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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91화 (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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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랭크 모험가 감다키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접수원. 그녀는 몇 가지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나나도 창구에서 벗어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부럽다 베로니카…… 저렇게 멋있는 모험가가 걸리고…….”

“등 근육 좀 봐……! 피부도 엄청 새하얀 게 조각상 같아……!”

“등록 절차 맡았으니까 앞으로 계속 베로니카가 서포트하겠지……? 좋겠다아아…….”

창구 옆에 있는 복도로 들어갈 무렵 뒤쪽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아하니 다른 접수원들 같았다. 계속해서 언급되는 멋있는 모험가는 정황상 날 지칭하는 듯했다.

남자들이 멸시와 모욕을 던질 때는 참 불편하지만 여성들의 호감을 한 몸에 받으니 이런 몰골로 다니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듯했다.

아니, 비단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 좋았다.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다들 내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얼굴을 붉히는데 좋지 않을 리가 없다.

당장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금발의 접수원도 그렇다.

그녀는 복도를 걷는 동안 시종일관 내 쪽으로 눈을 흘겼다. 가슴이며 복근, 하체 등을 훔쳐보는 것이었다.

유명 배우나 아이돌이 이런 기분으로 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심 행복해할 때였다.

“거기, 잠깐만요.”

맞은편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목소리가 나온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여성이 서 있었다.

양갈래로 묶어 내린 적갈색 장발과 잘 익은 밤처럼 진한 갈색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외모의 여성이었다.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그녀는 중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아담했다.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150 언저리인 듯 했으며 마른 체형이라 그런지 더 작아보였다.

이러한 특징들이 다소 날카로운 눈매와 어우러지자 학원물에서 나오는 깐깐한 후배를 보는 듯했다. 그 왜 꼭 러브코미디에서 한 명씩 나오는 선도부 캐릭터 있지 않은가.

그런 여성이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접수원은 화들짝 놀라더니 몇 번인가 말을 더듬으며 얘기했다.

“세, 세이나 사무장님……?”

“사무장이라고……?”

접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을 따라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까 아담한 여성 역시 접수원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내 옆에 있는 접수원, 베로니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가슴께에 화려한 배지를 차고 있다는 것이었다.

척 봐도 상급자의 증표 같았다. 생긴 거하곤 다르게 길드 직원 중에서 꽤 높은 직급인 듯하다. 그녀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베로니카 씨는 고개도 못 들었다.

허나 세이나는 베로니카에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온전히 내 쪽으로 향해 있었고 내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쭈욱 훑은 다음에야 베로니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근무지에 남창을 데려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죠, 베로니카?”

“나, 남창이요……?”

베로니카가 다시금 놀랐다. 순간 할 말을 잃은 그녀였으나 곧 손사래를 치면서 부정했다.

“오, 오해예요! 이분은 엄연히 모험가님이세요. 아직 등급은 받지 않았지만 지금부터 등록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습니다……!”

“모험가라고요……? 이런 사람이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되묻는 세이나 사무장. 그에 베로니카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한순간 정적이 지나고 나서야 세이나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등록제도가 자유로워도 그렇지 남창을 받아주면 어떡합니까? 이런 사람이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어요? 최소한 멀쩡한 사람을 받아야죠.”

아무래도 세이나는 내가 남창이란 인식을 버리지 못하는 듯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팬티 한 장만 입고 돌아다닐 만한 남자는 창남 아니면 거지 밖에 없다. 그런 이상한 놈을 모험가 만들겠답시고 안내하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지금까지 만나온 여성들이 이상한 거지 세이나는 지극히 정상이다. 아니, 반대로 생각하면 검은 산양의 뿔이 통하지 않으니 세이나 쪽이 비정상이라고 해야 되나?

어찌되었든 거듭 되는 오해에 나는 담담히 반박했다.

“저 남창 아니에요. 제대로 싸울 수도 있고요.”

“맞아요! 개변태 같지만 그래서 더 강한 거라구요!”

내 말에 나나도 동조했다. 그러자 세이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정신 이상자를 보는 것 같은 눈매였는데 딱히 틀린 건 아니어서 걸고넘어질 수 없었다.

“……좋아요. 이분들은 제가 맡도록 하죠. 베로니카는 창구로 돌아가 보세요.”

“네, 네? 그렇지만 사무장님…….”

“정 베로니카가 맡고 싶다면 허가하죠. 대신 저도 옆에서 감독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실래요?”

세이나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그에 베로니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윽고 고개를 숙이며 창구로 돌아갔다.

대체 뭐지. 미친놈들은 무조건 상급자가 맡아야 한다는 규정이라도 있는 건가?

“두 분, 이쪽으로 와주세요.”

복도 끝으로 사라져가는 베로니카를 보고 있으려니 세이나가 우리를 불렀다. 그에 나와 나나는 한 번 시선을 나눈 뒤 세이나를 따라갔다.

