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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성벽 율리아나
“네? 무령을요?”
“응! 보자마자 엄청 마음에 들더라고! 저 아저씨가 부른 것보다 많이 쳐줄 테니까 우리한테 팔아주라 응?”
두 손을 모으며 부탁하는 은발의 여성. 윙크하며 애교부리는 게 엄청 귀여웠다. 성숙한 누님이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나로선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나는 곧 수상쩍은 기운을 느끼고 여성의 차림새를 살펴봤다.
그녀가 입고 있는 건 전형적인 기사 장비였다.
노출이 꽤 심하지만 저 코트 형태의 복장은 엄연히 플레이트 아머다. 높은 근력과 체력을 요구하며 그에 따라 여성의 주력 클래스도 주술사 보단 기사 혹은 전사일 것이다.
더군다나 착용한 무기도 묵직한 메이스와 방패. 따로 주술 관련 장비는 착용하지 않다. 서브 클래스로 주술사를 키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여성이 주술사들의 전용 무기인 무령을 탐낸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수집용이라면 납득은 하겠지만 그래도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이, 이보세요. 이미 거래 성사된 걸 갑자기 그렇게 채가면 곤란하죠. 원하신다면 제가 팔아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서류 작성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게…….”
“그렇지만 지금 바로 갖고 싶은걸요. 어때 프랑? 네가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
반박하는 여기사의 부름에 또 다른 여성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붉은색 장발 위에 넓은 챙 모자를 쓴 여성. 어깨엔 깃털로 장식된 망토를 걸쳤으며 망토 안쪽에는 검은색 비키니 형태의 옷을 입고 있었다.
복장도 그렇고 손에 쥔 지팡이도 그렇고 그녀의 직업은 마법사 같았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평범한 마법사 보단 마녀에 가까웠다.
“후후훗……. 그러게. 이렇게 예쁜 무령은 쉽게 찾아볼 수 없으니까. 수집품 삼아 숙소에 걸어두면 좋겠어.”
여기사의 말에 대답하며 카운터 앞으로 온 마녀. 그녀는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잔뜩 풀어진 얼굴로 나와 거리를 좁혔다.
“……!”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망토 안쪽에 있는 그녀의 요야한 몸매가 한 눈에 들어왔다.
여기사 누님도 한 몸매 하는데 이 누님은 아예 반쯤 벗고 있어서 그 아름다운 자태가 훤히 드러났다. 가슴은 또 어찌나 큰지 나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정도였다.
“어, 언니 나 죽어어어엇……!!”
아니나 다를까 내 곁에 있던 나나도 마녀 누님을 보고 고간을 감싸 쥐고 있었다. 네가 대체 뭐 때문에 거기를 가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내게 나나를 신경 쓸 틈 같은 건 없었다.
어느덧 내 맨살에 마녀 누님의 젖가슴이 닿아 있었던 것이다.
“와, 와아……!”
“귀여운 오빠?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잠깐 무령 좀 봐도 될까?”
녹아내리는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였다. 마치 귀에 꿀을 바르는 것 같은 감촉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하지만 이건 나와 나나가 함께 노력해서 얻은 공동 자금이다. 내 멋대로 다른 사람에게 냉큼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여자들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다, 다키님! 빨리! 빨리 보여주죠! 이 언니들이 더 좋은 가격으로 사줄 수도 있잖아요! 하앙, 하아앙……!”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 내 옆에 착 달라붙은 나나가 신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새빨개진 귀를 연신 쫑긋거리면서 마녀 누님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흥분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게 무슨 꼴인가 싶었지만 이내 수긍했다. 보여주는 것만으론 딱히 문제될 게 없으니까. 설마 받자마자 튀지는 않겠지.
“그, 그러시죠…….”
“후후훗, 고마워.”
몰래 매혹 마법이라도 쓴 거 아닐까. 그녀에게 무령을 건네줄 때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내 팔을 조종하는 기분이었다.
내게 무령을 건네받은 마녀는 한 차례 눈웃음을 짓고 그것을 꼼꼼히 살펴봤다. 대머리 아저씨 못지않게 섬세히 무령을 다룬 그녀는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굉장하네……. 이렇게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 무령은 정말 오랜만이야. 가지고만 있어도 주술 성능이 배는 오르겠는걸. 이 정도 무령이면 율리아나 전역의 주술사들이 눈이 뒤집어져서 달려들겠어.”
“이야, 그 정도야? 그러면 얼마 정도에 팔릴 것 같아?”
