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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64화 (6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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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 엘프녀와 야외에서

‘어떻게 된 거지……?’

검은 산양의 뿔은 애당초 한 번 착용하면 벗을 수 없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런 장신구가 아예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이곳은 게임 세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

중요한 건 왜 지금 이 순간에 몸속으로 들어갔냐는 거다. 몸 안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처음 착용했을 때부터 그랬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잖게 신경 쓰인 나는 왼팔을 들어서 검은 산양의 뿔을 확인했다.

문신으로 변한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머지않아 관련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검은 산양의 뿔   등급 불명

분류: 팔찌

상승 스탯: 생명력 16, 지성 6

내구도: 무한

부가 효과: 착용 시 귀속되며 다시는 벗을 수 없다. 숫산양과 같은 왕성한 정력을 영구적으로 얻는다. 모든 이성이 착용자에게 큰 호감과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된다.

[산양 뿔 모양의 팔찌. 현재는 진정한 힘을 발현하여 문신의 형태를 취했다. 굉장히 모독적인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보기만 해도 외설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음란하고도 강대한 여신의 축복이 담겨 있다. 그 신은 일반적인 신들과는 궤를 달리 하는 다른 차원의 외신. 정체를 파헤치려 했다간 미쳐버리고 말리라.]

아니나 다를까 장비 효과도 바뀌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내구도가 무한이 되었다는 점이다.

가디스 던전 내의 있는 모든 아이템을 접해본 나지만 그중에서 이런 효과를 가진 장비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최대 내구도가 감소되지 않는 장비나 파괴되지 않는 장비는 있어도 내구도가 무한이라 표시된 장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가디스 던전의 장비라기엔 너무나 이질적인데 더 이상한 효과까지 새로 붙었다.

모든 이성이 나에게 호감과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효과라니. 왕성한 정력도 심상치 않았지만 이건 대놓고 야겜에서나 나올 법한 효과다.

마치 검은 산양의 뿔이란 장비가 가디스 던전엔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이라는 걸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나가 왜 이러는지는 알겠어.’

정황상 검은 산양의 뿔이 강화된 원인은 에리스 여신이 들어준 소원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이루어준 소원은 내가 팬티 한 장만 입고 다녀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내 모습을 본 여성들이 경멸이나 조소의 시선을 보낸다면 길거리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치를 겪겠지만 반대로 호감과 성적 매력을 느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참 간단명료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해결법이었다.

모든 여성들이 날 매력적으로 보게 만들어 추한 모습을 상쇄해버리다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황당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애초에 에리스는 어떻게 검은 산양의 뿔을 강화할 수 있었던 거지?

원작 게임에선 장신구를 강화하는 시스템 같은 건 없었다. 더군다나 검은 산양의 뿔은 아무리 봐도 원작 게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체불명의 장비 아닌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이 새로 접하게 된 지식들과 충돌하면서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허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살며시 닿은 나나의 어깨가 내 고민을 깔끔하게 날려버린 것이었다.

“……!”

가뜩이나 손을 잡고 있어서 상당히 가까웠는데 방금 전의 접촉으로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과장 좀 섞어서 내 심장 소리가 그녀에게 들리는 건 아닐지 걱정될 정도로 바싹 밀착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까요 다키님…… 처음에 절 구해주신 보답…… 아직 못 드린 것 같은데요…….”

“으, 응? 보답이라니? 아, 아아…… 그거?”

순간 당황한 나였지만 나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정신머리가 복잡해도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그녀와의 첫 만남은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뭔가 물리적인 보상을 주기로 했지. 그리고 나나는 이때까지 나한테 마땅히 보답이라 할 만한 것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얘기를 왜 꺼내는 걸까. 내 머릿속에서 온갖 가설들이 떠올랐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또 찐따 특유의 망상증이 도지는 건가 싶었으나 그렇지는 않은 듯했다.

그녀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제가 다키님한테 어떻게든 꼭 보답하고 싶은데…… 지금은 마땅히 드릴 게 없거든요…….”

“그, 그야 그렇겠지. 방금 막 게임 세계에 떨어졌는데 가진 게 뭐가 있겠어?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나나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강가에서 날 말려 세울 때와는 다르게 애틋한 감정이 엿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나나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허나 천성이 찐따인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멍청하게 말을 돌리고 말았다.

