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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67화 (6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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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나나

두 번째 사정 이후 우리는 정말 한 쌍의 짐승처럼 쉴 새 없이 교미를 이어갔다.

발동이 걸린 나나는 암캐처럼 헐떡이면서 시종일관 날 유혹했고 나는 거기에 완전히 넘어가 그녀를 사정없이 따먹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나와 나는 정액 범벅, 애액 범벅이 된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정신없이 박던 도중 우리도 모르게 기절해버린 모양이다.

“헤헤헤…… 첫 경험인데 엄청 많이 해버렸네요…….”

“그러게…….”

정액으로 더럽혀진 몸을 내려다보면서 나나 멋쩍게 웃었다. 나 역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절잠에서 깨어난 우리는 몸을 씻기 위해 개울로 왔다.

야외에서 뒹군 탓에 비단 정액과 애액만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우리들 몸에는 흙이나 풀물, 낙엽 조각 같은 게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 상태로 잠드는 건 무리여서 지친 몸을 이끌고 물가까지 오게 된 거다.

나야 산양의 뿔의 효과 덕분인지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지만 나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내가 부축해줘야 했다.

“아프거나 그러진 않았어? 이제 와서 말하긴 뭐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좀 험하게 대한 거 같은데…….”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며 나나에게 물었다. 걱정어린 질문에 나나는 얼굴을 발그레 붉힌 채로 장난스럽게 웃었다.

“박을 때는 완전 폭군이셨으면서 끝나자마자 초식남 코스프레라니~ 다키님도 은근 다중이 기질이 있으셨군요!”

“다중이라니……. 나나야 말로 더 해달라고 계속 애원했잖아?”

여자 탓하는 남자가 얼마나 꼴불견인지는 알고 있지만 나로선 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다 시절이었을 무렵 나는 여자와 섹스할 때 배려심 가득하고 젠틀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었다.

실제로 헤베와 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얌전하지 않았는가. 그런 내가 그토록 사나운 짐승이 된 이유는 다름 아닌 나나에게 있었다.

내가 가학적인 성향을 보일수록 그녀도 더욱 기뻐하면서 교태를 부렸다. 어떤 행동을 해도 추잡한 미소를 지으며 교성을 내지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행위도 점점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내게 이상한 능력을 준 검은 산양의 뿔에 있지만 내가 짐승처럼 변한 데에는 나나의 책임도 있다는 거다.

“다키님이 너무 잘 하셔서 절로 애원하게 되더라구요. 첫 경험이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은 몰랐어요. 아픈 것도 금방 잊어버리게 된 거 있죠?”

“그렇다면 다행인데…….”

“뭐 딥 쓰롯할 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지만 나중엔 오히려 스릴 있어지더라구요! 다음에 할 때도 오늘처럼 과격하게 부탁드릴게요!”

아무래도 나나한테 이상한 취향을 심어줘 버린 것 같다.

오늘을 계기로 나나가 진성 마조히스트가 되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됐지만 동시에 기대되기도 했다.

사실 나도 이런저런 성적 판타지에 관심이 많다. 밧줄로 묶은 채 박는다거나, 주종관계를 맺고 애완견 취급하거나 그러는 거 말이다.

나나와 함께 그런 플레이를 한다면 바랄 게 없겠다. 밧줄에 묶인 나나가 앙앙 울어주는 상상만 해도 다시금 발기할 것 같았다.

허나 내 문란한 상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나와 나나의 입장이 어떤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그래, 기회가 된다면 말이지.”

그녀의 요야한 자태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율리아나에 도착하면 나나를 신전에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재앙신들을 토벌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나를 데려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 번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힘들 거다. 나는 재앙신들을 찾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닐 테고 나나는 신전의 보호를 받으며 줄곧 율리아나에서 생활할 테니까.

어쩌면 오늘처럼 같이 모험하는 것도, 몸을 섞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처음 만날 때부터 그녀와 나 사이에는 선이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세요, 다키님?”

내가 상념에 빠져들 무렵 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새 씻기 시작한 모양인지 찰랑거리는 금발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쏟아져 내리는 달빛과 어우러져 이야기 속의 나오는 요정을 보는 듯했다. 순간 나나의 모습에 넋이 나갔던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멍 때린 거야. 신경 쓰지 마.”

“그러세요……?”

내 대답에 나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내 속내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기색이었다.

한동안 날 뚫어져라 바라보길 잠시, 나나는 고개를 돌리면서 지나가듯 이야기했다.

“……제가 섹스할 때 한 얘기요, 그거 진심이었어요.”