모퉁이를 돌아 좀 더 안쪽으로 가자 접대실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소파와 그 사이에 놓인 테이블 등이 보였다.

“편하게 앉으세요. 준비되시면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자리를 권한 세이나가 관련 자료를 챙기면서 말했다. 그에 나는 어색하게 소파 한 편에 자리를 잡았고 나나도 내 옆에 따라 앉았다.

그렇게 세이나가 자리에 앉길 기다리고 있을 때, 문득 나나가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세이나 씨라고 하셨죠?”

“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아까 접수원 언니한테 좀 엄하게 대하시던데 왜 그런 거예요? 그 언니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마침 궁금했던 내용이었기에 나도 귀를 기울였다. 질문 받은 세이나는 조금 불평하는 것 같은 어투로 이야기했다.

“수습 접수원들 중에선 저런 분들이 꽤 있습니다. 모험가님들을 연애 대상으로 보는 분들이요.”

“연애 대상이요?”

“네. 모험가들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거죠. 무리도 아닙니다만 저희는 모험가님들을 지원하고자 이곳에 있는 거지 같이 놀려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돌려보낸 거죠.”

이제야 세이나의 행동이 이해됐다.

창구에서 복도까지 오는 동안 베로니카는 날 호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비단 내가 변태처럼 입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진짜 작업을 걸려고 그랬던 거다.

나로선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상관인 세이나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녀 말대로 접수원은 모험가를 지원하는 사람이지 모험가랑 연애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눈총을 주며 돌려보낼 만도 하다.

내막을 알게 된 우리가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무렵, 어느덧 자료들을 챙긴 세이나가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한 쪽에 여러 서적들을 놓고 우리에게 신상명세서라 적힌 서류를 내밀었다. 맨 오른쪽에는 웬 타블렛처럼 생긴 판을 올려뒀는데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두 분 다 글은 쓰실 줄 아나요?”

“네, 읽고 쓰는 거 다 돼요.”

“그러면 거기에 나와 있는 항목을 전부 채워주세요. 성실 작성 부탁드립니다. 작성이 끝나면 증패를 발급해드리죠.”

그 말을 듣고 나와 나나는 신상명세서 작성을 시작했다.

신상명세서가 요구하는 정보는 이름과 나이, 성별, 출신지, 직업, 특기, 선호 포지션 등이었다. 서류 작성이라 해서 입사지원서 같은 느낌인 줄 알았는데 많이 달랐다.

이름이나 나이 같은 항목은 빠르게 채워놓고 출신지는 생각나는 대로 대충 적었다. 어차피 내 출신지를 알아볼 방도도 없으니까 아무 지역이나 적어놔도 문제없으리라.

그리 하여 나는 서쪽 아웰린 지방 출신의 검사 감다키가 되었다. 나나는 눈치 좋게 내가 적은 내용을 베껴서 같은 지역 출신의 견습 사제라고 적어 넣었다.

“아웰린이라…… 꽤 멀리서 오셨네요. 율리아나엔 어쩌다가 오게 됐죠?”

“제 저주를 풀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대 도시에서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리 말하며 나는 팬티 한 장만 입고 다니는 이유가 저주 때문이며 나나와는 이를 계기로 만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저런…… 안타까운 사정이 있으셨군요. 죄송해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뭔가 어설픈 설정이었지만 세이나에겐 꽤 잘 먹혔다.

그녀는 날 남창이라 부른 것을 사과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냉담하고 말투도 좀 딱딱해서 첫 인상이 썩 좋지 않았는데 의외로 좋은 사람인 듯했다.

“아뇨, 아뇨. 익숙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제 차림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저는 영락없이 노출증환자인 줄 알았는데 본의 아니게 차별대우를 해버렸군요……. 반성해야겠어요.”

재차 사과를 건넨 그녀는 우리에게 타블렛처럼 생긴 물건을 내밀었다. 붉은색 판 가장자리에는 바늘 같이 것이 있었는데 세이나는 그것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쪽에 있는 바늘로 상처를 내고 가장자리에 피를 떨어뜨리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코르로 만들어진 타블렛이 반응을 일으켜 여러분의 능력을 수치화해줄 거예요.”

“그거 참 신기하네요…….”

아무래도 게임 세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나 보다. 시스템이 없는데도 확인할 방법이 있다고 하니 무척이나 신기했다.

곧 우리들은 세이나가 시킨 대로 타블렛 위에 피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붉은색 타블렛이 하늘색으로 변하더니 그 위에 게임 속 스테이터스처럼 우리가 가진 능력치가 가시화 되어 나타났다.

“흐으음…… 두 분 다 꽤 높은 능력치를 가지셨군요. 이렇게 스펙이 높은 초심자는 오랜만이에요.”