큰일이다. 그녀 딴에선 나름 큰 맘 먹고 꺼낸 얘기일 텐데 이런 식으로 철벽을 쳐버리다니.

본의 아니게 여자 마음을 1도 모르는 고자 새끼를 가장하고 말았다. 실상은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데 말이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인싸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바꿔봐? 하지만 내가 그런다고 해서 잘 먹힐까? 오히려 더 찐따처럼 보여서 분위기만 싸해지는 거 아니야?

헤베와의 섹스로 아다에서 탈출한 나였지만 여태껏 모쏠 아다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이런 상황에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당장 핸드폰을 켜고 꺼무위키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으나 지금 날 도와줄 위키 사이트 같은 건 없다. 순전히 내 힘과 지혜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다키님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전 신경 쓰여요.”

“어, 어……?”

그때였다. 나나가 갑자기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제동과 함께 그녀는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자연스레 나와 나나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게 됐다.

“다키님은 제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주셨잖아요! 그런 분한테 아무런 보답도 하지 않고 버스만 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전부 할 테니까 뭐든지 요구해주세요……!”

뭐든지.

이 얼마나 감미로운 말인가. 에리스의 제단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주어진 무궁무진한 선택지에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허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느덧 나나는 내 양손을 붙잡은 채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싹 밀착한 그녀의 가슴이 내 몸과 맞닿아 모양을 바꿨다. 날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솔직히 난 첫 만남부터 몸을 섞는 걸 좋게 보지 않았다.

나한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거란 확신과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남성들을 향한 질투심으로 인해 무분별한 원나잇에 거부감이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나한테도 그런 기회가 생기니까 딱히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만난 지 이틀 밖에 안 됐었던 헤베와도 진득하게 섹스하지 않았는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했다.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어느덧 찐따 같은 망설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나의 가슴에 손을 뻗고 있었다.

“……!” “그러면 이런 것도 돼?”

G컵 정도의 거유가 내 손에 쥐어졌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주무르면서 나나의 얼굴을 직시했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척추까지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내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나나가 화들짝 놀랐다. 그녀의 동공이 커지는 게 실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급발진 했나 싶었지만 다행히 나나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네.”

살며시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나나. 의심할 여지가 없는 승낙 의사다.

비단 말 뿐만이 아니었다. 사제복의 얇은 천 너머로 무언가가 딱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끝내 옷 너머로 툭 튀어나온 그것은 다름 아닌 나나의 유두였다. 제법 큼지막한 유두가 한껏 발기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수줍게 유두를 세우며 섹스 제안에 승낙하는 금발 엘프녀라니. 완전 야겜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다. 그러한 광경이 너무나 흥분돼서 나는 아예 대놓고 발기해버렸다.

팬티를 찢을 것처럼 튀어나온 자지는 부담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이제 와서 숨길 필요도 없으리라.

“여기서 바로 할 거예요……?”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본 나나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자신은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말투였다.

그런 적극적인 제안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여기서는 좀 그렇고…… 야영지에 도착한 다음에 할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완전 산길 한복판이다. 아무도 없고 누가 올 일도 없다곤 하지만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 섹스하는 건 역시 좀 거부감이 들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야영하기 좋은 장소가 나타날 거다. 원작 게임에서도 야영지로 자주 썼던 곳이다.

야외 섹스인 건 변함없지만 수풀 사이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모포를 깔면 그럭저럭 몸을 섞기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네……! 그렇게 하죠……!”

내 제안에 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시금 나와 손을 마주 잡고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부분까지 의욕적인 걸 보니 적잖게 부끄러운 모양이다.

자기가 먼저 권유해놓고 이렇게나 부끄러워할 줄이야. 진짜 졸라 귀엽다.

달리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을 무릅써서라도 나와 하고 싶다는 뜻인가? 그렇다는 건 날 좋아하는 스트리머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거 아니야?

산길을 나아가는 내내 망상이 끊이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뭐가 망상이고 뭐가 그럴싸한 추측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종종 눈에 들어오는 나나의 커다란 젖가슴과 풍만한 엉덩이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온갖 음란한 상상을 하면서 야영지에 다다랐다.