“응……? 얘기라니, 무슨 얘기?”

“다키님하고 쭉 같이 있고 싶다는 얘기요……. 다키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 그러고 싶다구요…….”

정말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걸까.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적잖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두 번째로 사정하기 전에 비슷한 얘기를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섹스에 몰입하느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줄 알았는데 설마 진심으로 한 얘기였을 줄이야.

뭐라 대답해야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내가 주저하는 동안 나나는 태연하게 개울물로 몸을 씻었다. 허나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날 향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어?”

한참이나 말을 고르던 나는 이내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내 질문에 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나나에게 다가가며 나는 최대한 진중하게 이야기했다.

“내 목표는 재앙신과 마신들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거야. 엄청 힘든 일이고 조금만 방심해도 죽거나 크게 다칠 수 있어. 수 백, 수 천 번 죽어가며 깨는 게임을 한 번도 안 죽고 깨야 되는 거라고.”

지근거리까지 다가간 후 나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대답을 요구하듯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얼마 후 나나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다키님만 허락해주신다면 전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어요.”

“내 말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죽을 수도 있다니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똑히 들었어요. 죽는 것도 무섭지 않고요. 아니면 다키님이 저랑 같이 다니기 싫으신 건가요……?”

너무나 쉽게 나온 대답에 답답한 심정이 들었다. 나는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거듭 설득했다.

“물론 나도 나나랑 같이 여행하면 좋을 것 같아. 하지만 내 개인적인 바람 이전에 네 안전부터 생각해야지. 언젠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텐데 사지 멀쩡히 돌아가야 되지 않겠어?”

나는 이미 원래 세계로 돌아가길 포기했지만 나나는 그렇지 않을 거다. 그녀에겐 소중한 일상과 가족, 친구들이 있을 테니까.

나와 함께 한다는 건 그 모든 것을 등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초에 게임을 클리어한다고 해서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거란 보장도 없고 죽을 확률만 더 높다.

결과적으로 나와 함께 다니는 건 나나에게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나는 구태여 동행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후후훗…….”

“응?”

내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나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입이 귀여운 초승달을 그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끼며 나나에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웃어?”

“아뇨 그게…… 히히힛, 다키님이 진지하게 이야기하시는 게 너무 귀엽고 멋있어서요. 기분 좋아져서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어요.”

거기까지 말한 나나가 내 목에 팔을 감아왔다. 그로 인해 나와 나나의 몸이 바싹 밀착됐다. 가슴과 배가 맞닿고 서로의 숨결이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끌어안은 나나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한동안 요염한 미소를 짓던 그녀는 각오와 애정이 담아 입을 열었다.

“낮에도 한 번 얘기했잖아요. 다키님한테 전 그냥 시청자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요. 저 다키님 예전부터 계속 좋아했어요. 지금도 이렇게 같이 있어서 엄청 두근거리구요.”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좋아하는 스트리머 때문에 목숨까지 걸 거야? 너한테도 가족이랑 친구가 있잖아. 그 사람들 생각도 해야지.”

“…….”

가족이란 말이 나오자 나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곧 그녀의 표정이 심란하게 일그러졌고 눈가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뒤늦게 가족의 그리움을 떠올린 건가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일말의 그리움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도리어 짜증이나 지겨움 같은 감정만 엿보일 뿐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고민하던 나나는 이윽고 시원스레 얘기했다.

“미친년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 원래 세계에 미련 같은 거 없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매달리는 거예요. 돌아갈지, 다키님이랑 같이 있을지 선택하라고 하면 후자를 고를 거고요.”

“대체 원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에이~ 그런 건 프라이버시잖아요~ 다키님이라 해도 이야기하기 부끄럽다구요~”

낮게 내려앉았던 목소리가 활기를 되찾았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귀엽게 애교를 부리면서 나와 몸을 비볐다.

차가운 물속에서 그녀와 몸을 비비자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간신히 가라앉은 자지도 어느새 벌떡 일어나 나나의 배꼽에 닿았다.

“아무튼! 저는 원래 세계에 돌아가거나 신전에 들어가는 것보다 다키님이랑 같이 다니는 게 좋아요! 신전은 고리타분해서 씹노잼일 거 같다구요~!”

“아, 알았어 나나야! 알았으니까 자꾸 비비지 마!”

“왜요~? 금발 엘프녀가 부비부비 해주니까 못 참겠어요? 자지도 다시 발딱 섰는데 바로 2차 달릴까요~?”

음탕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내 목을 간지럽히는 나나. 진지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섹스하기 직전으로 변모했다.