“흐으음…… 못해도 6만…… 구매자를 잘 만난다면 7만쯤은 거뜬히 받을 수 있겠는걸.”
이야기하는 내내 마녀는 날 곁눈질했다. 그 요염한 눈빛에 매료당하길 잠시, 대머리 아저씨가 제시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가격을 듣고 경악을 터뜨렸다.
“7만……!!”
나나 역시 화들짝 놀라면서 소리쳤다.
7만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그녀는 곧 고개를 홱 돌려 대머리 아저씨를 노려보았다. 대머리 아저씨는 뭐라 변명도 못하고 자신의 맨들맨들한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어때? 원한다면 지금 당장 7만에 사줄 수 있는데. 우리한테 팔지 않을래?”
무령을 돌려주면서 마녀 누님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당장이라도 발기할 것 같았다.
내가 슬슬 하반신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을 때, 나나가 내 망토 자락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저 언니들한테 팔죠 다키님……! 7만이면 원화로 700만원이란 소리잖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7만은 너무 세지 않아……? 좀 수상한데…….”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쥬지로 혼내주면 되죠……! 뭣보다 이 기회에 저 예쁜 언니들하고 연줄 틀수도 있잖아요……!”
이성은 조금 더 고민해보라고 말했지만 내 자지는 너무나 솔직했다.
나는 끝내 나나의 말에 넘어갔고 대머리 아저씨를 보며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죄송해요 사장님. 저희도 돈이 급해서 어쩔 수가 없네요.”
“어흠, 흠……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야 말로 저 아가씨들한테 고맙죠. 하마터면 손님을 바보로 만들어버릴 뻔했으니까요. 다음에 급전 필요해지면 얼마든지 오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전리품들을 챙기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 내 뒤를 나나와 여기사, 마녀가 따랐고 우리는 가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한적한 장소로 이동했다.
한동안 걸은 우리는 웬 키 큰 나무가 자라있는 뒷골목으로 오게 됐다. 광장과 가까운 곳이어서 그런지 뒷골목치고는 꽤나 청결했으며 조금 그늘지긴 했지만 빛도 잘 들어왔다.
그렇게 나무 앞에 있는 밴치에 도착한 직후, 여기사가 우리한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속여서 미안……! 사실 우린 그 무령 살 생각 없어……!”
“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두 손을 모으며 말하는 여기사.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미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왜 갑자기 사과하는 거지? 설마 뒤통수치려 하는 거 아니야?
순간 온갖 생각을 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했다. 허나 딱히 습격해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 여기사 쪽에서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거긴 원래 급전 필요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거든. 그런데 너희 같은 초보 모험가들이 뭣 모르고 비싼 물건을 팔려고 하니까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대머리 아저씨도 가게에서 나올 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애당초 거기는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다소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물건을 파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저희들 도와주려고 굳이 상관없는 일에 끼어드신 거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나나가 두 사람을 보며 질문했다. 그에 여기사와 마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혹시 괜한 오지랖이었니?”
“아뇨, 아뇨. 덕분에 호구 잡히지 않았으니 오히려 감사해야죠.”
“맞아요! 7만까지 올라가는 물건을 고작 2만 3천에 사려하고! 싼 거 좋아할수록 대머리 된다더니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네요!”
감사하는 내 옆에서 나나가 분개하며 소리쳤다.
누구 보다 열심히 가격을 올리려 한 그녀인 만큼 대머리 아저씨의 행보에 큰 불만이 생겼으리라. 그 자리에 깽판을 부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에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어. 그 아저씨는 업계 표준대로 장사한 것뿐이니까. 오히려 그 사람 입장에선 우리가 상도덕 없었던 거지.”
나나의 거센 비난에 여기사 누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직거래랑 전당포 매입의 가격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7만과 2만 3천은 너무 차이가 심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이쪽 업계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선 뭐라 할 처지가 못 됐다.
“아무튼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두 분 덕분에 손해 보지 않았어요.”
“이 정도 가지고 뭘. 모험가 생활 선배로서 이 정도는 도와줘야지. 우리가 원래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후후훗…… 뭣보다 예쁜 아이들이 곤란해 하는 건 보기 힘들거든. 두 사람 다 그렇게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어……?”
내가 다시 한 번 인사하자 여기사와 마녀가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했다. 그 와중에 마녀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와 나나를 번갈아 보았다.
뭐랄까, 예쁜 누님이 봐줘서 좋기는 한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고인물에게 들박당하기 1초 전인 뉴비의 심정이라고 할까. 조금만 방심했다간 저 누님들에게 잡아먹힐 것 같았다.
