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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79화 (7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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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 분쇄자

잘려나간 손을 보며 금태양이 당황한다. 곧 절단면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고 놈은 비명을 지르면서 괴로워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악!!”

푸화아아아악!

피가 분수처럼 치솟는다. 금태양이 어떻게든 출혈을 막아보려 발악했지만 그럴수록 피는 더욱더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비처럼 쏟아진 핏줄기가 구경꾼들의 얼굴에 튀었고 바닥에는 금세 피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바로 옆에 있던 나나는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아…… 큰일났네…….’

나는 그 광경을 암담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사과할까? 내가 너무 흥분해서 그랬다며 치료해주면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겠지. 오히려 사람을 썰어놓고 아무렇지 않게 사과하는 싸패 새끼처럼 보일 거다.

애당초 이제 와서 말로 해결할 수는 없다. 저놈이 나나에게 하려 한 짓을 생각하면 평화롭게 해결할 마음이 싹 사라진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이미 엎질러진 물, 간지라도 챙겨보자.

“크큭…… 썰어버렸네……?”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나는 다른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마치 중2병 애니에 나오는 미치광이 주인공처럼 말이다.

기억해내라 감다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중학교 2학년 시절로 돌아가는 거다. 최대한 미친 새끼인 척 연기하는 거야.

“저, 저 사람 뭐야……?! 사람을 썰어놓고 웃고 있잖아……!”

“팬티만 입고 있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어……! 저 새끼 정상이 아니야!”

“저건 그냥 미치광이 살인귀잖아……?!”

내 연기는 생각보다 잘 먹혔다.

희열에 젖은 것처럼 웃으며 입술을 핥아주니 구경꾼들이 연달아 경악을 터뜨렸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고 경비들도 섣불리 날 제지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하다. 방금 전의 나는 섬격까지 써서 금태양을 썰었으니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격으로 사람을 썰었으니 아무리 노련한 전사라도 경계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 새끼아아아악!! 잘도!! 잘도 내 팔으으으을!!”

공포에 잠식된 홀 안에서 분노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금태양 뿐이었다.

놈은 눈이 뒤집힌 채 날 노려보았다. 나나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놈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롱소드를 뽑아 내게 겨눴다.

“죽여 버리겠어! 네놈은 절대 곱게 죽이지 않을 거다!! 사지를 썰어버린 다음에 네 애인이 나한테 따먹히는 걸 전부 보여줄 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가. 놈은 점점 이성과 거리가 멀어졌다.

팔 하나만 남은 마당에 저런 NTR 성향 짙은 발언을 하다니. 저건 그냥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어이, 어이……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라고? 내 몸 안에 있는 적.혈.룡이 네 피 맛을 보고 ‘흥분’해버렸거든……. 이 이상 자극하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너무 과몰입했나. 중학생 때 짠 설정들이 내 언행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효과는 좋았다. 내 말을 들은 대중들이 쓸데없이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저, 적혈룡이라니…… 그게 대체 뭐야……?!”

“저 남자 설마 강신자인 거 아니야?! 몸 안에 악신을 받은 거 아니냐고!”

“겨, 경비병! 뭐하는 거예요 빨리 말려요! 저 남자가 무슨 짓을 저지르기 전에 막으란 말이에요!”

내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은 온갖 뇌피셜을 굴리기 시작했다.

적혈룡이 고대의 악신이라느니, 나는 악신에게 총애받은 성자라느니, 모험가 길드에 들어온 것 자체가 악신에게 바칠 제물을 찾기 위해서였다느니 하면서 별의 별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웃긴 건 그런 헛소리에 사람들이 크게 동요한다는 거다. 중무장한 경비들도 나서는 걸 주저했으며 뉴비와 길드 직원들은 완전 아비규환에 빠졌다.

정말 보면 볼수록 미개했지만 덕분에 주도권은 내 손에 들어왔다.

누구도 나의 처형식을 방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개소리하지 마……! 네놈 따위가 나한테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트롤 슬레이어의 서브 딜러인 이 자이크를?!”

내 친절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금태양은 칼을 들어 올리며 달려들었다.

이래저래 지적할 부분이 많지만 전반적으로 엉망이었다.

상대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예측하지 않고 무작정 덤벼들다니. 심지어 저렇게 돌진 공격을 가하면 도중에 캔슬도 못한단 말이다.

“죽어어어어엇!!”

파아앗!

급기야 내 지근거리까지 달려온 금태양. 놈의 칼에 붉은색 기운이 맺힌다. 스킬은 사용한 것이었다.

“멍청한 새끼.”

퍼어억!!

“커헉?!”