-

야영 준비는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나나가 구해둔 마른 장작 덕분에 모닥불이 금세 완성됐고 모포를 깔기 좋은 평지도 쉽게 발견했다. 모닥불을 피웠을 때쯤엔 하늘이 별로 수놓아졌고 달빛도 환하게 빛났다.

완전한 심야 시간. 수풀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풀벌레와 산새의 울음소리뿐이다. 이곳에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게 다시 한 번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한 명은 대체 누구였던 거지?’

모닥불에 황근과를 굽던 도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송이 출현하는 조건은 신령이 다니는 길에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세 명 이상 입장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나와 나나 외에 다른 누군가가 이 산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체 누굴까. 누가 이 위험천만한 산길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단순히 길을 잃은 조난자? 아니면 뭔가 목적이 있어서 들어온 모험가?

본래 신령이 다니는 길에선 NPC 관련 이벤트가 전무하다 보니 짐작도 가지 않았다. 차라리 상송이 원작과는 다르게 자기 멋대로 튀어나왔다는 가설이 더 신빙성 있을 지경이었다.

뭐, 누가 됐든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않으면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

비록 그 정체불명의 누군가 때문에 상송이랑 죽기 살기로 싸웠지만 본인이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이쪽에서도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나나야, 잠깐 뭐 좀 해야 되는데 불 좀 봐줄래?”

“앗, 네 다키님!”

고민을 접어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나무로 향했다. 나나는 내 부탁대로 모닥불을 지켜보면서 종종 내 행동을 관찰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다키님?”

“혹시 몰라서 야습 방지 좀 해두려고. 자는 도중에 누가 기습하면 곤란하잖아. 그렇다고 보초 서기도 귀찮고.”

나나에게 이야기하면서 나는 알록달록한 실뭉치를 꺼내 나무에 감기 시작했다.

경계실이라는 물건인데, 야영할 때 사용하면 적들의 야습을 방지해주는 유용한 아이템이다.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이 한 데 엮여 있는데 이 중에서 파란색 실을 빼서 내 손에 감고 나머지 실들을 근처에 감아두면 위험한 존재가 접근했을 때 본능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만 해둬도 보초 설 필요는 없어지리라. 감지 반경이 상당히 넓어서 적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고된 하루를 보내서 군대에 있을 때처럼 서로 밤잠을 쪼개가며 시커먼 수풀 속을 들여다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하물며 오늘 밤에는 아주 중요한 일도 있고 말이다.

“후후훗…… 제대로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

그 요염한 목소리에 내 자지가 조건 반사적으로 발딱 섰다.

사실 자지는 아까 전부터 계속 발기해 있었다. 방금 전에는 한층 더 꼴려서 크게 껄떡거렸을 뿐이다.

야영지에 도착한 우리는 몸을 씻고 저녁을 먹은 뒤에 본격적인 행위를 시작하기로 했다.

마침 근처에 오염되지 않은 개울이 있어서 몸을 씻을 수 있었다. 더러워진 옷도 빨아서 말리느라 우리는 지금 몸에 수건 한 장만 두르고 있는 상태다.

나는 물론 나나조차 고작 수건 하나로 그 풍만한 육체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벌써부터 의욕적이네? 나나는 이런 거 익숙한 가봐?”

그런 나나가 대놓고 섹스를 암시하면 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모닥불 근처에 있던 황근과를 집어 들었다. 꼬치구이 형태로 익힌 건데 이렇게 익힌 황근과를 주변에 꽂아두면 냄새가 넓게 퍼져서 짐승들이 다가오지 못한다.

내가 황근과를 꽂을 때, 나나가 손사래를 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그렇게 노는 애 아니에요~ 직접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구요.”

“뭐……? 진짜……?”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나는 당혹을 터뜨렸다.

원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차치하더라도 나나는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이다.

저렇게 귀여운 발랄한 애가 남친 한 번 안 사귀어 봤을 리 없다. 어느덧 내 머릿속에선 그런 인식이 박혀 있었다.

더군다나 나이도 스무 살이나 되지 않았는가. 최소한 처녀는 아닐 거라고 자연스레 확신했는데 본인 입으로 처녀라는 소리를 들으니 꽤나 충격이었다.

물론 마냥 놀라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놀라움은 부수적일 뿐, 나는 더욱 더 큰 흥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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