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83화 (8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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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락가

“나 덕분에……? 내가 뭘 했다고?”

살짝 쑥스러움을 느끼며 시선을 피하자 나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마치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키님을 알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인터넷 방송 같은 거엔 별로 관심도 없었거든요.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본다기에 저도 한 번 봐본 거였죠. 그런데 마침 다키님 방송이 추천 목록에 뜨더라고요?”

“확실히 3년 전이면 그럴 수도 있겠네…….”

비록 게임 세계에 오기 직전엔 수입도 변변찮은 비주류 스트리머였지만 나에게도 한 때 전성기가 있었다.

가디스 던전이 출시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온갖 기괴한 공략법들을 내놓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이다.

그때는 시청자 수가 5천까지 올라갔던 시절이니 추천 목록에 뜨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다키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계속 보게 됐어요. 살면서 그렇게 목소리 좋은 남자는 처음이지 뭐예요?”

“그, 그래 칭찬 고마워.”

확실히 내가 여태껏 방송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목소리다. 가디스 던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내 목소리가 좋다며 생방송에 들어오곤 했다.

오죽하면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딸치는 변태 새끼도 생길 정도다. 내 방에선 목딸좌 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지.

아무튼 나나는 내 목소리를 계기로 방송에 집중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집중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흥미를 느끼고 즐거웠기에 내 방송에 빠져든 것이었다.

새벽이 가까워지도록 나나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섯 시간이 넘는 방송 시간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웃음을 터뜨리고, 조마조마해하고, 쾌재를 불렀다.

마침내 그 어려운 최종 보스를 쓰러뜨렸을 때는 집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최종 보스까지 쓰러뜨린 내가 방종 선언을 하자 나나는 너무나 아쉬워하면서 난생 처음 느껴보는 즐거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지금까지 절 그렇게 웃겨주고, 집중하게 하고,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었어요. 그때부터 다키님을 향한 관심이 엄청 커졌고 덩달아 게임이나 방송에도 흥미가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게임과 스트리밍 시청이 취미가 되었다. 내 미성 때문에 좋은 목소리를 가진 성우, 스트리머를 향한 기호 성향도 생기게 됐다.

나나에게 있어서 나는 단순히 게임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가 아니라 무료하고 답답했던 자신의 삶을 순식간에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뭔가 너무 과장된 거 같은데……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무슨 소리예요 다키님! 그 정도면 충분히 대단한 거라구요! 남들이 뭐라 하든 다키님은 제 인생 장르였단 말이에요!”

내가 부끄러워하자 나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큰 소리로 부정했다. 목소리를 너무 키운 나머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 우리 쪽을 쳐다봤다.

“아, 알겠어 나나야! 알겠으니까 목소리 좀 줄여……!”

“후우……! 아무튼, 제 얘기는 여기까지예요. 뭔가 더 궁금하신 점이라도?”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 얘기 잘 들었어.”

나나의 과거와 가정사, 그리고 날 좋아하게 된 계기까지 전부 들으니 그녀와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았다.

실제로 난 그녀를 좀 더 신뢰할 수 있게 됐고 동질감으로 인해 호감 또한 커졌다.

그녀도 나와 같구나. 이 생각 하나만으로 나나를 보다 좋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저기 말이야.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너무 시끄럽게 떠들지 말아줄래? 주점이라 해서 어디나 무식하게 떠들어도 되는 건 아니라고.”

내가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며 나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서비스를 가져다준 금발 적안의 누님이 불편한 시선을 보내며 지적했다. 그에 나는 겸연쩍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 네…… 죄송합니다…….”

“헤헤, 미안해요 언니. 앞으론 조심할게요.”

나나 역시 양손을 모으면서 사과를 건넸다. 우리의 태도가 만족스러운 건지 누님은 어렴풋한 미소를 지으면서 주문한 메뉴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좋아. 그보다 주문한 요리 나왔어. 맛있게 먹어.”

“응?”

그 말과 함께 올라오는 요리의 가짓수는 우리가 시킨 것보다 훨씬 많았다.

스테이크와 샐러드는 물론 각종 튀김과 해산물 스프, 내장 구이, 꼬치 요리까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올라온 것이었다.

“저기…… 사장님……?”

“왜? 뭐 문제 있어?”

푸짐하다 못해 넘쳐나는 요리들을 보며 누님에게 말했다. 그에 누님은 뭐가 문제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 이런 건 안 시켰는데요. 분명 드레이크 안심이랑 샐러드만 주문했는데…….”

“신경 쓰지 마. 당신이 아들 같아서 많이 챙겨준 거니까. 이것도 서비스라고 생각해.”