마음 같아선 그녀 말대로 한 번 더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꽈악 껴안은 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그전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나랑 같이 다니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더럽거나 불쾌한 일도 많이 해야 돼. 그래도 정말 같이 갈 거야?”

“그럼요! 전 이미 결정했다고요! 하수구에서 뒹굴어도 다키님과 함께라면 버텨낼 수 있어요!”

나나의 눈빛은 무척이나 결연했다.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을 듯했다.  마냥 내 말만 따랐던 애가 이렇게 나오니 더욱 완강해보였다.

“좋아, 나나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거절하지 않을게. 마침 힐러 한 명 필요하던 참이었으니까.”

“어예! 맡겨만 주세요 다키님! 놀들 잡으면서 대략적인 감은 익혀뒀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힐러가 되겠어요!”

“그래, 대신 나랑 약속할 게 있어.”

환호하는 나나를 진정시키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 나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고래를 갸웃거렸다.

“약속이라뇨? 어떤 건데요?”

“지금이야 나랑 같이 다니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나중엔 생각이 바뀔 수 있어. 무섭거나 힘들어지면 포기해. 알겠지?”

“흠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일단 새겨듣도록 하죠! 저는 오늘부터 다키님 노예 1호니까요! 주인님 말은 뭐든지 경청하는 게 노예의 덕목이죠~”

이제는 아예 노예까지 자처하는구나. 저렇게 부끄러운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을 수 있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별난 애다.

“그나저나 날 밝으려면 아직 한참 남은 거 같은데…… 진짜로 2차 달리는 거 어때요 다키님……?”

나나가 요염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자지를 움켜쥔 손을 천천히 흔들면서 내 가슴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개울가에서 하면 꽤 추울 텐데 괜찮겠어?”

“헤헤헤, 다키님이 꼬옥 껴안아주실 거잖아요~ 춥기는커녕 금세 더워질 걸요?”

둘 다 서로의 알몸을 보고 있었던 탓에 흥분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 둘 다 진즉에 흥분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간에 나와 나나는 곧 서로를 끌어안으면서 질척하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혀를 빠는 동안 그녀의 젖가슴을 쥐어서 부드러움을 즐겼다.

그렇게 본격적인 2차전에 돌입할 무렵이었다.

“응……?”

“하아, 하아…… 왜요 다키님……? 뭐 있어요……?”

문득 기척을 느낀 내가 고개를 들었다.

기척이 느껴진 곳은 다름 아닌 하늘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종종 달빛에 웬 새 한 마리가 비쳐졌다.

그것은 우리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맴돌다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거리가 멀어질 때 맹금류 특유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웬 새지……? 부엉이는 아니었는데…….”

“그러면 올빼미겠죠 뭐~ 야행성 새가 걔네들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와 다르게 나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하긴, 산에서 새가 날아다니는 게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섹스하기 전에 그런 걸 신경 쓰는 내가 이상한 것이리라.

“그래 뭐 그렇겠지. 미안해 나나야 이상한데 신경 써서.”

“헤헤 괜찮아요. 대신 이번에도 잔뜩 기분 좋게 해주세요.”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1차전 못지않게 격렬하고 난잡한 섹스를 했다. 시계가 없어서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못해도 새벽 3시가 넘도록 몸을 섞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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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와 나나가 섹스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 한 마리의 맹금류가 산 중턱을 향해 날아갔다. 달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것이 평범한 새는 결코 아니었다.

놈이 향한 방향은 다키의 이동 경로와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에 따라 신령들의 환영도 전혀 없었다. 비록 산세가 험하긴 하지만 신령이 다니는 길 보단 훨씬 안전한 곳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날았을까. 녀석은 나무 사이를 지나 한 여성의 팔에 내려앉았다. 후드를 뒤집어 쓴 여성은 맹금류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질문을 건넸다.

“어때? 수확은 좀 있었어?”

여성의 질문에 맹금류는 자신 한쪽 다리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특이하게 생긴 장신구가 걸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눈동자처럼 생겼다.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장신구를 확인한 여성. 그녀는 곧 눈을 크게 뜨면서 소리쳤다.

“차, 찾았구나! 틀림없이 그 사람이야! 이 사람이 대악마를 쓰러뜨린 게 분명해!”

여성이 들여다본 장신구 안에는 다키와 나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알몸으로 서로를 껴안고 있는 광경은 무척 민망했으나 여성은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빨리 신전에 알려야 돼……! 이 사람이야 말로 악마들을 몰아낼 유일한 희망이야!”

============================ 작품 후기 ============================

77페스티벌 주간 최우수상 감사합니다. 완결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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