놈이 검을 수직으로 내려치려 할 때, 내 주먹이 놈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러자 금태양은 곧장 자세를 잃고 휘청거렸으며 검에 맺혀 있던 붉은 기운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방금 전 금태양이 사용한 기술의 이름은 강타. 근력 계열 스킬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스킬이다.

강타

액티브

요구 스탯: 근력 13

비용: 30 기력

사용 조건: 근접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2초간 기를 모은 뒤 적 하나를 수직으로 내려 베어 +150퍼센트의 피해를 준다. 무기에 붉은색 기력이 감돌아 사거리와 저지력이 두 배가 된다. 이 공격은 방어하거나 튕겨낼 수 없다.

입수도 빠르고 데미지도 나쁘지 않아서 초보들이 많이 쓰곤 하지만 유저들 사이에선 최악의 스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 이유는 2초나 기를 모아야 하는 엄청난 제약 때문이다. 열공의 한 획의 기 모으는 시간이 3초라는 점을 감안하면 강타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알 수 있다.

금태양은 그런 스킬을 내 앞에서 대놓고 사용했다. 강타의 매커니즘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라면 쫄아서 막거나 회피했을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안 통한다.

“이 새끼가……! 이 씨발 좆같은 새끼가!!”

코를 얻어맞은 금태양은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욕설을 남발했다.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려고 한 그였지만 그의 왼손은 깔끔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피를 닦으려 할수록 놈의 얼굴은 더욱더 피투성이가 됐다.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더니 지금은 왜 질질 짜고 있냐?”

“뭐라고……?”

“내가 너무 세게 때렸냐? 힘 좀 빼고 때려줄 걸 그랬나?”

손에 든 쾌도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놈을 도발했다. 내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금태양의 얼굴색이 바뀌었다.

놈은 곧 괴성을 지르면서 내게 돌진했다.

“으아아아아아아!!”

나름 혼신의 힘을 다하는 듯했지만 이번에도 허점투성이였다.

게임으로 치면 적 앞에서 대놓고 강공 차지를 쓰는 거나 다름없다. 적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절대 맞아주지 않을 공격. 금태양은 그게 필살기라도 되는 것 마냥 사용한 것이다.

너무 같잖아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며 금태양의 안면을 연이어 후려쳤다.

“응 안 맞아~”

퍽! 퍼억!

연속으로 날아든 주먹이 금태양의 얼굴에 정확히 꽂혔다.

“커흑?! 크하악!”

달려들던 금태양은 칼을 휘두르기는커녕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급히 반격하려 했지만 그러기 전에 놈의 다리를 걷어차서 자세를 무너뜨렸다.

“으허억?!”

결국 금태양은 그 자리에서 추하게 넘어졌다. 재빨리 일어나려고 시도했으나 왼손이 없다 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절단면으로 바닥을 짚은 나머지 엄청난 고통이 몰려온 것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참나…….”

저게 대체 무슨 병신 짓인지 모르겠다. 발악하는 금태양을 보며 코웃음 친 나는 새삼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경이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공포와 혼란은 어느덧 동경이 되었다.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가지고 노는 내 모습이 썩 멋있어 보인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이 간지러워졌다. 난 좀 관종 기질이 있어서 이럴 때는 괜히 한 마디 해주고 싶단 말이다.

“이런 놈을 보고 대체 왜 쪼는 거야? 이런 머저리가 너희 보다 잘난 게 뭐가 있다고?”

결국 나는 사람들을 보며 선동하듯 얘기했다. 내 말에 사람들은 숨을 죽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에 나는 한껏 과장된 몸짓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그냥 자기가 속한 클랜 믿고 설치는 병신이잖아? 이런 놈을 받아준 클랜이라면 그 수준이 어떨지 안 봐도 빤하네! 분명 이놈처럼 허세에 찌든 병신들만 가득하겠지!”

내 말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 금태양이 속한 클랜이 두려워서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다들 눈빛으론 환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당한 게 많았는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금태양의 추한 모습을 보고 통쾌해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나는 다시 금태양에게 다가갔다. 금태양은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었다.

과다 출혈의 여파인지 그의 몸에는 생기가 없었다. 이대로 두면 일어나는 건 고사하고 얼마 안 가 죽을 것이다.

나는 그런 금태양을 내려다보면서 진중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사과해라.”

“뭐, 라고……?”

“날 밀치면서 욕한 것도, 내 여자 추행한 것도 전부 사과해.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살려는 줄 테니까.”

선택은 네 몫이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덧붙이자 금태양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놈은 핏발 선 눈으로 날 노려보았고 성난 짐승처럼 숨을 씩씩 몰아쉬었다.

“웃기지 마…… 웃기지마, 웃기지마아아악!!”

