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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견의 영역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희열이 차올랐으며 온몸에서 소름이 내달렸다.
적의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는 쾌감, 내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런 내 감정을 읽은 건지 도끼잡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놈이 초조해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목덜미에 검을 꽂아 넣었다.
“흐읍!”
[크르읏……!]
카가앙!!
내가 검을 휘두르는 것에 맞춰서 도끼잡이도 반격에 나섰다. 놈의 육중한 그레이트 액스가 내 공격을 튕겨냈다. 과연 정예급 몬스터답게 방어에도 능통했다.
[커허어어어엉!!]
쾌도를 쳐낸 도끼잡이가 일말의 고민 없이 종공격을 날렸다.
직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그레이트 액스. 물론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애당초 목을 노린 것도 튕겨낼 걸 감안한 채 대놓고 지른 거다. 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계획대로 움직여줬다.
“너무 뻔한 거 아니냐!”
[……?!]
도끼가 내 몸을 반으로 가르려던 순간, 나는 공격을 회피하면서 놈의 코앞까지 이동했다.
도끼를 피한 직후 내 움직임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창졸간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멈췄다. 당황하는 도끼잡이의 표정이 보인다.
멈춘 시간이 다시 돌아가려할 때 나는 놈의 턱을 향해서 올려 차기를 날렸다.
파아앗!!
곧게 뻗은 다리에 푸른색 빛줄기가 휘감겼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놀의 턱을 가격했으며 머지않아 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빠가악!!
[캐해액……!!]
놈의 턱을 걷어차면서 확신했다. 방금 공격으로 놈의 턱뼈는 산산조각 났을 거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끼잡이의 거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내가 배운 다섯 개의 스킬 중 마지막 스킬, 격변의 효과였다.
격변
액티브
요구 스탯: 기교 16
비용: 50 기력
사용 조건: 근접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기존의 행동을 즉시 캔슬하고 적 하나에게 올려 차기를 꽂는다. +50퍼센트의 피해를 주며 적이 공격하는 순간에 사용하면 인내력을 무시하고 에어본 시킨다. 인내력이 60 이상인 적에겐 효과가 발동하지 않는다.
어떤 행동이든 즉시 캔슬할 뿐만 아니라 정확한 타이밍에 맞추면 적을 띄우기까지 하는 스킬 격변.
섬격, 바닥 쓸기와 함께 초기 스킬 3대장 중 하나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좋은 두 스킬과 다르게 격변은 일대일 전투나 PVP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만능 캔슬기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기인데 반격 효과로 에어본까지 달려 있다. 이 스킬 하나로 인해 어떤 캐릭터든 기교 빌드 캐릭터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뭣 모르고 선공했다간 격변을 맞고 나가떨어지기 때문이다.
“……!”
중력을 무시한 채 부유한 놈을 노려보며 발도 자세를 취했다. 얼마 후 도끼잡이의 몸이 급속도로 추락했다.
타이밍은 정확하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섬격을 사용했다.
“쯔아아아앗!!”
촤아아아악!!
새하얀 섬광이 도끼잡이의 몸을 갈랐다. 낙하 중인 도끼잡이는 몰아치는 칼날을 곧이곧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놈의 거체는 한순간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두 쪽으로 갈라져 바닥에 떨어졌다.
후두두두둑!!
피와 내장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 한 가운데에 있던 나도 당연히 피범벅이 되었으며 반으로 갈라진 도끼잡이의 시체는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허공에는 붉은색 글씨로 796의 데미지가 떠올라 있었다. 치명타가 발동한 것이었다.
섬격은 반격에 특화된 스킬이기 때문에 그냥 쓰면 조금 밋밋한 데미지가 나온다. 크리티컬이 터져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한 방으론 죽이지 못했을 거다.
역시 무기가 좋아야 된다. 데미지도 데미지지만 쾌도의 치명타 확률, 치명타 피해 증가 효과가 승기를 잡아준 것이다.
쾌도+1 고급
분류: 도 속성: 참격, 관통
공격력: 156 저지력: 15
공격 속도: 매우 빠름
내구도: 50/50 무게: 7
요구 스탯: 기교 19
보정 스탯: 기교
부가 효과: ◈ 치명타 확률 10퍼센트 증가, 치명타 공격력 20퍼센트 증가
◈ 특수 효과: 무기를 뽑거나 집어넣을 때 발생하는 딜레이 삭제. 무기를 뽑은 뒤 10초 동안 공격 속도 및 이동 속도 대폭 증가
“후우우…… 이번엔 솔직히 지릴 뻔했다.”
언제나 그렇듯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놈이 휠윈드를 사용하며 돌진할 땐 아크 데몬이나 마신들 못지않은 박력이 느껴졌다. 무서운 정도로만 따지면 아크 데몬의 비행돌진보다 훨씬 무서웠다.
“그보다 조련사는 어디 있지? 이 놈 잡느라 정작 중요한 놈을 방치해버렸잖아.”
고생 끝에 강적을 처치했으나 기뻐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나는 들개들 사이에서 벌벌 떨고 있을 거다.
