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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 여사제
‘역시 없나…….’
눈을 부릅뜨고 대열을 확인했으나 영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자기 영지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영주가 떳떳하게 돌아다닐 수는 없겠지. 지금 이 자리에도 희생당한 사람들의 친구나 유가족이 있을지 모르니까.
불편한 마음을 뒤로 하며 나는 칠흑검 클랜을 물색해보았다.
정말 작정하고 중2병 컨셉인 건지 옷이며 분위기며 하나 같이 어둡고 다크했다.
전원이 검 문양이 새겨진 검은색 망토로 복장을 통일했는데 망토 아래에선 어느 정도 개성이 보였다.
대체로 여성들은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전신 타이즈를, 남성들은 멋들어진 갑옷을 착용했다. 첫 인상은 진짜 중2병 퍼레이드 같았는데 보면 볼수록 멋있었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복장이 정말 바람직했다. 다들 한 인물들 하시는데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복장을 입으니까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것만큼 야했다.
게다가 브래지어도 안 찬 건지 걸을 때마다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자세히 보니 유두의 윤곽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팬티도 안 입었나. 기대감에 부푼 채 시선을 내리자 정말 다리 사이가 살짝 먹혀 있었다. 보지의 균열이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이 무슨 음란한 복장이란 말인가. 어떤 의미에선 비키니 아머 보다 더 음란했다. 저래서야 알몸으로 다니는 거랑 별반 다르지도 않잖아.
“허억, 허억……! 저기 보세요 다키님……! 쟤네들도 완전 개변태처럼 입었어요!”
나나도 나랑 같은 심정인지 거친 숨을 내쉬면서 칠흑검 클랜을 가리켰다.
평소라면 그녀를 말렸겠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어서 그냥 뒀다. 애당초 우리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말이다.
주위의 남정네들은 전부 나나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게임 세계 관점에서 봐도 여성 클랜원들의 옷은 성욕을 자극하는 음탕한 복장이란 뜻이다.
그런 옷을 입고도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니. 대체 얼마나 자신감이 높은 걸까.
아니, 어쩌면 프란체스카처럼 죄다 노출광일지도 모르겠다.
알몸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돌아다니면서 내심 흥분하는 클랜원들이라니. 이거 사실 중2병 클랜이 아니라 변태 클랜이었구만.
“역시 재앙신을 잡은 클랜은 다르네……. 하나 같이 실력자들뿐이야.”
“응…… 기력도 마력도 전부 수준급…… 농도가 너무 짙어서 여기까지 느껴지는걸…….”
칠흑검을 비단 변태 클랜으로 인식한 나와 달리 니아와 프란체스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의 역량에 감탄했다.
기력이나 마력을 느끼는 건가? 원작에는 없는 시스템인데다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서 난 저들이 얼마나 강한지 잘 모르겠다.
허나 무장 수준 보면 그녀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느 모험가들의 무기와 다르게 칠흑검의 무기는 전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내 쾌도처럼 신혈결정을 통해 강화한 것이리라.
강화 단계는 전부 3단계에서 그쳤지만 그들이 브릴린트를 만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원작 게임에서도 브릴린트 외의 대장장이들은 3강까지 밖에 강화하지 못했으니까.
그보다 주목해야할 건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방어구였다.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서 못 알아봤는데 내 기억대로라면 갑옷은 흑린 세트, 전신 타이즈는 검은 뱀 또는 서펜트 세트였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모두 하백을 따르던 이무기들을 잡고 그들의 소재를 통해 제작한 방어구들이다.
흑린 세트는 탱커용, 검은 뱀은 근접 딜러용, 서펜트는 마법 딜러용으로 전부 요구 스탯이 30을 넘긴다.
그 말은 곧 그들 한 명, 한 명이 해당 스탯을 30 이상 찍은 강자들이란 것이다.
가디스 던전에선 어떤 스탯이든 30 정도만 찍으면 강력한 스킬을 배울 수 있으므로 스탯 하나가 30을 넘어서는 순간 중상위 캐릭터로 분류된다.
이 중상위권이라는 게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것 같지만 가던 세계관에선 엄청난 거다. 당장 살아있는 재앙인 재앙신을 잡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일반인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능력자들까지 뛰어넘은 초인이다. 저기 있는 수십 명만으로도 일반 병사 수백 명 정도는 일방적으로 유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저 키리야라는 여자는 격이 달라.’