누님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아들이라고? 그럼 내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대체 몇 살이란 말이야?

아무리 봐도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는데 나를 아들 같다고 느끼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다 떠나서 저 얼굴, 저 몸매에 유부녀라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나에게 집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지만 그녀 역시 상당히 큰 가슴과 모델을 뛰어넘는 환상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횡재했네요, 다키님! 이것저것 다 먹어볼 수 있겠어요!”

황당해하는 나와 달리 나나는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요리들을 둘러봤다. 그녀의 입에선 당장이라도 침이 줄줄 흘러내릴 것 같았다.

나도 여러모로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화려한 진수성찬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맥주를 그렇게나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고파도 이렇게 많은 양을 우리 둘이서 다 해치울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할 무렵이었다.

“어머? 다키랑 나나잖아?”

“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꿀이 흐르는 것처럼 요염한 목소리에 나도, 나나도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확인했다.

“앗, 프랑 언니!”

“후후훗, 안녕, 또 만나네……?”

그곳엔 낮에 만났던 노출증환자 마녀, 프란체스카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반가운지 그녀는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나 역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반색했다.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네요!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저희는 뭔가 인연이 있나 봐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약속 없이 하루에 여러 번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너희랑은 뭔가 끌리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양손을 깍지 낀 채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두 사람. 여자들은 빨리 친해진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아니면 나나가 사교성이 너무 좋거나.

“안녕하세요, 프란체스카 씨. 이런 데서 뵐 줄은 몰랐네요.”

“프랑이면 돼.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너도 그렇게 불러줘.”

나도 일어서서 인사를 건네자 프란체스카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취한 것 같은 인상은 여전했지만 사람 좋은 미소 역시 어디 가지 않았다.

“아, 네. 그러면 프랑 씨는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혼자 오신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 봐도 니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둘이 같은 파트너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잠시 헤어진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프란체스카가 고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우후훗…… 니아는 지금 방에서 쉬고 있어. 그래서 지금은 나 혼자야.”

“의외네요. 뭔가 니아 언니랑 프랑 언니랑 항상 같이 다닐 것 같았는데.”

“니아한테도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한 법이니까. 뭐, 굳이 따지자면 혼자는 아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혼자는 아니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순간 의문에 빠진 나였지만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니아 누님도 한창 때의 여자다. 그렇게 예쁘고 몸매도 좋은 사람이 애인이 없을 리 없다. 굳이 애인이 아니어도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남자는 차고 넘칠 거다.

뭔가 니아 누님이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지는걸. 의도치 않게 옷을 벗고 교성을 지르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과연 누구랑 하고 있는 걸까. 남친? 아니면 원나잇?

아니 그런데 난 쓸데없이 이런 걸 왜 궁금해 하는 거지? 니아 누님이랑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고 딱히 아무런 감정도 없었잖아?

느낌이 이상하다. 뭔가 사고방식이 예전의 나와는 달라진 기분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나는 왼쪽 팔목이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읏……?!”

팔목에서 보라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은 산양의 뿔을 착용한 그 부분이었다. 동시에 온몸이 화끈거렸고 하반신에 피가 쏠렸다.

머릿속에선 이상한 욕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서 니아를 빼앗고 싶다는 욕망. 니아 뿐만 아니라 눈앞에 있는 프란체스카까지 따먹고 싶다는 욕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응? 왜 그래 다키?”

“어디 안 좋으세요, 다키님? 토할 것 같아요?”

내가 신음 소리를 내며 휘청거리자 프란체스카와 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두 사람에게 들키기 전에 왼쪽 팔목을 감쌌다. 한동안 꾸욱 누르며 숨을 고르자 증상이 점점 완화됐다. 팔목에서 흘러나오는 빛도 사라지는 게 보였다.

“아무 것도 아니야. 너무 마시다 보니까 좀 현기증 왔나 봐.”

“토하고 온 다음에 다시 마시세요!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서까지 마시고 싶진 않아…….”

다행히 나나도, 프란체스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은 듯했다.

이게 숨겨야 되는 일인가 싶었지만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게 떠올린 추잡한 욕망을 들켜버릴 것 같았다.

“아무튼 프랑 언니는 여기 혼자 온 거죠?”

“응, 처음 보는 가게가 있기에 한 번 들러본 거야. 생각보다 꽤 괜찮네.”

“기왕 이렇게 된 거 셋이서 같이 마실래요? 마침 저희도 입이 좀 필요하던 참이었거든요!”