어서 빨리 조련사를 처치해서 더 이상 몹이 늘어나는 걸 막아야…….
[커허어어엉!!]
“크흐윽?!”
그때였다. 어디선가 달려온 들개가 내 어깨를 물었다. 잡기 공격을 사용한 것이었다. 나에게 매달린 들개는 쉽게 놓아주지는 않겠다는 듯이 내 옆구리에 발톱을 박아 넣었다.
“이 새끼가!”
퍽! 퍽! 퍽!
[깨개앵……!]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쾌도의 칼자루로 놈의 머리를 수차례 가격했다. 그러자 놈은 두개골이 함몰되며 나가떨어졌다.
역시 좋은 무기는 칼자루의 데미지도 센 법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들개는 한 마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커허엉! 컹컹!!]
[컹! 컹! 컹컹컹!]
양쪽에서 달려든 들개가 내 다리를 물었다. 회피할 새도 없이 가해진 기습 공격에 나는 그만 균형을 잃고 말았다.
“이런 씨……!”
퍼어억!
내가 쓰러지자마자 근처에 있던 들개들이 일제히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 수는 무려 다섯이었다. 다섯 마리의 들개들이 내 팔다리를 게걸스럽게 물어뜯었다.
“아아악! 놔!! 놓으라고 미친 새끼들아!!”
쾌도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마구 몸부림쳤다. 다행히 들어오는 데미지는 생각보다 고만고만했다. 브릴린트가 만들어준 가죽 갑옷이 그 성능을 톡톡히 발휘하는 것이었다.
들개들의 데미지는 50. 내 전신의 방어력은 38인데다가 여기에 관통 저항력까지 붙어서 데미지가 11까지 떨어졌다. 물론 그것도 다섯 마리가 동시에 가하니 제법 아팠지만 놈들에게 벗어날 여유는 충분했다.
그렇게 팔을 붙잡은 놈부터 차례대로 떨쳐내려고 할 무렵이었다.
[크르르르르르…….]
웬 놀 한 마리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다른 놀들과는 다르게 나무 클럽으로 무장했으며 머리에는 들개 머리뼈로 만든 것 같은 투구를 쓰고 있었다.
“조련사……!”
특징적인 모습을 보고 나는 놈의 정체를 파악했다.
저놈이 바로 놀 사냥개 조련사다.
호각 한 번 불 때마다 들개들을 대여섯 마리씩 불러내는 개사기 능력을 가진 몬스터. 놈들의 대장인 놀 우두머리를 제치고 신령이 다니는 길의 실질적인 보스라고 평가받는 놈이다.
그런 놈이 나무 클럽을 움켜쥔 채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젠장, 나는 아직 들개들을 뿌리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지속적으로 데미지가 들어오고 있는 와중에 놈까지 가세하면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질 거다.
서둘러야 한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그렇게 이를 악물며 발버둥 치던 내게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릇!]
[크르으으으……!]
사방에서 놀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못 해도 열 마리는 되는 듯했다. 놈들은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석궁을 조준하고 있었다. 화살촉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내 머리였다.
놀 석궁수, 신령이 다니는 길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놈들이지만 수가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마치 맵 전체에 있는 석궁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것 같았다.
도끼잡이가 나오는 것도 이상했는데 석궁수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있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놀들이 이렇게 몰려다니는 거야?
내가 의아해하는 와중에도 사냥개 조련사는 나와 거리를 좁혀왔다. 그렇게 내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놈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입을 열었다.
[인가안……! 컹! 컹! 네놈이…… 네놈들이 사신을 불러왔다……! 컹! 컹! 컹!!]
“뭐……?”
사신이라고? 누굴 말하는 거지?
아니 그전에 놀들이 말도 할 수 있었어?
당황해서 말도 안 나왔다. 놀들에게 지성이 있다는 건 설정집을 봐서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인간의 언어까지 구사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안이 벙벙해진 채 사냥개 조련사를 바라보았다. 놈은 여전히 증오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신이……! 우리 동료를 죽였다……!! 네놈들 때문이다……! 네놈들을 제물로 바쳐서……! 사신을 돌려보내겠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나 여기 온지 반나절도 안 됐거든?!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그건 원래 살던 너희들 탓이겠지! 내 탓이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놈들은 듣는 척도 안 했다. 도리어 석궁수 중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볼트를 발사했다.
피슈웅!!
“크읏?!”
가까스로 그것을 본 나는 고개를 돌려 볼트를 피했다. 그러는 도중 사냥개 조련사가 클럽을 치켜들었다. 놈은 당장이라도 내 골통을 후려칠 생각이다.
[웃기지 마라 인간……!! 사신이 노리는 건 우리가 아니라 네놈들……! 네놈들을 데려가고자 나타난 거다……!! 그러니까 네놈들만 바치면 사신은 이 땅에서 사라질……!!]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치던 조련사였으나 놈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놈이 이야기하던 도중, 나와 조련사 사이에 웬 빛나는 구체가 나타난 것이다.