클랜원들을 둘러보던 나는 선두를 향해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다른 클랜원들처럼 검은 뱀 세트를 입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비단결 같은 흑발에 황갈색 눈동자를 가진 장신의 미인이었는데 그녀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도검은 극악한 제작 난이도를 가진 성물급 무기, 파천도破天刀였다.
그만큼 성능은 절륜하지만 재료 모으기가 워낙 지랄 맞다 보니 나도 수많은 캐릭터를 만들면서 꼴랑 세 번 밖에 쓰지 않은 무기다.
물론 장비 성능이 곧 사용자의 강함인 건 아니나 저런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재료를 얻기 위해선 나조차도 까다롭게 여기는 미니 보스들을 여럿 잡아야하니까.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 게임 세계에서 그걸 해냈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뭐, 그래봤자 나한텐 다들 귀여워 보이지만.’
내심 감탄하던 나는 곧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칠흑검 클랜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러면 올드비가 허세 떠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틀린 말은 안 했다.
생각해보라. 칠흑검 클랜이 세계관 내에서 강자인 건 사실이지만 게이머의 관점에선 가디스 던전을 한 번도 클리어해보지 못한 뉴비들이다.
고인물의 시작은 최종 회차인 8회차를 클리어하고 난 뒤부터라고 할 수 있다. 1회차 클리어는 고인물은커녕 중수로도 취급해주지 않는다.
가디스 던전에는 익혀야 되는 기술과 외워야 하는 정보들이 수두룩하다. 그렇다 보니 한 번 클리어하는 것만으론 게임을 숙달하기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저 친구들도 남들 앞에선 휘황찬란한 장비를 걸린 채 위엄 있게 걷고 있지만 자네스 영지에서 ‘그 새끼’를 만나면 분명 멘탈이 박살나겠지.
그걸 생각하니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저들이 ‘그 새끼’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자리에서 3연딸도 가능할 것이다.
아예 따라가서 구경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 나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사이코패스 같은 생각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이건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니다. 저들은 목숨을 걸고 자네스 영지로 향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 새끼’에게 유린당하는 모습을 즐기는 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희열을 느끼는 것과 다름없다. 완전 개싸패지 않은가.
“나도 저 사람들처럼 강해졌으면…….”
자중하자고 생각하던 순간, 니아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어느덧 그녀는 칠흑검 클랜의 행진에 푸욱 빠져 있었다. 방금 전에 한 말도 무의식적으로 한 건지 니아의 시선은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니아라면 분명할 수 있을 거야. 매일 노력하고 있잖아.”
그런 니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프란체스카가 말했다.
마치 동생을 격려해주는 언니 같았다. 하지만 비단 희망적인 분위기만 감도는 건 아니었고, 어딘가 서글픈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응? 으, 응……! 그렇겠지……!”
뒤늦게 자신이 한 말을 깨달은 니아는 얼굴을 화악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모르게 넋 놓고 바라본 게 꽤나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도 니아는 칠흑검 클랜을 보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동경하는 것 같다.
프란체스카의 반응을 보면 단순한 이유는 아니겠지. 그녀들에게도 뭔가 사연이 있는 걸까.
“모, 모험가라면 누구나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을 걸? 너희들도 그렇지 않아?”
부끄러워하던 니아가 우리 쪽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자기 혼자 그렇게 말하면 쪽팔리니까 동질감을 형성하겠다는 심산이리라.
“그럼요. 사람들한테 환호 받고, 다른 모험가들한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완전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 같잖아요.”
그런 니아 누님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난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칠흑검을 클랜을 보던 나는 내심 기대하게 됐다.
나도 모험가로 업적을 세우면 저 사람들처럼 유명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칠흑검 클랜에게 그랬듯이 모두가 날 영웅처럼 우러러 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속에 불이 지펴졌다.
나는 줄곧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방송을 시작한 이유도, 가디스 던전을 시작한 이유도 내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비록 종목은 달라졌지만 이곳에서라면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을 칠흑검 클랜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간 재앙신들에 필적하는 적을 수도 없이 쓰러뜨리지 않았는가.
애당초 저들이 처치하러 가는 악마 군단의 수장도 내가 잡았다. 지금은 말해봤자 아무도 안 믿겠지만 꾸준히 명성을 쌓다 보면 그간 이뤄낸 업적들도 인정받게 되리라.
이렇게나 의욕이 불타오른 건 정말 오랜만이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점점 가까워지는 칠흑검 클랜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들의 위풍당당한 자태가 나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 순간.
“어……?”
“……?”