미친 듯이 소리친 금태양이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롱소드를 휘둘렀다. 역시 사과할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안타깝게 됐다. 놈이 조금만 덜 멍청했다면 죽음만은 면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공격 패링을 시도했다.

티이잉!

“……?!”

금태양의 롱소드가 저 멀리 튕겨져 나간다. 눈먼 공격만큼 패링하기 쉬운 것도 없다.

아예 무기를 놓쳐버린 금태양은 당황을 터뜨리며 날 바라보았다. 놈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됐다. 이윽고 난 마신화된 왼손을 놈의 복부에 쑤셔 박았다.

푸후우우욱!!

“크훅?!”

피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금태양. 다음 순간 놈의 뱃속에서 내장을 뽑아냈다. 뻥 뚫린 구멍을 통해 선홍색 장기들이 쏟아져 내렸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단칼에 죽여 버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편하게 죽이기엔 내가 받은 모욕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배를 움켜쥐며 몸부림치는 놈 앞에 쭈그려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생각 좀 하고 행동하지 그랬어. 본인이 아무리 잘 났어도 남을 막 무시하고 그러면 안 되지.”

“사, 살려…… 살려줘……!”

금태양이 내게 손을 뻗는다. 이제야 본인의 처지를 깨달은 모양이다. 죽음 앞에선 누구나 작아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 놈의 생명력은 0이 됐다. 목숨은 붙어 있지만 시스템상으론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 포션이나 회복 주문 정도론 살리지 못한다.

나로선 참 유감이었다. 비록 나와 나나를 욕보인 놈이긴 하지만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이곳이 게임 세계라고 해도 살인은 유쾌하지 않으니까.

“넌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어. 율리아나에 있는 사제가 전부 몰려와도 못 살려.”

“아, 안 돼……! 안 돼……! 내, 내가…… 쿨럭!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한 번만 용서……! 쿨럭! 쿨럭!!”

놈이 기침할 때마다 내장 조각이 섞여 나왔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살기 위해 발악하는 꼴이라니. 마치 사람이 벌레가 된 것 같지 않은가.

“나는 널 못 살려. 그래도 죽인 건 미안하니까 가는 길이 편하도록 의식은 치러주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금태양을 가리켰다. 저승사자가 그를 잘 데려갈 수 있게 지목하는 것이었다.

“흡하, 흡하, 흡하!”

그 후 나는 금태양의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비단 한 곳에서만 도는 게 아니라 좌우상하를 이동하면서 춤추듯이 돌았고 끝으론 금태양의 배 위에서도 돌았다.

“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티배깅처럼 보이겠지만 나름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의식을 진행할수록 금태양은 더욱더 고통스러워했고 내 발밑에선 내장이 밟히는 감촉이 느껴졌다.

허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 의식은 저승사자가 오기 전엔 절대 멈춰선 안 된다. 그러면 죽은 자의 영혼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죽을 때까지 춤을 멈추지 않았다.

신령에게 기도를 올리는 무당처럼, 장래식장을 빛내주는 관짝 소년단처럼 열정을 다해서 몸을 움직였다.

“그, 그만 두십시오!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머뭇거리던 경비병 중 하나가 내 앞으로 와서 제지를 가했다. 그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마치 봐선 안 되는 끔찍한 무언가를 목도한 표정이었다.

한 명이 움직이자 다른 경비병들도 뒤늦게 내 주위를 포위했다. 그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 의식을 봐서 그런지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 같은 기색이다.

“다, 당신은 길드 홀에서 사람을 죽인 것만으로 모자라 그의 시신으로 끔찍한 의식까지 거행했습니다! 하여 우리는 당신을 율리아나의 경비 본부로 압송할 겁니다! 순순히 투항하지 않으면 무력을 행사하겠습니다……!”

경비병의 말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난 완전히 포위됐다. 빠져나갈 곳은 없으며 정문에선 더 많은 경비병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난 경비대에게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겠지. 사람을 죽였으니 그대로 단두대행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다.

이렇게 빨리 쓸 줄은 몰랐지만 지금 내 손엔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있으니까.

“아 수고 많으십니다, 여러분. 소란 피워서 정말 죄송해요. 얌전히 따라갈 테니까 잠깐 여기 좀 봐주실래요?”

경비병들에게 말하며 나는 벨트 주머니에서 면죄부를 꺼내들었다.

맨 인 블랙이 기억 소거장치를 꺼내는 것 마냥 사람들의 이목을 모은 나는 이윽고 면죄부의 효과를 발동했다

============================ 작품 후기 ============================

퀴즈 등록했습니다. 이번엔 좀 어렵게 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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