타블렛 안의 수치들을 보며 세이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슬쩍 들여다봤는데 나나의 능력치가 처음 봤을 때보다 높아져 있었다.

이름: 나나

성별: 여성

나이: 20세

종족: 엘프

맹약: 없음

은혜: 신성한 임무(언데드를 공격할 때 피해량이 10퍼센트 증가하며 언데드 처치를 통해 능력치가 상승할 때 성장 보너스를 얻는다.)

능력치: [생명 12] [정신 19] [신체 5]

[근력 9] [기교 5] [정밀 6] [민첩 5] [지성 10] [신념 20]

생명력: 360

마력: 570

기력: 150

오른손 공격력: 52

왼손 공격력: 22

방어력: [머리 20] [상체 20] [하체 20] [팔 20] [다리 20]

가드 게이지: 100

저지력: 10

인내력: 11

치명타 피해: +50퍼센트

치명타 확률: 5퍼센트

피로도: 0/8

스킬 목록: [회복] [거부] [찬란한 광채] [신성한 빛] [정화]

생명과 정신, 신념 스탯이 큰 폭으로 올랐으며 그에 따라 생명력과 마력도 상승했다. 이를 보고 나는 나나의 능력치가 어떻게 오르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나나는 동료 캐릭터로 취급하나 보네.’

가디스 던전에선 NPC를 영입하여 동료로 만들 수 있다. 유저들 사이에선 이렇게 동료가 된 NPC를 동료 캐릭터라 부르곤 한다.

동료 캐릭터는 플레이어와 다르게 위업 포인트를 자유롭게 분배할 수 없다. 플레이어와 함께 모험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능력치가 저절로 오르는 식이다.

나나 역시 가디스 던전을 구매하고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왜 그녀는 동료 캐릭터로 취급하는 걸까. 그 점이 좀 의아하긴 했으나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닌 것 같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흐흥~ 이래 보여도 저흰 경력 있는 신입이라구요~ 알아보셨으면 첫 퀘스트도 눈치껏 수준 높은 걸로 주시죠!”

칭찬을 들은 나나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세이나는 신상명세서와 웬 인식표 같은 것을 타블렛 위에 올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는 없어요. 능력치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실력이 좋은 건 아니니까요. 통계적으로도 초기 능력치가 높으신 분들일수록 사망률이 높고요.”

세이나의 말도 니아, 프란체스카가 한 경고와 일맥상통했다.

이런 걸 보면 게임 세계에선 피지컬만 믿고 까불다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원작 게임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었느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소울라이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자신이 다른 게임에서 얼마나 컨트롤이 좋았건 소울라이크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하등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각종 함정과 매복, 그리고 기믹을 알지 못하면 피해조차 줄 수 없는 적 등, 소울라이크에는 피지컬만으론 헤쳐 나갈 수 없는 장해물들이 수두룩하다.

피지컬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시 되는 건 경험과 대처 능력이다.

이 구간에선 무슨 일이 벌어날지, 그 일을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파악하는 게 클리어의 핵심인 것이다.

솔직히 피지컬 같은 건 PVP할 거 아니면 별로 안 좋아도 된다. 실제로 나랑 같이 PVP하던 고인물 중에선 상황 대처 능력이 안 좋아 고작 2회차에서도 쩔쩔 매던 사람이 있었다.

내가 새삼 추억에 잠겨 있을 때 세이나가 우리에게 인식표를 건넸다.

“자, 받으세요.”

“혹시 이게 그 모험가 증팬가요?

“맞아요. 정확히는 임시 증패죠. 현 시간부로 여러분은 가장 낮은 등급인 언랭크의 모험가가 됐습니다. 첫 퀘스트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냐에 따라 그 증패가 철이 될 수도, 은이 될 수도 있죠.”

우리가 받은 인식표는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이었다. 척 봐도 뉴비용이라는 티가 났다.

그걸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늘 당장 던전 하나를 클리어하면 이게 어디까지 올라갈까.

그 던전 보스가 재앙신에 준하는 힘을 가진 괴물이라면 세이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등급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세이나는 분명 경악하겠지. 그녀뿐만 아니라 길드에 있는 모두가 기함을 터뜨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모르게 즐거워졌다.

============================ 작품 후기 ============================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쓰는 게 좀 늦어졌네요.

그보다 아이디어 공모전에 정말 재밌는 의견이 많이 올라왔네요. 반대로 아쉬운 의견도 많았습니다. 제가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처럼 메이저한 신화는 어떻게 써먹을지 구상을 다 해놨는데 그걸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혹시라도 다시 의견을 내시고자 하는 분들은 이번 편 코멘트에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이전 코멘트까지 총합하여 선별을 해보겠습니다. 상품도 1위 50딱지, 2위 25딱지, 그 아래로 장려상 5딱지로 바꿀 예정이니 많이 참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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