한 독 마법을 쓰죠. 그러니 해독제를 꼭 챙겨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흐흥, 걱정 마세요. 인간 해독제인 제가 있으니까요!”
세이나의 조언에 나나가 자신 있게 가슴을 폈다. 이번에 새로 배운 스킬, 정화를 떠올린 것이리라.
정화
액티브
요구 스탯: 신념 15
비용: 마력 20
사용 조건: 법술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3초간 캐스팅한 뒤 아군 1명의 중독, 부상, 낙인을 전부 치료한다. 반경 10미터 이내에 있는 아군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아이템을 대상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오염되거나 저주받은 물건을 청결하고 무해한 것으로 바꾼다.
이 스킬만 있어도 고블린들의 중독 공격을 전부 상쇄할 수 있다.
중독은 방치할 경우 게임을 터뜨릴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상태 이상이지만 정화 스킬을 가진 사제가 있으면 전혀 위협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군요. 나나님이 정화를 배우셨다면 독 공격은 문제없겠어요. 하지만 주의할 건 독 뿐만이 아니에요. 고블린의 매복 공격은 초보자들에게 특히나 더 위험한데…….”
“…….”
나나의 능력을 확인하고도 세이나는 조언은 끝나지 않았다.
뭐랄까. 베로니카가 왜 그녀를 어려워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녀의 입에선 온갖 조언과 경고들이 튀어나왔고 이는 15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렇게 고블린의 생태와 대변 구별법까지 자세하게 듣고 나서야 우리는 접대실을 나올 수 있었다.
“저 언니…… 친구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너무 그러진 마. 다 우리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잖아.”
벌써부터 피곤해하는 나나를 독려하면서 우리는 홀로 돌아왔다.
이미 세이나의 조언으로 시간을 많이 낭비했기에 한 시라도 빨리 출발하고 싶었지만 먼저 준비물을 구하기로 했다.
“나나야 가기 전에 쇼핑 좀 하고 가자.”
“쇼핑이요?”
“응, 2층에 잡화점이 있는데 거기서 템도 좀 팔고, 보급품도 구하려고.”
나나에게 설명하면서 나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건물이 크다 보니 길드 지부에는 대장간이나 잡화점 같은 상점들도 딸려 있었다.
이런저런 물품들을 구하려면 남쪽 메인 스트리트를 이용하는 게 더 좋지만 기본적인 모험 도구들은 여기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동에 필요한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 다른 모험가들도 애용하는 듯했다. 2층에 올라와 보니 1층 못지않게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곧장 잡화점으로 향했다. 2층은 쇼핑몰과 비슷한 구조라서 딱히 가게와 가게 사이를 구분하는 벽 같은 게 없었다.
물건을 올려둘 진열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주위에 칸막이 같은 게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무로 된 칸막이를 지나 잡화점에 들어가 직원을 찾았다. 조금 둘러보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