나나의 말에 프란체스카는 입? 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녀에게 테이블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여주었다.

“어쩌다 보니 서비스를 엄청 많이 받았거든요. 저희끼린 다 못 먹을 것 같아요.”

“후훗, 그래 보이네. 좋아. 너희들이 초대해준다면 나야 환영이지. 대신 술값은 누나가 낼게?”

“와아 언니 최고!”

그리하여 프란체스카가 술자리에 합류했다.

마침 모험가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싶었던 나였기에 그녀와의 합석이 반가웠다. 등급제나 뉴비 모험가들의 수를 보면 게임 세계의 모험가 생태는 원작 게임과 많이 다른 듯했으니까.

술잔을 부딪치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몇 가지 질문했는데, 이것저것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실적을 쌓을수록 점수를 얻고, 그 점수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 거군요?”

“맞아. 등급은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플레티넘, 다이아, 슬레이어, 이렇게 일곱 가지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어. 처음으로 모험가 단증을 발급 받을 땐 통과의례를 치러서 어떤 등급부터 시작하는 게 적합한지 평가 받곤 해.”

그녀를 통해 들은 등급 제도는 AOS 게임에서 사용하는 그것과 유사했다.

보통 풋내기 모험가를 언랭크라 부르며 이들은 정식 모험가가 되기 전에 치르는 첫 퀘스트를 통해 등급을 결정한다. 이를 통과의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첫 퀘스트에서 완전 잘 하면 골드부터 시작할 수도 있겠네요?”

꼬치를 우물거리던 나나가 문득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에 프란체스카는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으음~ 글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렵다고 알고 있어. 초보들에겐 고난이도의 의뢰를 맡기지 않아서 쌓이는 실적에도 한계가 있거든. 나랑 니아도 브론즈 등급부터 시작했고. 간혹 실버부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야.”

“통과의례에서 아무리 잘 해도 시작 랭크는 실버 정도가 한계라는 거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러니까 너희도 욕심 내지 말고 차근차근 시작하는 게 좋아. 괜히 무리하다가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술잔을 홀짝거리며 이야기하는 프란체스카. 그녀의 이야기는 비단 충고가 아닌 경고였다.

허튼 짓하면 골로 간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그녀의 말에는 그러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확실히 틀린 말도 아니리라.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얼마든지 물어봐.”

“혹시 늑대 문양을 쓰는 클랜에 대해서 뭔가 아는 거 없으세요? 트롤 슬레이어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데요.”

내 질문에 프란체스카의 눈빛이 바뀌었다.

“너희도 그 소식 들은 거니?”

“네? 아, 네. 워낙 큰 소동이었잖아요. 못 들을 수가 없죠.”

“그렇구나, 그러면 이참에 알아두는 것도 좋겠네.”

그녀는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듯이 한 차례 숨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었다.

“일단 트롤 슬레이어는 6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공격대의 이름이야. 오늘 살해당한 자이크가 거기 소속이지.”

“공격대라면 그거죠? 파티 보다 더 규모가 큰 모험가 집단.”

“응, 보통 5명 이하는 파티, 그 이상은 공격대라고 불러. 여기서 수십 명 단위로 불어나면 클랜이 되는 거지. 문제는 그 공격대가 속한 클랜이 흉랑 펜리르의 권속들이란 거야.”

역시 그랬구나.

펜리르라는 이름을 듣고 모든 걸 이해했다.

신을 삼킨 늑대, 아스가르드의 최악의 적.

티르의 팔을 물어뜯고 오딘을 집어삼켰다고 알려진 최강의 괴수 중 하나.

기원전쟁에서 아스가르드 진영이 몰락한 원흉 중 하나이자 현재 자신의 자매들과 함께 북부 대륙 대부분을 통치하고 있는 지배신.

트롤 슬레이어가 그녀의 권속이라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도 알 만하다.

율리아나는 중부 대륙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해 있지만 펜리르의 위용은 대륙 전역에 널리 퍼져 있으니까. 어디에 있는 누구라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리라.

“펜리르에 대해선 저도 좀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신은 북부에서 활동하잖아요? 왜 트롤 슬레이어는 한참이나 아래인 율리아나에 있는 거죠?”

“나도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펜리르의 권속들은 대륙 각지에 퍼져 있다고 해. 워낙 그 수가 많기도 하니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내 말에 대답한 프란체스카는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도 그녀의 권속들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다들 호전적이고 잔인하기로 유명하거든. 특히 트롤 슬레이어들이 그렇고.”

============================ 작품 후기 ============================

NTR 방지했으니 NTL 밑밥 깔아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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