가장 선두에 있는 여성, 칠흑검 클랜의 마스터인 키리야라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우연히 마주친 건가 싶었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의 눈은 똑바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동공이 눈에 띄게 커졌고 나와 멀어져 가는 와중에도 내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왜 저러는 거지? 내 옷차림 때문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의아해하던 도중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저 여자,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길에서 마주쳤었나? 아니면 여관에서?
어느 쪽이든 처음 본 건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 들 리 없다. 어디서 봤는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니 나 어제오늘 왜 이러는 거지?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나빴나?
답답한 심정을 느끼는 와중 키리야는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은 광장을 지나 서쪽 관문을 향해 나아갔다.
따라 가볼까 싶었지만 그들을 뒤따르는 인파 때문에 금세 길이 막혔다.
애초에 익숙할 뿐이지 내게 중요한 인물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신경 쓰이긴 했으나 나는 곧 미련을 버렸다.
어디서 봤는지는 몰라도 내가 저런 미인이랑 연이 있을 리 없다. 그냥 예전에 봤던 애니 캐릭터랑 착각한 거겠지. 그게 가장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다.
“많이 한산해진 거 같은데 슬슬 들어갈까?”
그때 프란체스카가 정문을 보며 말했다. 그녀 말대로 길드 주위는 이전보다 훨씬 한적해졌다. 구경꾼들이 다 빠져나가고 길드에 용무가 있는 모험가들만 남은 것이었다.
“응, 구경하느라 너무 오래 서 있었어.”
니아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 역시 나처럼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는지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나 또한 그녀들을 따라 길드로 향했다.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도중 나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요 다키님.”
“응?”
“아까 그 키리야라는 여자, 윤다혜 선수 닮지 않았어요?”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윤다혜라는 사람이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아아…… 그 여자 프로게이머?”
“맞아요! 트위츠에서 룰 방송도 많이 했었잖아요! 뭔가 낯이 익어서 쭈욱 보고 있었는데 완전 판박이인 거 있죠!”
윤다혜는 룰러 오브 레전드라는 AOS 게임을 플레이하던 프로게이머다.
보통 여성 프로게이머들은 화제성을 위해 참전시킨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윤다혜는 미목수려한 외모는 물론 뛰어난 실력까지 겸비하여 큰 인기를 얻은 선수다.
경기가 없을 때는 트위츠에서 생방도 많이 하여 트위츠 내의 인지도는 여느 프로게이머들 보다 높다. 룰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알고 있을 정도니까.
“그러고 보니 그러네……. 얼굴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딱 윤다혜 선수였어…….”
왜 이제야 깨달은 걸까. 나는 그동안 느꼈던 묘한 기시감의 정체를 비로소 알아냈다.
전신 타이즈 갑옷 때문에 현실감은 떨어졌지만 키리야의 얼굴은 윤다혜와 무척 닮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본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혹시 윤다혜도 저나 다키님처럼 게임 세계로 온 거 아닐까요?”
주위를 스윽 둘러본 나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에 나도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가능성은 있지……. 그 많은 시청자 중에서 너 혼자만 따라온 것도 이상하니까.”
“역시 그렇죠……! 지금 당장 쫓아가서 얘기해 봐요! 저희들이랑 뜻이 맞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긍정하자 나나는 잔뜩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그럴 만도 하다. 윤다혜는 비단 룰뿐만 아니라 온갖 게임을 잘 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게임 천재니까.
그녀가 동료로 들어와 준다면 나도 굉장히 든든할 것 같다.
하물며 그녀는 50여명이 넘는 클랜의 마스터. 오히려 내 쪽에서 동료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허나 나는 나나의 말에 부정했다.
“아니……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어. 그냥 닮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
“네? 그 정도로 똑같이 생겼는데요?”
“그게 이상한 거야……. 나도, 너도 원래 세계의 모습이랑 게임 세계의 모습이랑 다르잖아. 그런데 왜 윤다혜만 원래 세계 모습 그대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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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의 의견을 얻어볼 겸 자그마한 이벤트를 열어보고자 합니다.
조연으로 등장시킬 신을 고민 중인데, 여러분이 의견을 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딱지를 상품 삼아 아이디어 콘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싶은 신을 성별, 신화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그 신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컨셉으로 등장하면 좋을 지 자세하게 적어주시면 당첨될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이거다 싶은 의견을 내주신 두 분에겐 각각 25딱지를 상품으로 드리겠습니다. 선별된 신은 작품 내에서 조연급으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중복 당첨이 불가한 점과 제 주관대로 선별한다는 점은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많이 참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