“언니들이야 말로 엄청 예쁜 걸요! 너무 섹시해서 없는 것도 서버릴 것 같다구요~!”
“아니 나나야 좀……!”
또 음담패설을 시작하는 나나의 입을 가까스로 틀어막았다. 그런 내 행동에 두 사람은 귀여운 강아지라도 보듯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후훗…… 후후훗…….”
“아아 진짜…… 너무 귀엽다니까…….”
아니, 비단 흐뭇한 표정은 아닌 듯했다. 눈빛이 서서히 변하는 게 느껴졌다. 정말 우리를 들박하기 위해서 접근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소름 끼치는 기분을 느끼길 잠시, 나는 문득 그녀들이 걱정되어 질문을 건넸다.
“그나저나 괜히 저희 때문에 두 분이 피해 받으시는 건 아닌가요? 저기 나름 큰 가게던데…….”
방금 우리가 들른 전당포는 주변 상점 중에서도 특히나 큰 가게였다. 다른 곳이 구멍가게 정도라면 대형 마트쯤 되는 규모였던 것이다.
그런 곳이라면 도시 상권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누님들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때문에 전리품 거래에 차질이 생기면 너무 미안하지 않는가.
“괜찮아, 괜찮아~ 우리야 항상 길드랑 거래해서 별 문제없거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리고 이건 순전히 호의가 아니라 일종의 관행이야.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쿨하게 말하는 여기사 누님의 말에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모험가들한텐 그런 것도 있나요?”
“응, 기본적으로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게 있어. 초보자들 돕는 것도 그 중 하나고.”
말문을 연 여기사 누님이 그 관행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줬다.
자신들도 풋내기 시절에 도움 받은 적이 있으니 초보자를 돕는 거다. 그러면 내게 도움을 받은 초보자도 언젠가 다른 초보자들을 도와줄지 모른다.
그렇게 좋은 관행이 이어지면 힘겨운 모험가 생활도 좀 더 할 만해지지 않겠냐.
이래저래 이유를 댔지만 결국엔 그녀들이 의협심 강하고 이타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듯했다.
아무리 모험가들 사이의 관행이라고 해도 남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주저하지 않고 행하는 여기사와 마녀는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자기소개도 안 했네. 난 니아. 이쪽은 프란체스카야. 우리 둘 다 골드 등급 모험가고 특별한 일 없으면 보통은 율리아나 근처에서 활동해.”
“잘 부탁할게……. 귀여운 아가들 이름도 알려줄 수 있을까……?”
그녀들이 사람 좋게 이야기하자 우리도 대답해야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됐다. 나는 최대한 어리숙하지 않게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 네…… 저는 감다키고 얘는 제 동행인 나나예요. 모험가 생활을 시작한진 얼마 안 됐습니다.”
“흐으응…… 그렇단 말이지…….”
내 소개를 들은 프란체스카가 입술을 핥았다. 먹잇감을 앞에 둔 암컷 맹수처럼 말이다.
그 요염하고도 치명적인 행동에 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가뜩이나 그녀의 옷차림이 너무 야해서 시종일관 발기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급기야 프란체스카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가슴께를 스윽 훑었다.
“그런데 왜 팬티만 입고 다니는 거야? 다른 남정네들처럼 근육 자랑하려고 벗는 건 아닌 거 같은데…… 혹시 그쪽 취향……?”
“흐읍……!”
피부를 스치는 손가락의 감촉에 나는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나가 부러움에 가득 찬 시선을 보냈다.
“치, 치사해요! 다키님만 추행 당하고!”
그런 나나의 말을 흘려들으며 나는 부끄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 제가 저주 비슷한 거에 걸려서요. 허리에 두르는 것 외엔 아무 것도 못 입는 입장입니다…….”
패션이라고 둘러댈까 싶었지만 괜히 이상한 새끼라고 오해할 수 있으니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프란체스카는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 몸을 이곳저곳 더듬었다.
“후후훗…… 재미있는 저주네……. 난 또 엄청난 노출증 환자인 줄 알았지.”
“그러기엔 언니도 엄청 벗었는데요! 누가 노출증 환자인지 모르겠네요!”
하나하나 탐닉하듯이 몸을 훑는 프란체스카. 그녀에게 나나가 거세게 반박했다.
물론 화가 나서 그런 건 아니고 프란체스카의 자태를 마음껏 감상하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에 프란체스카는 너무나 당당한 어조로 날 껴안으면서 말했다.
“그야 나는 진짜 노출증 환자거든. 야하게 입고 다녀야 남자들이 잘 꼬이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