“다키님 눈 꼭 감아요!!”
나나의 외침이 들려온 건 거의 동시였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저것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라면 나에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파아아아앗!!
[꺄우우우울!!]
빛나는 구체가 터지며 눈부신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주위가 새하얗게 물들었고 석궁을 겨누던 놀들도 눈앞을 가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는 도중에도 난 멀쩡할 수 있었다. 나나가 사용한 법술, 찬란한 광채는 오직 적에게만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찬란한 광채
액티브
요구 스탯: 신념 16
비용: 마력 30
사용 조건: 법술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사제 선택 시 기본 스킬로 습득,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5초간 캐스팅한 뒤 목표 지점에 밝게 빛나는 구체를 소환한다. 반경 17미터 이내에만 소환할 수 있으며 광채는 반경 3미터 내에 있는 모든 적에게 시전자의 신념 x1.5만큼 신성 피해를 주고 2초간 기절시킨다.
“잘 했어 나나야!!”
섬광의 영향으로 들개들도 맥을 못 추렸다. 나는 놈들을 모조리 떨쳐낸 뒤 눈앞에 있는 조련사를 향해서 쾌도를 휘둘렀다.
“죽어 남탓충 새끼야!!”
촤아아아악!!
[크헤에에엑!!]
조련사가 비명을 질렀다. 놈은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쥐면서 나와 거리를 벌렸다. 급하게 휘두른 나머지 공격이 짧게 들어갔다.
허나 놈의 생명력은 고작 200. 방어력이 40인 걸 고려해도 남은 생명력은 고작 27이다. 사실상 빈사라고 봐도 무방한 상태인 것이다.
[삐이이이이이익!!]
내게서 떨어진 조련사가 호각을 불었다.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지자 놈의 목덜미에서 피가 왈칵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호각에서 입을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잡몹 주에게 정말 엄청난 집념이었다.
“호루라기 평생 압수!”
촤아아아악!!
재빨리 달려가 마무리를 가했다. 사선을 그리며 날아든 쾌도가 조련사의 숨통을 끊었다.
놈의 머리는 호각을 입에 문 채 저 멀리 날아갔지만 호각 소리는 이미 숲 전역으로 퍼져나간 후였다.
[컹! 컹! 컹! 컹! 컹!]
[커헝! 커허엉!!]
다음 순간 들개들이 귀신같이 몰려왔다. 곧 대여섯 마리의 들개들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놈들은 침을 주르륵 흘리면서 자신의 포악함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어딜!”
나는 다급히 달려오는 들개들을 저지하려 했다. 놈들의 이동 경로에 나나가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두면 나나가 들개들에게 그대로 노출될 거다.
하지만 놈들은 내 주위에는 아직 들개들이 남아 있었다. 조련사를 죽이느라 정작 들개들은 처리하지 못한 것이었다.
[크허어어엉!!]
정신을 차린 놈들은 곧장 공격을 재개했다.
신속한 스텝으로 놈들의 이빨을 피해내는데 성공했으나 그로 인해 나나와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어느덧 새로 나타난 들개들은 나나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누구나 다 그럴 싸한 계획이 있지…….”
그 순간 나나가 정면을 향해 홀장을 내밀었다. 그러자 홀장이 한 차례 밝게 빛나더니 그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황금색 구체를 만들어냈다.
방금 전에 사용한 것과 같은 스킬, 찬란한 광채를 사용한 것이었다.
“섬광탄을 처맞기 전까지는!”
파아아아앗!!
밝은 빛이 들개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환하게 빛나는 구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아팠다. 들개들 역시 강렬한 빛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들개들은 멈추지 않았다. 스킬의 선딜레이 때문에 구체가 터지지 않은 것이다.
노력은 가상하다만 거기서 찬광을 쓰는 건 결코 올바른 판단이 아니었다.
찬란한 광채는 캐스팅 시간이 5초나 되는데다가 구체가 터지는 데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기에 맞추기가 매우 힘들다.
방금 전처럼 기습적으로 사용한다면 모를까 달려오는 적들을 맞추는 건 초보자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나야 무리하지 말고 그냥 도망쳐!! 네 실력으론 달려오는 놈들을 절대 못 맞출……!”
[깨애애애앵!!]
어……?
내가 나나를 다그치려 할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들개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우리 쪽으로 달려오던 여섯 마리가 전부 말이다.
마치 계산이라도 한 것 같은 정확함이었다. 단 한 마리도 찬광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니.
이래서야 마치 나나가 스킬의 선딜레이와 구체가 터지는 타이밍을 전부 예상한 것 같지 않은가.
내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들개들을 바라볼 때였다.
“걱정 마세요 다키님! 예측샷은 제 특기니까요!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맞출 수 있어요!”
그녀는 내 추측대로 모든 것을 예상한 채 스킬을 사용한 듯했다.
선딜레이와 구체의 폭발 타이밍뿐만 아니라 들개들이 언제 스킬의 범위 안으로 들어올지도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나나는 평범한 뉴비가 아닌 모양이다.